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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의 창기병들
[시리즈] 울란 시리즈 · 좌충우돌 폴란드 기병들을 만난 나폴레옹 · 나폴레옹이 좋아했던 창기병들 1812년, 마침내 폴란드인들이 기다리던 그 순간이 찾아왔다. 나폴레옹이 길고 긴 고심 끝에 러시아를 침공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전쟁을 위해 프랑스는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폴란드등 제국의 동맹국들에게 엄청난 병력과 물자를 요구했다, 황제는 폴란드인들에게 자신을 돕는 대가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재건을 약속했다. 당연히 모든 폴란드인들이 물심양면으로 나폴레옹을 지원했다. 근위대였던 제1 창기병 연대도 5번째 대대가 신설되면서 총원 1,000명을 넘기며 벌크업했다. 폴란드 기병들은 마침내 고향을 해방 시킬수 있다는 고양감에 도취됐다. 새로 편성된 5대대는 다부 원수의 경호를 맡았고 나머지 4개 대대는 나폴레옹 휘하에 배치됐다. 1812년 6월 24일, 폴란드 기병들은 대육군의 선봉에 서서 니에멘 강(Niemen River)을 건넜다. 니에멘 강 동안에 펼쳐진 광활한 벌판은 나폴레옹과 원수들이 여태까지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전장이었다. 그 동안 프랑스군은 온화하고 비옥한(다른말로 하자면 '약탈할 것이 많은') 서,남,중부유럽에서만 작전을 펼쳐왔다. 하지만 러시아 땅에 들어서자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씩 나타나는 마을과 도시들은 매우 빈곤해서 수십만 대육군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없었다. 러시아군의 청야전술로 인해 프랑스군과 대육군이 챙길 보급품은 하나도 건질 것이 없었다.현지약탈로 보급을 충당하는 것에 도가 텄던 프랑스군들은 약탈할 만한 것들이 전혀 없으니 어쩌질 못했다. 프랑스군이 저런 상황이니 그 밑의 라인연방 소속 독일인들, 이탈리아인들, 기타 유럽 각지에서 차출된 군대들의 상황은 불보듯 뻔했다. 수많은 대육군 소속 병사들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어죽거나 풍토병에 걸려 죽었다. 빵 한조각, 밀 한줌을 차지하기 위해 주먹다짐이 여기저기서 벌어졌고 대부분은 귀중한 식량을 그 자리에서 혼자 먹어치웠다.러시아군은 기마민족인 카자크(Казаки)를 이용해 대육군을 괴롭혔다. 스텝초원에서 말달리던 카자크들은 정규전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추적, 기습, 게릴라전 같은 비정규전에는 타고난 재능을 발휘했다. 이들은 대육군 대열을 수시로 염탐하며 식량을 구하러 멀리 떨어져 나온 병사들을 습격하고 머스킷 탄환 사거리 밖에서 밤낮으로 야만인들처럼 소리를 질러대며 신경을 긁어놨다. 프랑스군과 동맹군들이 뒤늦게 대응하려고 하면 그 사이에 도망쳤다. 만약 어설프게 추격해온 기병들이 있다면 숲속 어딘가로 유인되어 포위 당해 전멸하는 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이런 극한상황에서 폴란드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러시아 초원과 똑같은 환경의 고향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이번 원정은 조금 힘들 뿐이었다. 이들은 스텝지역의 거친환경에 익숙했고 러시아 농노들이 어디에 식량을 숨겨두는지 알고 있었다. 폴란드 병사들은 다른나라 병사들에게 '먹을 것을 구하면 혼자 먹지 말고 반드시 야영지로 가지고 와서 동료들과 나눠먹어야 한다'고 일러줬다. 전우애 같은 인륜적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생존할 확률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폴란드인들은 대육군의 다른나라 군대에 비해 4배 이상 높은 생존율을 보였다.카자크를 많이 상대해본 역사를 가진 폴란드 기병들은 다른 나라 기병들에게 '적이 나타나면 절대 추격하지 말고 거리를 두고 견제만 해라'고 충고했다. 이미 그들 조상대부터 수백년 동안 카자크와 붙어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피드백이었다. 