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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주의) 홀로 일본여행 후기 (자젠보이즈, 카맛테쨩 등등)
참 언제봐도 설레는 타워레코즈NO MUSIC, NO LIFE그동안 감사했습니다 pillows ㅠㅠ더 사고 싶었지만 일단 요렇게. 잔뜩 기대한 Blurred City Lights (+다른 슈게이즈 밴드 beachside talks, aoibara)내가 경험한 슈게이즈적인 라이브는 저번 디지털던 때랑 Godspeed You Black Emperor 봤을 때밖에 없음하지만 그때 들었던 꽉꽉 차오르는, 세상과 분리되어 나랑 소리밖에 남지 않는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함그래서 첫 풀 밴드셋으로 슈게이즈를 본다는 나름 큰 의미가 있었음기타페달 구경이 작은 공연장의 묘미이지 않을까 싶음일본 밴드들 bd2 엄청 좋아하는 것 같음. 3개 밴드에서 다 쓰더라사운드는 황홀해서 웃음이 나더라. 사운드로 압도되는게 무엇인지 다시 느끼게 됐음그리고 음원에서 듣던 기타 소리랑 바로 앰프 앞에서 듣는 기타 소리는 너무나 다름특히 저 재즈코러스 실제로는 처음 들어보는데 너무 탐난다플라시보인지는 몰라도 모듈레이션, 공간계 잔뜩 달아도 진짜 선명한 소리 남그리고 드럼 마이킹/믹싱에서 감탄했음. 한국 공연장에서는 이런 소리가 안났는데. 역시 장비 차이가 좀 나는 듯첫번째 밴드 beachside talks 는 리드 기타 톤 제일 좋았음두번째 밴드 aoibara는 보컬이랑 튜닝이 좀 불안했던것 빼곤 고점이 제일 높은듯. 아 리듬도 살짝 엇나갈때도 있었음베이스가 슬랩을 하는 슈게이즈 밴드는 처음 봄하이라이트 부분때 기타 폭주할때 그 시원함/짜릿함은 말로 못 표현함Blurred City Lights 는 앰비언트 톤이 말도 안되게 좋았음. 또 보컬이 한손으론 건반 한손으론 베이스 태핑 하면서 노래 부르는것에서 경악나는 항상 라이브 볼때마다 슬픈 기분이 같이 듦 이 순간의 기억과 느낌도 언젠가 희미해지겠지바닥이라도 찍으면서 녹화를 했는데 당연히도 그 사운드는 담기지 않았음희미해지기에 더욱 특별한게 아닐까 싶음공연장에서 우연히 파노 좋아하는 한국인이랑 유학생 이탈리안인이랑 만나서끝나고 야키토리집 가서 음악 얘기 했음셔츠랑 스티커랑 cd랑 이것저것 샀음쓰다 보니 여러 파트로 글 나눠야 할까 싶지만 귀찮으니 그냥 쓸래펜더재팬은 별로 볼건 많이 없었음기다려왔던 자젠 보이즈무카이 슈토쿠를 보러 가다니 믿기지 않았음티켓팅은 일본 친구한테 사정해서 받아냄콘서트때 가져가라고 폰 빌려준 친구에게 무한한 감사그래서 첫날에 야키니쿠 사줌무카이의 AC30이때 너무 떨렸음. 폰으로 RSR 투명소녀 라이브 영상 보면서 기다리니 심장은 더욱더 빨리 뛰었음오글거리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우상맥주 한캔 먼저 하시더라마츠리 세션에서 찾아왔습니다 자젠 보이즈입니다 라고 말하고 시작함요거 4번은 반복한듯 곡 시작할때마다 ㅋㅋㅋ후쿠오카 넘버걸은 듣지 못하겠지만 이거라도어쩜 이렇게 멋있을까밴드가 한몸처럼 움직인다. 그래도 나름 매스 락인데 한치의 오차도 없이 칼박무카이 전성기 보컬 힘은 안나오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노래 부를때 눈썹 모양은 1초에 5번씩 바뀌는듯그 찌푸린 표정, 입 오므리고 기타 치는 표정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헛소리 mc도 많이 하던데 일본어 잘 몰라도 재밌었다 클럽 꽈트로 솔직히 음향 좋진 않았음. 가운데 서있었음에도 pa 시스템이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언밸런스가 심함그 다음 sementos 라는 밴드는 사실 별 기대 하진 않았는데, 공연 자체는 이쪽이 압도했다고 생각한다고요한 그루브로 시작해서 시원하게 몰아치는 락특히 드럼이 클라스가 많이 높았다. 천둥같은 임팩트에 쪼개는 연주도 능했고 엇박을 절묘하게 타고들어갈 때도 있었다보컬/기타의 fuzz 스러운 솔로 톤도 좋았고 무대 위 행복한 표정은 마음에 울림을 주기 충분했다자젠 보이즈 셔츠다음날 간 오차노미즈요렇게 샀다맨 오른쪽 sobbat db-2 는 버섯제국의 사토 치아키가 쓰는 페달꽤 희귀한것 같은데 잘은 모름저녁엔 인디 밴드들 보러 갔다 6개 팀이였는데 시모키타계 인디, 청춘 펑크부터 요즘 스타일 J락 까지 맛있게 먹었다마지막으로 갈수록 수준 매우 높아짐나도 이런 무대에 서고 싶은 사람으로서 약간의 박탈감과 공허함을 준 공연다음날은 신세이 카맛테쨩오다이바로 가는데 떨려 죽을 것 같았다무카이 슈토쿠가 내 우상이라면 노코는 나의 영웅이다오글거려도 이해해 주라. 