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정치’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하는 일이 정치라고 나와 있다. 과연 우리나라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정치라는 게 있기나 한 걸까? 그 궁금증을 해소해준 드라마 후기를
써보고자 한다. 넷플릭스에서 최근 오픈한 정치 드라마 <돌풍>이다.
지난 주말 우연히 들어가 본 넷플릭스에 낯익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설경구와 김희애다. ‘그 날, 대통령의
심장이 멈췄다’는 타이틀을 내건 <돌풍>이다. 극중 대사에도 등장하지만 “숨 막히는 오늘의 세상, 다 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드라마를 기획했다는 게 제작진의 의도였다고 한다.
드라마 완성도를 떠나 간만에 집중해서 본 드라마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은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 분)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 분)사이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박동호(국무총리)가 대통령을 독살하려다 실패하고 장일준(대통령)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박동호가 긴급 체포되기 7시간 전이다. 검찰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시각에 박동호는 가까스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다. 헌법 71조와 84조에 따르면 권한대행만 돼도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
권한대행 박동호는 최연숙(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내가 대통령을 죽였다”고
털어놓으면서 “세상을 뒤엎을 시간”을 한 달만 달라고 요청하고
권한대행도 모자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대통령이 된다. 앙숙인 정수진을 국무총리에 임명하지만 정수진은
박동호 탄핵을 밀어붙인다. 탄핵과 무관하게 내란죄로 체포될 상황에 처한 박동호는 자살이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주말 오후부터 시작한 드라마 시청은 새벽 2시쯤에야 12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어떻게 이리 몰아볼 수 있었을까? 호흡이 매우 빨랐던 탓이다. 사건 전개가 지루할 틈이 없다. 그리고 예상했던 시나리오의 순간들이 모두 깨지면서 반전에 반전, 또
반전을 거듭한다.
대통령 박동호는 자신의 희생과 헌신으로 대한민국 정치가 변화되는 풍유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정치가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박동호 자신 역시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된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드라마에서 보듯 선도 악도 없다.
”공정한 나라, 정의로운
세상....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자들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고 “거짓을 이기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더 큰 거짓”이라는 걸 보여줬다. “미래를 약속하는 자들을 믿지 마라. 어떤 미래가 오던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하는 자들“일 뿐이고 “우리가 아니었으면 이나라는….왜 독재에 반대했지? 그들도 산업화를 이뤄냈는데? 왜 쿠데타에 저항했지? 그들도 가난한 조국을 발전시키겠다는 명분이 있었어. 다른가? 그들의 명분? 당신의 명분?”이라고
영화는 주옥 같은 대사들을 내뱉는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썩었을지 모르는 현실
한국의 정치권과 재벌권력, 검찰, 언론의
커넥션이 너무 리얼하게 묘사된다. 드라마여서 더 그렇겠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아서 소름끼칠 정도다. 이 드라마를 보고 뜨끔한 사람들이 꽤 많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상황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암살과 권한대행, 탄핵, 대선후보 경선, 재벌, 검찰개혁, 언론플레이, 권모술수, 배신, 전대협, 물고문, 북풍, 뇌물, 기득권, 민주노총, 레닌, 공수처, 자살 등등 나올만한 건 몽땅 동원시켜 막 버무린 비빔밥 같다는 악평도 있지만 부인하기 힘들다. 사실이다. 그게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이니깐.
특히 운동권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 눈길을 끈다. 운동권의 기본정신을
잊고 그것을 기득권으로 한 자리씩 차지한 그들이, 더 이상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정치를 하면서 초심이 훼손된 현실 정치를 고발하는 내용이 계속 강조되듯 나온다. 검사 출신 대통령의
의로움이 부패하고(이 대목은 현 정부를 비꼰 듯) 타락한
민주화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들을 몰락시키는 게 주된 내용이다.
80년대에 운동을 했던 한 사람으로서 드라마 속 학생운동가가 자신이
감방에 남긴 '민주주의 만세'라는 글귀를 국무총리에, 대통령권한 대행까지 맡다가 범죄자로 같은 감방에 갇혀 다시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소름끼칠 정도로 잔인했다. 노동해방을 외치던 학생운동가중 지금도 노동으로 끼니를 떼우는 사람 없고 사회주의를 꿈꾸던 학생운동가중 지금도
사회주의자는 없으며 죄다 기득권을 구성하는 교수, 국회의원, 시의원, 자치단체장, 공공기관장, 보좌관
등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과거의 이념과 사상은 그저 치장일 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민중은 개돼지 또는 민주화운동 했다는 니들도 똑같은 괴물 혹은 양아치. 거기에
되도 않는 성서적 비유가 슬쩍슬쩍 채워진 점도 불손하다. 레닌을 들먹이고. 촛불을 든 민중, 전대협, 노총
등도 거짓에 놀아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재벌과 결탁한 기득권 정치 세력들도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특히 '민주화 운동권 출신'들을
제일 나쁜 악마 캐릭터로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운동권 혐오가 뿌리깊이 배어 있는 게 느껴진다. 노조(노총)은 태극기부대와 다를 바 없이 기득권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들이고,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노동해방'을 조롱하고 있다.
또 하나 귀에 거슬렸던 것 중 하나는 작가가 기독교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성경 말씀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점이다. 성경 속 예수의 이미지를 주인공 박동호에게 입혔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베드로가 예수를 3번 부인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 비서실장 김미숙에게 자신을 부인하고 살 길을 모색하라는 대사 등은 극중
분위기와 따로 노는 느낌이다.
절벽에서 투신하는 장면은 넣지 말았어야 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겠지만 마지막 대통령이 절벽 위에서 투신 자살하는 씬 역시 너무 과도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굳이 넣을 필요가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릴 수 있는 이 장면이 박동호가 처한 상황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지막 화에 등장한 김지하의 시에 이성현이 곡을 붙인 민중가요 <타는
목마름으로>가 가슴을 진정시켜주었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순수했던 운동권이 정치세력화되면서 타락할 수밖에 없는 길을 걸었지만 결국
그래도 민주주의에 대한 끈을 놓을 수 없다는 뜻으로 위안을 삼았다. 나만의 자위일 수도 있겠지만.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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