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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슈 - 마윤 막공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다이루었다(123.108) 2013.07.14 07:22:55
조회 1517 추천 38 댓글 19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크게 다르지 않는 그런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던 한 사람의 일상에 어느 날 찾아온 막연한 설레임과 기대. 
뮤지컬 같은 건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나 보러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사람이 
불과 일주일 만에 공원의 예매대기를 마스터하고, 주말 종일반을 다녀오고, 그리고 회전문을 돌게 됐다. 

이문세가 게스트였던 그 날 라스만 안봤어도, 이문세를 지원사격 나온 윤도현의 노래 한 토막에 영업만 안당했어도,
지크슈로 검색질만 안했어도, 마이클리라는 듣도 보도 못했던 사람의 영문버전 겟세마네에 무심코 클릭버튼만 안눌렀어도... 
그 작은 우연들이 모여 필연을 만든 어느 날을 기점으로 한 달하고 일주일
마치 어린 시절 첫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것처럼 나는 지독하게 지크슈를 앓았다. 
나의 첫 뮤지컬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설레임이었고
온 몸이 덜덜 떨려 와서 두 손을 꼭 잡고 스스로를 진정시켜야 했던 흥분이었고
어디에 그런 눈물샘을 담고 살아왔나 싶게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내리던 눈물이었다.

시간은 흘러 공연은 이미 막을 내렸지만 
나는 나를 매혹시켰던 그 모든 기억들과 여운을 오래도록 안고 갈 것 같다.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음악이 가득 넘치던 한정된 그 공간에서 나는 잠시나마 삶의 고단함을 잊었고 무대 위에서 울고 웃던 이들과 함께 꿈을 꾸었다. 
바람과 비가 대지에 아로새긴, 몇 천 년 혹은 몇 만 년의 아스라한 시간들이 느껴지는 어떤 낯선 세상의 사막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자했던 이들과 함께 아픈 꿈을 꾸었다. 
시공을 뛰어넘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꿈속에서 만났다.

정작 십자가에 매달렸던 지저스는 함박미소를 지으며 상큼한 윙크를 날리는 커튼콜의 와중에도
여운을 채 떨치지 못한 그렁그렁한 눈으로 객석을 향해 인사하던 나의 유다. 
그리고 그가 무대 위에서 목숨을 걸고 사랑한 지저스와 지저스가 사랑한 세상의 이야기.

그 여러 날들 중에서도 어느 하루
기억은 한 장면에 머물러 있었다.
고장난 턴테이블처럼 같은 장면에 멈춰서 반복재생을 계속하고 있었다.

사각의 프레임에 영원히 갖힌 찰나
그것은 풀리지 않는 의문

그는 왜...




모순투성이 지저스


이 와인은 바로 내 붉은 피 이 음식은 너희 위한 나의 몸
언젠가 내 피와 내 몸을 마시고 먹는 순간
항상 날 기억하고 생각해주길
부질없는 소망 확신 없는 기대 내가 미쳐 가는가 

 

자신의 뜻과 계획, 소망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점점 다가오는 마지막 선택의 순간.
여느 날와는 달리 초반 유다와 지저스의 입장과 태도의 차이를 드러내는 넘버들부터 이미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억누르는 게 느껴졌던 마저스가 마침내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부질없는 소망 확신 없는 기대...

지크슈의 지저스는 신의 권능과 영광을 믿지만 자신의 부활을 내다보지는 못한다.
자신이 죽은 뒤에... 누군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고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소망을 품으며
확신할 수 없는 기대를 갖는 인간이다. 그런 자신에 대해 미쳤나보다고 자조하는 인간이다.
자신의 죽음에 이르러... 제자들이 자신을 부인하고 배신할 것을 예언하며 분노하는 인간이다.

얼마나 인간적이냐 하면...
감히, 지저스처럼 누군가에게 자신의 죽음이 기억되기를 바라기는커녕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저주받을 이름으로 기억될 것을 알면서도 배신자의 운명을 선택하던, 
마침내 지저스가 원하는 메시아의 운명을 완성하기로 작정하고 
돈주머니를 낚아채 지저스에게 보란 듯이 높이 들어 올리던,
윤유다의 그 참혹한 사랑을 두고도 지저스는 유다더러 넌 배신자라고 원망한다. 

