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먼트뉴스 유지태 인턴기자]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의 신작 (2023)은 이번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여 화제를 모았다. 시리즈로 '미남' 스타로 평가받았던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는 각종 루머와 스캔들로 자신의 커리어가 하락해만 갔는데, 이번 작품을 통하여 다시금 재기할 수 있는 그 전환점이 맞이하였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결코 그의 연기로만 높게 평가하기에는 꽤나 준수한 작품성을 지닌 영화이다. '200kg이 넘는 거구의 초고도비만 대학 강사'라는 캐릭터 자체가 어떠한 다양성을 담아내느냐 의문이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감독의 이전 필모그래피를 차근히 따라가다 보면 감독이 꾸준히 작품 속에 녹이고자 했던, '가족주의'의 메시지가 캐릭터를 통해 공통의 맥락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몸집을 일으켜 젖을 멕이던
그 고통어린 환희의 순간.
대런 아르노프스키는 뛰어난 미장센에 수반된 고전적 표현주의의 재해석으로 보아야 할 만큼, 영상 언어에 대해 집요한 연출이 훌륭한 감독이다. 먼저, '마약 예방' 공익광고와도 같은 (2000)에서 알 수 있듯이, '가족'으로 설정된 세 명의 인물이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되며, 폐망의 소용돌이로 휩쓸려감에 따라 비극을 맞이하는 스토리로, 이 영화에서는 '가족주의'를 표방하여 하나의 장르적 메시지로 해석하기에, 마약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는 의도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온전치 못 한 가족의 형태(편모 가정) 속에서 발현한 캐릭터들의 외로움, 그 속에서 느껴지는 자아실현의 욕망 때문에 선악과처럼 선택하게 된 구원책이 '약물'이라는 점에서 (가족의 해체의 원인으로써) 직간접적으로 잘 나타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가장 (2023)과 스토리의 핵심과 메시지가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영화, (2007)에서도 역시 한 물 간 '퇴물' 레슬러 '랜디 (더 램) 로빈슨'을 등장시켜, 부양이 어려운 아버지가 아내와의 이혼으로 상처 입은 딸을 다시금 만나게 되며, 사랑하는 존재로부터 구원을 얻는다는 것 자체가 '가족주의'에 대한 영화에서 여느 잘 나타나는 구조와 스토리적 메시지이다. 결국, 주인공이자 영화의 화자 아버지를 통하여 주변 인물들이 입었던 상처를 회복하고, 그 인물들로 인하여 주인공 자체도 구원을 받으며 마치 절대적인 것들로부터 회개 받는 듯한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두 영화를 보며 공통적으로 느꼈을 감동의 순간이었다. 두 작품 모두 죽음이 가까움을 느낀 아버지가 그 제서야 '딸'에게 용서를 바란다는 점에서 안타까웠던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결국 해체되었던 가족의 정서가 다시금 하나의 공동체로 재건되었다는 것을 기적이자, 긍정적인 완결로써 바라볼 수도 있다.
또한, 유독 여느 관계보다 '가족주의'의 대표성을 나타낸 관계를 '부녀지간'으로 바라보았던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이유 역시도 많은 작품들에서 '모자지간'에서 나오는 혹은 '모녀지간'에서 나오는 '모성애'가 자녀들에게 가해지는 영향력에서 드라마를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로 여전히 서툴게 느껴질 수 있는 '부성애'라는 이미지가 각색되기에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서툴고, 표현에 약한, 고로 이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과 투박한 것들에서 느껴지는 진심들에서 진부한 사랑의 형태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관객들이 같은 지점에서 공감을 했을 것이고, 또 반대로 영화 자체의 메시지에 의문을 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17년 개봉한 화제작 (2017)은 성서의 무대적인 재해석으로 봐야할 만큼 연극 무대와 유사하기도 했고, 직유법보다는 영화 전체를 하나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은유로써 묘사하였다. 성서에서 있었던 모든 사건은 결국 모성애로 귀결되었다고 보아야 할 만큼, 영화의 근원적인 메시지를 찾기에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 작 (2014)와 더불어 알 수 있듯이 감독의 해석이 성서와 종교에 위배되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가족 구성원의 희생이 불가피하지 않고서는 가족이 일어설 수 없다는 맥락이 영화에서 계속해 나오는데, (2014)에서는 아버지의 캐릭터를, 에서는 어머니의 캐릭터로써 그 희생정신을 강조해왔다고 생각한다.
▶(2023)을 만들던 대런 아르노프스키도 역시 현대영화에서 추구하는 다양성의 가치를 꽤나 심도 있게 고민했는지, (2008)에서는 딸에게 부여했던 동성애의 이야기를, 이번 작품에서 아예 가장 주요의 주인공 화자에게 설정시켰고, 이를 갈등의 근원으로써 극을 풀어나갔다. 물론, 종교적으로 보았을 때는 영원히 '원죄'로써 용서되어야 하지 않아야 할 '동성애'가 딸의 용서를 통해 마지막 결말에서 구원을 받으며 영화를 꽤 훈훈하게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이 부분이 아직까지 현대의 관객들에게 이해될 수 없을 부분이라고 느끼고 공감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어떠한 형태로써 가족이 공존을 하던, 화합과 존중은 우선되어야 할 가치이다. 요즘 시대의 영화들이 계속해서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고 있고, 그만큼이나 그 이유도 세계의 가족 형태가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점이다. 어떠한 만물과 이를 담고 있는 세계를 결국 가족으로만 회귀시키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 역시도 염두 해야 할 것이지만, 그래도 그만큼이나 가족주의가 우리 시대에 얼마나 귀한 자극이 되어주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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