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평범하게 느껴지는 건 그럴 수도 있는데 그게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왜냐하면 감독이 잘 모르는 걸 찍을 때는 미학적 도전을 감행하거나 클로즈업으로 숨는 경우가 있음

부담감이 크니까

이 감독이 어디 영화 학교 출신인지 영화과 출신인지 아니면 아무 배경 없...을 리는 없고 하여튼 뭘 아무리 배워도 누가 이때는 풀숏 쓰고 이때는 클로즈업 쓰라고 안 일러준다

일러주는 사람 없으니까 이창동도 씨바 모르겠다 하고 현장에서 줄창 담배만 피우는 거

근데 장손 이건 특히 풀숏 쓰는 게 아주 자연스럽다 어떤 때는 아예 타르코프스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익스트림 롱숏으로 레이백

초반 한 30분 넘어갈 때 쯤에는 리듬과 구성에서 이미 소위 한국 차기 기대주로 뽑히곤 하는 윤단비 이하 잡몬들 가볍게 넘었다

풀숏을 이렇게 찍을 수 있는 감독은 차원이 다른 놈임

이렇게 풀숏이 단단하게 받쳐 주니까 미디엄숏만 들어가도 긴장감 팍 쪼이는 거

반면교사 하나 소개하자면 일본 최고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프랑스에서 찍은 영화 봐라

그 정도 수준의 감독도 어 나 프랑스 잘 모르는데 싶으면 클로즈업만 찍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결국 영화가 빈곤해짐

장손 이건 식구들 모여서 지멋대로 떠드는 거 찍을 때는 거의 경이롭다

전통 제사나 장례 연출은 임권택 이후로 최고고 문화 기록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오히려 임권택보다 더 잘 찍었다

임권택이 이런 거 찍을 때는 물론 자기가 보고 들은 걸 찍은 것도 있겠지만 어떤 의무감 속에서 한국의 얼이라는 걸 재현하기 위해 연출함

근데 장손은 그것보다 훨씬 자기 피부에 가깝고 구체적이다 당연히 뭔 의무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일본식 장례 문화 유산도 쳐내지 않고 그냥 다 찍어버린 거

대사들이나 인물 표현이 나처럼 닳고 닳은 관객을 한 걸음 앞서가면서 여우처럼 홀릴 정도는 아닌데 몇몇 대사는 문학적 수준이고 진짜 폐부를 찔러서 경탄이 나오더라

감독이 연극을 약간 공부했지 싶다

씨름선수나 유도선수처럼 이렇게 버티는 힘이 좋은 영화는 정말 본 지 오래된 것 같고 특히 한국에서는 희귀종이다

요새 한국에서 누가 이렇게 만드노

미조구치 겐지세요?

이게 아마 장편 데뷔작이지?

병신같은 한국 영화계에서 장손 많이 알아봐 줄 것 같진 않지만 진짜 잘 만들었다고 나라도 칭찬해 주고 싶고 더불어 감독한테 충고 하나 하자면 다 좋은데 영화적인 마술은 한 시점을 벗어나는 데 있다는 것을 고려했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자전적 이야기에 대한 익숙함에서 자신감을 얻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장손 한 사람의 시선에 너무 의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함. 특히 그 인물에게 의미의 계승자 지위를 부여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AI 이미지가 생성되었습니다.

새로고침(F5) 해 주세요.

프롬프트

a young man in the white mist that makes him almost invisible.

네거티브
프롬프트

샘플링

DPM++ 2M Karras

스타일

N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