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지인들과 같이 아메리칸 이디엇을 봤는데

워낙 평들이 안 좋아서..

지인들한테 욕 먹을까 봐 미리 재미없다고, 음악만 들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 웬걸..

첫 곡 듣자마자 난 가슴이 뭉클..

재관람의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갤러들이 무대연출이나 음악 좋다는 말은 누누히 했지만

그 말은 다르게 하자면 스토리나 플롯은 볼게 없다 그 소리잖아.

그런데

나는 첫 장면, 첫 곡을 듣는 순간

20대들의 절망과 좌절이 느껴졌어.

앞이 안 보이고, 희망도 없고 뭐가 될지도 모르겠고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어느 곳에서는 전쟁으로 누군가가 죽어가는데

미디어나 언론은 화려한 이미지로 현실을 가리고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청춘들이 절망의 몸부림을 하는 게 보이더라고.

그래서 자기 몸을 함부로 하고 진창에서 막 굴리고 그러는 거 같아 되게 짠하고 슬펐다.

그래서 상황을 욕하고 정부를 욕하고 권력을 욕하지만 그런다고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지..

배우들이 90분 동안 에너자이저처럼 쉼없이 노래하고 소리지르고 구르고 춤을 추는데

그건 절망의 에너지였어..

스토리는 그냥 무대 위의 배우들을 보면 알게 되더라.

자막을 보고 아는 게 아니라

무언극처럼, 배우들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짐작을 하게 되는 거지.

자막이 엿같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자막은 노래 가사를 번역한 것이고..

록 스피릿 넘치는 노래의 가사를 그 정도로 번역한 것은  되게 훌륭하다고 생각돼.

자막으로 스토리를 알고자 하면 fail.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을거야.

이 공연은.. 머리로 이해한다기 보다는.. 일단 가슴으로 느끼고 나면 머리로 이해가 되는 공연이라고 생각해.

단순히 그린데이 공연쯤으로 보라기에는.. 생각할 것도, 볼 것도 많더라고.

와이어 액션은 소름 끼칠만큼 아름답고

노래도, 왜, 우리 나라 사람들하고 발성 자체가 다르니까

되게 청명하고 가볍게 들리는 소리 있잖아. 첨부터 끝까지 좋더라고.

특히 나는 소파맨-윌의 목소리가 그렇게 좋더라.ㅋㅋ

나만 좋았나 소심하게 주변을 살폈더니

같이 간 지인들 다들 좋았다고 한다.

이건 물론, 가격대비 만족도이긴 해.

정가대로라면 욕했을지도 모르지만

다들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더 만족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애비뉴Q가 인형으로 청춘들에게 위로를 주는 공연이라면

아메리칸 이디엇은 노래로 청춘들에게 토닥토닥해 주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참고로 나는 청춘이 아니고, 여기서 이러고 있기엔 나이가 넘 많지만

나도 청춘의 때가 있었으므로.. 그 절망과 슬픔을 이해하겠더라고.

다행히 어제의 객석은 그리 애잔하지 않았어.

내 앞에 뮤지컬 매니아가 아니라 로큰롤 매니아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이 두 줄 정도 꽉 채우고 앉아서

호응과 리액션이 되게 좋아서 덩달아 신난 공연이었어.

앞으로 남은 공연도 이렇게 신나게 진행된다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처음으로 공연 후기 올려본다.

내가 JCS때도 안 올려 본 후기를!!(그땐 올릴 필요가 없긴 했어. 워낙 많은 추종자가 있었으니.ㅋ)

내일 굿티가 아메리칸 이디엇이네.ㅋㅋ

시간이 날지 모르겠지만..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