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진격의 거인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진격의 거인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8박9일 몽골 그래블 자캠라이딩 1. 징기스칸공항~테를지 비앙키스페셜리
- 싱글벙글 경주 APEC 까는 경주 갤러리.jpg 전국민면허몰수
- 트럼프, 李에 '일방 통보'…"8월부터 한국산 25% 관세" 코갤러
- 호텔에 사람은 계속 들어가는데 아무도 나오질 않네 ㅇㅇ
- 보증금 3억 월세 150 실버타운 타코피
- 훌쩍훌쩍 더현대 돈키호테 팝업 호통치는 더쿠 언냐들 ㅇㅇ
- 바키를 좋아하는 여자친구.Manhwa 동동
- 청량해 보이지만 불지옥이던 도쿄 36장 광학의신은칼짜
- 싱글벙글 에픽하이의 해체를 막는 방법 니지카엘
- 현재 케이팝 센세이션을 일으키고있는 초신성.jpg 네거티장애
- 하니 "왜 굳이 가시밭길을…" 양재웅과 결혼 논란 입장 표명 ㅇㅇ
- 中, 유치원 집단 납중독 발칵... 머리 빠지고 치아 까매져 난징대파티
- 만화가 지망생들은 파이어펀치처럼 되고 싶어 ㅇㅇ
- "핸드폰을 맨바닥에 두지 마세요." 아파트 공고문 무슨일? 은하ing
- 3분 만에 매진.... 231억 쏟은 서울 '숲캉스' 숙소.... 김제즈
산천렵의 설렘과 공포 가득 홋카이도 계류낚시 원정기 -3-
- 관련게시물 : 산천렵의 설렘과 공포 가득 홋카이도 계류낚시 원정기 -1-- 관련게시물 : 산천렵의 설렘과 공포 가득 홋카이도 계류낚시 원정기 -2-산천렵의 설렘과 공포가득 홋카이도 계류낚시 원정기 마지막 3편! 제대로 조져진(개씨발~) 홋카이도에서의 마지막 낚스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ㄱㄱ링~ ------------------------------------------------------------------------ 07.03 오늘은 엔가루조의 <유베츠카와>, 소윤쿄의 <니세이챠로맛푸카와>, 가미카와조의 <루베시베카와> 총 3곳의 포인트를 갈 예정임. 원래 낚스를 4일 하려했는데 3일밖에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겨넣었음 ㅋㅋ 유베츠카와는 니세이카우슛페산에서 발원해서 오호츠크해까지 이어지는 강임메인 어종은 무송이지만 다른 어종들도 있다고 한다. 아침일찍 유베츠카와에 도착했음역시나 폭죽과 전자호루라기로 곰 형님들에게 사람이 있음을 알1리며 입계함. 계상은 소가 발달한 지형은 아니었고 여울이 길게 이어진 구간이 많았다 얼마 안가서 응애 무송이 나왔음.확실히 어제 누카난카와에서 만났던 무송들이 진짜 예뻣다.나도 이제 응애 무송 그만잡고 빅 무송 잡고싶은데... 그래도 나와줬으니 고마웠음 다른 응애 무송 자동 방생도 시켜주고쭉 올라가면서 캐스팅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장소에 도착함 ㅋ.. 캐스팅후 입질이 들어와서 훅킹을 했는데, 아니 웬걸 힘 좀 쓰는거 아니겠음?3짜 중반은 넘겠다 싶어서 신나가지고 훅킹을 한번 더했는데; 훅킹하는 순간 실수로 썸바를 눌러버림(개씨발병신새끼) 일단 건져 올려야되니까 감고 유튭에서 보고 요긴하게 쓰던 빽 푸는 방법이 있어서 그거 하려했음드랙 꽉 잠구고 스풀 꾹 누르면서 감은 후 드랙 풀고 다시 슬슬 풀어주는거 ㅇㅇ 근데 이미 썸바 눌려서 라인 텐션이 다 풀려버렸는데 얘가 가만히 있어주겠음?당연히 털고 가버렸고, 나는 그저 단말마 개씨발을 외치며 빽 푸는거 외에는 할수있는게 없었다... 보통 한번 해주면 바로 풀리는데 안풀리길래 한번 더 하던중끝에서 두번째 가이드링에 라인이 엉켜있는걸 못본채 그냥 어거지로 감아버렸고 초리 뽀각 엔딩을 맞이함....눈물을 광광 흘리며 차로 돌아가서 예비로 챙겨간 서피닝 태클을 맞추고 다음 포인트인 니세이챠로맛푸카와로 이동하는데 차 지붕에서 소리나면서 뒤로 뭐가 떨어지는거임 ㅋㅋ 아뿔싸, 차 지붕에 얹어둔 헌츠맨 흑콩이었음 ㅋㅋㅋㅋ 엎친데 덮친격으로 마침 뒤에서 차가 한 대 오고있었고 2번절이 야무지게 밟혔다.주워서 차로 와보니 헌츠맨이랑 흑콩이 걸레짝이 되버린거 아잉교 ㅅㅂ...ㅋㅋㅋㅋㅋ 그렇게 줄담배를 피우면서 ‘보증수리 받으면 된다‘ 정신승리와 함께 니세이챠로맛푸카와로 운전대를 돌렸음... 니세이챠로맛푸카와는 이시카리카와(파란색)의 지류임합류지점에는 작은 댐과 주차장이 있고 댐 위부터가 니세이챠로맛푸카와주 어종은 오쇼로코마와 이와나라고 함근데 사전조사할 때 못 본 특이사항이 있었는데 불곰출몰주의 표지판이 걸려있었다. 