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자 탑승하지 못한 아프간 시민 수백 명이 수송기를 따라 내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 “미군, 6 .25전쟁 이후 걸프전 빼고 주요 전쟁서 모두 패배”
탈레반에 항복한 아프간 정부와 군의 한심한 모습, 카불공항과 미군 수송기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장면들에 대해선 이미 언론에 너무나 많이 보도됐기 때문에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아수라장이 된 카불공항의 모습은 1975년 베트남전 말기의 사이공 함락, 1950년 6·25전쟁 때의 흥남철수작전을 연상케 했습니다. 이로써 미국이 20년에 걸쳐 1000조원이 넘는 돈과 2400여명에 달하는 미군의 희생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아프간 정부 및 군의 무능과 부패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미국과 미군의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미군은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대등한 라이벌이 없는 세계 최강의 군대입니다. 그럼에도 1950년대 이후 주요 전쟁의 결과가 실패로 귀결된 적이 적지 않아 ‘미군은 왜 전쟁에서 실패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철수작전을 위해 긴급투입된 미 82공수사단 요원들이 C-17 수송기에 탑승해 있다. /미 국방부
미국내 여러 전문가들이 이 의문에 대한 책을 썼는데요, 도널드 스토커 미 해군대학 교수도 그중 한사람입니다. 스토커 교수는 2019년 펴낸 ‘미국은 왜 전쟁에서 패배하는가:6·25전쟁에서 현재까지 제한전과 미국의 전략’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을 했는데요.
◇ 미 정치지도자와 군 수뇌부, 전쟁 목표 인식 결여
그에 따르면 미국은 6·25전쟁 이후 쉴새 없이 전쟁을 치렀지만 제대로 이긴 전쟁은 1991년 걸프전 뿐이라고 합니다. 걸프전의 경우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몰아낸다는 분명한 정치적 목표가 있었고, 100시간만에 목표를 달성하자 정전을 선언했지요. 반면 아프간전이나 이라크전에선 개전 당시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테러리즘을 걷어내고 민주주의를 건설한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실패했다는 것이지요. 이는 베트남전의 재현이기도 합니다.
여기엔 전쟁 일반과 제한전에 대한 정치 지도자들과 군 지휘부의 잘못된 인식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스토커 교수는 주장합니다. 미 정치 지도자들은 미국의 권능을 보여주기 위해 전쟁에 뛰어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지만, 정작 목표 달성을 위해 요구되는 적절한 규모의 병력을 파견하는 데는 늘 망설였다는 것이죠. 그 현실적인 타협이 ‘제한전’이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미군을 수렁에 빠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미 정치 지도자들은 물론 미군 수뇌부도 전쟁을 수행하는 ‘목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결여돼 목표를 달성할 ‘전략적 사유’도 부족했다고 그는 지적합니다. 정치적 목표가 불확실하면 어떤 일관된 전략도 수립할 수 없고, 어떤 군대도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 스스로 지킬 힘과 의지 없는 나라와 국민의 비참한 말로
하란 울만도 ‘패배의 해부:미국은 왜 자신이 시작한 모든 전쟁에서 패배하는가?”(2017년)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 하는데요, 최영진 중앙대 교수는 ‘전쟁이라는 세계’ 저서에서 “정치 지도자나 관료들이 지금껏 건전한 전략적 사유를 하지 못했고, 파병을 결정하기 전에 현지 상황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나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늘 패배한다고 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아프간전 실패와 미 전문가들의 이런 지적은 우리 한반도 안보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스로 지킬 의지와 힘이 없는 나라와 군대의 말로가 어떤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 것” “남의 일이 아니며 우리나라도 한미동맹이 깨지거나 약화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재향군인회와 성우회에선 이런 취지의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맞는 말씀들이고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우리 안보에 주는 교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고 봅니다.
◇ “대규모 미 전시 증원계획은 페이퍼상 계획에 불과”
그중의 하나가 한반도 유사시 대규모 미 증원계획인데요, 전문용어로 시차별부대전개제원(TPFDD)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현재 TPFDD는 전면전시 전쟁 발발 3개월 이내에 병력 69만명, 5개 항공모함 전단, 전투기 1600여대 등이 단계적으로 한반도에 전개하도록 돼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페이퍼상의 수치’라는 평가가 많은데요, 실제로 이라크전 당시 미군 병력이 가장 많았을 때도 20만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라크전, 아프간전 이후 미국은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대규모 지상전 개입은 극도로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이든 미 대통령도 지난 2020년 ‘포린 어페어스’ 기고를 통해 대규모 지상군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고 개입할 경우 특수부대 위주로 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 미 해공군 위주 증원 등 현실적인 작전계획 필요
결국 한반도 전면전시 지상전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이번 아프간전 미군 철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차제에 현실적인 작전계획을 마련하고 여기에 맞춰 한미 연합 지휘구조도 재편돼야 할 것”이라며 “단순히 ‘자주’의 개념으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미국이 아프간과 중동에서 발을 빼고 중국 견제에 주력하면서 여기에 우리의 동참을 더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정책도 명확하게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 미 해공군 위주 증원 등 현실적인 작전계획 필요
결국 한반도 전면전시 지상전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이번 아프간전 미군 철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차제에 현실적인 작전계획을 마련하고 여기에 맞춰 한미 연합 지휘구조도 재편돼야 할 것”이라며 “단순히 ‘자주’의 개념으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미국이 아프간과 중동에서 발을 빼고 중국 견제에 주력하면서 여기에 우리의 동참을 더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정책도 명확하게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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