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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호 '계엄 선포됐으니 모든 건 합법'…고문도 준비
- [JTBC] 정보사 요원, '작두' 로 선관위 직원 고문 하려해ㅋㅋㅋㄱ읽다가 내눈을 의심함ㅋㅋㅋjtbc 진짜 ㅋㅋ 니들이 김어준이랑 다를께뭐냐ㅋㅋㅋ완전 끝에 몰린 쥐새끼들같네ㅋㅋㅋ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432717?sid=102 [단독] 문상호 "계엄 선포됐으니 모든 건 합법"…고문도 준비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12·3 비상계엄 당일 윤 대통령 담화가 시작되자 문상호 당시 정보사령관은 "이제부터 모든 행동은 합법"이라며 선관위 장악을 지시했습니다. 정n.news.naver.com
작성자 : 진명2고정닉
Vickers Brothers: 대기업이 만들면 다릅니다
[시리즈] 영국 전략폭격기 개발사 · 영국 전략폭격기의 역사: 꽤나 긴 서론 · Handley Page Bomber: 전략폭격기의 시초 · 참고용: 영국 공군의 중폭격기 계보 못생긴 헨들리 페이지 폭격기들을 대체한 것은 더 못생긴 빅커스 비미(Vickers Vimy)였다. 영국군은 항공기 농가 살리기 프로젝트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성능, 같은 목적으로 개발된 항공기더라도 꼭 다른 회사에서 여러 가지 사양을 도입했는데,냉전기 영국군의 V-폭격기들이 대표적으로 돈이 썩어넘쳤는지 셋다 각기 다른 제작사 (빅커스, 아브로, 헨들리 페이지)에서 만들었다. 굳이 이럴 이유가 있나...? 여튼, 그래서 이 빅커스 비미 또한 1917년에 영국군이 헨들리 페이지 V/1500과 함께 기존에 사용되던 헨들리 페이지 O/100을 대체할 목적으로 빅커스 사에다가 개발을 의뢰하여 만들어졌다 빅커스...헨들리 페이지가 항공기 하나만 파는 항덕이었다면 빅커스는 온갖걸 다 팔아재끼는 재벌이었다 1828년, 철도 산업에 돈을 투자했다 대박을 친 성공한 제분업자이자 셰필드 상공회의소 초대회장이었던 에드워드 빅커스에 의해 설립된 빅커스는 처음에는 셰필드에 위치한 제철소를 주축으로 성장했지만, 그의 아들들인 토마스 빅커스와 엘버트 빅커스가 Vickers, Sons & Company로 회사명을 변경한 이후 어마어마하게 커져서 영국 굴지의 대기업이 되었다. 당시 빅커스는 정말 안만드는 제품이 없었는데, 대표적인 생산품만 살펴보자면 '폼폼 포'로 알려진 QF 2파운더 대공속사포 하이럼 맥심의 회사를 1897년에 인수한 이후 그의 발명품이었던 맥심 중기관총의 무게를 줄이는 (27kg->20kg) 등의 개량을 거쳐 1912년에 출시되어 1968년까지 영연방에서 절찬리에 사용되었던 서부전선 독일군 분쇄기, 빅커스 중기관총같은 경화기/중화기들을 비롯하여 2차대전기에 사용된 마틸다/발렌타인 보병전차, 현재 영국군의 주력전차인 첼린저-1/2도 빅커스사의 작품이고 빅커스 발리언트나 VC-10같은 비행기도 만들었으며, 1910년대 당시 세계 최초의 고속전함이었던 퀸 엘리자베스급의 염가형으로 건조되었으나 전함 주제에 최고속도 21노트(38km)라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스팩과 부실한 대공성능으로 인해 2차대전 당시에는 대놓고 계륵으로 취급받은 영국군 전함 잔혹사의 끝판왕, 리벤지급 전함과 애초에 태생부터가 몰락하기 시작한 영국의 사정으로 14인치 함포를 탑재한 조약형 전함으로 설계되어 야마토급이나 아이오와급같은 타국의 전함들에 비해 약간...