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각 LP바
[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얼마만에 걸어보는 종로 밤거리던가
. 정확히는 종각 부근이었다
. 그것도 네온사인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종로 밤거리를 걸어본 건 못해도
10년
이상은 된 듯하다
.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계기로 유흥가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자정을
넘어서 하는 주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예전처럼 3차, 4차를 달리자고 외치는 경우도 흔치 않다. 그래서 그런지 종로 밤거리는 좀 을씨년스러웠다. 음악소리, 담배 피는 사람들의 고성방가로 왁자지껄한 모습이 아닌 차분한 그런 풍경이다.
종각 젊음의 거리
일이 있어 시내 나왔다가 아내와 어딜 갈까 두리번거리던 중 발견한 건 LP바였다. 저녁은 먹었겠다 간단하게 맥주할만 한 곳을 찾는데 일층에 있는 오픈된 맥주 펍들은 거의 젊은이들 일색이라 분위기가
안 맞는 듯했고 조용하게 마실 데가 없을까 하다가 LP 구멍가게라는 간판을 봤다. 그 옆에는 또다른 세로 간판으로 LP 음악, 뮤직바, 피터.폴.메리라고 무심하게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만 적혀 있다. 정확한 명칭은
피터폴앤메리다.
눈에 잘 안띄는 간판
LP바 입구
계단이 꽤 가파르다.
“그래 여기 가보자”하고
의견일치를 봤다. LP바가 있는 곳은 3층인데 올라가는 계단이
꽤 가파르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이 올라가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문을 열어보니 정말 ‘구멍가게’ 마냥 작다. 열 평쯤 될까 싶은 공간에 길다랗게 오른편으로는 테이블이 몇 개 있고 왼편으로 벽면 가득 LP판들이 꽂혀 있다. 그 앞에 바 형태로 앉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린 바 지리에 앉았다.
레트로한 감성에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다양한 소품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오래된
타자기에서부터 다이얼 전화기, 고무상에서 주워 왔을 법한 카세트 플레이어, 브라운관 텔레비전 등이 눈길을 끈다. 앉자마자 주인아주머니가 메뉴판과
함께 조그마한 종이 서너장을 건네준다. 신청곡을 적는 종이다. 신청곡을
적어서 바구니에 놓아두면 DJ가 LP판을 찾아서 틀어준다.
다양한 소품들
소품들과 맥주 한 병
다양한 소품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정태춘의 ‘북한강에서’를 가장 먼저 신청했다. 그리고 난 병맥주를, 아내는 칵테일을 한 잔 주문했다. 손님이 많지 않아서인지(우리가 두 번째로 입장) 신청곡이 맥주가 나오자마자 흘러나왔다. LP판에서만 낼 수 있는 특유의 “지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전주곡이 흘러나오고 이어 “저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리를 짓누르고 간 아침…” 정태춘 노래가 흘러나왔다. 뒷자리 우리보다 먼저 온 다른 손님 누군가가 탄성을 질렀다.
이런 레트로한 감성에 정태춘 노래는 정말 딱이다. 더군다나 북한강에서
이 노래는 안개가 자욱한 북한강의 풍경이 노래만 들어도 눈 앞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곡이라 맥주 한 모금이 절묘하게 목구멍을 파도처럼 후려치며 내려갔다.
내부 풍경
빼곡한 LP판들
여기 LP판은 아마 장식이고 주로 듣는 건 다른 데 있다.
LP판만의 매력이 있다.
LP에 대한 추억이 많지는 않아도 당시 왠만한 집에 레코드 플레이어
하나쯤은 있었다. 더블 카세트 테이프로 정품 테이프를 복사하기도 했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맘에 드는 곡이 나오면 녹음 버튼을 눌러 내가 원하는 곡만 테이프에 골라 담기도 했다. 물론 음악 품질은 매우 조악했다. 그에 비해 LP 플레이어는 셀프 제작이 힘들지만 원음 그대로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했다. 플레이어를 주로 다루는 사람이 아버지라서 LP판들이 대부분 트로트
뽕짝들이라는 점 빼곤 말이다.
80년대 학번이라 대학 들어와서도 서너 번 정도 음악다방에 간 기억이
있다. 코너에 조그맣게 마련된 유리 달린 뮤직박스에서 DJ가
사연을 읽어주고 음악을 틀어주던 그런 음악 다방이었다. 당시 레코드판으로 들려주던 음악들이 주로 팝송이나
영화음악 위주였는데 당시 DJ들이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음악과 술은 참 잘 어울린다.
정태춘의 노래 북한강에서가 끝나고 아내가 신청한 유재하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수 유재하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보니 다음 노래가 나왔는데 정태춘의 ‘저기
떠나가는 배’다. 아마도 뒷자리에서 북한강에서 노래에 탄성을
지르던 분이 곡을 신청한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서너 개의 음악을 더 신청했다. 나올 무렵 좁은 실내는 이미 꽉 차서 앉을 자리가 없다. 때로는
눈 감고 흥얼거리며, 때로는 같이 낮은 소리로 때창하는 추억을 만들고
LP바 계단을 내려왔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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