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둑 큰 도둑
장자
將爲胠篋探囊發匱之盜而爲守備(장위거협탐낭발궤지도이위수비), 則必攝緘縢(칙필섭함등), 固肩鐍(고견휼), 此世俗之所謂知也(차세속지소위지야), 然巨盜至(연거도지), 則負匱篋擔囊而趨(칙부궤협담낭이추), 唯恐緘縢扃鐍之不固也(유공함등경휼지불고야), 然則鄕之所謂知者(연칙향지소위지자), 不乃爲大盜積者也(불내위대도적자야), 故嘗試論之(고상시론지), 所世俗所謂知者(소세속소위지자),有不爲大盜積者乎(유불위대도적자호) 所謂聖者(소위성자), 有不爲大盜守者乎(유불위대도수자호).
[胠] 연다
[篋] 바구니
[緘縢] 노끈
[扃鐍] 자물쇠 빗장
[鄕] 저즘께
만일 바구니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궤짝을 여는 좀도둑을 막을 생각을 한다면, 반드시 노끈으로 묶고 자물쇠를 단단히 할 것이다. 이것이 세상에서 이르는바 지혜다. 그러나 큰 도둑이 와서 궤짝 채로 지고, 바구니 채로 들고, 주머니 채로 메고 갈 때는, 그 노끈 자물쇠가 단단치 못할까봐 걱정할 것이다. 그러면 저즘께 지혜라던 것이 도리어 큰 도둑 위해 모아 준 것 아닌가? 그러기에 만일 말을 해본다면, 세상에서 소위 안다는 것이 큰 도둑 위해 지켜주는 일이 되는 것 아닌가? 소위 거룩하단 것이 큰 도둑 위해 지켜 주는 일이 되는 것 아닌가?
이것은 莊子 胠篋편 첫 머리에 있는 말이다. 사람이 우주 안에 있는 커다란 조화 속에 살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제도를 만들어 놓으면 사회악이 그로부터 일어나서 지식, 도덕, 종교로 고치려 해도 되지 않는다. 그 정치라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통째로 먹어 치우는 도둑질이다 하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우리말엔 도둑질이란 말이 없다. 도둑은 중국말의 盜賊을 음으로 옮겨 쓴 것뿐이다. 훔친다, 챈다 하는 말이 있으나 도둑이란 명사는 없다. 우리 옛날엔 도둑은 없었던지도 모른다. 물론 전혀 없었을 수는 없지만 도둑이란 이름을 들으리 만큼 크게 하는 놈은 없었는데 중국으로부터 발달한 제도의 정치적 문명이 스며들면서부터 도둑이 많이 생기게 되어 자연 그 말대로 받아쓰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옛날 사상이 본래 자연의 큰 조화 속에 살아, 신선 지경에 이르잔 것이 그 근본이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노상 허망한 상상이라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 글에도 한국 사람이 착하다, 어질다, 점잖다 하는 말이 많다.
하여간 도둑은 중국서 온 盜賊인데 盜와 賊이 다르다. 盜는 㳄와 皿이 합해서 된 글자인데,㳄는 침이요, 皿은 음식을 담은 그릇이다. 그래 그 둘을 붙여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보 고 침을 흘리다 못해 슬쩍 훔쳐 버린다는 뜻을 표했다. 즉 좀도둑이다. 그와 반대로 賊은 강도다 戎,곧, 무기를 들고 貝, 곧, 돈 혹은 보물을 뺏아간다는 뜻이다.
그래, 본문의 뜻을 말하면 이렇다. 좀 도둑이 오는 것을 막으려면 물건이 들어 있는 바구니나 궤짝이나 주머니를 단단히 간수하면 그만이지만, 큰 도둑이 와서 통째로 들고 갈 때는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도둑 막노라고 힘들여 했던 일이 도리어 그 놈을 돕는 일이 돼 버린다. 그러므로 도둑 막는 데는 그 크고 작은 것을 생각하여 큰 도둑을 막을 때는 그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통째로 메고 가는 놈을 막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아예 내것이라고 간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 말 아니하는 가운데 비친 가르침이다.
