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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 타오가 말하는 AI와 함께 ‘바뀌는 수학’
테렌스 타오가 말하는 ‘바뀌는 수학’
AI, 대규모 협업, 형식 검증이 연구 수학의 방식을 어떻게 다시 쓰고 있는가
참고
아래 글은 제공된 강연 전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형 요약이다. 전체 직역이 아니라 주장, 사례, 한계, 함의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https://youtu.be/zJvuaRVc8Bg
원문 영상
타오의 핵심은 AI가 수학자를 대체한다는 선언이 아니다. 수학이 처음으로 규모를 키워도 검증 가능한 연구 방식을 얻기 시작했다는 관찰에 가깝다.
왜 수학은 이렇게 늦게 변했나
타오가 보는 변화의 출발점은 역설적이다. 수학은 오래도록 거의 변하지 않은 분야였다. 그는 19세기 초 오귀스탱 루이 코시(Cauchy)의 복소해석학 텍스트와 오늘날 대 학원 교재를 비교하며, 설명 방식과 증명의 감각이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고 말한다. 칠판 역시 여전히 수학의 상징적 도구이고, 공동저자 수 또한 오랫동안 한두 명 수준에 머물렀다. 수학은 새 도구를 가장 늦게 받아들이는 분야 가운데 하나였고, 그만큼 작업 문화도 오래 정체돼 있었다.
“수학은 정치적 의미가 아니라, 연구 실천의 의미에서 극도로 보수적인 분야다.”
- 테렌스 타오, 강연 요지
그가 말하는 보수성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수학은 진입장벽이 높고, 문제를 이해하는 데만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증명은 한 줄 한 줄이 전부 맞아야 한다. 열 명이 함께 일할 때 그중 한 사람의 논증이 믿기 어렵다면, 결국 나머지 아홉 명이 모두를 검토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전체 결과의 신뢰가 흔들린다.
그래서 두세 명이 칠판 앞에서 호흡을 맞추며 푸는 방식은 매우 강력하지만, 20명, 50명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협업하는 방식으로는 잘 확장되지 않았다. 타오의 표현을 빌리면, 단순히 수학자들이 비사교적이어서가 아니다. 기존 워크플로 자체가 대규모 협업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전환점은 네 가지였다
타오가 본 변화의 네 축
축
뜻
대규모 문제 추적
한 문제가 아니라 문제군 전체를 비교하고 통계적으로 본다
폭넓은 참여
전문가 외에도 학생, 개발자, 다른 분야 연구자가 기여한다
AI 도구
문헌 탐색, 코드 작성, 수치 실험, 보조 정리 탐색을 가속한다
형식 검증
신뢰할 수 없는 기여를 걸러내고 남길 것을 남긴다
타오가 강조하는 것은 성능 향상 하나가 아니라, 연구의 운영 방식 전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타오는 이를 실험과학의 비유로 설명한다. 예전 수학은 하나의 문제를 아주 깊게 파는 사례 연구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수백, 수천 개의 문제를 한꺼번에 훑으며 무엇이 풀리고 무엇이 안 풀리는지 보는 문제 집단 조사도 가능해지고 있다. 이것은 수학이 처음 경험하는 종류의 스케일 변화다.
참여의 폭도 넓어졌다. 타오는 이를 시민과학에 비유한다. 다른 과학에서 아마추어가 나비를 모으고, 혜성을 찾고, 수질 샘플을 모으듯, 수학도 이제 일부 영역에서 비전문가의 기여를 흡수할 수 있게 됐다. 대 학원생, 고등학생, 개발자, 다른 분야 연구자들이 AI와 함께 의미 있는 조각을 보태고, 그 결과는 검증 절차를 거쳐 살아남는다.
KEY POINT
AI만으로는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다. 데이터셋, 공동체, 형식 검증이 함께 붙어야 비로소 수학의 규모가 커진다.