이런 감정 드는 뮤지션 다들 한명씩은 가슴에 품고 있잖아밖에서 기다리란다외투 락커에 넣고 반팔인데비까지 온다너무 추웠다 진짜E96번인데 A1부터 1명씩 부른다 미친놈 아냐 진짜 노코의 핑크색 재그마스터이때부터 조금씩 실감이 남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순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 같다노코의 눈 부릅뜬 표정, 몸은 흐느적거리지만 기타는 절도있게 때리는 모습소리지르는 그 목소리와 관객과 콜앤 리스폰스너무나 행복했다모노 ㅋㅋㅋㅋㅋㅋ해바라기 가면 쓰고 춤추고기린 가면 쓰고 뛰는데 노코가 옆에서 입 때리고앵콜 두번 해줬다마지막 곡은 로큰롤은 멈추지않아이 곡으로 내가 록을 사랑하는 이유가 설명됐다노코의 스테이지 다이빙은 총 3번이었다헤엄치면서 눈을 부릅뜨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 소름 돋았다관객들이 바지 벗겨주더라 ㅋㅋ끝나고 주먹 불끈 쥐고 엄청 행복해하는 노코가 아직 눈에 남아있다내게 신세이 카맛테쨩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꼭 마지막은 해피엔딩이여야만 한다. 노코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그걸 확인시켜준 라이브였다너무 감정에 맡겨서 쓴 글인가 싶다. 미안하다.카맛테쨩 한국에 온다니 다들 경험하시길다음날 공항 가긴 전 여운이 가시기 전에 치바뉴타운에 방문했다아름다운 곳으로 지혜짱의 성서프론트 메모리22살의 여름방학 펜텔 끝여행은 역시 혼자가서 본인이 원하는거 즐기는게 행복한 듯
작성자 : 포붕이고정닉
(필독) 박정희 대통령 유신선포 배경
좌빨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비하할때 사용하는 카드 중 하나가바로 유신헌법으로 인한 독재자라는 프레임이야!그러나 우리 애국 시민들은 좌빨들의 무지성 까내리기 전술에 당하지 말고 논리적으로 반박하자!1. 1968년 1월 21일 / 1.21 사태 김신조외 30명 北 특수부대, 박정희 대통령 암살 미수(청와대 바로 앞까지 왔다)2. 1968년 1월 23일 北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미군 해군정찰함)北이 미군정찰함을 납포하는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당시 美 대통령인 린든 B. 존슨은 北을 전혀 비판하지 못해!왜? =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미군측 피해자가 수만 ~ 수십만을 웃돌고 있었거든 그로인해 미국 내 반전여론은 극에 달해있는 상태였어3. 1968년 10.30~12.26 /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4. 1969년 4월 15일 / 北, 미 해군 정찰기 EC-121 격추 (리처드 닉슨 정부)그리고 리처드 닉슨은 공화당의 대통령으로서 미국 우선주의를 택했고베트남전을 종식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워서 당선된 대통령이야5. 1970년 7월 5일 / 주한미군 7사단 철수(병력 20,000명, 당시 병력 1/3수준)(박 대통령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일방적 통보하고 철수했음)6. 1971년 8月, 닉슨 쇼크 (미국은 2차대전 이후 경제가 개판나고있음 결국 모든 미국 수출품 관세 10%)(또한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관세로 인해 부도가 발생함)왜냐? = 당시 2차대전,한국전쟁,베트남 전쟁 등으로 인해서 전세계 생산시설이 박살나고 있었고돈도 없는 상태라 쓰레기 물건들을 미국에 갖다 팔고있었거든! 그로인해 미국의 경제가 박살나기 시작했어7. 