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신 안 올지도 모르는 토로넷. 내가 워낙 토로넷을 좋아했어서 13 쓸을 위주로 하되 09, 11 쓸도 섞어서 넘버별 인상 깊었던 연기나 대사, 디테일 등을 정리해보고 싶어졌어. 써놓은 관극노트 보면서 쓰는데 워낙 양이 방대해서 잘 정리가 될진 모르겠네. 내가 빠뜨린 포인트 같은 게 있으면 횽들이 알려줘!!
본격적으로 넘버별 후기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쓸을 볼 때 \'네이슨의 고백\'이란 점에 집중해 극을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야기 해둬야 할 것 같음. 쓸이란 극 자체가 네이슨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 된 것이기 때문에 지금 네이슨이 심의관한테 거짓말을 하는 걸 수도 있고 세월이 지나 기억이 왜곡된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있는 그대로일 수도 있음.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네이슨에 의해 변형된 기억인지를 찾아내고 나아가서 네이슨이 바라본대로만 표현되고 있는 리촤가 실제로 저 상황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추측하고 궁극적으로는 최후의 최후에 우위를 점한 건 누구였는지 알아내는 식으로 극을 감상하는 편.
보통 파워 게임으로 쓸을 보는 입장에선 초반부터 누가 주도권을 잡는지 기싸움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나는 34년 전 리촤와 네이슨의 관계에서 이미 네이슨이 우위에 서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들어가고(워낙 살벌한 토로넷으로 뺑뺑이를 돌다보니ㅠㅠ) 최종적으로 우위를 점한 것은 누구였는가 하는 해답은 극 내내 쌓여온 디테일과 파이널 쓰릴미 한 장면으로 결론을 내는 편임. 그러다보니 토로넷이 짜놓는 디테일, 그리고 그 날 그 날 리촤들의 디테일에 따라 같은 페어여도 결말이 이리 홱 저리 홱 바뀌는 게 감상의 묘미.
그럼 이제 넘버별로 하나하나 이야기 해볼게. 다시 한번 이건 개취로 범벅된 철저하게 개인적인 내 해석이라는 걸 기억해줘 횽들ㅋㅋㅋ
01. Prelude
극 안으로 관객을 인도하는, 나한텐 개인적으로 그 날 공연을 평가하는 항목 중 다섯손가락 안에 들만큼 중요한 넘버. 서곡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이 글의 목적은 토로넷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거니까 넘어가겠음.
02. Why
와이는 토로넷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넘버이자 토로넷의 매력이 넘치는 넘버라고 자신있게 말해보겠음.
일단 13 쓸에선 우측 사이드 계단을 통해 등장하는 토로넷. 무대에 오를 때 꼭 한 발을 먼저 얹고 텀을 뒀다가 무대로 올라오는데 나는 이 동작이 참 좋음. 배우가 무대에서 움직이는 건 당연하지만 가만히 있는 건 이질적인 일인만큼 동작이 멈추면 모든 시선이 그쪽에 집중될 수 밖에 없음. 그걸 잘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어. 토로넷이 무대 위로 올라오기까지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됨. 무려 일곱번째 가석방 심의를 받고 있는 네이슨. 네이슨은 진정 감옥을 나가고 싶긴 한건지, 그냥 지긋지긋한 가석방 심의에 단순히 지친건지, 아니면 아직도 심의관들을 어떻게 속일까 궁리하고 있는건지. 관객은 자연스럽게 네이슨의 생각과 동조하려는 태도를 갖게 되는 거라.
토로넷은 혈기 넘치고 츤츤대는 젊은 심의관과 4주 후에 뵙겠습니다 풍의 나이든 심의관을 상대하는데 매 해 토로넷이 이들을 대하는 느낌이 조금 다르단 생각이 들어. 09 쓸 땐 그저 지쳐서 심드렁할 뿐이었음. 젊은 심의관이 비아냥대거나 화를 내도 대꾸하는 말엔 항변하거나 다투는 것조차 귀찮은 듯한 느낌이 묻어 있었지. 그런데 13 쓸에선 토로넷도 같이 빈정빈정, 심의관들을 비웃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단 느낌. 물론 여전히 심의엔 지쳤고 귀찮긴 한데 한 차원 높은 그와 자신의 관계를 평생 가도 이해하지 못할 그들을 제 아래로 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음. \'판-매부수를 올리려고 신문들이 그렇게 부른겁니다\' 하는 부분이나 \'원하는 게 뭡니까\' 하기 전의 한숨은 장난 아니지. 그 한심한 아랫것들을 보는 듯한 태도라니. 그런데 오히려 이런 13 토로넷이 젊은 심의관에게 진심으로 발끈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재미있는데 내가 생각한 나름대로의 그 이유에 대해선 이따 그 부분이 나오면 마저 얘기하겠음.