왜 하필 에르되시 문제들인가
타오가 사례 연구로 고른 것은 에르되시(Erdős) 문제들이다. 에르되시는 20세기 수학에서 가장 생산적이고 영향력 있는 문제 제기자 가운데 한 명이었고, 1,500편 이상의 논문을 남겼다. 토머스 블룸이 구축한 정리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 문제들은 천 개 안팎의 데이터셋으로 모였다. 타오에게 이 목록은 현재 수학용 AI 도구를 시험하기에 가장 흥미로운 현장이다.
중요한 점은 이 목록이 균질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는 작은 진전만으로도 거대한 이론을 낳는 씨앗이고, 어떤 문제는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 가벼운 문제다. 바로 그 불균질성 때문에 이 목록은 오히려 좋은 시험대가 된다. 툴이 어디에서 빛나고 어디에서 막히는지, 한두 개의 화려한 사례가 아니라 전체 분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에르되시는 좋은 문제를 ‘도토리’에 비유했다. 작은 씨앗이지만, 거기서 거대한 떡갈나무 같은 새 이론이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금세 녹아 사라지는 쉬운 문제는 ‘마시멜로’에 가깝다.
- 강연 요지 재구성
타오도 분명히 말한다. 이 목록은 원래부터 AI 벤치마크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사실상 자연 발생적 벤치마크가 됐다. 해결된 문제와 미해결 문제가 섞여 있고, 난도와 성격도 다양하기 때문에, 오늘의 도구들이 어느 층위에서 실제 성과를 내는지 비교하기 좋기 때문이다.
AI가 실제로 잘하는 일과 아직 약한 일
타오가 먼저 강조한 성과는 문헌 탐색이다. 검색형 AI는 다른 분야나 다른 언어의 오래된 논문에서 해답의 단서를 끌어온다. “조금만 손보면 이 문제가 사실상 이미 풀려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식이다. 타오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방식만으로도 20~30여 개 문제가 정리됐다. 수학자들이 오래 원하던 의미 기반 문헌 탐색이 부분적으로 현실화된 셈이다.
둘째는 코드 작성과 수치 실험이다. AI는 계산 실험, 예시 생성, 그림 제작 같은 주변 업무를 매우 빠르게 처리한다. 예전에는 연구자가 직접 파이썬을 만지며 오래 끌었을 작업이 이제는 훨씬 짧아졌다. 타오가 보기에 이런 보조 업무에서 AI는 이미 ‘놀랍다’를 넘어 거의 일상적인 도구가 됐다.
셋째이자 가장 중요하게는 형식 검증이다. Lean 같은 시스템은 비형식적 증명을 기계가 검사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 각 단계가 실제로 성립하는지 확인한다. 예전에는 사람의 증명을 여기에 옮기는 일만 해도 몇 주 가 걸리곤 했지만, 타오는 이제 많은 유형의 증명에서 그 시간이 몇 시간 단위로 줄고 있다고 말한다. 이 필터가 있으니 AI가 대량으로 낸 풀이도 하나씩 선별할 수 있다.
KEY POINT
현재 AI가 가장 잘하는 구간은 가장 깊은 난제 한두 개가 아니라, 관심 부족 때문에 오래 방치된 문제를 대량으로 훑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타오는 과장을 경계한다. 지금까지 AI가 두드러진 성과를 낸 문제들은 대체로 수학계가 가장 집요하게 붙들고 있는 최상위 난제들이 아니다. 오히려 ‘어려워서’가 아니라 ‘아무도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남아 있던 문제들이 많다. 강연 시점 추적표에도 미해결 문제가 약 700개 남아 있었다. 이것은 이미 끝난 혁명이 아니라, 이제 막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한 변화라는 뜻이다.
인간과 AI는 실제로 어떻게 협업하는가
타오가 든 첫 사례는 절반쯤 열린 문제였다. 한 참여자가 수치 실험과 구성 아이디어로 문제의 대부분을 밀어붙였지만, 마지막에 남은 식 하나를 증명하지 못했다. 타오는 그 빈칸을 일반 모델에 던졌고, 모델은 예상보다 세련된 수론적 아이디어로 보조 정리를 메웠다. 이후 사람 연구자가 그 논증을 읽고 단순한 형태로 다시 설명했고, 또 다른 참여자가 형식화 도구로 옮겨 Lean 증명까지 완성했다. 아이디어, 보조 정리, 검증이 릴레이처럼 이어진 셈이다.
