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일주일 전에 게시한 1,2편이 있는 글입니다.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이걸 읽기 전에 1,2편을 읽고 와주시면 더 좋습니다.
1편: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wwe&no=467222
2편: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wwe&no=467377
4. 오카다 카즈치카 對 나카무라 신스케 (8/10, 신일본 G1 CLIMAX FINAL) - 18.5 (평점 4.63)
역사적 입지: 4.5/5
경기 내적 서사 : 4.75/5
기술 구사력 : 4.75/5
관중 반응 : 4.5/5
올해 전세계 프로레슬링 팬들의 여름을 유례없이 뜨겁게 달군, ‘공전절후의 여름’ 신일본 G1 CLIMAX 리그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A조 1위 나카무라와 B조 1위 오카다의 결승전 경기입니다. 이 경기는 제가 군대에서 신일본에 입문한 후 처음으로 다음팟으로 ‘실시간 시청한 G1 CLIMAX 결승전 경기’인 동시에 처음으로 ‘실시간 시청한 신일본 흥행’이기도 했는데요. 사실 제 기억으로 당시 다음팟 방송 챗방은 약간 중반까지만 해도 회의적인 분위기였습니다. 하필 당일날 태풍이 일본 관동 지방을 강타하는 바람에 돔구장 외곽 지역의 관중들이 우산을 맞으면서 비바람과 싸우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었고 이마저도 태풍 때문에 적어보여서 ‘생각보다 관중이 안 온거 아니냐’는 말들도 있었고, 초중반까지의 경기들이 예상과 달리 허무하게 끝나면서 ‘흥행이 설마 실패하는 건가...’하는 말들까지 나왔었습니다.(다만 이는 제 기억에 의존한 기술이고, 실제 챗방 분위기는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바타와 고토의 경기부터 점점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이어 타나하시 대 스타일스의 경기가 타나하시의 승리란 괜찮은 마무리로 끝나나 싶더니 제럿의 기타샷으로 반전을 선사하면서 신일본과 GFW 간 대결구도라는, 향후 펼쳐질 각본의 기대를 끌어올리며 흥행의 분위기는 한껏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열린 메인이벤트는... 2014년도 G1 CLIMAX를 ‘21세기 프로레슬링의 고전’으로 못박는 엄청난 경기였습니다.
이 경기가 ‘저의 첫 실시간 신일본 흥행 메인이벤트’가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같은 CHAOS 멤버로서 평소엔 볼 수 없는 두 사람의 대결은 나카무라-타나하시나 오카다-타나하시란 보장된 카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 신선하면서 기대를 불러일으켰고, ‘CHAOS의 리더 대 신일본의 미래’란 두 사람의 위상은 그 기대를 더 북돋았습니다. 마침 경기 시작 후 비가 그치고 노을이 드리운 세이부 돔의 경관은, 두 레슬러의 대면으로 인해 조용해진 돔의 긴장감과 맞물려 이 경기를 ‘흔히 볼 수 없는, 대전액션게임의 끝판과 같은’ 분위기로 만들었습니다. 경기 스토리텔링도 끝판에 걸맞게 엄청났습니다. 나카무라는 평소보다 세게 타격을 가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이나 반격할 때엔 관절기도 동원해가며 오카다를 괴롭혔고, 오카다 역시 그런 나카무라의 공격에 똑같이 맞받아치고 특유의 목을 노리는 기술들을 연이어 펼치며 두 사람 모두 ‘모든 걸 쥐어짜가면서 승부를 보려는 투지’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주었습니다. 경기의 몰입감은 후반부에서 절정에 다다르는데, 특히 오카다는 평소 악역으로서의 쿨하고 건방진 모습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경기에 이기려는, 집념을 불태우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그가 여타 치렀던 경기와 그 격을 다르게 하였습니다. 관중들도 경기 처음부터 끝까지 두 선수의 이런 모습 하나하나에 반응해주며 결승전에 걸맞는 열기를 만들었으며, 막바지에 이르러 펼쳐진 공방전과 연이은 피니쉬는 ‘다 그린 용 그림에 눈동자를 찍는’ 완전한 마무리였습니다. 여러모로 작년 신일본에서 치러진 최대 스케일이라 할 수 있는, 신일본에 관심이 있다면 안 보기가 더 힘들 경기입니다.