도착해서 봤음; 아니 어쩐지 오는길에 우연히 만난 계류맨한테 니세이챠로맛푸 갈건데 괜찮으면 같이 가지않겠냐 물어보니, 자긴 안간다고 조심하라 그러드만 가뜩이나 로드랑 릴도 해먹고 이거보니까 괜히 오늘 뭔 날인가 싶어서 존나 찝찝했음..근데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는 좀 그렇고, 1편 시호로카와에서의 치고빠지기 전략을 감행하기로 함 ㅋㅋ 계상이야 뭐 당연히 아름다웠다. 무서운게 문제였지.. 여기선 사진도 몇장 못찍음 ㅋㅋ 식은땀 휘날리며 빠르게 슥슥삭 탐색하던 중 무조건 한 마리는 들어있을거같은 포인트를 봐서 얼른 떤져봤음 2짜 좀 넘어보이는 허여멀건 녀석이었는데 후킹을 늦게해서 털렸다 ㅅㄱ몇번 더 캐스팅 해봤는데 반응은 없고, 딱 한마리만 잡고 빠지고 싶었는데 걍 오늘 좀 찝찝해서 탈주함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댐아래로 입계하기도 굉장히 편하게 계단이 만들어져있어서 잠깐 해보려고 가봤음작은 소 포인트가 몇 개 있었는데. 대충봐도 걍 소 하나당 한마리는 무조건 들어있는 자리임 못 들어가게 문이 닫혀있었다. 이것도 사전조사할 때 못봄 ㅅㅂ 구글링했을땐 여기서도 낚시 하던데 ㅠㅠ오쇼로든 이와나든 무족건 나오게생긴 소들이었는데 민폐 캉코쿠진되서 한국인 홋카이도 낚금 될까봐 아쉬움을 머금고 루베시베카와로 향했음... 대충 이시카리카와의 지류라는 뜻도착했을 때 철수하던 계류맨을 만났는데 주 어종은 무송이고 오쇼로도 가끔 나온다고 알랴주고 갔음.특이한건 계류 옆으로 기차길이 있고 낚시하다보면 지나가는거 볼수있었다 ㅋㅋ 낭만 ㅆㅅㅌㅊ 계상이 탁 트인게 원정낚스 처음으로 마음이 놓였음 ㅋㅋ 방금 전 철수한 계류맨이 있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긴 어려웠지만, 홋카이도 계류낚스 마지막 날인데 응애 무송 한 마리로 마무리할 순 없었기 때문에 여기서 빡겜하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올라가니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포인트가 나와서 이건 못참지~ 바로 캐스팅 방금 선객 치고 간거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어자원 수준 ㅆㅅㅌㅊ;;;이 포인트에서만 얘네 말고도 몇 번을 더 걸었는데 나머진 다 털림 ㅋㅋWILD TROUT 사장님이 드라이 시즌이라고 말해줬던게 생각나서 D3 PHAR LAP 2.5g 텐션만 유지해주며 업>다운으로 수류에 흘리듯 던졌는데 반응이 좋았음 그렇게 개신나 있었는데... 개신나 있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함... 억까 지리노 ㅅㅂ... 유속이 엄청 빨라서 도강이 꽤 힘들었기 때문에 물 불어나면 다시 못건너올까봐 ㄹㅇ 전광석화로 튐넘 아쉽고 가기 싫어서 바로 옆에 이름없는 지류로 들어가서 초입 살짝 위까지만 탐색 조금 해봤음지류에선 뭔진 모르겠지만 바위 아래에서 쏜살같이 튀어나온 녀석들이 3마리 있었는데(오쇼로 아니면 이와나였을듯)바이트로 이어지진 않아서 결국 잡진 못하고 아쉽게 철수를 했음그렇게 홋카이도에서의 원정 낚스는 아쉬운 마무리를 맺게 되었다. ------------------------------------------------------------------------ 원정의 느낀점을 말해보자면과연 홋카이도는 트라우트들의 천국이었다. 계류맨들도 한국에 비하면 엄청 많지만, 압도적인 필드수와 어자원... 한 포인트에 이렇게 많은 고기가 있다고?? 이게 진짜 신기했음 ㄹㅇ 여튼 목표는 이루지 못한 아쉬운 원정이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는 건? 다시 도전하러 갈 명분도 남아있다는 거~ 다음 원정을 기약하며 홋카이도야 안녕~ (동출자 구함)산천렵의 설렘과 공포 가득 홋카이도 계류낚시 원정기 - 끝 -
작성자 : 산천렵고정닉
몰랐던 역사적인 사실들.jpg
