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가끔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일몰과 일출 중 하나에 기대를 걸고 나선 덕유산 출사길

잔뜩 흐리고 추적추적 내리는 이슬비에 일찌감치 저녁 촬영은 포기하고

잠못 이룬 중봉의 밤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새벽 세시까지 하늘에 별이 총총하고 달이 휘영청 떠올라 우리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였습니다.

잠이 언뜻 들었나 싶었는데 옆에서 소근거리는 소리가 맥을 탁 풀리게 했습니다.

비가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다섯시에 짐을 꾸리고 비옷을 챙겨입고 향적봉을 올랐습니다.

옅은 구름에 안개는 잔뜩 끼고 이슬비는 하염없이 내렸습니다.

아름다운 운해라도 있었으면 이리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 단 한 번의 출사로 행운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거야, 낮에 잠깐이라도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은 욕심일 뿐이었습니다.

쥐가 날 듯 아파오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  내려오는 하산길은 지루하고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그래도, 비에 젖은 많은 꽃들이 위안을 준 하루였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폰카를 꺼내들고 처음  담은 것은 바위채송화입니다.

속단 꽃에 잠자리가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참바위취가 기이한 바위 틈에 뿌리를 박고 있었습니다.

동자꽃은 비를 맞아 더욱 싱싱합니다.

물봉선과 노랑물봉선화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긴산꼬리풀도 여기저기 많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솔나리를 기대하였지만 말나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습니다.

범꼬리 군락 담기는 이런 배경이 더 좋은지도 모르겟습니다.

흰제비란을 본 것도 수확이었습니다.

뱀무가 산 정상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일월비비추는 꽃이 피지 않은 봉오리가 더욱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물레나물은 역광으로 담아야 제맛인데, 아쉬운대로 아름다운 물레나물입니다.

도라지모싯대는 한물을 간 듯했습니다.

입을 다문 원추리가 많았습니다만, 안개 속에 아스름히 보이는 원추리 군락을 담아 보았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내려오는 하산길에 만난 천마는 행운이었습니다 .

어렵고 아쉬운 출사였지만 많은 종류의 꽃들을 만났습니다.

이제 서서히 하나하나 짐을 풀어 놓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