일본에서 연말에 치러지는 레슬링 시상식이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도쿄스포츠 선정 프로레슬링 대상, 프로레슬링 그랑프리, 닛칸 배틀 대상 프로레슬링 부문), 이 시상식 세 곳이 모두 14년도 최고의 경기로 선정한 경기이기도 합니다.
3. 팀 시나 VS 팀 어소리티 (11/23, WWE SURVIVOR SERIES) - 19 (평점 4.75)
역사적 입지: 5/5
경기 내적 서사 : 4.5/5
기술 구사력 : 4.5/5
관중 반응 : 5/5
경고: 이 글은 다소 오글거릴 수 있습니다.
필자가 경기를 다 본 후 흥분을 이기지 못해서 새벽을 지새워 쓴 리뷰: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wwe&no=447922&page=1&exception_mode=recommend&search_pos=-440263&s_type=search_all&s_keyword=야호
이제는 프갤의 또다른 국경일이 된, 작년 서바이버 시리즈의 메인이벤트인 5:5 제거 경기입니다. 이 경기를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WWE 경기를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초5 때 레슬링을 처음 봤던 꼬꼬마의 마음으로 돌아가 간절히 응원하게 한 경기이고, 그러다 스팅이 나오자 전율하다 못해 잘 자던 기숙사 룸메 동생들을 깨우는 웃지 못할 상황에 처한 경기이며, 저보다도 먼저 실시간으로 본 프갤을 비롯한 전세계 프로레슬링 커뮤니티를 실시간으로 전율케 한 경기이자, 제 기억이 맞다면 멜쳐의 4.5란 괴멸적인(?) 평점 부여 때문에 난데없이 타나하시 히로시가 프갤의 친구로 등극하게 된 바로 그 경기입니다. 굳이 제가 이 경기를 앞서 14~4위를 ‘소개’했던 것처럼 하지 않아도, 이 경기는 저와 프갤 여러분들의 마음 속 최고의 경기이고 우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 경기를 새벽 2시에 다 감상하고 룸메들 다시 재우고도 흥분이 멎질 않아서 링크의 글을 5시까지 쓰다가 결국 다음날 전공수업에 장렬하게 지각해버렸지요... ㅠㅠ
지금은 프갤을 떠난 혹자는 이 경기를 ‘WWE를 사랑하는 프로레슬링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할 경기’라고 정의한 바가 있는데, 저 역시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이 경기는 현 스포츠 업계에서 WWE가 아닌 다른 단체가 할 수 없는, WWE가 세계 최대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단체였기에 만들 수 있었던 ‘4주 편성 드라마’였습니다. 이 경기를 위해서 WWE 각본진은 평소대로의(?) 이해 안 가는 용두사미식 각본 진행을 멈추고 다소 뻔했을지언정 탄탄한 각본을 헬 인 어 셀 이후 충실히 진행했습니다. ‘절대권력 VS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는 집단’이란 구도는 ‘통합 챔피언이 PPV에서 방어전을 3달 이상 가지지 않는’ 이상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만큼 거대한 각본이었고, 삼치가 돌프나 다른 선수들에게 린치를 가하면서 팀 어소리티로 회유하는 스토리는 삼치 본인의 업계 내 위치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PPV 6일 전까지 팀 시나 멤버를 예측하기 어렵게 하여 각본에 디테일을 불어넣는 요소였습니다. 이런 스토리에다 ‘팀 시나가 지면 팀원 전원 해고, 이기면 어소리티 해고’란 조항도 캐삭빵 이 경기를 단순한 연례행사가 아니라 ‘향후 WWE의 운영방향을 결정짓는 경기’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근데 이 경기까지 해놓고 지금 각본은 왜 그따구...? ㅠㅠ
