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방송된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3'에서는 진성이 포항집을 찾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진성은 자매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안문숙은 "정말 오랜만에 뵙는다. 제가 라디오 할 때 많이 오셨다"며 "20년 전까지는 안 된 것 같고 한 15년 정도 된 것 같다. 제가 라디오 할 때니까. 그때는 무명이 길었다. 근데 그때도 노래를 굉장히 잘했다. 그때 기억으로는 '언젠가 뜨리라' 생각했는데 정말로 잘됐다"고 기뻐했다. 박원숙은 "꼭 사람이 성공하고 나면 꼭 뒤늦게 얘기하더라"고 지적해 웃음을 안겼다.
진성은 "안문숙 씨가 부러워하는 분들 중에 한 명이었다"고 말하자 박원숙은 "어쩐지 쟤가 굉장히 교만한 게 있다"고 너스레를 떨어 다시 한 번 폭소가 터졌다.
진성은 "안문숙 씨는 라디오에서 보고 밥도 한 끼 먹어서 기억이 난다. 안소영 씨는 그때 어울리지 않게 야간업소에서 만났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미모의 영화배우여서 (놀랐다)"고 말했다.
박원숙은 "어떤 영화를 기억하냐"고 묻자 진성은 말을 더듬으며 "요즘에도 재방이 많이 나오더라. 원조이지 않냐. 왜 업소에 나올까 그때는 의아했다. 웨이터들이 대표 이사한테 톱스타 섭외 요청을 부탁했던 것 같다. 뭇남성들이 섭외 요청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안소영은 "내가 배우인데 배우로서 돈을 벌어야되는데 배우로서 돈을 못 버니까 주변에서 목소리가 좋다고 하니까 업소에서 '서울의 찬가', '못 잊겠어요', '뜨거워서 싫어요' 이 3곡만 했다"고 말했다.
박원숙은 "아내가 진성을 위해 약초를 캐다 다쳤다"며 말했다. 진성은 "제가 무명 끝에 '안동역에서'로 이름이 알려졌는데 2년만에 투병을 하게 됐다. 신장판막증과 혈액암을 선고 받았다. 그때 아내를 만났을 때였다. 백도라지가 암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동네 분들하고 산에 갔다가 새벽 1시쯤에 왔는데 화장을 진하게 하고 들어온 거다. 그 사람 눈에 백도라지가 보였다보다. 험한 바위를 올라가다가 미끄러져 낙상사고를 당했다. 굴러서 머리는 8바늘을 꿰매야했고 안면 찰과상을 화장으로 가렸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너무 슬펐다. 아내를 잘 지켜줘야겠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이 들었다"고 말해 감탄을 안겼다.
이어 "투병 생활은 6개월 정도 해야 병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투병 생활 중 방송 출연 제안이 왔는데 걷는 것도 힘들었다. 무명으로 돌아가기 너무 슬프니까 투병 중임에도 방송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진성이 이토록 절실했던 이유가 또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대해 "초등학교 4학년으로 월반을 해서 2년 다니고 졸업을 했다"며 "제가 부모님이 안 계시다 보니까 친척집에 머물며 살던 시절이 있다. 호적이 없어서 초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입학할 수가 없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어 "부모님을 8년만에 만났다. 3살 때 헤어져서 11살 때 만났다. 나이에 맞게 4학년에 입학했는데 공부가 되겠냐. 기본기 없이 4학년으로 갔으니 그때는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제가 눈칫밥을 먹고 살아서인지 눈치 내공(?)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로 칭찬도 받고 대외활동도 뽑혀서 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11살 때 다시 부모님을 만나고 생활을 하는데 부모님이 정말 지겹게 싸웠다. 집에 있는 것 자체가 싫었다. (하루는) 외삼촌이 왔는데 부모님이 싸우니까 외삼촌이 엄마를 데려갔다. 어머니와 헤어지기 싫어서 어머니를 따라서 갔다. 버스를 타고 가려던 어머니와 삼촌을 따라 나 데리고 가라고 하니까 외삼촌이 저를 발로 밀쳐냈다. 그때 제가 어렸었지만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분들은 부모가 아니라 원수였구나. 그때는 그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부모님을 안 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객지 생활이 시작됐다. 무식한 게 싫었다. 무명 가수들은 홍보를 위해 발로 뛰던 시절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여의도로 출발했다. 모든 방송국을 돌았고 그냥 다니는 것보다 내실 있는 일을 해보자고 해서 전철 탈 때면 신문을 사서 읽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배우고 그렇게 15년 하면서 제 자신을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진성은 "과거 농사일을 전부 수작업으로 했다. 논길을 걸으며 노래를 하면 어머니들이 부른다. 그때는 아침, 오후 새참이 있었다. 그때 배고픔이 심했기 때문에 새참 시간이 되면 대규모 새참 장소를 찾아가 얻어먹으려고 노래를 했다"며 "공식적으로 창을 배운 적은 없고 한 동네 있던 어른이 계셨는데 무명 소리꾼이셨다. 정말 잘했다.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쉬는 시간에 보리개떡 얻어먹을 생각으로 어르신을 따라 배운 거다"고 말했다.
진성은 '보릿고개' 작사에 대해서도 "어린 시절 겪은 이야기다. 동네에 술 공장이 있었는데 술밥이라는 게 있다. 훔쳐먹으려고 들어갔다가 걸려서 술통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근데 너무 커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근데) 직원이 제가 술통에 빠진 줄 모르고 그래도 퇴근했다"며 "울다가 지쳐서 술통에서 잠들었고 아침에 낡이 밝고 소리치니까 아저씨가 놀라 달려왔다. 아저씨와 타협을 했다.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마라'고 하더라. 그때 제가 얼마나 영악했는지 '비밀로 할테니 술밥을 먹게 해달라'고 했다"며 웃었다.
진성은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도 공개했다. 그는 "49살에 결혼했다. 무명 가수였을 때 아내를 만났다. 누군가를 먹여살릴 자신이 없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만났다"며 "소개해준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양평에 작은 별장도 있고 작은 아파트도 있고 통장에 잔고도 좀 있다'고 했다. 집에서 생각해보니까 솔직히 구미가 당겼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아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처음에 일수하는 아줌마인 줄 알았다. 커다란 가방만 안고 나를 쳐다만 보고 가방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겼다"며 "저를 소개 받기 전 아내하고 장모님이 청학동을 찾은 거다. 그 곳에서 날카로운 목소리의 제 메들리가 나왔는데 그 목소리를 듣고 (호기심으로 나에 대해) 아내가 사장님한테 물어본 모양이다. 가방 속에는 제 전집 앨범이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이제 정리해갈 나이가 됐다. 70살 넘어서는 노래는 안 하리라. 왜 마음 먹었냐면 유년기부터 곡절의 인생을 겪었다. 지금도 초야에서 마음 편히 살고 싶다.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꿈꾼다. 68살에 은퇴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은퇴 전에) '아듀 콘서트'도 하고 2년 정도는 사회가 나한테 베풀어준 은혜가 있으니까 2년 정도 사회봉사를 하고 70세 넘어서는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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