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의 일화 하나가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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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1 때에 잠깐 바둑을 배웠었다.

그 후로 재미있는 것은, 어떤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되었을 때

바둑판의 상황이 저절로 그려졌었다는 것이다.

한 초등학교 중학교 무렵에 아버지에게 한 이야기이다.

“저는 막 어떤 감정을 경험하면 바둑판의 그림이 떠올라요.

막 혼나고 있으면 바둑판에서는 아주 비세인 그림이 나타나요.

그것도 상황마다 다른데,

내가 다 잘못해서 할 말이 없을 때에는,

내 돌이 장문(바둑에서 하나의 돌무리가 꼼짝 못하게 되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잡혀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의 바둑판을 보는 것과 같고,

변명거리가 있을 때는 내 돌이 쌍립(돌이 끊기지 않게 - 그래서 잡히지 않게 - 하는 특정 형태를 취하는 것)을 서서 상대의 포위를 뚫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사실은 좀 더 생생했다.

그러니까 바둑돌의 형태까지 완전히 특정한 상태로 나타나서, 어떤 현상과 결부되었다.

근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

어렸을 적에는 뭔가 관계없는 듯한 것이 번뜩하고 나타나서 어떤 현상에 대한 반응을 풍성하게 해 주었는데,

지금은 그런 반응의 풍성함이 훨씬 줄어든 느낌이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