그렇게 간만에 괜찮은 각본과 단체 최고 챔피언의 공백이란 상황을 메꾸기 충분한 상징성을 갖고 열린 서시 메인이벤트는... 폐지니 뭐니 하던 서바이버 시리즈의 PPV 격 자체를 다시 높이고 5:5 제거 경기의 역사를 새로 다시 쓴 경기이자, WWE만의 프로레슬링이 줄 수 있는 전율 그 자체였습니다. 시작부터 마크 헨리가 06 서시 마이크 녹스마냥 광탈하여 경기가 달아오른 것도 있었지만, 중후반부에 가려져서 그렇지 경기 초반부도 오를대로 오른 경기장의 기대감과 긴장감을 적절히 유지하며 무난하게 흘러갔습니다. 그러다 세스 플란챠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경기가 고조되었고, 루세프 카운트아웃부터 관중 반응이 이미 일반 PPV 이상으로 뜨거워지고 전개도 빨라져 눈을 떼기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어난 빅쇼의 배신은 경기의 천칭을 급속히 한쪽으로 기울게 하는 터닝 포인트인 동시에 ‘예정된 파이널 2이자 경기의 영웅이어야 했을’ 시나의 중반부 탈락이란, 뻔한 시네이션의 전개를 예상했던 시청자들 전원의 뒤통수를 때리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이후 펼쳐진 '한창 나락에다 트인낭, 수뇌부에서 곱게 안 보고 2주 전까지 삼치한테 린치당한데다 챔피언까지 뺏긴' 돌프가 문자 그대로 다 죽어가면서도 위클리쇼였으면 허무하게 핀을 내줄 타이밍에 어깨를 들면서 거짓말처럼 케인과 하퍼를 제거하는 원맨쇼는, 가히 03년도 서시 팀 비숍 대 팀 오스틴 경기의 리얼리티 시대적 변주이자,,. 11년 전 피 흘리며 크리스챤과 크리스 제리코와 싸우던 숀 마이클스를 ‘제발 이겨줘요’라면서 손에 땀 쥐고 응원하던 어린아이를 시간을 넘어 다시 불러오는 기적같은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돌프의 무쌍을 삼치가 페디그리로 잠재우고 심판이 나오면서 ‘바티스타에게 파워밤을 먹고(권력측의 비겁한 술수) 핀을 내준 숀 마이클스(비극적으로 몰락하는 영웅)’가 다시 재현될 줄만 알았던 그 때, 경기장이 암전되면서 St.Louis 관중과 제 눈앞에 펼쳐진 ‘북미 프로레슬링 최고(最古,最高)의 떡밥’, 스팅의 등장은...그리스 문학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기계 장치의 신)의 현신이었고, 이 드라마를 끝까지 봐 온 우리 모두에게 보답처럼 내린 카타르시스였습니다. 결과는 뭐 말하지 않더라도 여러분들 모두가 다 알고 계실거라 생각하며, 현실을 인정 못하고 울부짖는 스테파니의 연기는 드라마의 결말을 ‘악인의 몰락’으로 마감하는 완벽한 라스트 신이었습니다. 역대 최고의 5:5 제거 경기 반열에 충분히 들고도 남는 경기이자, ‘왜 우리는 욕하면서도 WWE를 계속 보는가?’란 질문의 별 다섯 개짜리 답이 될 수 있는, WWE의 각본만이 만들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근데 이렇게 해놓고 2달도 채 안 지난 지금 각본은 왜 이따구...? ㅠㅠ
아, 덧붙여서 2014년도 프갤 어워드 올해의 경기입니다.
2. A.J 스타일스 對 스즈키 미노루 (8/1, 신일본 G1 CLIMAX 7일차 흥행) - 19 (평점 4.75)
역사적 입지: 4/5
경기 내적 서사 : 5/5
기술 구사력 : 5/5
관중 반응 : 5/5
경고: 이 글도 다소 오글거릴 수 있습니다.
작년 여름 신일본 G1 CLIMAX에서 열린 경기 중 단연 최고의 경기고, 외신에서 멜쳐가 5성을 부여했다고 오보를 날린 바람에 이틀간 레닷에서 14년도 최초의 5성으로 잘못 추앙(?)받는 해프닝을 낳았으며, 프갤을 비롯한 레슬링 커뮤니티에서 ‘신일본 볼려고 하는데 뭐가 재밌나요?’하는 질문글에 빠지지 않고 답변으로 올라오는 경기입니다.