하여튼 모든 걸 말하겠다는 이 넘버, 와이. 09년 토로넷을 처음 만났을 때 난 와이를 들으면서 울었음. 그때까지 내가 만났던 네이슨 중에 이 넘버를 이렇게 부른 네이슨은 처음이었거든. 절절하기 짝이 없었음. 심지어 09년 상산 막공 때는 와이를 부르면서부터 눈물을 뚝뚝 떨구는데 그 날 극은 거의 휘발..... 아무튼 나는 처음엔 이게 네이슨의 후회와 회한 때문일 거라 생각했음. 네이슨의 말 그대로 다신 안 그러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하며 후회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함정임. 극을 다 보고 나면 토로넷은 그를 뒤따른 거 뿐이 절대 아니거든. 초장부터 심의관과 관객들을 거하게 속이고 계신거라.
고로 와이는 토로넷의 개뻥임. 지금 이 네이슨은 그를 뒤따르지도 않았고 그를 뒤따른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하는 모든 걸 말해줄 생각도 없음. 즉 알아내고픈 게 있으면 관객인 내가 알아서 생각하고 추측해서 알아내란 말도 되겠지^^! 아니 그럼 도대체 이 넘버는 왜 그렇게 절절한가. 거짓말 하는 주제에 왜 그렇게 남의 눈물샘을 공격하는 목소리로 부르는건지. 그건 와이는 토로넷에게 가장 행복했던, 그와의 시간을 떠올리는 노래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와이에서 묻어나는 그 절절함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후회나 자책도, 그와의 일에 대한 후회도 아니라 그에 대한 그리움,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회한인 거임.
와이에 대한 선호도는 09>11>13 순. 13 토로넷은 더 시니컬하고 강해진 탓에 찌질 코스 하고 있는 09나 11보다 애절함이 떨어지는 느낌. 사실 09나 11이나 13이나 토로넷은 늘 살벌하고 강한 네이슨이라고 생각함. 단, 09와 11 쓸에선 찌질 코스를 하고 있다가 막판에 가면을 벗어던지는 거고 13에서는 아예 초장부터 딱히 숨길 생각도 없는, 대놓고 강한 네이슨일 뿐. 13 이전의 쓸은 토로넷이 심의관들에게 말하는 내용(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내용, 남들의 눈으로 본 34년 전)이라면 13 쓸은 말 그대로 네이슨의 고백, 네이슨의 속내까지 반영된, 네이슨의 기억 그 자체라는 느낌. 와이에서 더 길어지면 안될 거 같아 여기서 이만 줄이고 다음 넘버로 넘어감.