이 때문에 카자크들도 긴 창을 든 폴란드 기병들이 보이면 되도록 도발을 걸지 않았다. 슬라브어권인 폴란드와 러시아의 언어적 공통점 덕분에 폴란드 기병들은 어설픈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러시아 농노들을 속일 수 있었다. 그들은 어차피 귀족 나으리들은 프랑스어를 쓰니까 러시아어가 어눌한걸 거라고 여긴 채 굽신거리며 길을 가르쳐줬다. 다음은 제1 창기병연대가 러시아에서 겪은 여러가지 일화들이다.* 리투아니아 빌리야 강(Vilija River)을 도하하던 중 강 반대편에서 카자크 한무리가 나타남. 이들을 처음 본 황제는 창기병들에게 적을 격퇴하라고 지시함. 폴란드 장교들은 카자크가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는걸 알고 있었으나 황제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실행함. 기병 1명이 급하게 강을 건너던 도중 익사하였으나 카자크들을 격퇴하는데 성공함.* 오스트로브노(Ostrovno) 전투 이후 한 무리의 카자크들이 철수하는 러시아군 주력을 엄호하기 위해 대육군 선발대 근처에서 시간을 끌려고 함. 폴란드 창기병들이 투입되어 격퇴한 뒤 3~4명을 포로로 잡음. * 호로드니아(Horodnia)에서 얀 코지에툴스키(Jan Kozietulski) 중령이 이끄는 창기병 4개 중대가 황제의 명령을 받고 반대편 고지에 주둔한 카자크들을 견제하기 위해 진격함. 카자크들은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더니 폴란드인들을 레치(Lachy)라고 부르며 권총을 100여발 쏘는등 도발을 감행함. 하지만 전부 사거리 밖이라서 한발도 닿지 않음. 이윽고 장교로 보이는 카자크 1명은 100보 이내로 다가와서 결투를 신청함. 코지에툴스키가 절대 반응하지 말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자, 카자크는 아예 말에서 내리더니 모자를 벗고 이상한 춤(코사크 댄스)를 추기까지 함. 하지만 폴란드 기병들이 넘어오지 않자 마침내 지쳤는지 도발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고 자신들 진영으로 사라짐. * 위와 같은 호로드니아에서 다른 카자크 무리가 지형정찰을 나온 나폴레옹 일행에게 접근함. 이에 경호를 담당하던 코지에툴스키의 1중대가 먼저 기동을 차단하고 접전을 벌임. 붉은 창기병대와 기마 척탄병연대(Regiment de Grenadiers-à-Cheval)가 증원왔으나 카자크들은 숫적 우위를 믿고 오히려 근위대를 삼면에서 포위하려고 시도함. 제국 근위대는 정말 필사적으로 싸운 끝에 카자크를 격퇴하는데 성공함. 코지에툴스키는 이 전투에서 기병창에 어깨가 꿰뚫리는 중상을 입었으나 황제를 보호했다는 전공 덕분에 대령으로 승진함.* 스몰렌스크(Smolensk)에서 카자크 무리가 성벽에 바짝 붙은 채로 초계를 돌아 포병사격을 견제함. 이에 황제는 1 중대장이었던 흐와포프스키(Dezydery Chłapowski)에게 포병대의 안전을 위해 카자크들을 몰아내라고 명령함. 폴란드 기병들이 성벽에서 날아올 사격에 대비하여 돌격진형 대신 일자대형으로 출격함. 곧바로 카자크들이 성벽의 러시아군들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공격해옴. 작열탄 때문에 진영에 구멍이 뚫리자 카자크들이 파고들어 왔으나, 폴란드 기병들은 전부 마상접전을 벌여 역으로 격퇴하는데 성공함. 흐와포프스키의 '카자크들은 용맹했으나 검술, 창술실력이 어설펐고 폴란드 기병 1명이 카자크 2~3명을 동시에 상대해도 압도할 수있었다'고 기록함. 카자크들이 쓰는 창은 울란용 창보다 길었으나 마상창술에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함.* 보로디노(Borodino)에서 1연대는 근위대 투입을 거부한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인해 하루종일 후방에서만 주둔했으나, 전투 막바지에는 작센 자스트로프 흉갑기병대(Zastrow Kuirassiers)를 지원하여 라에프스키 보루를 점령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함.* 1연대에는 가린스키(Garlinski)라는 이름의 급양병이 있었다. 그는 말을 타진 못했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 줄은 알았다. 