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다가 모종을 파는 가게가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쪽파 구근이 있었다.
한 되에 6천원이라고 하셨다.
나는 '5개 정도만 사도 되느냐'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하셨다.
한 자루를 21만원에 사오셨다고.
씨앗들 좀 보러왔다고, 씨앗들 모아놓은 곳 있냐고 해서 안내를 받았는데
청경채는 없었고.... 많이 먹기엔 무리가 있는 채소들이 많았다. (적근대 라든가.. 영채?라는 채소는 처음 들어 봄..)
그나마 상추....가 제일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샀다.
5천원이라길래 '에에~ 좀 깎아주세요' 했더니
'어 잠시만요, 이거 6천원짜리네! 제가 오천원이라고 잘못 말했으니 오천원만 주쇼!'
하셨다. 가격 방어 기술 쩐다... 이렇게 또 하나 배우고...
가게를 나가기 전에 '서비스로 쪽파 구근 한 알만 주세요.' 했더니
"안 돼, 그건 용서할 수가 없어"라고 하시며 거절하셨다.
나는 시무룩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오면서
'용서가 아니라 용납 아닌가?' 속으로 생각한다.
옥상은 아무도 안 사는 공간이라 내가 활용해도 된다.
빨래를 널어도 되고 고추를 말려도 되고 화분들을 놓아도 되고... 하는데
덥고 번거로워서 그 어떤 활용도 하지 않았던 공간이다.
근데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니 '햇빛' '무료 식물등' '짱짱한 PPFD'라는 개념이 내 머릿속을 밝히며
옥상을 활용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기 시작하였고,
나는 화분 세 개를 가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때부터 등판과 앞판 둘 다에서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일단 흙에 물을 흠뻑 뿌린다.
앞서 말했듯이, 옥상은 사람이 사는 용도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런지 수도도 없음..
내 집 화장실에서 호스를 연결해서 옥상까지 끌고 왔는데
저렇게 물 주고 나서 내려와 봤더니 호스가 터졌는지 바닥에 물이 흥건하길래 앞으로는 물통을 들고 올락낼락(오르락내리락을 줄여봄. MZ 같았어?)해야겠다.
상추 씨앗들을 심는다.
상추 씨앗 무슨 벼 껍질처럼 생기고 엄청 가벼워서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이 생겼다.
이때부터 얼굴에도 마구 땀이 나서
발라놨던 썬크림과 땀이 섞여서 내 눈으로 막 들어오고,
나는 농부에 적합한 육체를 가지진 못한 걸까, 생각하며
농부로서 '용서'되지 못하는 나의 육체를,
쏟아져 내리듯 흐르는 땀을 통해 절실하게 느낀다.
군데 군데에 상추 씨앗들을 4~5개씩(뒤로 갈수록 더 뭉탱이로 7~8개씩) 푹푹 찍어넣어주고 도망치듯 내려와 샤워를 했고,
난 기다렸다.
3일이 지난 오늘,
1.4L짜리 물뿌리개와 2.3L짜리 플라스틱 우유병에
물을 가득 담아 옥상으로 올라간다.
오늘, 9월 1일 일요일 오전 7시의 아침은 선선하다!
정말 이제 가을이다! 낮엔 아직도 덥지만!
독서의 계절이다!
물을 마구 뿌렸더니 흙이 마구 패이면서
복토되어 있던 상추 씨앗들이 드러난다.
근데.. 오?
3일만에.... 발아!!!!!!!!!!!!!!
여기도 발아!!! 초점이 안 맞았네.
패인 부분의 애들만 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대부분의 애들이 발아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300립을 거진 다 심었는데.... 저 화분 세 개로는 택도 없을 텐데, 큰일이다. 어쩌면 좋지.
(↑ 왼쪽 아래가 깨졌는데 스크린샷 찍었는데 왜 안 보이지? 깨진 부분이????)
자고 일어나서 약간 아직 내가 나비인지 나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멍한 상태에서
물 주겠다고 올라간 거라 핸드폰을 바닥에 떨궈서 액정이 깨졌다.
그렇게 우당탕탕 물을 주고... 내려와서 잠깐 이렇게 글을 적어놓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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