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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갤문학) 보스돌이 아델앱에서 작성

ㅇㅇ(118.235) 2022.04.26 17:55:32
조회 86 추천 1 댓글 1


“후우…”

나는 익숙하게 제단에 손을 올렸다.
처음에 느꼈던 오싹함과 두려움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이젠 오히려 지루할 정도였다.

쿠구구구!!

발 끝에 요란한 진동이 닿았다.

‘여기? 이번엔 여기쯤인가.’

언제나 그렇듯, 정확하게 내 발 아래쪽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화악-. 돌연 몸 주위로 하얀 빛이 휩싸였다.
빛의 형상은 점점 검의 형태로 잡혀가고 이내 몸이 앞으로 도약했다.

쿠구구구궁!!!!

놈이 치솟은 순간과 정확히 일치했다.

“쿠아아악-!!!”

동굴 속에 퍼지는 엄청난 괴성.
놈이 내뿜는 살기에 금방이라도 몸이 굳어버릴 것 같다…는 것도 옛날 이야기.
곧바로 이어질 공격에 대비한다.

나는 손을 뻗었다.
붉은 검의 형상이 하늘에서부터 수직으로 내리 꽂혔다.
벨룸의 긴 몸통을 옥죄는 나만의 영역.
수십개의 검이 놈의 단단한 갑옷을 연속해서 꿰뚫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감각.
재빨리 또 다른 빛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콰드드득!!!
발 밑에서 솟구쳐오르는 바위 송곳.
무식하게 단단한 이것이, 놈의 꼬리 부분이다.
발빠르게 만들어낸 에테르 소드의 방어막이 없었다면, 진작에 내 몸통은 반 토막이 났으리라.

‘사실…여러 번 나기는 했었지.’

놈의 공격에 튕겨져 나간 제 몸을 그대로 추진력 삼는다.
나는 손을 뻗어, 공명하고 있는 에테르 소드를 한 곳으로 모았다.
나를 중심으로 천천히 휘감아지는 빛의 검들.
이내 속도에 가속도를 붙이며 폭풍우처럼 빠르게 회전한다.

나는 그대로 놈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놈에게 닿지 않는다.

쿠드드득!!!

그대로 땅 밑으로 숨어버린 벨룸.
그 탓에 동굴의 천장에선 거대한 종유석이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마력이 깃든 저 종유석을 안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인 마비를 일으킨다.

나는 마력을 한 곳에 끌어 모았다.
내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빛의 검을 만들어낸다.

종유석이 닿기 직전, 몸체가 잠시 부유했다.
그리고 곧, 날아다니던 에테르가 만들어 놓은 결정에 빛의 속도로 돌진한다.
그 검로에서 지나치는 종유석들은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지면에 몸이 닿자마자 감각을 고양시켰다.
놈의 위치, 이어질 공격에 대비하여 경계를 한껏 끌어 올려야 했다.

쿠구구구구-!

젠장, 동굴의 끝쪽인가.
나는 서둘러 빛을 휘감았다.
동굴의 끝에서 끝.
도달할 수 있을까.

돌연 주변이 차게 내려앉았다.
공기가 달랐다.
바짝 곤두선 감각이 소리치고 있었다.

‘이건….’

피해야했다.
어디로?
이것을 유일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은….

빛을 휘감아 공간을 자르고, 몸통을 추켜세웠다.
도약에 도약을 이어, 놈이 벌리고 있는 아가리에 에테르를 보내 결정을 만든다.
주변의 마나가 놈에게 휩쓸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동굴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피하기엔 늦었다.
거대한 빛의 형태가 놈의 입가에 모여들었다.
그 구체는 점점 불어나, 크기를 더하더니, 이내.

콰아아아!!!!!!!!!

브레스가 신전 전체를 덮었다.

*

“…어린 불멸자여. 역시 알고 있었다.”

“뭘? 이대로는 죽지 않을 거라는 걸?”

새로운 공간.
내가 창조해낸 검의 공간.
이 곳은 검과 나.
그리고 녀석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공간이다.

“개구라까시네. 이번엔 정말 죽일 생각이었잖아? 하긴, 데카를 깐지도 꽤 오래되긴 했지.”

피식 웃으면 놈을 노려보았다.

“크르릉… 네 녀석. 그런 주제에 잘도 말하는 군.”