아니 많이 딸리는 성능을 가졌지만 이를 영국 해군의 맨파워로 이겨내며 영국군의 마지막 전함으로 역사에 남은 킹 조지 5세급, 2차대전 당시, 일본 제국해군이 울부짖던 함대결전을 위해 전쟁 마지막까지 구레나 남양군도같은 후방에 숨어서 꿀빨기 바빴던 야마토같은 최신 전함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딸리는 순양전함이라는 태생과 건조된지 30년이 넘어가는 구식 퇴물전함이라는 이유로 함대결전에도 끼지 못하고 구축함들과 함께 끝까지 태평양에서 미군과 싸우다가 4척 모두 장렬하게 가라앉은, 일본 제국해군의 진정한 수훈함이자 대들보, 콩고급 순양전함 천황의 비상금까지 싹싹 털어서 구매한 이후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기함으로써 1905년 5월에 일어난 쓰시마 해전에 참전, 교전 중 러시아군의 집중사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격침당하지 않고 버틴 덕에 러일전쟁 승리의 주역이 되었지만 러일전쟁때 전함의 모든 운을 끌어다 쓴건지 전쟁 이후에는 전함이 낼수있는 온갖 사건사고 (침몰 1회 좌초 1회 침수사고 다수)를 내고 다니다가 워싱턴 군축조약에 의해 1923년 9월 퇴역이 결정되어 요코스카 앞바다에 콘크리트로 박제당했고,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처참하게 패배한 이후에는 상부구조물과 무장들이 전부 뜯겨나간 채로 미군들의 나이트클럽과 수족관으로 사용되는 등 온갖 치욕이란 치욕은 다 겪었지만 그래도 전노급 전함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아 살아남는게 강한 것이다를 몸소 보여준 시키시마급 전함 미카사를 건조한 것도 빅커스였다. 아무튼, 이런 개짱짱기업 빅커스가 만든 빅커스 비미는 HP사의 폭격기들보단 좀 작았는데, 일단 똑같이 1918년에 배치된 O/400과 비교하면 동체 길이부터가 19m VS 13m으로 더 작았고 익면적도 O/400에 비해 20% 정도 줄었으며 최대이륙중량(MTOW)도 2톤가량 차이났다. 하지만 이렇게 작아진 동체에다 O/400에도 쓰인 롤스로이스제 이글 VIII엔진을 2개씩 박아넣어서 최대속도도 더 빨랐고, 폭장량도 200kg가량 많았다. 게다가 전투행동반경도 1400km으로 O/400보다 300km이나 더 길었다. 물론 얘도 O/100과 동시대의 항공기였던 만큼 나무와 캔버스가 주재료였고(기수부는 알루미늄이었다) 기체 경량화 때문에 기총도 2정밖에 없었으며, 실용상승한도 또한 2.1km 가량으로 낮았지만 일단 폭탄이 많이 들어가고 멀리 날잖아? 게다가 어뢰까지 탑재가 가능했다. 여러모로 기존에 쓰던 O/100은 물론 V/1500보다 전반적인 성능이 뛰어났지만, 생산라인에 누가 사보타지라도 했던건지 생산속도가 진짜 느려도 너무 느렸다. 1917년 7월에 개발을 요구받은 빅커스 사는 1917년 11월에 초도비행을 시작해서 1918년 10월에 프로토타입 4기를 제작했지만 마음이 급했던 영국군은 1918년 3월 26일, 그러니까 아직 시험비행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비미 폭격기 150대를 일시불로 질렀고, 1918년 5월에는 1000대를 추가로 주문했다. 근데 문제는...빅커스가 1918년 11월까지 생산한 폭격기가 고작 13대 뿐이었다는 사실과, 비미는 시제기 4대 중에서 2대가 추락했을 정도로 꽤나 수정해야만 하는 항목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일단 엔진부터 하스피노-수이자 8(이탈리아)-> Salmson 성형 엔진(프랑스)-> 선빔 아프리디 수냉식 피스톤 엔진(영국)-> 피아트 A.12 피스톤 엔진(이탈리아)-> 롤스로이스 이글 VIII 엔진(영국)으로 개발중에 무려 5번이 바뀌었는데, 이는 전쟁중이었던 만큼 엔진 공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결국 1차대전 종전까지 비미는 고작 3대만이 영국군에 인도되었고, 전쟁 이후 RAF의 규모가 줄어듦에 따라 비미도 계획된 수량의 90%가 취소되어 겨우 110대만이 생산되었다. 