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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박 11일 여행 후쿠오카 -> 도쿄 - 2일차 키타큐슈
- 관련게시물 : 10박 11일 여행 후쿠오카 -> 도쿄 - 1일차 후쿠오카이거 핸드폰에서 데스크톱 사이트로 올리면 버그인지 뭔지 글이 안 올라가져서 어제 1시간 반 쓴거 날리고 새로 씀 ㅅㅂ—————————————————————————————————첫날 이자카야에서 좋은 추억을 갖고 숙면… 하려 했으나 숙소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 + 첫날이라 설렘 이 두 원인 때문에 잠을 30분 정도만 잠어쨌든 좀비 같은 상태로 기상해서 하카타 역까지 걸어감역까지 걸어가는 길 아침이라 조금 시원했음그리고 하카타역에 도착해서 7일동안 사용할 산요산인패스를 발급하러 감참고로 이 패스는 jr서일본 관할이라 서일본 창구에 가서 진행해야함 발급 때 사진은 비몽사몽해서 없고 위 사진과 같이 산요산인 티켓을 발급받을 수 있음(유인,무인 창구 둘다 오케이)이걸로 하카타 - 오사카 간 신칸센을 7일 동안 무제한 탑승할 수 있고 jr도 아마 서일본 관할은 무제한 탑승 가능함사진에 보면 별이 찍혀있는데 신칸센 지정석을 유인 창구가 아닌 무인 자동화 기기에서 뽑으면 별이 하나씩 늘어남 총 6회까지는 무인 기기에서 가능하고 7회부터는 유인 창구 가야함 ㅇㅇ 근데 너가 지정석 필요없으면 그냥 개찰구 통과하면 되니 참고그래서 이렇게 하카타 -> 고쿠라 신칸센 지정석 티켓을 발급받음참고로 이 패스로 재래선이나 소닉 이용해서 하카타에서 고쿠라에 갈 수는 없음 (jr규슈 관할이기 떄문 신칸센만 jr 서일본)그래서 패스를 뽑고 어제 이자카야 사장님이 하카타는 우동이지 하며 추천해준 우동집에 찾아감마키노 우동 하카타버스터미널점임 마키노우동 하카타버스터미널점 · Fukuoka, Fukuoka 마키노우동 하카타버스터미널점 · Fukuoka, Fukuokamaps.app.goo.gl 마키노우동 하카타버스터미널점 · Fukuoka, Fukuoka 마키노우동 하카타버스터미널점 · Fukuoka, Fukuokamaps.app.goo.gl이 우동집에서 유명한 니쿠고보텐(고기우엉튀김)우동을 주문맛은… 추천해준 사장님께 죄송하지만 좀 달았음 그래도 쇠주전자에 담긴 육수를 한모금 했는데 이건 좀 짜서 단짠단짠 느낌으로 육수랑 우동이랑 번갈아 먹음그건 별개로 고보텐 튀김 <— 이거 맛있었음 원래 내가 야채를 안 좋아해서 맛있으려나 했는데 한 입 먹은 순간 우엉이 보들보들하게 씹히고 튀김이 바삭하게 튀겨져서 엄청 맛있었음그렇게 밥을 먹고 신칸센을 타러감탈 신칸센은 고다마 계열이걸 타고 20분 정도 날라가면 됨그전에 하카타역에서 유명한 빵집에 들렸는데일 포르델 미뇽이라는 빵집인데 미니 크로와상을 팔음 종류는 3종류였던거로 기억하는데(일반, 초코, 고구마) 한개씩 사서 먹어봤는데 맛있으니 한 번 사먹어 보삼사진도 있긴 한데 사진 제한 있어서 올리지는 못함그래서 이 빵을 사서 신칸센에 탑승함 일 포르노 델 미뇽 · Fukuoka, Fukuoka 일 포르노 델 미뇽 · Fukuoka, Fukuokamaps.app.goo.gl후쿠오카 전경예쁩니다그렇게 키타큐슈 고쿠라역에 도착함여기서 코인락커에 짐을 던지고 위 사진에서 직진해서 모노레일을 타고 탄가시장으로 감예전에 한 번 화재가 났었지만 이제는 거의 회복된 모습인 탄가시장가면은 시장처럼 생선, 고기나 각종 재료를 팔고 간단한 요깃거리도 팜 하나 사서 돌아다니면 좋음여기서 느긋하게 1시간 정도 구경함길가다 발견한 토리이일본은 이런 조그마한 구경거리가 있어서 길 가다가도 눈이 심심하지 않음청과시장이었던 거 같은데 여기는 아직 복구가 진행 중인거 같았음그렇게 탄가 시장을 둘러보고 고쿠라역으로 걸어감저벅저벅고쿠라역 도착이제 여기서 북쪽으로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아루아루시티에 갈 수 있음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은하철도 999 동상아마 작가 분이 여기 출신이었던가도착한 아루아루시티여기서 