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노장들의 반란을 보면서 든 생각 한가지.
\'아직 기력이 남아있는 노장들을 상대할 때 시간은 결코 젊은 자의 편이 아님.\'

노장들을 상대할 때, 그리고 그 노장이 상대하기 만만찮다 싶으면 단골로 등장하는 멘트가 있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체력전으로 끌고가서 후반에 승부를 봐야 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늙은이가 후반들어가면 불리한게 당연하지 하고.

그러나...
시간은 젊은자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별로 없더군요. 기본적인 역량에서 차이가 나는 노장이라면
젊은이가 시간을 들여 압살시키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노장이 아직 저력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라면
얘기가 약간 틀려지지 않을까 합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에 대한 분석이 끝나가면 노장이 쟁쟁한 커리어와 함께 쌓아온 데이터들이
승리방정식을 도출해내기 시작합니다. 통계자료를 낼 때에도 모집단이 크면클수록 정확하듯이 데이터도
많으면 많을수록 정확한 결과를 산출해내겠죠.

마르케즈, 디아즈전을 몇번이고 다시 돌려보면서 든 생각은 근 시일내에 다시 붙는다고 해도 디아즈가
약간은 힘들지 않을까 입니다. 경기 막 보고나서는 유효타면에서는 앞서고 있었고, 리드펀치가 잘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담번에는 조심스럽게 하면 이기겠지였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디아즈가 한 수 아래라는 말이 아니고, 기본적인 역량이 받쳐주는데다가 그야말로 수라장을 뚫고 온 경험이
있다보니, 짤수있는 전략이나 그때, 그때의 임기응변이란 면에서는 도저히 따라잡기가 힘들 것 같거든요.
다음번에 마르케즈는 과연 어떤 작전으로 나설지 짐작이 안되고, 어떤 변화에도 그럭저럭 대응이 될 것 같은데
디아즈는 그 정도까지는 안될 것 같고요. 그런데 이건 재능이라기 보다 경험에서 채워져야 하는 부분이라...

아미르 칸은 훌륭한 선수입니다. 피지컬도 좋은 편이고, 유연하고, 테크닉도 잘 닦여 있고요. 영국에서
기대할만해요. 턱이 약하면서 디펜스가 그닥이란 면은 좀 그렇긴 하지만 선수는 지도자에 따라서 제2의
탄생도 가능한 거니까, 뭐...

칸이  바레라를 맞아서 어떤 작전으로 나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주변에서 띄어준데다가, 본인 실력도
어느정도 되니까 약간 겉멋이 든 것 같기는 한데, 아마 정상적인 경우라면 노장상대로, 후반부에 승부수를
던진다가 아닐까 합니다. 바레라가 늙었다고는 하나, 이름만으로도 무시 못하니까요.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오히려 초반에 승부수를 던져서 마무리 짓는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팩맨과 마르케즈의 경기에서 바레라는 빠른 단발에 반응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다고
잔뜩 도사리는 포즈는 취했지만 실제로는 반응도 못했죠.

칸이 스피드는 준수한 편이니까 초반에 빠르게 원보다 투로 바로 가는 것도 괜찮으리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이런식으로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가는 것이 젊은 선수가 승률을 높이는 방법이 아닌가 하거든요. 잔재주
부릴 여유 안주고 패기로 밀고 나가는 것.

지딴에는 머리쓴답시고 전략세우고 어쩌고 해봐야 아직 완숙기도 안된 칸이, 쩔어서 무르 녹아내려있는
바레라한테는 공자 앞에서 문자쓰는 격입니다. 초반에 탐색전좀 하다가, 어영부영 시간보내고, 후반부 맞이해서는
점수따는 테크닉이나, 찬스캣치하는 면이나, 잔머리 굴리는 영역에서는 상대가 안되는 바레라한테
관광제대로 하겠죠.

바레라 입장에서도 패기있고 독랄하게 들이대는 녀석이 무섭지, 어설프게 머리쓰고, 기술로 깔짝대는 녀석
우려빼는거야 일도 아닙니다. 애시당초에 절정기의 두선수가 붙는 것도 아니고, 세대교체 성격의 경기에서
후배가 선배를 정리하려면 노리스가 레너드 정리할때처럼 압도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역량이 되지 않는다면
힘든일일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칸이 이겼으면 합니다. 바레라가 이번에 칸마저 정리해버리고, 프레스캇까지 접수한다면
정말 라이트급 개판되는 거 순식간이고, 2000년대 복싱은 떨거지판이라는 소리 들어도 할말도 없고요.
올드복서 팬들이 요즘 선수 수준낮다고 과거의 향수에 취해버리면 복싱 침체기 오는 거 순식간일테고...

앞으로의 복싱판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칸이 힘을 좀 냈으면 합니다. 근데 요새 결과가
거의 노장들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아서 쬐금 불안하네요. 이 녀석이 맷집이라도 좀 튼실했으면 덜
불안했을텐데, 요새 애들은 왜이리 턱들이 약한지...

* 스포츠에서 가장 보기 싫은 것, 패기없는 신인, 노련하지 못한 베테랑. 좀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