간단히, 그리고 감히, 저는 이 경기를 2010년대의 타이거 마스크/다이너마이트 키드-릭 플레어/리키 스팀보트-크리스 벤와/그레이트 사스케의 연장에 있는 경기, 그러니까 ‘동서양 프로레슬링의 만남’ 계보를 잇는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멜쳐가 언급했듯 이 경기는 ‘미국인에다 세계 최고의 하이플라잉 워커’인 스타일스와 ‘일본인에다 격투기 스타일을 추구하는’ 스즈키가 만난, 스타일스가 신일본에 이적할 때만 해도 누구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카드였고, 실제 경기도 어떤 대립도 없이 그냥 우연히 같은 B조에 소속되어 그날 처음 치러진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이 뜬금없이 부킹된, 어찌보면 그냥 G1의 수많은 예선전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경기는, 경기력이란 ‘유일한 공통분모’를 지닌 두 천재에 의해 ‘현 신일본의 수준을 증명’하는 기막힌 경기로 돌변했습니다. 저는 이 경기의 한 65% 정도는 스즈키가 다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라쿠엔 홀의 관중들은 스즈키의 ‘바람이 되어라’가 울려퍼질 때부터 미노루를 연호했고, 페투페(대면)부터 풍기는 묘한 경기장의 분위기에 부응하듯 스즈키는 처음부터 거친 브롤을 퍼붓고 장외에서 평소보다 더한 반칙도 서슴치 않으며 관중들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스즈키 특유의 관절기와 약간 쓸데없이 디테일해서 더 재밌었던손가락 집중 공격은 서브미션인데도 스즈키 특유의 악랄한 시전 연기로 엄청난 몰입을 불렀고, 이후 공방전 중 심판의 기절과 함께 벌어진 스즈키군 / 불릿 클럽 동시 난입은 경기에 (비록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스즈키군 대 불릿 클럽의 전초전’이란 의미를 부여해주었으며, 난입 후 뜨겁게 달궈진 고라쿠엔이 식을 틈 없이 스타일스와 스즈키가 주고받는 놀라운 장면들은...레슬링을 11년 동안 보면서 로럼 03의 벤와 대 앵글 다음으로 전율 돋았던 ‘관절기 중심 경기운영’이었습니다. 스즈키는 신일본의 숨겨진 관절기 마스터로서 서브미션 중심 경기 운영의 극한을 선보이고, 스타일스 역시 평소에 잘 보여주던 경기가 아님에도 완벽히 동화되어 ‘갓에제’ 클래스를 보여준, 2014년도의 진정한 5성 경기입니다. 그러니까 스즈키는 올해 야노 좀 그만 만났으면...
1. 아드리안 네빌 (C) VS 새미 제인 (12/11, WWE NXT Take Over 3 : [R] Evolution) - 19.25 (평점 4.81)
역사적 입지: 4.5/5
경기 내적 서사 : 5/5
기술 구사력 : 5/5
관중 반응 : 4.75/5
2014년도 제가 뽑은 1위 경기이고, 그 퀄리티에 WWE 기존 선수들마저 주눅들게 만든 경기이자, NXT가 삼치의 역작이요 WWE의 새로운 미래임을 증명한 NXT Take Over 3 : [R] Evolution의 메인이벤트입니다. 이 경기는 기말고사 때문에 버스를 프갤 여러분에게 받아놓고도 시험 끝날 때까지 참아가면서 묵혀두었던 경기였고, 시험 때문에 TLCs를 먼저 보고 난 후에 레슬링 커뮤니티에서 이 경기와 딘 대 브레이의 퀄을 놓고 비교하는 글을 본지라(물론 NXT>>WWE란 내용의 글수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딘은 대체 왜 브레이한테 연패를 해서...) 오히려 너무 궁금해서 남은 시험에 지장까지 약간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정좌하고 본 경기는... 레매 28 이후 2년만에 WWE에서 나온 4.75점짜리 경기이자, 기존에 14년도 최고의 경기를 구상할 때 스타일스 대 스즈키를 1위로 글을 적으려던 생각을 바꿔놓은 명경기였습니다.