씹덕 굿즈나 관련 이벤트가 열리기도 하는데후쿠오카에서 굿즈 살 떄는 굿즈 샵이 모아져 있지 않고 분산되어 있어서 애매한데 여기는 한 건물에 다 모아져 있어서 후쿠오카에서 씹덕 굿즈 사고 싶으면 여기 와서 사는게 좋음여기 안에 들어가면 성우, 작가들의 사인이나 굿즈샵이 많음3이라 쓰여있는 파란 머리가 악기들고 있는 책 평범한 경음부라는 만화인데 재밌으니 한 번 보세요애스컬레이터를 올라가면서 작화 그림이 보임그리고 여기 태고가 있는데 한국에서 자주 들른 오락실은 1000원에 두곡인데 여긴 4곡이라는 미친 가성비를 자랑함바로 이건 못참지~ 시전하고 3천원 넣어서 12곡 두드렸다사진은 나 아니라 옆의 고수분이 하던 모습 찍은거 진짜 엄청 잘하더라그래서 태고 신나게 두들기고 고쿠라 성 보러 이동함가던 길에 사진 한장그림이 너무 예쁨가던 길에 아까 못 찍은 모노레일 사진도 한 장 찍음버스를 타고 고쿠라 성에 도착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거라 새 거 같은 느낌이 난다어쨌든 저 돌 도리이 안으로 들어가 성 안으로 진입할 수 있음성안으로 들어가면 돈을 내고 입장하면 되는데 안에 체험할게 있음 기모노 입기라던가 가마 타보기 라던가그렇게 구경하고 옥상으로 올라감사진은 뭔가 호랑이가 박력 넘쳐서 한장 찍었음맨 윗층에 갔는데 고쿠라 시내 전경이 보이고 뻥 뚫려 있는 느낌이 들었음근데 구름이 껴있어서 구름 걷히길 기다리다 파란 하늘이 보일때 한장여기서 30분 정도 있다 내려옴날씨가 갠 고쿠라 성의 풍경파란하늘과 구름과 하얀 성이 어우러져 예쁘다물 웅덩이에 비친 성이 예뻐서 한 장 찍음그래서 밖으로 나가다 성 입장권이랑 같이 고쿠라 성 정원 입장권도 같이 사서 정원으로 감정원 안에 들어가면 앞에 건물과 고즈넉한 정원의 모습이 들어오는데 느리게 걸으면서 풍경을 구경하면 힐링됨중간에 가다 성이 잠깐 보이는데 성을 배경으로 정원을 찍으면 예쁨그렇게 고쿠라 성을 구경하고 모지코로 넘어감얘네 글쓰는데 용량이 부족한거인지 사진 제한이 있는건지 게시가 안되서 두 개로 짤라서 올림개추는 글 쓰는데 도움이 됩니다 개추 한번만…
작성자 : ㅇㅇ고정닉
싱글벙글 한국 파시즘
https://youtu.be/-WKF6snyqn4브금 이승만정부에서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하고, '일민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발휘했으며, 박정희 정부 시절에 이르기까지 단군민족주의에 대한 실천운동을 전개하였던 '안호상'이라는 인물은 과연 누구인가? 오늘은 안호상의 해방 이전 삶에 대해 간략히 알아볼 것이다. 대종교인 안호상 1902년, 경남 의령군에서 태어난 안호상은 1919년, 식민지 조선에서 만세 삼일 운동이 기세를 떨치자, 17세의 나이로 집안어른 안희제 등의 영향을 받아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백산상회 안희제는 훗날 임시정부 비자금의 출처 중 하나가 되기도 하는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설립하고, 조선국권회복단에 참여하는 등, 경제적 자립을 통해 독립을 이뤄내고자 했던 민족자본가였다. 그는 일찍이 1911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1930년대에는 만주에서 발해농장을 개척하는 등, 1942년 임오교변(壬午敎變)으로 고문치사당하기 전까지 대종교 포교운동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게된다. 일제에 의해 희생당한 안희제의 거룩한 초상(肖像)은 훗날 안호상의 회고록에도 인상깊게 묘사된다. 이렇듯 안희제의 영향을 받아 대종교에 입교한 안호상은 수많은 대종교인들과 교분을 쌓으며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가 훗날 회고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인물들은 후일 대종교 3세 교주가 되는 윤세복, 민족사학자 단재 신채호와 위당 정인보 등이었다. 