하와이안 달러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 해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미국 정부는 하와이 제도의 전략적 중요성과 함께 통화 안전성에 대한 중대한 우려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 재무부는 1942년 1월, 하와이 제도 내 모든 미화 지폐를 회수하는 긴급 조치를 시행하였다. 개인당 200달러, 법인당 500달러만 예외적으로 소지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회수된 총 약 2억 달러 규모의 기존 지폐는 즉시 소각 처리되었다.하와이 오버프린트 노트는 미국 본토에서는 법정화폐로 인정되지 않았으며, 반대로 하와이 제도 내에서는 'HAWAII' 인쇄가 없는 일반 지폐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해당 통화는 전쟁 후반기까지 유통되었으며, 총 4억 1,100만 달러 규모가 발행되었다. 공식 유통 기간은 1946년 4월까지였으며, 이후 순차적으로 회수되었다. 그러나 소량이 민간에 잔존하게 되었고, 현재에도 수집가들 사이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화폐로 간주되고 있다. 진품으로 판명된 하와이 오버프린트 노트는 현재 미국 내 모든 연방준비은행에서 정식 미화로 교환이 가능하다.런던위 잔디깎이 양1926–1938년 런던 공원의 유지 관리에 동원된 방목 양: 도시 공공녹지 관리의 사례1926년부터 1938년까지 영국 런던 시 당국은 하이드 파크(Hyde Park)를 비롯한 주요 도심 공원들의 잔디 유지 관리 방안으로 양을 이용한 방목방식을 도입하였다. 이는 전통적인 기계식 잔디깎이 장비의 운용에 따른 비용 및 인력 부담을 경감하고,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공원 환경을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시행된 정책이었다.양들은 공원 내 일정 구역에 방목되어 자생적으로 잔디를 섭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지면을 고르게 유지하고 조경 관리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같은 방식은 단순한 비용 절감 효과 외에도, 도시민들에게 전원적 풍경과 자연 생태계와의 접점을 제공하는 부가적인 사회·문화적 효과도 수반하였다.포드 창업주 헨리 포드놀아야 돈을 버는 노동자포드 자동차의 생산라인 긴급 수리팀과 ‘역발상형 임금체계’20세기 초중반, 포드 자동차(Ford Motor Company)는 대량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컨베이어 벨트 방식의 조립 라인을 도입하며 산업 제조 분야에 혁신을 가져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포드는 ‘생산라인 긴급 수리팀’이라는 특수 기술 인력을 조직하였다. 이 팀의 주요 임무는 조립 라인에서 발생하는 기계적 고장이나 기능 이상을 신속히 진단하고 복구하여, 생산 중단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주목할 만한 점은, 이 팀에 적용된 비표준적 임금 체계였다. 이들은 일반적인 시급제 또는 작업량 기반의 보상을 받지 않았으며, 라인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휴식 시간' 동안만 임금을 지급받는 방식으로 계약되었다. 즉, 생산 라인이 정지되면 즉시 이들의 임금 계산도 중단되며, 반대로 라인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시간이 길수록 보수도 증가하는 구조였다.전화탑스웨덴 최초의 전화 설치와 스톡홀름 전화탑(Telegrafverket Tower)의 등장: 초기 도시 통신 인프라의 확장1877년, 스웨덴 국왕 오스카 2세(Oscar II)의 궁전에 자국 최초의 전화기가 설치되면서, 전화는 곧 스톡홀름(Stockholm) 상류층 사이에서 신속히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전화는 최신 통신 기술로서 상징적 위신을 반영하는 수단이었으며, 특히 귀족 및 자산가들 사이에서 전화 설치는 곧 사회적 지위와 첨단 생활 방식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그러나 이 기술의 확산은 단순한 사치나 편의를 넘어, ㅏ도시 통신망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쳤다. 