헤븐의 가사를 보면 유다는 극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메시아의 운명을 선택하려는 지저스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물며 그 메시아의 운명 속에 등장하는 배신자가 바로 자신이 될 거라곤 아마 상상조차 못했을 테지. 
라센 지크슈의 유다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지저스를 배신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지저스에게 회의를 품고 지저스를 배신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지저스의 속삭임으로 ‘배신’의 씨앗이 잉태된다. 
굳이 악마를 대입시키자면 지저스가 바로 그 유혹의 악마일까. 
말하자면 처음부터 지저스로부터 면죄부를 받고 배신을 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 지저스가 유다를 탓하더라.

넌 알고 있으니 날 이용 하거라 네가 할 일 후회하게 될 선택 
원한다면

도대체가... 유다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선택을 유다가 후회하게 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지저스는 유다에게 속삭인다.  사람들을 고통과 절망에서 구할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고 넌 그걸 알고 있으니 날 이용하라고...
거기다 소름끼치게도 덧붙인다. 원.한.다.면.
마치 거부조차 할 수 없는 운명을 지저스에게 미리 안배한 신처럼 지저스는 유다에게 거부하지 못할 선택권을 준다. 
게다가 너의 의지로 선택하라 단서를 덧붙인다.

그런 지저스가 라스트서퍼에 와서 유다를 원망하는 거다. 
진심으로 유다를 원망하는 거다.

모순이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모순투성이 지저스가 역설적으로 지저스를 인간답게 만든다.

유다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님에도 유다의 선택이 용서가 되지않는 지저스의 분노야말로

그가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일테니까.




인간인 지저스를 사랑한 유다

 

라스트서퍼 마윤의 대치씬은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마윤을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력적이다.

마이클리의 겟세마네 뮤비를 처음 봤을 때부터 상상하고 기대했다.

낯선 영문 가사임에도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에 미묘한 감정이 실려있을 뿐더러 
일그러지는 표정 하나 손가락을 떠는 제스츄어 하나까지도 시선을 잡아끌었다.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분노하던 그가 락발성으로 샤우팅을 했을 때 저 배우와 대한민국의 대표 락커인 윤도현이 한 무대에 오르게 된다면 어떨까... 
머릿속에서 팡하고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그리던 장면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지켜보게 되더라.

무대 위의 배우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박력과 긴장감에  심장이 정말 두근두근 뛰더라.

있는 힘을 다해 유다를 밀쳐내고 객석을 향해 돌아서 숨을 몰아쉬는 지저스와

그런 지저스의 뒷모습을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며 씩씩거리는 유다.

이윽고 지저스와 유다가 대치상태로 원을 그리며 서로 위치를 바꾼다.

살벌한 눈빛의 유다가 한 발자국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체중이 실린 그 걸음걸이에 어깨가 가볍게 흔들거린다. 
카리스마 넘치는 유다. 난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 장면의 윤유다가 좋았다. 
그리고 그 유다 앞에서 더는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마침내 분노를 터뜨리던, 나는 단지 희생양이라는 유다의 다그침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상처받은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던 지저스의 그 사람 같은 표정이 좋았다. 


지저스와 유다의 갈등이 치열했던 만큼 
지저스에 맞서는 유다가 당당했던 만큼
지저스의 발치에 무너지는 윤유다는 처절하다. 


아직도 난 당신 뜻을 알 수 없어 왜 모든 걸 내던지고 가려하나
다른 선택 정말 할 수 없나요 왜!


그야말로 마지막 숨까지 다 토해내는 듯한 처절한 울부짖음. 
윤유다의 노래는 더 이상 노래로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진심이 부디 상대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한 인간의 간절한 마음이 있었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마음에 대한 절망이 있었다.
Judas' Death 이전에 이미 유다는 막다른 구석에 내몰린 짐승처럼 그렇게 절규하고 있었다. 


신보다 위대한 인간의 길을 꿈꾸던 유다가 지저스를 붙들고 그렇게 무너져 내린다.

가난한 이들과 불쌍한 이들의 고통과 절망을 누구보다 아파하며 지저스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유다가
정작 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지저스 앞에 무릎 꿇는 거다.
자신의 삶을 지탱해왔을 그 모든 신념을 버리고 엎드려 애원하는 거다.  