놈은 그 따위의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몸통의 사이, 관절의 사이, 눈과 귀, 입과 비늘의 사이.
역린이라 할만한 곳엔 온통 붉은 검이 쳐 박혀 있었다.
그러고도 수천만 개의 검이 그 주변을 떠돌고 있었다.
언제라도 온 갑옷을 뚫어버릴 기세로.

“하지만 불멸자여. 그대도 알 것이다.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다.
이 공간은, 그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시 피해온 공간일 뿐이다.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고….’

쩝. 입맛을 다시며 놈에게 대꾸했다.

“최대한 아껴두고 싶었는데 말이지. 오늘은 꽤 사나운데?”

“서서히 공간이 무너지고 있군.”

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마 피통의 반도 채 깎지 못했으리라.
그래도 저렇게 전신에 검을 꽂아 놓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고슴도치 같아 퍽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다시 손을 뻗었다.
하얀 빛의 에테르가 다시 주변에 모여든다.
놈은 계속해서 그저 나를 보고 있을 뿐.
그 안에 든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알 필요도 없었고.

챙그랑.
공간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두개의 대검을 만들어, 놈의 목덜미에 쑤셔 박았다.
…쑤셔 박으려던 찰나였다.

“너 뭐하냐?”

“…베어라.”

“뭐하냐고 지금.”

검의 예리한 날이 놈의 목덜미 앞에서 멈춰섰다.
나는 고개를 들어 차례차례 턱, 주둥이, 그리고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벨룸은 눈을 감고 나의 검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불멸자여. 그대는 어찌하여 매번 이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가.”

아무런 기척이 없자, 놈이 서서히 눈을 떴다.

“어찌하여 검을 사용하여 폐부를 찌르고 난도질하며 그에 목숨을 거는가. 실패하여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불구덩이에 살이 녹으며, 종유석에 맞아 몸통이 반이 되고, 맹독에 허우적거리며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일 터. 그것을 반복하며 계속 도전하고 그것에 익숙해지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그런 걸 묻지?”

뻗었던 손을 내렸다.
녀석에게 동정심이나 없던 자비가 생겨서가 아니었다.

“그대는 나를 만난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이 곳에 왔다. 그리고… 여전히 그 상태 그대로지.”

벨룸도 살의를 거두었다.
아니, 애초에 거둔 지는 한참 되었나.
브레스를 내뿜을 때가 끝이었던 것 같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이것이라면…언제든지 내어줄 수 있다.”

놈의 이마 위 비늘에서 파란색 수정이 천천히 드러났다.
결정석.
시장에 있는 콜렉터가 비싼 값에 매입한다는 보석이었다.

“정녕 이것을 원하는 것인가. 그대는?”

팅-.

결정석은 천천히 공중을 부유하다가 이내 내 발 밑으로 툭 떨어졌다.
마치 아무런 보잘 것이 없는 그것처럼.

“…그대는 이 따위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나는 무수히 많은 용사들을 보았지.”

“…….”

“걔 중에는 그대처럼 현재에 머무는 용사들도 있었고, 성장하고 또 성장하여 매번 강해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용사들도 있었다. 어느덧 그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도 않았지. 아마 이 곳… 땅 밑의 제단이 아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것이겠지.”

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콧김에도 미세하게 주변이 웅웅거렸다.
놈은 그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대는 어떤가? 정녕 이것 만을 원하는가?”

그의 시선을 따라 나도 발 밑에 떨어진 결정석을 보았다.
어두운 공간 속, 홀로 빛을 내는 푸른 보석.
기억도 안 날 그 시절이 잠시 겹쳐졌다.

제롬을 만나고, 검의 선택을 받고, 대륙을 오가며 해냈던 많은 이야기들.
좋은 무기를 만나고, 비싼 장신구를 끼며 사람들을 구하고 악의 세력에 맞서는….

“…나는….”

언제부터 이 곳에 멈춰 서게 된 걸까.
언제부터… 모험을 끝냈었지?

“…결정석은 그대의 것이다. 가지고 가라. 그대가 다시 온다고 해도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여. 불멸의 걸음을 땅 밑으로 향하지 말라. 그대의 손 끝엔 여전히 빛이 있지 아니한가.”

쿠르르릉-!

대답도 듣지 않았다.
놈은 그렇게 땅 밑으로 사라졌다.
…결정석을 들고 사라지기 전까진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나는 다시 발 밑을 내려다보았다.

푸른 빛을 내던 결정석은 더 이상 밝지 않았다.
손 끝에서 공명하고 있는 나의 에테르가… 더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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