비미가 최초로 전력화된 부대는 이집트에 주둔하던 제 58비행단이었다. 1919년 7월에 이집트에 배치된 이들은 배치되자마자 Handley Page 0/400을 빠르게 대체했고, 1920년대 중반 영국 공군의 주력 쌍발 중폭격기로 운용되었다. 하지만 뭐 전간기에 배치된 무기들이 으레 그렇듯 빅커스 비미는 이렇다할 활약 없이 1925년에 폭격 임무에서 배제되었고, 1938년까지 표적기로 쓰이다 퇴역한다. 빅커스 비미 또한 여태껏 소개했던 무기들과 비슷하게 여러가지 기록들을 세웠는데, 1919년에는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고, 1926년 영국 총파업 당시에는 폭탄 대신 신문들을 싣고 나르기도 했으며, 카이로~바그다드를 오가며 우편물들을 배송하기도 했다. 그리고 꽤 특이한 파생형들도 존재했으니... 초창기의 에어 앰뷸런스였던 비미-앰뷸런스가 비미 폭격기를 기반으로 5대가 개조되어 영국군에 배치되었고, 마찬가지로 55대의 비미 폭격기들이 병력 수송을 위해 빅커스 버논이라는 이름으로 개조되어 영군 공군에 인도되었다. 빅커스 비미의 다른 파생형이라 하면, 이른바 빅커스-커머셜이라 불린 여객기가 있었는데, 빅커스 비미를 기반으로 하여 가문비나무 합판으로 만든 대형 동체를 설치한 버전으로, 1919년에 개발되었다. 이 파생형의 큰손은 중화민국 정부였다. 1919년 100대에 이르는 비미 커머셜을 한번에 주문, 이후 1920년에 43대가 제작되어 40대가 인도되었지만 대부분은 혼란스러운 중국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사용되지 않은 채 상자에 담겨 있었고, 오직 7대 가량의 소수만이 운용되었다. 이후 이들은 중국사의 수많은 내전들 중 하나인 제 2차 직예-봉천 전쟁이 발발하자 폭격기로 개조되어 직예군의 폭격기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전쟁 중 이들은 저공 폭격 전술을 사용했기에 (폭격조준기 같은게 여객기에 달려있을리 없었으니까) 처음에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직예 군벌의 공군 참모총장, 조불리(趙步壢)가 직접 폭격기를 이끌고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전쟁 중반, 폭격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조 장군의 항공기가 대공포화에 피격되어 격추당하면서 폭격기들은 대공포를 피하기 위해 고고도에서 폭격을 수행했고, 이후에는 딱히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직봉전쟁 이후 모든 항공기는 군벌의 손에 넘어갔고, 이들은 제1중폭격기단을 창설했으나... 곧이어 만주사변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들은 모두 일본군에 의해 노획되었고, 일본군은 이를 곧 폐기시켜버렸다. 이렇게 빅커스 비미의 활약상은 막을 내린다. 비미는 전작들보다 더 빠르고 멀리 날 수 있었기에 성능 자체만 보면 꽤나 괜찮은 폭격기였다. 그러나 개발 자체가 1917년에 시작된 탓에 1차대전에서는 활약조차 할 수 없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항공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순식간에 퇴물로 전락해버렸다. 실제로 비미가 영국군에서 폭격기로써 운용된 것은 1919년부터 1925년까지 단 7년에 불과했으니 뭐... 여러모로 시대를 잘못 타고난 무기였던 셈 이런 빅커스 비미를 대체한 것은 빅커스 비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빅커스 버지니아(Vickers Virginia)였다. 