스타일스 대 스즈키의 경기가 완전 정반대의 일면식도 없던 선수끼리 만나 나온 예상치 못한 케미의 명경기였다면, 반대로 제인 대 네빌은 수없이 만난 둘이 양질의 대립과 감정선을 갖고 다시 만나 이상적인 마무리를 지은, 시간을 두고 꾸준히 쌓아올린 CLASSIC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전 작년에 NXT를 그렇게 열심히 챙겨보지 않아서 이 둘의 대립을 리뷰로만 접했고 경기도 9월 PPV와 NXT 쇼의 제인 대 네빌 경기를 사전에 챙겨 본 게 다였습니다. 하지만 경기 전 프로모에서 보여 준 네빌과 제인의 대립은 사전에 잘 몰랐던 제가 보기에도 엄청났습니다. 칼럼셔틀 님이 번역했던 칼럼에서도 나와 있듯, ‘WWE 챔피언을 딴 후 5개월 동안 잠적한’ 누구와는 달리 네빌은 보를 꺾은 후 1달에 1번꼴로 방어전을 치러오면서도 항상 대단한 모습을 선보이면서 승리해 온 ‘진정한 NXT의 챔피언’이었고, 제인 역시 세자로를 비롯한 많은 로스터들과 질지언정 좋은 명승부를 만드는 선수였습니다. 그러던 중 9월 Take Over 2 PPV에서 네빌이 명경기 끝에 심판을 방해하며 승리를 가져가고, 둘만의 재경기에서 다시 치열한 경기 끝에 네빌이 꼼수로서 승리를 가져가며 ‘항상 꼼수로 이기는’ 네빌과 ‘명경기는 다 만들어놓고 끝에 아쉽게 지는’ 제인의 미묘한 대립이 생겨났는데, 특기할 것은 대립의 형성 과정입니다. WWE의 전형적인 선악역 대립관 달리, 제인은 거듭된 패배에도 좋은 경기를 만들면서 팬들의 여론이 제인을 응원하는 쪽으로 자연스레 유도됐고, 네빌도 꼼수를 쓸지언정 좋은 경기를 계속 만들어왔기 때문에, 이 둘 간의 대립은 ‘네빌의 이미지도 크게는 타격이 가지 않으면서 제인도 역반응이 안 나오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에서 흔히 나오기 힘든 ‘리스펙을 받는 최고의 레슬러들 간 순수한 감정 대립’이 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제인의 거듭된 패배에 대한 감정 폭발 연기 역시 깔끔한 대립을 더 좋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대립만으로도 이미 스토리텔링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충분한데, 당일날의 경기는 우리 모두의 기대를 아득히 뛰어넘는 마스터피스였습니다. 경기장 내의 팬들은 두 선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했고, 두 선수는 초반 체인 레슬링부터 ‘북미 인디의 전설들’다운 기본기로 반응에 부응했습니다. 네빌은 초중반에 서브미션으로 제인을 공략하면서 ‘제인에 밀리는 악역 네빌’을 충실히 전달했고, 이후 이를 벗어나고 반격하려는 제인과 항상 그래왔듯 승리하려는 네빌의 공방전은 경기를 점입가경으로 만들어갔습니다. 두 선수의 기술들은 후반부로 들어설수록 경쟁하듯 예술적으로 시전되었고, 아슬아슬하게 터지는 니어폴과 로프 브레이크는 경기장 팬들을 뒤흔들며 재미를 극한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게다가 후반부에 네빌의 꼼수를 간파, 저지하고 되돌려 주려다가 망설이는 제인은, 레매 8에서 브렛 하트를 링벨로 가격하려다 관중들의 야유에 결국 벨을 내려놓고 깨끗하게 싸운 로디 파이퍼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같은 꼼수를 택하진 않겠다’는 제인의 의지를 극적으로 전달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후 NXT 로스터 전원의 축하와 제인의 악수, 네빌이 거절하는 척 하다 포옹하는 부분은...몇 달에 걸쳤던 둘의 대립을 완벽히 마무리하는 걸 넘어, NXT란 브랜드가 단순한 2부 브랜드가 아닌 WWE의 새로운 미래 그 자체임을 레슬링 팬들에게 보여주는 전율 그 자체였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는데, NXT는 마지막에 케빈 오웬스의 기습 공격으로 향후 대립의 방향까지 기대를 불러일으키며 마무리해주었습니다. 어떻게 WWE 선수들이 주눅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외 Honorable Mention(순위권은 아니었지만 정말 좋았던 경기들):
나이토 테츠야(C) VS 이시이 토모히로 (2/11, 신일본 New Beginning)
쉴드 VS 와이어트 패밀리 (2/23, WWE Elimination Chamber)
오카다 카즈치카(C) VS 이부시 코타 (3/6, 신일본 42주년 기념 흥행)
타나하시 히로시(C) 對 나카무라 신스케 (4/6, 신일본 Invasion Attack)
쉴드 VS 와이어트 패밀리 (4/8, WWE Main Event)
셰이머스 VS 세자로 (5/3, WWE Extreme Rules) - 개인적으론 나오챔 경기보다 더 재밌게 봤습니다.