내내 지저스와 눈을 똑바로 맞추며 자신의 뜻을 주장하던 그 당당한 유다가

심지어 자신의 배신 없이는 당신의 계획도 다 끝날 거라고 지저스를 밀쳐내던 유다가

지저스에게 애원한다. 발치에 엎드려 애원한다.
메시아의 운명을 선택하는 대신 다른 선택할 수는 없느냐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는 대신 인간의 삶을 함께 살아가줄 순 없느냐고

유다의 진심이다.
사람들의 눈에 냉정하고 차갑게만 보이던 유다가 굳은 표정 뒤에 내내 감춰온 진심이다.

세상 사람들 그 모두보다
지저스 한 사람이 소중했던... 유다.
지저스를 따르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신의 아들, 메시아인 지저스를 원할 때 
오직 한 사람... 인간인 지저스를 사랑하고 지키고 싶었던 유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 유다 자신조차도 미처 깨닫지 못했을 그의 진심인 거다.
 

 

 

그는 왜..

 


발치에 무너져 절규하는 유다의 진심에 이미 모든 걸 용서한 듯 안타깝게 망설이지만 결국은 거둬지던 손길...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얼굴을 돌려 유다를 외면하던 지저스..
그런 지저스의 마음을 알 길 없는 유다가 망연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순간...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객석을 향해 돌아서 있으면서도 살짝 기운 얼굴의 각도와 시선으로 유다의 기척에 신경쓰나 싶더니

유다가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지저스가 유다를 향해 돌아선 것이다.

객석에서 표정을 볼 수 있도록 살짝 방향만 튼 정도가 아니라 윤유다를 향해 몸을 돌려 아예 객석을 등지고 돌아선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지저스 모습에 잠시 멍했던 같다.
은저스 마저스를 막론하고 이 장면의 지저스의 연기는 거의 비슷했으니까.
돌아서서 눈물을 흘릴지언정 외면으로 유다를 떠내보내던 은저스,
그 날 그 날 조금씩 다른 디테일을 보이긴 했지만 역시나 은저스와 마찬가지로
유다들이 자리를 떠나는 모습만은 절대로 돌아보지 않던 마저스.

자신을 배신하러 가는 제자들을 등 떠밀어 보내며 
차마 안타까운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늘 외면만 하던 지저스가,
마지못해 떠나는 유다들이 저만치 멀어질 때쯤에야 
비로소 뒤돌아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지저스가
어쩐 일인지 이 날은 유다가 채 자리를 뜨기도 전에 바로 유다를 향해 돌아 선 것이다.


유다와 지저스는 한동안 서로를 응시한다.
그렇게 지저스의 눈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지저스를 떠나던 윤유다.
그런 유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줄곧 바라보던 마저스.
객석을 내내 등진 채로 유다의 모습이 어둠 속에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던 마저스.

마한막공처럼 닿을 듯 말듯 서로에게 뻗는 애틋한 손길도 없었고 
마김막공처럼 손등으로 훔쳐 내는 짠한 눈물도 없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던 시선만 있었다.
윤유다의 시선과 그 시선이 가 닿는 곳에 지저스가 있었을 뿐이다.


그 날 객석을 등지고 선 지저스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어떤 눈빛이었을까


유다를 향해 돌아서 마지막까지 떠나는 유다를 배웅했던 마저스를 두고 처음 몇 일은 그런 생각을 했다. 
유다의 배신에 대해 지저스가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던 거라고... 용서했던 거라고...

그 마음을 유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거라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여러 날들이 지났다.
문득 그런 의문이 들더라.

뭐가 그리도 절박했을까?
마음 아파서 차마 돌아보지도 못하고 유다들을 외면하던 지저스가

외면조차 할 수 없어 돌아선다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유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돌아선 지저스였다. 
그대로 유다가 떠나버릴까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마저스는 왜... 
돌아섰던 걸까...