단재 신채호 안호상은 윤세복으로부터 한민족의 옛 역사와 화랑정신을 전수받았고, 위당 정인보로부터는 역사관을 전수받았는데, 특히 단재 신채호는 북경에서 안호상을 처음 만나자마자 대뜸, "우리는 올바른 민족역사를 찾아야 한다." 며, 이제 막 독일로 유학길을 떠나려는 젊은이에게 신신당부를 하기도 하였으니, 안호상이 훗날 민족적 사상을 전개해나가려는 생애 초기 시절, 이 때의 대종교 인맥은 여러모로 막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임이 틀림없다. 기실 안호상은 훗날, '철학할 결심'을 이때 거듭 하게 되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던 바, 해방이후 조선민족청년당을 창립하는 이범석, 한글운동과 조선어학회 활동에 참여했던 이극로 등도 모두 대종교 활동을 통해 알게된 인맥이었다. 대종교와 독립운동, 그리고 민족주의는 한데 얽혀 안호상의 젊은 날을 구성했다. 단군을 숭배하는 민족 고유의 종교가 다시금 부활해야만이 민족도 갱생하고, 또 독립도 가능하다는 것이 대종교의 가르침이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심지어 21세기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 한국인에게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매년 10월 3일에 있는 공휴일 '개천절', 젊은이들의 성지인 '홍대 거리(홍익인간)', 인기있는 배달 플랫폼 '배달의 민족(배달겨레)' 등, 그 어원을 따지고 들어가 보면 대종교에서 유래한 단어들이 100년이 지난 2020년대 현재에도 피상적으로나마 알게모르게 산재해 있는 것이다.조선인 유학생 안호상"부모 형제가 가족이라면 한 핏줄의 동포는 민족이며, 가정이 가족의 집이라면 국가는 민족의 집이다. 민족은 어떠한 개인과 계급보다 더 귀중하며 국가는 어떠한 단체나 정당보다 더 크다. 민족과 국가를 가장 높게 또 귀중히 여김은 인생의 본성이며 한 백성 일민의 본무이다." - 안호상. 일민주의의 본 바탕. 서울: 一民主義硏究院, 1950. 이승만과 더불어 몇 안되는 조선인 출신 '박사'이자 식민지 시절 최고의 엘리트 중 하나였던 안호상이, 독일에서 소위 '히틀러 연설에 충격, 감명받았으며 그로 인해 나치 추종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오늘날 한국의 인터넷에도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안호상이 유학간 곳이 독일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본래 안호상은 일본의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와 상하이의 퉁지의공대학(同濟醫工大學)에서 수학했으며, 독일로 간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독일로 가기 전의 안호상은, 회고에 따르면 비행사를 꿈꿨다. 그 이유 또한 비범한데, 폭격기에 몸을 싣고 황거(皇居)에 폭탄을 떨어뜨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거 어째서 정 반대의 길, 지식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일까?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던 이 젊은이가 상해에서 목격한 독립운동가들의 실태는 서로 분열되어 어지러이 다투고 있는 실정이었다. 회고에 따르면, 이로 인해 더욱더 '민족철학'을 바로세우는 것이 급선무이며, 당대 가장 철학으로 선진적인 국가가 곧 독일이었기에 독일로 유학갈 결심을 굳혔다는 것이다. "저기, 말을 탄 세계정신(Weltgeist)이 지나간다." - 예나에서 두 철학자가 만나다. 안호상이 독일 예나대학에서 '관계 문제에 대한 헤르만 로체의 의의'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딴 이후에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이나 일본 교토대학에 가서 연구를 한 경험 또한 있다. 