1971년 베트남에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철군/ 미군 196,700명으로 감축/ 1972년 2월까지 45,000명을 추가로 철군 예정 / 한편, 미국의 반전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당시 베트남은 서방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재래식 무기 전력 매우 압도적이였어그러나 미국이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패망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지8.1972년 8월 3일 , 8.3조치 (당시의 대한민국에 은행 같은 금융기업이 별로 없었어(sk,삼성,현대 이런 기업이 개인사채로 만들어짐)그런데 이때 자본을 가지고있던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이고 기업들은 국회의원에게 채무를 빚지게되는 상황이 만들어짐(국회의원들의 독재를 방지하고자 사채를 동결시켜버리고 사채는 출처를 확인 할 수 있는 돈만 상환 가능하게 바꿔버림)그 당시 국회의원들의 자본은 대부분이 검은돈이였거든 즉, 기업들은국회의원들에게 돈을 빌려도 노예처럼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는거야그런데 여기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 하나 발생해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도요타 다이쥬)가 등장한거지지역갈등의 시초는 김대중이라고 볼 수 있어왜? = 당시 김대중의 연설 중에는 박정희가 영남출신이기 때문에 호남을 차별한다는 개소리가 있었거든일본과의 교류하던 상황에서 경상도가 발전하는것은 당연한 순리였을 뿐더러부산은 제2의 수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도시야또한 그 당시 기업을 살릴 수 있는 정책은 반대한게 김대중이야 그런 김대중의 공약은 다음과 같아1. 노조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야한다(70년도에 겨우 기업이 만들어졌는데 무슨 노조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하자는 건가)2. 농업중심의 국가를 만들어야한다(경공업,중화학공업으로 발전해 나아가는 국가에서 갑자기 1차 산업인 농업국가로 전락을 하자는 말도안되는 소리)3. 경제가 종속되면 안되니깐 수입대체 산업화를 하겠다.(대표적으로 이 정책을 시행해서 망한 대륙이 남미다 대륙하나가 통째로 망한 케이스다)이러한 공약을 내세은게 71년당시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이야그 당시 국민들은 포퓰리즘 정책이였던 대중경제론에 푹 빠져서 김대중에게 투표를 하게돼!그러나 다행히도 95만표차라는 근소한 차이로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한번 더 당선돼!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어저런 표퓰리즘 정책을 내세우는 야당 후보나 그런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들이나 문제가 많다는거지국제정세가 급변하던 60~70년대 국제정치에 저런 사상을 가지고있는 후보가 지속적으로 대선에 나온다면언젠가 국민들은 분명히 저런 지도자를 뽑을테고 朴대통령 본인의 초장기적 거대한 프로젝트를 뒤로한채국가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정책을 펼치는 지도자를 뽑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돼!그리고 유신을 선포하게되는 가장 결정적 사건이 있었어9. 1972년 닉슨 - 모택동 회담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미국과 중국이 친해지면 소련을 견제할 수 있다 + 양국 주변의 국제적 군사 분열의 제거를 희망한다(캄보디아,베트남,대만,한국이 중국 근처)(즉 대한민국도 중국 근처의 군사적 충돌지역이기 때문에 남북휴전을 끝내고 통일을 시키려는 방향을 모색하게돼)그런데 그 전에 1969년에 이미 닉슨 독트린을 발표함으로서 닉슨 대통령의 정책 방향을 알 수 있었지...