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국 사람들의 성향은 고스톱 화투놀이와 골프내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고스톱만 해도 '전두환 고스톱' 등 여러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해 흥미를 배가시킨다. 지도자의 성향에 대한 해학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만 어찌 됐든 화투놀이를 변화무쌍하게 만든다. 골프내기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OECD, 조폭 등 그런 상상력이 어디서 왔는지 놀랄 정도의 옵션이 난무한다. 게임이 그만큼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한국인의 기질을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는데 소질이 있고 이를 즐길 줄 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한다. 한술 더 떠 한국사람들의 성향이 투자은행(IB) 경영에 어울린다는 그럴싸한(?) 논리로 비약되기까지 한다.
미국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금융계의 화제다. 최근의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로 주가가 곤두박질친 이 회사 인수를 둘러싼 찬반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한국의 산업은행이 있어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불과 10년 전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이 세계 4위 투자은행인 리먼의 인수를 왈가왈부한다는 데 격세지감마저 든다. 리먼 인수의 찬반논리는 팽팽하다. 마치 대운하를 둘러싼 논쟁처럼 정답은 없어 보인다. 매우 신중하게 생각할 문제지만 기자는 인수에 찬성하는 쪽이다.
우선 이런 기회가 또다시 쉽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육성을 꿈꾸는 한국정부로서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실제로 일본도 지난 30년간 자체 육성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고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독일 도이치뱅크의 성공사례는 음미해 볼 만하다. 도이치뱅크는 지난 95년 투자은행업 강화를 선언한 뒤 과감한 인수전략을 구사했다. 먼저 모건그렌펠을 인수하고 IB본부를 런던으로 옮겨 모멘텀을 확보했다. 어느 정도 워밍업이 이루어지자 99년 뱅커스트러스트를 전격 인수해 본격적인 투자은행으로 전환했다. 현재 도이치뱅크는 수익 중 75%를 투자은행업에서 창출할 정도로 IB 비중이 절대적이다. 미국 외의 금융기관이 IB분야에서 이렇게 성공한 예는 없다. 결국 리먼 인수는 한국 금융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상황을 제대로 대변하거나 정확한 실상을 알릴 신용평가기관이나 투자은행의 부재도 한몫했다. 리먼 인수는 국제시장에서 한국과 한국기업이 이유없는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되며 오히려 코리아 프리미엄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IB의 기술 및 노하우와 인력 이전의 가속화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틈만 있으면 동북아 금융허브를 주장해왔지만 실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글로벌투자은행의 한 임원은 " 한국에 국제 IB들이 다 들어와 있지만 이들 회사의 직원들은 거의 한국인"이라며 "이건 겉만 글로벌 IB일 뿐 실제로는 한국계 금융기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홍콩, 일본, 싱가포르에 진출해 있는 국제 IB의 경우 직원 중 30% 이상이 미국 영국 호주 인도 출신이다. 리먼 인수로 리먼의 아시아헤드쿼터가 한국으로 이전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세계 최고 금융인력들의 한국 근무가 늘어날 것이고 이는 한국 금융의 글로벌화 및 선진화에 기여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리먼 인수에 반대하는 견해도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우선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아직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또 투자은행의 가치는 브랜드와 인적 자원인데 리먼 인수 후 유능한 직원들이 이직하면 껍데기만 남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미래의 성장동력을 금융에서 찾겠다면 이런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운명을 건 결단없이 선진체제를 따라잡은 예는 없다.
[전병준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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