두 번째 사례는 더 직관적이다. 동전 더미를 여러 더미로 나눠 놓고, 상대는 증가수열 또는 감소수열을 이루는 더미만 골라 가져갈 수 있을 때 공정한 가격이 얼마인지 묻는 최적화 문제가 있었다. 먼저 사람 참여자가 작은 경우들을 선형계획으로 계산해 규칙을 추측했다. 그다음 AI가 제곱수 크기의 경우를 작은 정사각형을 큰 정사각형에 배치하는 문제로 번역해 증명 구조를 찾아냈다. 이어 사람 연구자들은 더 큰 경우의 데이터를 뽑아 추측을 단순화했고, 이미 해결돼 있던 다른 정사각형 패킹 문제와 연결해 일반형까지 마무리했다.
사람은 구조를 보고, AI는 막힌 단계를 메우며, 형식 검증은 마지막으로 참과 거짓을 가른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단독 승리가 아니라 역할 분담이다. 타오가 실제로 보여 준 것은 ‘AI가 혼자 풀었다’는 서사가 아니라, 문제를 구성하는 여러 층위를 인간과 기계가 서로 나눠 맡는 작업 흐름이다. 이 때문에 그는 인간-AI 협업이 특히 긴 꼬리의 중간 난도 문제들에서 강력하다고 본다.
타오가 끝까지 지키는 선
타오는 문제 해결이 수학의 전부가 아니라고 못 박는다. 수학자는 개념을 이해하고, 복잡한 논의를 더 단순한 형태로 압축하고, 설명 가능한 지식으로 바꾸는 일을 한다. 어떤 문제 하나의 답보다,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기술과 시야가 더 중요한 경우도 많다. 실제로 등차수열에 관한 에르되시 문제는 그 자체의 해답보다도 숫자 패턴을 다루는 가법적 조합론이라는 분야 전체를 밀어 올리는 자극이 됐다.
따라서 에르되시 문제 몇 개의 해결을 곧장 ‘수학 전체의 정복’으로 읽으면 과장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를 단순한 유행으로 치부하는 것도 오판이다. 타오의 태도는 냉정하다. 순수한 과대광고는 아니다. 그렇다고 가장 깊은 난제가 당장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분명한 진전이지만, 그 진전의 모양은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제한적이다.
참고
타오가 강조한 것은 성능만이 아니었다. AI 사용 여부 공개, 장문의 답변에 대한 요약 의무, 내용 책임 명시, 스팸성 장문 금지 같은 운영 규칙이 있었기에 포럼이 이른바 저품질 AI 출력물에 잠기지 않고 작동할 수 있었다.
형식화된 증명이 처음엔 장황하고 덜 세련돼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타오의 관점에서는 우아함보다 확인 가능성이 먼저다. 사람이 읽기 좋은 설명은 나중에 다듬을 수 있지만, 일단 컴파일되고 검증된 증명은 공동 작업의 신뢰 기반이 된다.
결론: 수학은 ‘대체’가 아니라 ‘확장’으로 변한다
이 강연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수학은 오랫동안 한 문제를 깊게 파는 소규모 장인 작업에 최적화돼 있었지만, 이제는 수백, 수천 개의 문제를 동시에 훑고, 기여를 모으고, 검증으로 걸러내는 방식도 현실이 되고 있다.
이 변화는 진입장벽을 낮춘다. 대 학원생, 고등학생, 개발자, 다른 분야 연구자도 적절한 도구와 검증 체계가 있으면 의미 있는 조각을 보탤 수 있다. 타오가 보는 미래는 AI가 인간을 밀어내는 수학보다, 인간과 AI가 함께 규모를 키우는 수학에 더 가깝다.
KEY POINT
지금 AI의 최적 전장은 가장 어려운 한 문제보다 중간 난도의 문제 1000개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성능만이 아니라 검증이다.
