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여드름 몇개, 흉터 한 두개 가지고 자살 염병 떠는 수준 아님. 외모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한다고 피부탓만 하는 정병도 아니고. 여기서 모쏠아다라고 신세한탄 하는 사람들만큼 자기관리 못 하지도 않음. 키 큰 편이고 날씬하단 소리 자주 듣고 옷도 웬만큼 입는 편. 근데 사람 백명 모인다 치면 그중에서 무조건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심한 흉터피부야.

10대 초반부터 사람 눈 못 쳐다보는 건 기본이고 외모를 떠나서 피부가 맑고 깨끗한 사람들 앞에서 항상 주눅 들면서 살았는데 이제 그런 비참함을 그만 느끼고 싶다. 연애까지도 안 바라고 단지 남들처럼 멀쩡하게 눈 맞추면서 사람 사귀는 것만이라도 편하게 해보면 소원이 없겠음.

아무리 운동을 하고 자기관리를 하고 화장을 하고 꾸며봐도 결국 모공이랑 흉터로 뒤덮이고 탄력 잃어서 늘어진 피부에서 나오는 빈티는 어쩔 수 없더라. 피부에 신경 끄고 살다가도 추리닝에 민낯으로 모자 눌러쓴 사람보다 애써서 꾸민 내가 더 지저분해보일 때 모든 의욕이 사라져. 운동도 좋아하고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는데 자연광 아래에서 모공이랑 흉터그림자로 덮여서 괴물같은 얼굴 보면 그냥 어디든 숨고 싶다.

외모가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외모에 심하게 집착하는 편도 아닌데 이젠 그냥 사람을 만날 때 움추러드는 기분을 그만 느끼고 싶다. 어릴 땐 내 20대가 이렇게 씹창난 모습일 거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여기 사람들은 다 알 거라고 생각함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이 얼마나 우스운 위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