영국군은 1920년, 그러니까 빅커스 비미가 배치된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빅커스 사에다 신규 폭격기 개발을 요청했고, 빅커스는 이미 쓰고있던 비미 플랫폼을 기반으로 1922년에 시제기를 완성시켰다 버지니아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비미와 비슷했지만, 날개를 6m, 동체 길이를 3m가량 연장시키고 꼬리날개 끝에 기관총좌를 설치했으며, 전방 기총사수의 위치를 조금 낮춰서 전작에서 지적받은 조종사의 시야각 문제를 해결했다. 동체와 날개가 길어진 만큼 무게도 2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늘어난 무게로 인해 둔해진 기동성을 보강하기 위해 기존에 사용되던 300마력짜리 롤스로이스 이글 엔진에서 580마력을 내는 레이피어 라이언 엔진으로 교체했고, 기존에 운용하던 폭격기들의 동체가 기술의 한계로 인해 나무와 철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버지니아는 알루미늄과 듀랄루민으로 동체를 제작했다. 이렇게 완성된 빅커스 버지니아는 기존에 써먹던 폭격기를 재탕한것을 감안한다면 당시 기준으로는 꽤나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여줬다. 일단 엔진마력이 2배 가까이 늘어난 덕분에 최고속도가 160km에서 174km으로 증가했고, 최대상승한도는 2배나 높아져서 버지니아는 최대 4km 상공에서도 원활한 작전이 가능했다. 다만, 아무래도 기체 자체가 1917년에 개발된 빅커스 비미를 기반으로 설계되었던 만큼 폭장량이나 작전반경은 기존과 별차이가 없었고, 방어무장 또한 기존에 마르고 닳도록 우려먹던 7.7mm 루이스 경기관총 3정이 끝이었다. 이런 어중간한 스팩으로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던 시기인 전간기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지...만? 1머전의 후폭풍과 곧이어 불어닥친 대공황 덕분에 경제가 개박살이 나버린 영국의 사정으로 인해 빅커스 버지니아는 2차대전 이후인 1941년까지 퇴역하지 못하고 영국 공군에서 계속 쓰였다..... 그래도 1930년대부터는 폭격 임무는 후계기한테 넘기고 공수부대 훈련용이나 신기술 테스트베드로 굴려졌는데, 기체 자체에는 큰 이상이 없었지만 노후화된 기체를 국군의 F-5마냥 꾸역꾸역 운용했던 탓에 전체 생산분 124기 가운데 무려 81기 손실, 손실률 65%라는 신기록을 세워버리고 퇴역했다. 참고로 빅커스 버지니아 또한 방어무장을 죄다 제거하고 동체를 유선형으로 바꾼 빅커스 빅토리아라는 수송기 파생형이 존재했는데, 최대 22명의 병사들을 수송할 수 있었다고 한다. 총 97기가 생산되어 영국 공군에 배치된 빅토리아는 1935년에 엔진을 기존에 쓰던 600마력짜리에서 650마력짜리 페가수스 엔진으로 교체하고 기골 강화, 꼬리바퀴와 브레이크 장착, 폭격용 조준기와 파일런 설치 등의 개조를 거친 빅커스 발렌티아(Vickers Valentina)로 개량되었고, 이들은 그래도 1941년에는 퇴역한 버지니아와는 달리 2차세계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까지 마르고 닳도록 쓰이면서 영국군을 수송했다. 여담으로, 폭탄창을 외부에 설치하는 개조를 받았기에 분명히 공식적으로는 수송기였지만 1톤가량의 폭탄을 탑재할 수 있어서 2머전 초반인 1940년부터 1941년까지 아프리카 전선에서 영국군의 폭격기로써 운용되었다. 근데 뭐 당연하게도 별다른 전과는 없었다고.... 다음편에 계속....
작성자 : 우희힝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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