이시이 토모히로 VS 혼마 토모아키 (5/3, 신일본 Wrestling Dontaku)
A.J 스타일스(C) VS 오카다 카즈치카 VS 마이클 엘긴 (5/17, ROH-신일본 합동 흥행)
셰이머스(C) VS 세자로 (6/1, WWE Payback) - 개인적으론 나오챔 경기보다 더 재밌게 봤습니다.
영 벅스 VS 조이 라이언 & 캔디스 랠래 (7/26, PWG ELEVEN)
레드래곤(C) VS 영 벅스 (9/6, ROH All Star Extravagenza)
오카다 카즈치카(권리증) VS 나이토 테츠야 (10/13, 신일본 KING OF PRO WRESTLING)
하라다 다이스케 VS 잭 세이버 Jr. (11/4, NOAH)
페닉스 VS 펜타곤 Jr. VS 드라고 (11/12, AAA Lucha Underground)
BXB 헐크 VS 타카기 신고 (12/28,Dragon Gate FINAL GATE)
글을 마치며...
2014년도는 1편에서 말했듯 제가 프로레슬링에 다시 관심과 열정을 갖고 지켜보면서 수많은 역대급 경기들을 생방송으로 목격했던 해였습니다. 그래서 14년도에 펼쳐진 명경기의 리뷰를 쓰는 것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리뷰를 쓰다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제가 2014년에 펼쳐진 명경기들에 유독 전율했던 진짜 이유는, 2014년도의 명경기들이 북미 프로레슬링, 그리고 일본 프로레스에서 실력이 있으면서도 메인스트림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선수들의 반전으로 이루어졌고, 기존 프로레슬링의 흐름에서 약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준 듯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3위 경기의 주역이었던 돌프 지글러는 경기 4달전까지만 해도 트인낭에다 수뇌부에서 인정하지 않아 플레어마저 손댈수가 없는 입지였고, 2위의 A.J 스타일스는 한 단체를 세우다시피 했지만 바로 그 단체의 병크로 인정은커녕 제연봉도 받지 못하다 겨우 신일본으로 이적해 다시 가치를 인정받았고, 스즈키 미노루는 1년 내내 야노 토오루와 톰과 제리 놀이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위의 세미 제인과 아드리안 네빌은 각각 엘 제네리코와 PAC, 매니아 사이에선 이미 전설이었지만 WWE란 거대 단체에 의해 제대로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한 ‘인디 레슬러’였습니다. 이러한 선수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평소 봐왔던 것관 다른 방식으로 최고의 경기를 펼치는 장면은 제게 정말 신선한 바람이자, 메인스트림이 아닌 곳에서 분투했던 프로레슬러들이 최고의 결과물로서 다시금 조명받고 가치를 인정받는 감격스런 장면이었고, 저 또는 프로레슬링 매니아들이 바라는 방향대로 프로레슬링의 판도가 조금이나마 바뀔지도 모른다는 자그마한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조만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어워드의 결과가 나옵니다. 제 사소한 욕심으론 3,2,1위의 경기 중에 제 마음에 부응하듯이 ‘2014년도 올해의 경기’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레슬링을 재밌게 봤고 리뷰를 쓴 2014년이 정말로 2010년대 프로레슬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터닝 포인트로 기억될 수 있기를, 그러한 흐름이 올해로 이어져 또 수많은 명경기를 여러분들을 비롯한 프로레슬링 매니아들과 목격할 수 있기 바래보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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