03. Everybody wants Richard
그리하여 이야기는 리촤가 돌아온 시점으로. 에원리는 내가 진짜진짜 좋아하는 넘번데 요새 너무 빨라 너무 빠르다고ㅠㅠ 음미하게 해줘ㅠㅠ 일단 에원리 전에 공원에서 그 기다란 다리를 접고 앉아가지고 쪼매난 수첩에 끼적대고 있는 토로넷은 몹시 귀엽다고 한다. 그런데 머글 친구가 같이 보고 \'존나 귀여운 척 해\'라고.... ((((((토로)))))) 괜찮아 내 눈엔 귀여우니까....ㅠㅠ
다들 알다시피 공원에서 리촤를 만나는 장면은 리촤의 첫 등장인 동시에 극 안에서 두 번이나 반복 되는 장면이기도 함. 한번은 경찰 조사가 끝난 뒤고 다른 한번은 파이널 쓰릴미지. 리촤 첫 등장, 경찰 조사가 끝난 뒤, 파이널 쓰릴미. 이 세 장면은 전부 중요한 장면임. 네이슨과 리촤의 관계가, 나아가 극이 뒤집히는 계기가 되는 순간들이기 때문. 자세한 건 역시 그 장면에 가서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리촤를 기다리는 토로넷은 초조한 동시에 설레고 즐겁고 그치만 안 올까봐 불안하고. 토로넷이 리촤 기다리며 시계 꺼내서 톡톡 두드리는 거 매우 몹시 좋아함. 그러다 리촤가 멍청한 새나 보고 하며 등장. 이전까지 쓸에선 확 놀래키고 멍청한 새나 보고, 하는데 올해 쓸에선 아무 말 없이 확 껴안아 놀래키면서 대사를 침. 극 내내 존나세인 토로넷이 깜놀해서 굳는 장면은 아주아주 좋아하는 포인트인데 왜냐면 13 토로넷을 본 몇몇 사람들이 나한테 그러는 거라. \'네이슨이 리촤 좋아하긴 한거임? 존나 무서움\'ㅋㅋㅋㅋ 거야 뭐 집착과 광기의 사랑이니... 저도 무서워요... 그치만 토로넷이 리촤를 좋아한다는 결정적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저 깜놀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함. 리촤가 연인 같은 장난을 치니까 그 똑똑하고 무섭던 토로넷이 경직되서 굳어버리는 게 참 좋음.
리촤의 장난으로 기분이 방방 뜬 토로넷은 극 중 손꼽히게 밝은 모습으로 리촤와 얘기하는데 지뢰를 건드림. 리촤 동생 얘기. 리촤 동생은 리촤에게 박탈감과 열등감과 상실감을 주는 존재로 극 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 리촤는 이 동생을 존나 싫어하는데 토로넷은 이걸 엄청 잘 알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지뢰를 밟은 걸 알고 머뭇대다 \'니 동생\' 하고 실토하는거지. 13 쓸에서 런촤가 형편없는 개-새끼야 하며 기둥을 쾅 차서 울림을 만드는 연출은 상당히 마음에 듬. 리촤의 빡침, 찬물을 끼얹은 듯 굳은 분위기. 웅웅대는 금속 울림의 잔상은 리촤와 네이슨의 재회가 토로넷이 기대한 대로 설레고 기쁜 어떤 것이 아니라 좀 더 불길한 일의 전조와 같은 서늘한 느낌마저 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리촤와 네이슨이 언성을 높여 다투기 시작. 저녁 시간에 약속이 있다는 리촤의 말에 토로넷은 짜증을 내는데 09 때는 애원하듯 \'너 떠나고 우리 처음 만나는거야\' 한다면 13 쓸의 네이슨은 딮빡침을 보여줌. 니가 언제부터 철학에 관심 있었냐며 비아냥대는 것도 그 일환이지.
하여튼. 에원리는 네이슨과 리촤의 그간 관계를 넘버 단 하나로 요약해줌.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있지만 진정 자길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 외로운 리촤와 리촤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네이슨. 이 둘의 관계가 참 재미있는데 겉으로 보기엔 인기도 많고 남부러울 것 없는 리촤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리촤는 네이슨을 벗어날 수가 없음. 네이슨은 이해를 해주는 입장이고 리촤는 네이슨만이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인 입장이기 때문. 그럼에도 매달리는 건 네이슨, 네이슨을 조롱하고 밀어내는 게임을 즐기는 건 리촤라는 점이 이 둘의 쓰릴한 부분.