매월 약 250 크로나에 달하는 고정 전화 요금(2020년대 기준으로 한화 약 120만 원 상당)은 당시로서는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톡홀름의 부유 계층을 중심으로 회선 수요는 급증하였다.전화탑은 단순한 기술 인프라를 넘어, 산업화와 정보화가 도시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이는 스웨덴이 통신 기술의 조기 수용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유럽 내에서도 선도적인 도시 통신망 구축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파푸아뉴기니의 유럽출신 왕1904년, 스웨덴 출신의 상선 선원 카를 페테르손이 승선한 독일 선적의 화물선 요한 알브레흐트 공작호 (Herzog Johann Albrecht)는 남태평양 항로를 따라 항해 중 파푸아뉴기니 동북부의 비스마르크 군도 인근 해역에서 심각한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였다. 사고 발생 지점은 타바 섬(Tabar Island) 부근이었으며, 선박의 구조적 손상으로 인해 대부분의 선원은 실종 또는 익사한 것으로 전해진다.카를 페테르손은 가까스로 난파 직후 해안까지 헤엄쳐 생존에 성공하였으나, 그가 상륙한 타바 섬은 당시 외부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독립적인 원주민 공동체가 거주하는 지역으로, 식인풍습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생포된 이방인으로 추장에게 인도된 페테르손은 관례대로 심판 또는 제물의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싱도 공주가 그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것으로 전해지며, 그의 운명은 극적으로 전환된다.페테르손과 싱도 공주는 혼인하였고, 그는 이 결혼을 통해 현지 사회의 일원으로서 완전히 수용되었다. 이후 그는 타바 섬에 정착하여 코코넛 농장을 운영하며 지역 경제에 적극 참여하였다. 당시 코프라(건조 코코넛)는 국제 시장에서 주요 수출품으로 부상하고 있었고, 페테르손은 유럽과의 무역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하였다.타바섬의 추장이 사망한 후, 페테르손은 섬 주민들의 지지에 의해 ‘왕(King of Tabar)’으로 추대되었다. 이는 혈통보다는 지도력과 신뢰를 중시하던 공동체의 전통에 기반한 것으로, 그는 유럽인임에도 섬 사회의 최고 통치자로 인정받았다. 페테르손은 이후 축적한 자본을 활용해 인근의 소규모 섬들을 매입하며 사실상 자신만의 군도 왕국을 건설해나갔다.그러나 이 전성기에도 그림자는 드리워졌다. 그의 아내 싱도 공주는 출산 후 산후 합병증으로 사망하였고, 이 사건은 페테르손의 삶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 이후 그는 자녀들을 동반하여 일시적으로 스웨덴으로 귀국하였고, 고국에서 새로운 배우자인 스웨덴 여성과 재혼하였다.그러나 고향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오래 머물 수 있는 기반이 되지 못했고, 약 2년 후 그는 재혼한 아내와 함께 다시 타바 섬으로 귀환하였다. 그러나 그가 떠난 사이 농장은 급격히 쇠락하였고, 지역 정세도 변화하여 과거의 권위와 부를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욱이, 페테르손과 아내 모두 말라리아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치료를 위해 호주로 이송되었으나, 그곳에서 페테르손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나치의 스텔스기호르텐 Ho IX (Ho 229 / Go 229): 나치 독일의 스텔스기 개발 프로젝트1930년대 초, 독일의 항공설계자 발터 호르텐과 라이마르 호르텐 형제는 공기역학적 효율성과 레이더 반사면 최소화를 목표로 전익기(flying wing) 형태의 항공기 설계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1931년부터 무동체 전익기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였으며, 제트엔진 추진 방식을 결합한 미래형 항공기 개발로 나아갔다.