그러고는 역사상에서 실례를 들어서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고 끄트머리만 보고 세상을 가르치자는 지식인, 도덕가, 종교가가 어떻게 어리석게도 도리어 도둑을 돕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세월이 평안할 때 학자, 도덕가, 종교가가 기술을 가르치고 부지런해라, 돈을 모아라, 정직해라, 순종해라, 복종해라, 나라를 사랑하고 윗 사람을 공경해라 하고 가르쳤다. 일단 야심 있는 놈이 칼을 들고 일어나 전의 임금을 죽이고 제가 나라를 왼통 먹었다. 그랬을 때 지식, 도덕, 종교는 여전히 있어 가르치니 결국 도둑놈에게 모아 바치고 가만있어 참 고 복종하란 말 밖에 더 되느냐? 그 학자, 도덕가, 종교가는 민중을 위하노라고 했지만 결과는 도리어 반대가 됐다.
그럼 근본이 뭐냐? 애당초 그 제도니 문명이니 한 것을 만들지 말라하는 뜻이다. 사람의 발달의 근본이 되는 것은 그 인간성, 인정, 서로 하나로 얽혀 사는 그 정신에 있는데, 공연히 세상을 걱정하는 듯 무기를 들고 일어서서 도둑을 없엔다, 법을 만든다 하기 때문에 꾀가 늘고 인심이 엷어지고 욕심이 더 자극을 받아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진다. 그 근본 악을 때 려야 할터인데 종교 도덕이란 것이 그것은 감히 할 생각을 못하고 짓눌린 백성만을 보고 부지런해라, 속이지 마라, 참아라 사랑해라 하니, 세상은 점검 악한 지배자를 돕게만 되고 민중의 혁명 의식을 약하게만 만들어 버린다.
2,3천년 전에 벌써 그랬다면 지금은 더하다. 과학 발달이 된고로 이득을 본 것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노동자가 아니고 모든 압박 착취자뿐이다. 군대가 전쟁에 나갈 때마다 지성인, 종교가는 목소리를 높여 용감하다, 죽도록 싸우다 이겨라 하지 누구위해 하란 말인가? 과학자가 고심 참담해서 핵무기를 발명해 낼 때 자기네는 인류를 위하고 자유를 위해서 한다 했지만 오늘날 그 결과는 무엇인가? 각 나라의 소위 정치한다는 몇 놈과 거기 붙어 같이 해 먹는 큰 재벌 몇 놈이 권력을 쥐고 호강하고 횡포를 부리게 된 것 뿐이지 민중에게 소득된 것이 무엇인가? 소득이 없을 뿐 아니라 대전 전보다 더 심한 고통 속에 있지 않은가? 가깝게 우리나라 일을 본다면 근대화해서 이득 본 것이 누구냐? 월남 전쟁해서 그래 이 나라에 발전 된 것이 무엇이냐 ? 발전이 됐다면 왜 오늘의 이 민생고, 이 불평, 이 불안, 이 타락이냐? 도둑은 민중의 것을 도둑했으니 행복 하겠지만 전체 민중은 더 비참해졌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노동자, 사무원, 학생의 반항이 일어난다. 그러는 동안에 학자, 선생, 목사, 신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여전히 열심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 위해 하는 것임을 생각 해 본 일이 있나? 장자의 말대로 조금도 틀림없다. “世俗之所謂知者. 有不爲大盗積者乎. 所謂至聖者. 有不爲大盜守者乎. ” 그 知 자 대신 교육이라 놓고 至聖 대신 종교라 놔보라. 그러면 반대할 말이 터럭 만큼인들 있는가?