실은 유다가 그토록 간절하게 지저스에게 바라던 ‘다른 선택’ 처럼

자신 역시 세상의 고통과 절망을 외면하면 살 수 있을 거라 갈등하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자신에게 주어진 독잔을 피하고 싶고 죽음의 고통이 두려운 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자신의 희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신조차 가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지저스 자신이 선택하려는 운명은 유다의 희생과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이해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유다에게 어떤 짊을 지워야 하는지 알면서도 그 잔인한 운명을 선택하는 자신을 이해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마저스는 윤유다로부터 이해받고 또 용서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난 거부조차 할 수 없는 존잰가요, 왜

(다른 선택 정말 할 수 없나요, 왜)

유다를 떠나보내고 텅 빈 무대 위에 흐르는 겟세마네
유다의 간절한 소망과 지저스의 인간적인 갈등이 겹쳐진다.
유다가 애원하고 원망하고 절규했듯이 지저스가 신에게 애원하고 원망하고 절규한다.
유다가 스스로 배신을 선택했듯이 지저스 역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할 운명을 스스로 선택한다.



 

유다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도 어느 때보다 솔직하게 유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던 마저스는

세 제사장 앞에 끌려가서도 다시 한 번 유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보인다.

불과 다섯 번 밖에 없었던 마윤임에도 상징적인 장면이 되어버린 장면이다.

그런데 이 날은...  마저스의 디테일 연기가 나오기 전에 윤유다의 모습이 또 인상적이었다.
안나스를 밀치고 패기있게 달려들지만 막상 지저스 곁에 가까이 간 순간 멈칫하던 윤유다. 
마저스 옆에 꿇어앉아 용서를 구하고는 싶은데 감히 손대는 것조차도 두려운 지

그야말로 조심스레 지저스의 팔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는 거다. 지저스를 바라보는 거다.

한유다처럼 이마를 맞대는 애절함은 커녕 김유다처럼 덥썩 일단 껴안고보는 천연덕스러움도 윤유다에겐 거리가 멀어보인다.

지저스가 자기 세상의 중심(?)임을 뒤늦게 깨달은 라스트서퍼 이후의 윤유다는 이제 가장 안스러워보일 정도다.

하긴 윤유다가 그 장면에서 다른 유다들처럼 애정표현을 했더라면... 마저스의 디테일연기는 영영 팬아트로만 남았을 지도 모르겠다. 


5월 초에 봤던 그 장면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주 작은 시선의 움직임  아주 작은 손동작 하나  그게 전부였는데

그 소란의 와중에 마저스가 앉아 있던 공간만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 정적으로 보였다.

마저스의 디테일한 연기에 감탄과 경이로움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감동을 받았던 순간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마도 그 때, 지저스가 자신의 손목위에 다른 한 손을 올려놨을 때 난 잠시 유다에 빙의했던 것 같다.

그래 유다가 용서받을 때 나도 용서받는 것 같았다.

살아오면서 하나하나 쌓여만 가는... 결코 무뎌질 줄 모르는 모난 돌맹이들처럼 언제까지고 생채기를 남기며 부스럭거리는...

내 안에 상처로 있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혹은 그 어떤 것으로부터... 용서받는 것 같았다.

스스로는 덮지 못할 상처들을 위로받는 것 같았다.

그 날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나름대로의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도 삶을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의 많은 유다들을 용서해주던 무대 위의 지저스가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마윤막공에서 다시 만난 마저스의 연기는 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정면을 향한 시선은 고정된 채로 손만 움직였던 예전의 연기와는 달리 이번엔 손과 함께 시선도 움직이더라.

뭐랄까. 전에 만난 지저스는 그래도 어느 정도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의연하게 모든 걸 받아들인다는 느낌이었다면

마윤막공의 지저스는 자신안에 소용돌이치는 인간적인 감정들을 더 이상 가둬두지 못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느낌이다.

그 어느 때보다 신념에 차 있었지만 그만큼 상처받기 쉬웠고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지만 외롭고 고독했던 지저스

라스트서퍼에서 겟세마네로 이어지는 그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감정의 여운을 안고서

결코 유다에게 가 닿을 수 없는 진심을 내비치던 지저스는 그래서 더 애처로웠던 것 같다.

 


 

 

유다와 지저스의 마지막 이야기 

 

서른아홉대의 채찍질을 당한 후 쓰러진 지저스를 붙들고 지빌라가 애원한다.

저들이 들리게 살려 달라 말하라고.