타오가 말하는 미래의 연구 수학은 결국 이렇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더 많은 도구가 실험되고, 더 엄격한 검증 아래에서 더 빠르게 진전하는 수학이다.
···
SOURCE
YouTube 원문 영상 바로가기
정리 및 구성: GPT-5.4 Pro
작성자 : 초존도초고정닉
싱글벙글 임진왜란속 대마도주의 눈물의 구라쇼
대마도는 실은 일본보다 한반도에 더 가까운거 아냐? 아무튼 가깝고도 먼 이 섬은 한반도와 여러가지로 얽힐게 많았음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대마도는 단순한 섬이 아닌 조선과 일본을 잇는 접점이자 동시에 해적인 왜구의 거점이었거든 그중 조선과 대마도 사이, 게다가 임진왜란에 대한 특이한 사건이 있어 말해보려함일단 조선과 대마도는 어떤 사이였냐 란걸 알아야함 조선은 세종대왕 시절 그냥 "해적소굴"이었음 참다못한 조선이 1419년 이종무 장군이랑 배 200척을 보내 대마도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폭격한것마냥 개박살을 내버려 너무 깊게 진격하던 조선군이 매복을 만나 손실을 입고 태풍소식을 듣고 철군하긴 했지만 대마도 왜구의 배 129척과 집 2천채를 전부 아작을 내서 허허벌판으로 만들어버린거지 며칠만에 동양의 가자지구가 된 대마도의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는 조선에 제발 살려달라고 빌며 대마도를 조선의 한 고을로 받아 달라고 항복함 이때부터 대마도는 조선의 왕에게 관직과 도장(인신)을 받고 매년 쌀과 콩을 얻어먹는 경제속국이 되었음 일종의 중국과 조선의 관계를 흉내낸 것이라 볼 수 있지 조선은 이로인해 큰 이득을 얻었는데 바로 "왜구의 근절"임 대마도를 복속시킴으로서 조선은 대마도주의 충성을 얻고 이후 100년간 해적질을 단속시킴으로서 목표를 달성했던거지 대마도도 큰 이득을 얻었는데 대마도는 땅의 대부분이 산지이고 암반이 많아 농사짓기가 힘들었는데 조선에 충성을 맹세하는 대가로 앞서말한 매년 쌀과 콩을 받을 수 있었고 조선의 왕이 하사한 도장(인신)을 사용하여 "일본에서 조선으로 가는 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음 게다가 대마도는 정기적으로 무역의 허가를 요청하기위해 세사라는 사신을 조선에 파견하여 주기적으로 허락을 받았는데 조선은 세사가 올때마다 쌀과 비단등의 선물을 챙겨줘 대마도가 다른맘을 못먹게 구슬리기도 했어 그렇게 조선은 왜구 막아 좋고 대마도는 식량받고 일본에서 조선으로 가는 무역을 독점해 돈을 벌어 좋은 윈윈관계는 어떤놈이 등장하고 깨지게됨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한거임 일본을 통일한 히데요시는 "나 명나라 칠테니까 조선왕은 내 밑으로 들어와라" 라는 소릴함 양국 사이에서 기가막히게 쌀먹을 하던 대마도는 미쳐버릴 노릇인거지 아니 공짜 쌀이 없어진다고 일본의 조선무역 독점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던 대마도였는데 그게 연일 하한가 상장폐지 좆된상황인거임 이때 대마도주였던 소 요시토시와 그의 장인(소 요시토시는 고니시의 딸인 마리아와 결혼함) 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전쟁을 막을 기가막힌 작전을 기획함 "까짓거 구라 함 치자" 당시 일본과 조선의 대화는 대마도주가 담당했는데 담당자였던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는 