다들 200충 300충이라 욕하지만 애초에 없이 자란 나는 그것만 벌어도 감지덕지다. 가난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으니 내게 부유함을 상상하는 건 달나라를 여행하는 걸 상상하는 것과 같다. 너무 멀고 남의 일이다.

난 오마카세의 맛을 모른다. 그냥 국밥 한그릇이면 만족한다. 고급 빈티지의 와인은 분명 맛있겠지만 난 싸구려 발포주에도 쉽게 취한다. 유럽대륙엔 영원히 내 발자국이 생기는 날이 없겠지만 아주 가끔씩 일본을 여행하는 걸로도 나의 방랑욕은 사그라든다.

나를 괴롭게 하는 건 내가 하지 못하는 경험과 소비가 아니다. 땀에 젖은 작업복을 입고 버스와 지하철 좌석에 앉았을 때 옆사람의 찡그림이 나를 비참하게 한다. 나도 기름냄새와 땀냄새가 싫다.

막되먹은 상사는 헛소리가 어지럽다. 시키지 않은 일을 왜 하냐는 질책과 왜 너는 시키는 일만 하냐는 고함이 반복해서 들릴 때마다 나는 미쳐간다.

나의 작은 경차로 출퇴근하면서 교통신호를 지킬 때, 뒷차의 빵빵거림과 갑작스런 끼어듬이 나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난 그저 교통법규를 지킨 것뿐인데. 내가 슈퍼카를 탔어도 그랬을까. 괜한 자격지심이 몰려온다.

나를 괴롭게 하는 건 사람이다. 난 혼자서는 행복하다. 둘이서도 아마 즐겁다. 셋이 되면 그 중 하나는 날 힘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