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4일 저녁 무렵 흑해에 있던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함(旗艦) 모스크바함을 향해 4발의 우크라이나 넵튠 지대함(地對艦) 순항미사일이 발사됐다. 미사일 중 두발은 모스크바함의 근접방공시스템에 요격됐지만 나머지 두 발은 탄약고 인근 등에 명중, 폭발을 일으켰다. 화염에 휩싸인 모스크바함은 이튿날 흑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러시아 국방부는 탄약고 폭발 사고와 거친 파도가 침몰 원인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 등에 의해 우크라이나 미사일에 격침된 것으로 확인됐다.
러시아 해군의 자존심으로 불려온 모스크바함은 만재(滿載) 배수량 1만1500t으로, 러시아 수상 함정 가운데엔 쿠즈네초프 항공모함과 키로프급 원자력 추진 순양함에 이은 ‘넘버 3′ 대형 함정이다. 대함미사일 16발을 비롯, 각종 대공·대잠수함 미사일과 헬기 등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바다 위로 낮게 날아오는 적 대함미사일도 분당 4000발의 30㎜ 포탄으로 요격할 수 있는 AK-630 기관포 6문도 갖추고 있다. 이런 모스크바함을 격침한 우크라이나군의 넵튠 미사일은 최첨단 초음속 무기가 아니라 1980년대 기술을 써서 개발한, 음속보다 느린 무기였다.
우크라이나군은 미사일 발사 전에 튀르키예(터키)제 바이락타르 무인기를 여러 대 띄워 모스크바함 레이더 등 탐지 수단의 관심을 끈 뒤 미사일로 허를 찌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오랜 인연이 있었던 우크라이나군은 모스크바함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모스크바함 침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해군 최대 손실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결정적 장면 중 하나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전은 예상 외로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예상 밖 선전, 러시아의 예상 밖 고전’이 주목을 받고 있다. 비록 돈바스 등 동부 지역이 러시아의 손에 넘어가기는 했지만, 개전 수일 내에 우크라이나가 항복할 것이라는 상당수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5개월이 다 돼 가도록 버티며 선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에선 우선 재블린 미사일 등 신무기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전이 관심을 끌고 있다. 하이브리드전은 기존의 재래식 전쟁·비정규전·사이버전에다 가짜 뉴스, 심리전, 외교전 등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온갖 도구를 동원, 군사적 수단과 비군사적 수단을 합쳐 일종의 총력전을 펴는 것이다. 하이브리드전은 원래 러시아가 종주국으로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때 위력을 발휘했다. 반면 정반대로 이번 하이브리드전은 우크라이나가 강세, 러시아가 열세인 형국이다. 우선 우크라이나는 SNS를 활용한 여론전, 심리전에서 러시아를 압도해왔다. 스페이스X, 구글 등 세계적 기업들의 우크라이나 지원, 국제 의용군 참전 등 민간 부문의 활약은 종전 전쟁에선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다. 러시아가 나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가 종종 핵무기 사용 위협을 하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겐 죽음을 겁낼 권리도 없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지도자들과 국민의 항전 의지, 우크라이나군의 강한 정신 전력이 우크라이나 선전의 비결로 꼽히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무리 첨단 무기가 발달한 현대전이라 하더라도 정신력이 승리의 핵심 요소임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또 ‘한·미 동맹 같은 굳건한 동맹 관계를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맺고 있었더라면 러시아가 전면 침공할 엄두를 냈겠는가’라며 동맹의 중요성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이런 우크라이나전의 교훈을 우리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세계적인 파장이 너무 큰 전쟁이라서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전이 걸프전이나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보다 한반도 전장 환경 및 전면전 양상과 더 비슷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유사시 우리가 과연 우크라이나보다 잘 싸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영리기관인 WVS에서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응답자들 중 전쟁이 일어날 경우 ‘싸우겠다’는 응답자는 67.4%, ‘싸우지 않겠다’는 응답자는 32.6%를 기록했다. ‘싸우지 않겠다’는 비율은 1981년 6.5%에 불과했지만 조사 때마다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7년 이후에는 32.6%까지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군 교육훈련 및 기강도 문제다.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줄어든 상태에서 한동안 북 눈치 보기와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훈련도 하지 못해 우리 병사들이 유사시 강한 대적관(對敵觀)을 갖고 싸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우크라이나전이 장기화하면서 탄약 등 보급 문제도 제기되고 있는데 우리 군의 경우 상당수 유도 폭탄과 미사일은 개전 사흘이면 동이 나고 주요 탄약도 1주일을 버티기 힘든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군 모두 예비전력(동원전력) 시스템 및 훈련이 미비돼 있어 고전했던 점도 열악한 한국군 예비전력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동안 군 수뇌부는 예비전력의 중요성을 말로는 강조해왔지만, 전체 국방비의 0.4%에 불과한 예비전력 예산은 충격적인 우리 예비전력 실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군 내에선 각 기관별로 우크라이나전 교훈을 분석하는 세미나가 활발하다. 걸프전과 이라크전을 심층 분석하며 한·미 양국군의 아킬레스건을 노려왔던 북한은 우크라이나전에서도 하이브리드전 등 교훈을 도출해 우리의 약점을 파고들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정보보호의 날 기념식에서 “하이브리드전으로 변모하는 전쟁 양상에 대응하기 위해 사이버 전력과 기술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와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전의 교훈을 찾아내고 유사시 싸워 이길 수 있는 국가와 군대를 만드는 데 활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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