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선택의 연속이다. 순간순간마다 반드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갈등의 연속이기도 하다.
바둑을 일러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갈등 중에서도 실리(實利)를 선택할 것이냐, 세력(勢力)을 선택할 것이냐가 가장 빈번히 부딪치는 문제다.
바둑에서 실리는 눈앞의 현찰과 같다. 프로기사는 대국중 실리가 부족할 때 `실리 부족증'이란 걸 절감하게 되는데 그 느낌은 배고픔 또는 가난의 허기와 흡사하다고 한다.

그러나 눈앞의 현찰을 덥석덥석 챙기다가는 반드시 사고가 난다.
현금을 너무 밝히면 인심을 잃는 세상사와 마찬가지로 바둑에서도 실리를 너무 밝히면 `엷음'을 자초하게 된다.
엷다는 것은 보호막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엷음이 심화하면 대마가 죽는다.실리가 현금과 비슷한 존재라면 세력은 인품이나 신용에 해당한다.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되지만 장래 큰일을 도모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큰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실리를 안겨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세력은 미래가치인 셈이다.
하지만 미래가치는 단지 미래가치로 끝날 수도 있다.
증권을 사서 10년 후에 대비했는데 부도가 나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래서 갈등이 빚어진다. 눈 딱 감고 현금을 챙긴 뒤 어려움을 감수할 것인가.
현금을 챙기다 보면 여기저기 김밥 터지듯 사고가 날 것이고 상대는 화를 내며 공격해 올텐데 그걸 견딜 수 있을까.
차라리 집을 좀 덜 챙기더라도 튼튼하고 편하게 둘까. 아니야. 집이 부족하면 잠시 후 끝내기로 접어들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텐….

고수와 하수는 결국 안목의 차이다. 고수는 반드시 챙겨야 할 실리나 챙겨서는 안될 실리를 한눈에 알아본다.
저 세력이 부도가 날 세력인지, 아니면 큰일을 낼 세력인지 쉽게 알아본다. 그러나 이창호 ９단 같은 천하의 고수라도 적수를 만나면 바로 이 점을 고심하고 또 고심하는 게 바둑이다.
“저 실리는 챙겨도 좋은 실리일까.”


실리를 탐하다가 거대한 세력을 주고 세력을 탐하다가 거대한 실리를 주고 여렵다 바둑 ㅠㅠ
출저:국방일보 박치문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