제3제국 항공성이 Ho 229라는 군용 지정명을 부여한 이 기체는, 고타 항공사에 의해 양산형 모델로 Go 229라는 코드로 통칭되었다. 1944년 3월 1일, Ho IX V2 시제기가 첫 비행에 성공하였으며, 시험기 총 6대가 제작 완료 또는 제작 중이었고, 실전 배치를 위한 20대가 공식 주문되었다.Ho 229는 스텔스 기능의 선구적 요소를 갖춘 세계 최초의 제트 추진 전익기로 평가되며,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에 의해 노획되어 미국의 스텔스 항공기 개발에 영감을 준 역사적 기체로 간주된다.치아 쟁탈전20세기 초 이전까지, 인간의 빠진 치아를 대체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고급스러운 재료는 다른 인간의 자연치였다. 그러나 질병, 특히 매독 등 전염병의 확산으로 건강한 젊은 치아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이에 따라 사고사 또는 전사자의 치아를 수거해 판매·가공하는 산업이 유럽 전역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졌다.대표적인 사례로, 1815년 워털루 전투 직후 약 5만 명 이상의 전사자가 남긴 치아를 확보하려는 수집·약탈 행위가 벌어졌다. 이 치아들은 이후 ‘워털루 이빨(Waterloo Teeth)’이라 불리며 고급 의치 재료로 유럽 전역에서 유통되었고, 19세기 중반까지 널리 사용되었다.‘워털루 이빨’은 이후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에서 대규모 전사자들의 치아가 다시 시장에 유입되기 전까지, 인공 치아 제작에 있어 가장 인기 있는 공급원이자 실용적 대안이었다. 이는 당시 의학, 위생, 윤리적 기준이 오늘날과 얼마나 달랐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에펠탑의 개인룸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된 에펠탑의 설계자이자 구조공학자인 귀스타브 에펠은, 탑의 최상층(3층)에 자신만을 위한 비공개 아파트를 설계하여 조성하였다. 이 아파트는 약 90m² 규모의 소형 주거 공간으로, 거실, 간이 주방, 욕실, 그리고 침실 두 개로 구성되어 있었다.당시 귀스타브 에펠은 이 아파트를 상업적·공공적 목적이 아닌 개인적인 사색과 학문적 교류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파리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독보적인 전망을 감상하며 다양한 손님들을 접대했으며, 특히 과학자들과의 교류를 즐겼다. 대표적인 방문객으로는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있으며, 두 사람의 만남은 기술 진보의 상징적 순간으로 여겨진다.오늘날 이 공간은 일반인에게 출입이 제한되어 있으며, 내부는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되어 귀스타브 에펠과 토마스 에디슨의 밀랍 인형(디오라마)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양초 사용법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일부 매춘부들은 시간 측정을 위한 도구로 작은 양초를 사용하였다. 이들은 작은 상자에 여러 개의 양초를 휴대하고 다녔으며, 양초 한 개의 연소 시간은 약 7분으로 정해진 단위 시간의 기준이 되었다.고객과의 접객 시간은 양초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시작되었으며, 양초가 완전히 연소되면 서비스도 종료되었다. 고객은 이 시점에서 퇴실하거나,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양초를 더 사용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dc official App
작성자 : 네거티장애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