근본을 때려 부숴야 한다. 근본이 뭐냐? 국가주의, 문명주의다. 이것은 지금 인류 전체를 포로로 잡아 넣는 제도다. 이 악 제도가 근본에서 고쳐지지 않는 한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종교가 성하면 할수록, 신앙심이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극소수의 특권 계급이 잘 사는 대신 일반 민중은 점점 더 짐승 같은 살림으로 떨어진다. 이 테크놀로지의 시대는 이제 두 개의 낱말로 요약해 표시할 수 있다. 기술이냐? 정신이냐? 지배자들은 점점 더 기술을 발달시킨다. 그러면 그럴수록 외양은 발달하는 듯하면서 점점 더 정신 발달의 자유를 잃고 짐승으로 떨어져 들어간다. 본래 정치가라는 동물들은 정신적인 가치를 모르고 싫어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로마의 귀족들 같이 인간들을 서로 죽이는 싸움을 붙여 놓고 자기네는 술을 마시며 손뼉을 치며 구경하고 즐긴다. 지금 세계 정체가 그 원형극장이지 뭔가? 엘더스 헉슬리 가 “엄청난 새 세계”에서 상상했던 것같이 지배자들은 이제 인간에게서 부모의 사랑에 의한 생산의 자유까지 뺏아 소위 능률적이란 이름 아래 사람을 아주 유기적인 기계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것이 정말 큰 도둑 아닌가? 仁義 道德과 나라까지를 겸해 동째로 도둑질을 하는 놈들이다.
장자가 결코 지식 도덕 신앙이 소용없다 해서 한 말 아니다. 근본 문제를 잊고 하면 그런 결과에 이르는 것을 지적해서 지식인, 종교인의 깨달음을 일으키기 위해서 한 말이다. 그러므로 한번 큰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근본적인 큰 혁명을 할 생각을 담대하게 해야 한다. 이 학문은 그렇지 않으면 정치 강도 위해 민중을 모아 그 입속으로 넣어주는 일이요, 이 종교는 그것이 그 이빨에서 도망해 나올까봐 몰아넣어 주는 일이다. 보면 환하게 알 수 있지 않은가? 소위 여당 세력과 야합하지 않은 교단이 어디 있는가? 그것들은 완전히 하나님도, 天道도, 생명의 원리도 믿지 않는 것들이다. 그렇지 않다면이야 어떻게 청천백일에 내놓고 씨알을 압박하고 짜먹는 그 세력에 그렇게 붙어먹을 수 있을까?
부정 부패 제한다지만 절대 그것 믿어서 아니 되고 거기 협조해서도 아니 된다. 작은 도둑 없애는 것은 큰 도둑이 혼자 먹기 위해서다. 작은 좀 도둑이 왜 생겼나? 큰 도둑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이렇게 발달 아니 했을 때 도둑 없었다. 그 좋은 예가 제주도다. 소위 三無란 것이 어째 있을 수 있었던가? 별것 없다. 정치권에서 멀었기 때문이다. 기선, 자동차, 비행기가 생긴 오늘 제주도의 三無가 있던가 없던가? 숫자를 몰라 분명한 말할 수 없으나 아마 이제는 여기보다 도둑 더 많을지 모른다. 큰 도둑이 일어날 때, 그래서 도둑질로 나라 먹는데 성공하는 것을 볼 때, 이날껏 부르짖던 성현의 가르침도, 하나님의 말씀도 다 거짓인 것을 어린이도 알게 된다. “그렇다 마구 먹으면 된다”하고 새 확신을 얻었는데 어떻게 도둑질을 아니 하겠나? 이제라도 사회를 맑히려거든 그 큰 도둑을 내쫓아야 한다.
그 큰 도둑 잡는 오직 하나의 방법은 전체가 목소리를 같이해서 “도둑이다”하는 일이다. 아무리 도둑이라도 양심은 있다. 제 양심을 먼저 도둑해 내고 그리고 남을 도둑하던 것인데, 이제 전체의 부르짖음으로 그 쫓겨났던 양심이 그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는 못 견딘다.
함석헌
씨알의소리 1971. 10월 5호(하늘 땅 바른숨 있어)
저작집30; 24- 297
전집20; 20-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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