애원하는 지빌라에게 힘겹게 손을 뻗어 이마를 맞대고 지저스가 대답한다

 

모든 것은 정해진 하늘의 계시 당신은 이해 못해 어떤 것도 너는 바꿀 수 없어

빌라도를 위로하는 지저스의 대사에 한 번도 의구심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날은 달랐다.

지저스가 빌라도에게 속삭이는 저 말이 어찌된 영문인지 지저스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말처럼 들리더란 거다.

 

모든 것은 정해진 하늘의 계시 어떤 것도 너는 바꿀 수 없어

너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어... 내가 그랬듯이... 유다가 그랬듯이...

 

예정된 유다의 배신도, 유다의 죽음도 마저스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걸까. 

 

울먹이며 죽는 이유를 묻는 빌라도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던 지저스.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들의 광기에 찬 외침을 들으며

여느 때 같았다면 두려움과 공포가 떠올랐을 얼굴은

핏물에 범벅이 된 머리칼로 덮여 표정이 읽히지 않았다.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마저도 십자가형을 외치는 군중들로 보였던 걸까.

지저스의 시선은 객석을 향해 한참을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이 날 내내 위태롭기 짝이 없던 마저스는 이 장면에서도 뜻밖의 선택을 한다. 
지빌라의 손을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고 매달리던 그동안의 인간적인 지저스 대신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결연한 지저스를 택한 것이다.

그저 우연인걸까. 지저스는 죽음으로 먼저 떠나보낸 유다의 손을 여전히 잡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그의 목의 죄어온다고 유다가 염려했던 대로 군중들은 지저스에게서 돌아섰을 뿐 아니라 그에게 죽음을 외친다.  

정작 이 상황을 누구보다 염려하며 지저스를 말리던 유다는 스스로 배신자가 되어 이미 목숨을 끊었는데

이제 지저스는 자신에게 죽음을 외치는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져야한다.  

 

빌라도의 광기에 찬 외침이 낯설게 들려온다

 

네 스스로 선택한 이 파멸!

메시아이길 원한 건 네 선택!

내 스스로 선택한 이 파멸...

메시아이길 원한 건 내 선택...

 

지금껏 빌라도의 눈에 비춰지는 지저스의 모습이라고 여겨왔던 빌라도의 대사가

피투성이 지저스의 미소에 이르러 또 다시 지저스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혹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키며

파멸을 향해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밖에 없었던 마저스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는 운명

돌이킬 수도 물러설 수 없는 선택.

아니 돌이켜져서도 안되고 물러서도 안되는 선택이다.

하다못해 빌라도처럼 위로의 손길을 뻗을 수조차 없었던

마지막 만남의 순간조차 안타깝게 매달려오는 손을 다독여줄 수조차 없었던

바로 그 유다의 목숨을 댓가로 치룬 선택이니까.  

 

마침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있던 지저스가 일어선다.

피칠갑을 한채로 미소지으며 자신이 못박힐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운명을 향해 휘청휘청 걸음을 내딛는다.

 


  

내 눈에 비춰지는 마저스는 신의 사명을 따르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같은 인간의 고통과 절망을 안타까워 하고 슬퍼하며 그 짐을 덜어주고자 했고

그게 파멸이라고 할 지라도 자신의 선택을 밀고 나갈 수 밖에 없는 한 인간일 뿐이었다. 

자신의 선택에 기인한 그 모든 책임을 오롯이 자신의 희생으로 감당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었다.

 

이용만 당했을 뿐이라고 원망하면서도  

내가 죽으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메시아가 되는 건가 - 기꺼이 지저스에게 목숨을 내주던 유다.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스러워 하는 지저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이 선택한 배신의 결과를 수긍하며

자신이 감당해야할 속죄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던 윤유다 역시 참 치열한 사랑을 했던 한 인간일 뿐이었다.

  

'당신이 가진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지크슈의 지저스와 유다를 보면서 나는 내내 그 문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의지로 선택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엄청난... 결과들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 고통스러운 희생의 댓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믿는 가치를 위해 혹은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얀빛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지저스의 그림자가 객석에 앉아있는 나한테까지 드리웠을 때  

나는 한 손을 들어 손바닥 안에 고여 있는 그 빛과 그림자를 가만히 쥐어봤다.  

 

무대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무대위 지저스와 유다의 선택이 내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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