내가 토로넷의 에원리를 좋아하는 건 노래의 완급조절이 쩔어줌. 울 것 같다가 화를 내기도 하고 비아냥 대다가 날 그리워 했다 인정하라며 애원하기도 하고. 토로 노래할 때 심약한 소리에서부터 서서히 끌어올려 터뜨리는 부분을 좋아하는데 에원리는 연기의 완급 조절은 물론, 소리의 조절도 환상적. 많이들 얘기하는 수많은 여잘 돌렸다는 얘길 하며 손가락 뱅뱅 돌리는 디테일은 09, 11, 13 세번 동안 변하지도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 아주 제대로 비꼬는 그 느낌이 좋음. 13 쓸에선 손가락 뱅뱅 직후의 \'대단해\' 끝에 웃음이 묻어있는데 허탈함과 기가 막히다는 듯한 그 비웃음이 특히 좋음. 리촤가 얼굴에 담배 연기 뿜고 가니까 짜증스럽게 연기 헤치는 것도 좋고. 13 토로넷은 런촤를 사랑하지만 지금 한계에 달해있는 느낌임. 런촤가 자기 것이 되어주기만 한다면 어떤 장난이라도 받아줬을테지만 런촤는 잡힐 듯 말 듯, 줄 듯 말 듯 손 안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거라. 어릴 때부터 반복되어 온 그 관계에 토로넷은 지치고 울분이 쌓여서 폭발하기 직전인 듯.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 이번 연출에게 일본 공연에서 했던 이걸 가져온 걸 제일 칭찬해주고 싶음. 불 있어? 하기 전에 성냥을 미리 내밀고 있는 네이슨. 모두 너만을 원하는데 아무도 나처럼 못한다는 그 가사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이미 리촤를 바닥까지 알고 다음 행동까지 예상하고 있는 네이슨. 그만큼 리촤를 사랑한다고 느껴지는 한편 리촤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싹해지기도 하는.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 이 장면이 올해 에원리 중 가장 좋았음.
불을 본 리촤는 불장난을 제안하는데 이때의 토로넷 반응에서도 지금 이 네이슨이 한계의 한계에 다 와있다는 게 느껴짐. 토로넷이 런촤와 하고 싶은 건 관계를 쌓는거지 이런 불장난 같은 게 아님. 알았어, 하는 목소리엔 체념과 피로가 가득 묻어남. 하지만 반전은 이 뒤에. 모두 너만을 원해, 하지만 나만큼은 아니야 하며 빛 아래서 슬며시 웃는 토로넷. 스스로에 대한 자조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기뻐보이기도 함. 그 누구도 이런 방법으로 리촤를 가질 수 없다는 것, 오직 자신만이 리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거임. 나만큼은 \'아니야\' 하고 토로넷이 속삭이는 목소릴 낼 때가 좋음. 얼굴에 떠오른 그 미소가 그렇게 오싹오싹 할 수가 없음.
04. Nothing like a fire
13쓸에서 불 타오를 때마다 꽝꽝 피아노로 포인트 준 거, 그리고 붉은 조명으로 처리한 게 마음에 듬. 예전에 하얀 연기 뿜었을 때는 앞에 앉으면 크헙헙 하게 되니까. 하지만!!!! 도저히도저히 이번 낫띵에 좋아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놈의 레이. 실화와 완전히 분리해서 \'나\'와 \'그\'로 극을 보고 싶은데 이름이 등장해서 몰입에 방해되고 짜증남. 두번째는 타이타닉. 타이타닉 하지마 타이타닉 하지마!! 어정쩡한 자세ㅠㅠ 그래도 계단 윗단 아랫단에 앉아서 끌어안은 자세는 예쁘고 좋음. 리촤 손이 만지는 곳을 토로넷 시선이 가만히 따라가는 것도 좋아함.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낫띵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토로넷의 포인트는 의외로(?) \'안아줘\' \'제발 만져줘\' 부분임. 다른 부분은 진짜 연기가 쩔어줘서 좋아하는데 이 부분은 뭔가.... 토로넷 연기에도 허점이 있는 듯한 느낌이라 좋다고 한다ㅋㅋㅋㅋㅋㅋ 리촤한테 스킨십 맡겨놨나요.....ㅋㅋㅋㅋㅋㅋㅋㅋ 09년 때부터 참 한결 같이 \'돈 갚아\'로 바꿔도 딱히 문제 없을 것 같은 \'안아줘\'. ....토로덕 눈에는 그저 귀엽다고 한다....
낫띵은 듀엣곡인만큼 목소리 케미 얘기를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런촤 목소리와 토로넷 목소리 정말정말정말 잘 어울림. 낫띵 들으면서 이렇게 평온하고 녹을 거 같은 건 처음임. 토덕은 두 번 밖에 못 봐서 기억이 흐릿하니 패스. 상산은 사노가 워낙 노래가..... 노래가..... 낫띵 부를 때 분위기는 제일 러브미고 다정하고 아 이게 정말 네이슨의 가장 행복한 기억이겠구나 하는 게 납득되는 사랑스러움이 철철 흐르는데 노래와 목소리 케미가 엉망이었음. 우상 같은 경우엔 둘 다 성량 빵빵해서 좋긴 좋았는데 내가 소녀촤 목소리가 취향이 아니어서. 낫띵 노래 자체만으로는 토로가 한 모든 쓸 통틀어 런촤와 부르는 낫띵을 가장 좋아함.