히데요시의 "조선은 항복하라"는 서신을 "우리 통일했으니 통신사좀 보내주세요"로 바꿔 선조(조선왕)에게 전했고 히데요시에게는 "조선왕이 곧 항복하러 올거임" 이라는 거짓 서신을 보냄 조선에선 조공 개꿀 하며 통신사를 보냈고 잔뜩 들뜬 히데요시가 그들을 맞았지 그런데 조선에서 보낸 국서엔 항복의 ㅎ자도 없이 훈계만 가득했고 이에 빡친 히데요시는 바로 침공을 명령함 그렇게 임진왜란이 터져버림 전쟁 멈추려고 꼼수부린게 오히려 불을 질러버린 꼴이 된거임 그렇게 전쟁이 터지고 조선에 영웅 이순신의 등장 및 의병봉기 등으로 전쟁은 기나긴 교착상태에 빠지게됨 빨리 전쟁 끝내고 집에가서 대마도 무역으로 쌀먹이나 하고싶었던 고니시는 어떻게 전쟁을 끝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지 그때 그의 머리에 또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름 "마 함 더 하자" 고니시는 명나라 사신 심유경과 짜고 다시한번 구라를 침 명나라 황제에겐 "히데요시가 잘못을 빌며 항복함"이란 가짜 국서를 보내고 히데요시에겐 "명나라 황제가 널 일본국왕으로 인정하고 항복함"이란 가짜 국서를 만들어 보낸거임 양국 정상을 낚은 이 사기극은 무려 3년이나 이어짐 당시 이 사기극을 이끈 고니시와 심유경은 "이대로 시마이치고 돌아가입시다"라는 무드를 잡게됨 하지만 나중에 히데요시가 명나라 사신을 직접 대면했다가 진실을 알게되고 명나라 사신이 읽어준 "넌 내 신하 ㅋ"를 듣고 개빡쳐서 또다시 침략하게되지 이게 바로 정유재란임 그리고 이래저래 히데요시가 죽어버리고 임진왜란이 끝나게 됨 전쟁후 고니시는 세키가하라전투에서 패배하여 가문이 완전히 망해버렸고 고니시는 사형당함 그걸 본 소 요시토시는 아내였던 마리아(고니시의 딸)를 내쫒아 버리고 그녀가 낳은 아들은 교토로 보내 막부에 의해 살해당하게 만듦 하지만 전쟁이 끝났어도 개빡친 조선이 더이상 무역을 허락할지는 미지수였지 물론 직접적 피해자인 선조는 야마가 돌아서 절대 허락 안해줬고 다음으로 광해군이 즉위하고 조선은 일본에게 "사죄해라!" 라는 서신을 보냄 조선과 일본의 사이에 있던 대마도주는 또 기가막힌 생각을 하게되지"남자는 삼세판" 대마도주는 에도 막부의 도장을 위조해 "미안합니다!"라는 가짜국서를 조선에 보내고 조선이 요구한 왕릉 도굴범을 대충 감옥에 있던 잡범을 데려다가 "얘들이 왕릉 도굴한놈들입니다!" 라며 가짜 도굴범을 만들어 조선에 보냄 조선도 "어? 도굴범들이 너무 어린데? 이새끼들 구라치노"라고 생각했지만 당장 씹창난 전국토 복구랑 나라 정상화를 위해 그냥 눈감아주고 대마도를 통한 일본 교역을 재개함(기유약조) 이후 수백년간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쌀먹을 하던 대마도는 19세기 일본에 메이지유신이 터지면서 나가사키현으로 편입되고 모든 특권을 포기하게됨 이때 일본이 대마도의 자치권과 외교권을 빼앗으며 든 이유는 "조선에게 관직을 받고 쌀을 받는게 쪽팔린다"였다고함 요약 1.대마도는 일본의 조선 교역을 독점함 2.임진왜란전 조선이 항복했다고 구라치다 걸려서 임진왜란 일어남 3.임진왜란중 명나라가 항복했다고 구라치다 걸려서 정유재란 일어남 4.임진왜란후 에도 막부 도장 위조해서 일본이 사과한다 구라쳐서 기유약조 맺음 5.메이지유신 터지고 일본이 조선한테 굽신거리는거 쪽팔린다고 대마도 외교권 박탈됨
작성자 : 싱글벙글쇼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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