폴란드 기병들은 매일 저녁마다 그들이 구해온 식량을 전부 가린스키에게 맡겼고 그는 매일 아침마다 기병대 전원에게 고기와 수프를 만들어줬다. 폴란드인들은 가린스키를 황제 다음으로 최우선 경호대상으로 여겼다.반면 제2 창기병연대였던 네덜란드 붉은 창기병대(Red Lancer)는 베르사유에서 꿀이나 빨던 부대라서 모든 면에서 미흡했다. 일단 언어가 통하지 않아 중대마다 폴란드 기병이 1명씩 배속되어 통역을 담당해줘야 했고 기마술이라던지 야전 생존술도 많이 떨어졌다. 네덜란드 창기병들은 용맹했지만 창기병으로서는 충분히 민첩하지 못했다. 이들이 타는 말은 흉갑기병에게나 어울리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선회력이 떨어지는 군마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창술은 보완하는게 불가능했다. 러시아 침공 직전 네덜란드인들은 제1연대에게 요청하여 폴란드 기병들에게 6주간 창술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그 뒤로 1년이 지나고도 창을 제대로 쓸줄 아는 네덜란드 기병들은 거의 없었다.네덜란드 인들은 카자크에게 대처하는 방법도 몰랐다. 이들은 카자크가 보이기만 하면 무작정 돌격을 시도했다. 바비노비츠(Babinovitz)에서는 정찰을 나갔던 붉은 창기병들이 무려 50명이나 넘게 카자크의 포로가 됐다. 이 날 이후로 카자크들은 빨간 옷을 입은 창기병들이 어설프다는걸 간파하여 집요하게 네덜란드 창기병들이 담당하는 구역을 노렸다. 그들은 붉은 창기병들을 보면 '빨간놈들이다, 잡아라!'라고 외쳤다.카자크들은 소모를 강요하였고 네덜란드 기병들은 한번 출격할 때마다 사상자가 생긴 채 돌아왔다. 그들의 말은 너무 느려서 카자크를 추격할 수도 없었다. 이에 지휘관인 콜베르(Edouard Colbert)대령은 붉은 창기병대를 1연대와 붙어서 다니도록 조치했다. 1연대의 폴란드 기병들을 차출하여 네덜란드인들 속에 배치하는 방법도 사용했다.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네덜란드 기병들은 폴란드 인들로부터 여러가지 노하우를 배웠고 카자크에 맞서서 더 잘 싸우게 됐다. 심지어 두 연대의 기병들이 옷을 바꿔입고 카자크를 낚기도 했다. 하지만 모스크바를 떠나 철수길에 오르면서 폴란드 기병들에게도 점차 시련이 찾아왔다.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와 끝도 없이 습격해오는 카자크, 러시아군들 때문에 폴란드 기병들은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들은 혹한기 대비를 제대로 했다는 것이었다. 폴란드 기병들은 모스크바에서 다른 나라 군인들이 금은과 보석, 진귀한 물건, 가구, 고서적을 약탈할 때 오히려 모피코트와 털모자를 최대한 챙기는데 집중했다. 이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수많은 대육군 병력이 얼어죽기 시작했다. 하지만 폴란드 기병들은 상대적으로 동사자가 적게 나왔다.러시아에서 후퇴하는 동안 나폴레옹은 1연대의 1개중대를 자신의 호위로 배치했다. 그들은 황제 뿐만 아니라 황제의 개인 비자금 궤짝들도 호위했다. 빌뉴스를 코앞에 두고 강추위가 찾아왔다. 나폴레옹은 자신 옆에 있던 폴란드 기병에게'난 자네들을 믿는다. 최후가 다가왔다는게 확실해지면, 나를 찔러라. 난 포로가 되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그 폴란드 기병은 '그 누구도 폐하를 위험에 빠뜨리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다가오는 놈들은 우리가 모두 산산조각 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마침내 베레지나 강에 도착하자 그들은 곧바로 강을 건너지 않고 이틀동안 최후미에서 카자크와 싸우며 다른 대육군 병력이 도하하는 것을 엄호했다. 여기서부터 폴란드 기병들도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다. 최소 100명이 싸우다 죽거나, 낙오하여 얼어죽거나 포로가 됐다. 폴란드 기병들의 고난은 1813년이 되어서야 끝났다.제1 창기병 연대는 1,147명의 기병들과 1,109마리의 말들이 네만강을 건넜으나, 다음해 겨울 폴란드로 돌아온 병력은 단 556명 뿐이었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한국 산업의 몰락, 현재 어느정도인가?