낫띵이 끝나고 런촤는 느리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토로넷은 런촤가 사라진 어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느릿느릿 34년 뒤의 법정으로 돌아감. 이 부분에서도 가슴이 찌르르 했는데 이 기억이 토로넷에 정말 행복한, 소중한 시간이라는 게 절절하게 느껴지기 때문. 리촤는 이미 없는 어둠을 한참이나, 한참이나 바라보는데 시선 하나로 그렇게 애절한 그리움이 묻어날 수 있구나란 걸 느꼈음.
05. A written contract
또 좋아하는 넘버가 등장. 낫띵으로 잠시 달달했지만 다음날 리촤는 찬바람 쌩쌩 불고 있는 이 상황. 네이슨.... 그거 못하는가봉가..... 어쨌든 토로넷은 순전히 리촤가 보고 싶어서 그를 찾아갔지만 리촤의 냉대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림. 우리 얘기 좀 할까? 하기 전에 토로넷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로 무언가를 궁리함. \'니 동생에게 부탁해야겠다~\'에서도 드러나지만 토로넷은 리촤의 약점을 잘 알고 있고 그걸 이용할 줄도 아는 영악한 놈임. 리촤의 무심한 태도에 화가난 토로넷은 어떻게 하면 자기에게 무심하게 구는 리촤와 얘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리촤를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기 옆에 묶어놓을 수 있을까를 고심하는 거. 그렇게 떠올린 게 \'나 이제 너랑 범죄 안해\'라는 협박. 위에도 말했듯 리촤에게 네이슨은 유일한 이해자이기에 잃을 수 없는 존재임. 네이슨을 괴롭히는 건 어디까지나 일종의 게임일 뿐 진짜 네이슨을 잃을 수는 없는 거. 토로넷은 그걸 잘 알고 있고 그걸 이용해서 리촤가 자길 필요할 때만 이용해 먹을 수 없게 옭아맬 준비를 함. 결국 리촤는 덫에 걸려 계약서를 제안함.
나는 이 계약서 넘버에서 짱 쎈 네이슨의 매력을 강렬하게 느꼈음. 나 자는 거나 지켜보라니까 \'고맙다?\' 하는 토로넷도 좋고 니체가 여기 몇 장에 불지르라 그랬냐며 책장 막 넘겨대는 디테일은 역시 09 때부터 이어져 온 매력 포인트. \'참~ 대단한 사람이다!\' 할 때의 비꼬는 말투도 좋아함. 그리고 최근몇 번의 공연에서 \'난 니가 원하는대로 해도 넌 내가 원하는대로 절대 안할거야\' 할 때 \'안할거야\' 부분에서 목소리가 잘게 떨리는데 그동안 쌓이고 쌓여온 리촤에 대한 불신, 분노, 원망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소름이 쭉 돋았음. 리촤가 계약서 쓰라며 네이슨을 데려가기 전, 의심스런 표정 짓지 말란 부분은 회전문 관객에게 큰 재미를 선사하는 포인트. 이때 토로넷의 표정은 리촤에게 보이지 않고 객석을 향해 서있음. 극 중 인물에게는 표정을 보이지 않고 관객에게 표정을 보이고 있다는 건 토로넷의 속마음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함. 객석을 향한 토로넷 표정은 공연마다 다름. \'계획대로\'라는 듯이 웃고 있을 때도 있고 또 어떨 땐 \'이거면 됐다\'라는 만족스런 표정을 짓기도 함. 말 그대로 의심스런 표정을 짓고 있거나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도 있음. 그 날 그 날 네이슨 캐릭터에 따라 조금씩 다른 듯. 계획대로라는 듯 웃고 있는 토로넷은 정말 무서웠다고 한다ㅠㅠ 리촤의 계약조건을 다 써준 뒤 \'이제 내 차례다?\' 하는 어조도 참 강한 토로넷. 09 때는 그 대사에서 네이슨의 기쁨이 느껴졌는데 올해 쓸에서는 어쩐지 오싹한 기분이 듬.