하지만 모택동이 실무를 담당했을리는 없지 ㅎㅎ (저 새는 해로운 새다)실무는 주은래(周恩來) 총리야어라? 주은래 총리는 김일성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네?그럼 회담내용이 김일성에게 넘어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하지만 닉슨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아무런 말도 전해주지 않았어...또한 68년부터 월남전이 장기화됨에 따라 미국은 70년에 주한미군을 철수시켰지 (+ 닉슨 독트린)그때부터 박정희 대통령은 대놓고 미국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해실제로 1973년 박정희 대통령과 제럴드 포드(당시 미국 대통령) & 키신저(국무장관)을 만나 회담을 나눴어미국은 "걱정하지 말라 베트남은 망하지 않는다"라는식으로 말했는데1973년 미군이 완전 철수하고 2년뒤 1975년 남베트남은 패망했고 76년에 공산화 되었어또한 캄보디아는 킬링필드가 발생했고...다시 1972년으로 넘어와서 10.1972년 9월에 日자민당은 중국과 수교를 추진했고 北과의 교류도 추진했어...(좌) 주은래 총리 - (우) 다나카 카쿠에이즉 한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완전히 고립될 위기에 처해있는거지위와같은 상황을 모두 고려했을때 결론을 내려보자면!1. 야당이 국가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정책과 비전을 가지고있는가? No!2. 박정희 대통령 자신이 내려온다면 민주공화당 후보들이과연 본인의 초장기적 거대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는가? No!3. 국민들이 깨어있는가? No!(당시 핵대중을 지지하던 사람들만 봐도 어느정도 보이지?)결국 박정희 대통령의 판단은 모든 올바른 길을 인식하고 있는 내가 모든 권력을 가지고강력한 리더쉽을 통해서 모두를 이끌어 강력한 국가를 완성하겠다라는 생각을 갖게돼박정희 대통령은 60,70년대 당시의 국가경제,안보에 매우 큰 위기가 있었음을 알고있었고국민들 또한 깨어나지 못했음을 박정희 대통령은 알고있었어, 이를 타파하고 대한민국을 완성시키기 위해선모든 길을 알고있는 자신이 독재자라는 비판을 듣더라도 모든 권력을 가져와서 국가를 이끌어야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는거야!10월 유신과 국제정치라는 책에서 "평화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청샤오허 중국 인민대한 교수의 증언,즉 김일성이 1965년에 제2차 한국전쟁을 계획했지만 중국이 이를 거부.."(88페이지)유신헌법은 국민투표율 91.9%를 기록했고 찬성 91.5%를 기록하게돼!2170년대 김대중이 나가리 되고나서 유신헌법 국민투표 투표율을 보면 오히려경북,경남,부산의 반대표가 많음을 알 수 있어!75년에 유신체제 국민투표를 다시한번 더 진행했는데이때도 투표율 79.8% - 찬성율 73.1%를 기록해서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지!솔직히 상식적으로 독재자라는 사람이 국민투표를 가장 많이하고만약 "반대할 경우 물러나겠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어?그나저나 신민당 이새끼들은 땡삼이,핵대중 아니랄까봐 국민투표 반대하는거봐 ㅠㅠ아무튼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에 매우 힘을 썼던 사람이고결국 핵개발 때문에 미국이 김재규를 시켜 암살했다는거야..모두들 좌빨들의 무지성 독재자 프레임에 맞서서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를 살렸기 때문에장기집권해도 문제없어! 이런식으로 반박하지말고 그 당시 국제정치 배경을 이해하고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게 어떨까?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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