1.금융,투자,자산운용 한국의 은행은 없다. 국내 5대은행을 모두 합쳐봐야 글로벌 메이저은행 하나만도 못한 수준의 규모다. 2.제약,바이오,생명공학 당연하지만 국내 제약회사는 하나도 없다. 글로벌 빅파마 기업은 주로 유럽에 있으며 단일국가로는 미국이 가장 많다. 전세계 15대 제약바이오 회사중 7곳이 유럽기업이고 8곳이 미국기업이다. 3.방산,항공우주 당연하지만 후발주자인 한국의 방산회사는 없다. 국내에서 가장 큰 방산회사 한화는 글로벌 매출액 40위안에도 들지 못한다. 1위부터 15위까지 모두 미국과 유럽으로만 이루어져있다. 4.오일,에너지 자원이 하나도 나지않는 나라답게 빅오일기업은 당연히 없다. 1위는 산유국 사우디 아람코이며, 2위는 중국 시노펙, 그밑으로는 모두 미국과 유럽 기업이다. 5.식품 한국의 식품회사는 내수에만 머물러있기때문에 당연히 글로벌 빅푸드 기업에 비해 매우 협소할수밖에 없다. 삼양,농심,오뚜기 등 국내 식품회사를 다 합쳐봤자 10조원 정도인데 네슬레는 무려 400조원이 넘는수준이다. 참고로 네슬레는 유럽에서도 큰 기업이며 전세계 식품회사중 1위다. 6.재생에너지,그린테크 재생에너지 등 녹색기술에 아직 시야가 어두운 한국답게 글로벌 재생에너지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역시 유럽과 미국이 많은것을 볼수있다. 7.자동차 현대자동차의 시가총액은 테슬라의 10분의1도 되지않으며 도요타나 유럽 자동차회사들에도 크게 밀린다. 물론 매출액 기준으로는 현대자동차가 스텔란티스보다 높은 세계 8위를 기록하고있다. (현대 기아 합치면 3위다) 8.전기차 다만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차에서는 확실히 밀리고있는 추세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전기차 점유율은 르노보다 약간 높을뿐이며 전세계 전기차시장은 중국의 비야디와 미국의 테슬라가 양분하고있다. 9.반도체 한국이 잘하는 분야는 대표적으로 반도체일것이다. 그러나 시총 압도적 세계 1위였던 삼성전자는 현재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TSMC와 ASML에 크게 밀렸으며, 기술적으로도 크게 밀리고있다. 삼성 반도체는 메모리와 램 한정으로 잘나가는것일뿐 파운드리나 장비, 전장, AI 등에서는 잼병이다. 이렇다보니 삼성전자의 벨류가치가 낮아져 주가가 오르지않아 점점 밀리고있는것이다. 현재 엔비디아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하고있고, 그 엔비디아는 TSMC의 파운드리를 필요로 하고있으며 그 TSMC가 파운드리를 생산하려면 ASML의 장비가 필요하다. 그러니 엔비디아-TSMC-ASML이 현재 반도체 관련 섹터를 주도하고 있는것이다. 10. 인공지능(AI) 국내 인공지능산업은 정말 처절한 수준이다. 일단 언어적 한계가 가장크고 미국 빅테크가 모든 데이터베이스와 GPU 칩을 쓸어담고있으니.. 11.패션,뷰티 K뷰티라고 선전하기 바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글로벌 패션브랜드나 뷰티브랜드가 없다. 스타일난다는 로레알에 인수되었으며, 젠틀몬스터는 에실로룩소티카에 인수되었다. 국내 패션뷰티 브랜드를 모두 합쳐도 LVMH의 100분의 1도 되지않는 규모이다. 그래도 미국과 영국 등 외국인자본이 한국을 투자처로 삼아주고있으니 다행이지, 이마저도 만약 금투세가 시행된다면 불투명 해질것이다. 삼성은 주가가 5년간 11% 성장했다. 개인적으로 믿기지 않는 수치이다. 단 하루만에 11% 성장하는 빅테크도 있는데말이다! 1년간 삼성전자의 주가는 성장은 커녕 3분의1토막을 향해 달려가고있다.세계 100대 기업 세계 100대 기업중 한국기업은 삼성전자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삼성전자가 지금 몰락하고있는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서구 기업들의 무분별한 독주로 세계 200대 기업에도 한국기업은 삼성전자 하나뿐이다. 국내 시총 2위기업인 SK하이닉스가 세계에서 213위다. 현재 국내산업수준을 보면 기술도 없고 자원도 없고 인구도 없고 돈도 없지만 규제는 막강한 상황. 국내주식은 외면받고 인재탈출, 특히 이공계쪽에서의 두뇌유출이 심각한 상황에서 최근 삼성전자의 수장에게 징역형이 내려졌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도시타임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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