그러니 '세상물정 모르던 순수한 조선 청년이 하필이면 처음으로 보게된 선진국에서 파시즘의 광풍을 목격해버렸기에 그에 주화입마하였다.'는 류의 망상보다야, 차라리 이 때 당시에 그가 공부했던 관념철학과 유심철학이 안호상에게 있어선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안호상 본인부터가 '파쇼국가의 전체주의'에 '헤겔 혹은 헤겔에 영향받은 철학자'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으니. 병약했던 안호상은 건강악화로 인해 귀국한 뒤, 헤겔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1930년대 중반부터는 동양철학, 특히 성리학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 때 안호상은 유학에서의 "아는 것은 쉬우나 행하는 것은 어렵다(知易行難)"를 거꾸로 뒤집어 "행하는 것은 쉬우나 아는 것은 어렵다.(行易知難)"고 주장한 바, 이는 중국에서 쑨원이 "아는 것은 어려우나 행하는 것은 쉽다(知難行易)"고 한 것과 꼭 같은 말이었다. 안호상은 리理와 기氣를 일원론적으로 해석하는 율곡 이이의 방식을 헤겔철학과 연관지으며, 이것을 곧 전체와 부분 사이의 상관성으로 해석했다. 율곡의 기발리승지설(氣發理乘之說), 즉 기가 발하매 리가 그것에 올라탄다는 개념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의 현상이 '모두' 기를 통해 드러나기(發) 시작한다는 점에서 어떠한 '전체성'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부모가 없고, 왕이 없고, 형이 없으면 효도도 충성도 공경도 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호상에게 있어서 이 '전체'는 "국가가 없으면 개인도 없다"는 주장과 '민족적 전틍'이라는 근거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독일민족에게 헤겔이 있었다면, 조선민족에겐 율곡이 있다."는 것이, 안호상의 발견이었다. 이 지점에서 잠시, 훗날의 안호상이 주장한 국가개인론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해방 이전 그의 삶의 궤적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국가가 우선인가, 개인이 우선인가?" 율곡이 기발리승설(氣發理乘說)을 주장하는 동시에, 리(理)와 기(氣)를 서로 떼어 나눌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하듯, 안호상 또한 국가와 개인이 상호 의존적 관계에 있다고 보았던 바, 국가가 곧 하나의 집이라면, 개인은 그를 떠받치는 기둥들이라고 보았다. 기둥이 없으면 집이 무너지듯, 집이 무너졌을 때 기둥만 멀뚱히 서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의 국가라는 거대한 집은, 단순한 무생물적 존재가 아니다. 국가란 살아있는 일종의 유기체와 같은 것으로, 개인의 신체 일부가 병들면 곧 신체의 다른 부위에도 영향을 미치고 심할 경우 개인 생명에도 위협을 미치듯,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개인이라는 존재가 병들면 국가도 병들고 국가가 병들어 죽는다면 자연히 그 국가를 떠받치는 여타의 개인들도 병들어 죽게 되는 것이다.요컨대, 국가는 살아있는 전체이자 거대한 생명체고 개인은 박동하는 장기이자 자그마한 일부분에 불과하다. 국가라는 전체는 개인이라는 부분의 자리를 정하며 가치를 정해주고, 논리적 선재성과 가치적 우위성을 지닌다. 국가가 없으면 개인도 없고, 국가가 없으면 자유도 없는 것이다. (계속)출처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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