리촤가 네이슨 손 찢는 부분은 나만 좋아하는 거 아니지ㅠㅠ? 다들 좋아하는거지?ㅠㅠ 09 때는 커다란 토로넷이 낑낑대면서 겁 먹은 얼굴로 잡혀 있는 게 참 좋았는데 올해는 때론 겁먹은 표정인데 때론 무표정하게 리촤를 보고 있음. 13 자체 첫공 때 그 무표정하게 런촤를 바라보는 토로넷을 보고 토로넷이 너무 강하다.... 런촤 도망가....ㅠㅠㅠㅠ 했던 기억. 09 땐 손수건으로 다친 손가락을 감싸고 있었는데 올해는 입에 손가락 넣고 쪽 빨고 있는 게 무척 귀여웠음. 하지만 \'완벽하게 엮인 우리의 인생 우리들의 계약\' 할 때 손가락 상처끼리 맞대는 토로넷을 보고 기겁. 09 때는 자기 손가락 지혈하던 손수건으로 리촤를 지혈해줬는데 올해의 토로넷은 진짜..... 집착 쩜......
하여튼 계약서 가사에 보면 이것만이 내가 원하는 너의 모습을 지켜줄 거라 하는데 이게 네이슨이 계약서에 품은 기대였으리라 생각함. 계약서만으로 리촤를 묶어둘 수 있었다면, 리촤가 제대로 계약을 꼬박꼬박 이행했더라면 이야기가 그렇게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거임. 하지만 리촤는 달라졌지.
06. Thrill me
09 쓸의 쓰릴미에선 내가 무척 싫어하는 포인트가 있었음. 토로넷이 막 화를 내다가 불평 그만 할게 하며 무릎을 꿇고 사랑해 달라며 비는데 그게 너무 비참하고 보기 싫었음. 그런데 13 쓸에선 짱짱맨 토로넷으로 돌아옴. 런촤가 가방을 달라고 요구하는데 가방을 들었다가 런촤 손에 주지 않고 그대로 놔버리는 토로넷. 위에서도 말했지만 13 쓸의 토로넷은 한계에 달한 상태임. 런촤가 갖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손에 안 들어오니까 인내심이 거의 바닥 나있음. 계약서로 겨우 붙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런촤 눈엔 자신이 비치질 않아 스스로가 비참하고 괴로운 거라. 그 마음이 쓰릴미 넘버 안에서 전부 폭발함. 미친듯이 화를 내다 애원하고 분노하고 절규하고. 에원리와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완급조절이 돋보이는 넘버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 날 갖고 놀지마! 할 때 이를 악물고 부르는 것처럼 한 자 한 자에 힘을 줘서 부르는데 토로넷의 깊은 빡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 날 좀 봐!! 의 절규는 09 때부터 한결 같이 좋아하는 포인트. 변명할 생각마 할 때 멱살을 잡고 설득할 생각도 하며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이듯이 윽박지르는데 그 박력이.... 와우. 토로넷.... 입이 닳게 말하지만 정말 셈.... 도망가라 런타샤.....
토로넷이 피로 사인한 계약서 꺼내들고 협박하는 부분은 09 때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게 변함. 09 때는 니가 이겼다, 하고 돌려준 계약서를 곱게 접어 품에 넣었는데 13 때는 흐느끼며 계약서를 구겨버림. 자신의 애원은 무시한 리촤가 계약서 한 장에 OK를 하다니. 종이쪼가리 한 장 보다 못한 자신의 존재에 토로넷이 얼마나 비참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얼마나 상처 받고 분노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도록 더 잘 살아났다고 생각함. 둘이 마주본 채로 넥타이 푸는 부분은 엄청 일본스러운 연출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음. 섹시하고 위험한 분위기보단 전투적ㅋㅋㅋ인 느낌이 나는데 그게 좋았음. 지금 토로넷은 비참한 기분이고 런촤도 저 새끼가 지금 나 계약서로 협박했단 사실에 열이 뻗친 상태라 끈적한 분위기보단 서롤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넥타이 푸는 게 좋다고 생각함. 어린애 취급 말라는 토로넷은.... 나만의 웃음 포인트?ㅠㅠ 아마 누구도 그러지 못할 거라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으으 쓰릴미까지 왔는데 너무 길다!! 뒷부분은 다음에!! 집착 돋는 긴 후기 미안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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