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한 모습을 28일 조선중앙TV가 보도하고 있다. 북한은 회의에서 핵무력 정책을 헌법화했다. /조선중앙TV
최근 북한의 핵무력 강화와 관련해 두가지 주목할 만한 일이 북한과 미국에서 있었는데요, 북한에선 김정은이 지난달 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을 ‘헌법화’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습니다. 이는 절대 비핵화하지 않고 핵보유를 영구화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말 ‘2023 WMD(대량살상무기) 대응 전략’을 통해 북한의 핵공격 역량이 크게 강화됐다고 평가했습니다. 북한 핵위협이 더욱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것인데 우리는 너무나 무관심하고 태평한 듯합니다.
◇北, 핵무력 고도화 헌법 명시로 영구화 의지 분명히 해
우선 북한의 핵무력 헌법화에 대해 살펴보지요. 북한은 지난달 26∼27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보유국으로서 나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한다”는 내용을 헌법에 명기하는 문제를 채택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존 북한 헌법 서문에 담긴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에서 더 나아가 무기 개발의 목표와 방향성을 비교적 상세하게 명문화한 것입니다. 북한은 앞서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정책을 법령으로 채택하고 ‘불가역적인 핵보유국 지위’를 공표하면서 언제든지 ‘핵선제 타격’을 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었지요. 이번엔 사실상 핵무력 발전정책을 영구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비핵화 문제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속내를 나타난 것이어서 비핵화 협상은 사실상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북한의 첫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8형' 발사 모습. 북한은 올들어 두차례 화성-18형 시험발사에 사실상 성공했다. /뉴스1
김정은도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그런 의지를 나타냈는데요, “국가최고법에 핵무력강화 정책 기조를 명명백백히 규제한 것은 현시대의 당면한 요구는 물론 사회주의국가 건설의 합법칙성과 전망적 요구에 철저히 부합되는 가장 정당하고 적절한 중대조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 “우리 공화국이 사회주의국가로 존재하는 한 핵보유국의 현 지위를 절대로 변경시켜서도, 양보하여서도 안 되며 오히려 핵무력을 지속적으로 더욱 강화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 당과 정부가 내린 엄정한 전략적 판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미 국방부, 北 전쟁 초기 단계 핵사용 가능성 이례적 인정
김정은이 이번 연설에서 ‘신냉전’ 구도를 언급하며 ‘반미연대’를 재차 구축하겠다고 천명한 것도 협상을 통한 비핵화를 어렵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전지구적 범위에서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되고 주권국가들의 존립과 인민들의 생존권마저 엄중히 위협당하고 있는 현 상황은 핵무력을 건설하고 그것을 불가역적인 국법으로 고착시킨 우리 공화국의 결단이 얼마나 천만 지당한가를 입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의 고도화한 핵미사일 위협은 미 국방부가 지난달 말 9년만에 발간한 ‘2023 WMD 대응 전략’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미 국방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전력을 우선시 해왔다면서 “북한의 역량 개발은 북한이 물리적 충돌의 어느 단계에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유사시 마지막 단계에서 이판사판식으로만 핵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초기 단계에서도 쓸 수 있는 의미입니다. 미 국방부 공식 보고서가 이런 식의 평가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미 국방부는 “북한은 미국 본토와 역내 동맹 및 파트너를 위험에 빠뜨리는 이동식 단거리, 중거리와 대륙간 핵 역량을 개발해 배치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미 국방부는 또 북한이 작년 핵무력 사용 정책을 법제화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를 통해 북한이 “자체 선언한 핵보유국 지위를 재확인하고, 핵 사용 조건을 정립했으며, 비핵화를 거부했다”고 평가했습니다.
◇ “협상과 압박으로 북 비핵화 추진하는 한미 정책 비현실적 ”
이처럼 북 핵미사일 위협이 급속도로 고도화해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데 대한 우리의 선택지도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통해 ‘워싱턴 선언’과 ‘캠프 데이비드 선언’으로 한미동맹과 확장억제, 한미일 안보협력이 각각 강화된 것은 분명 고무적인 안보여건 변화입니다. 하지만 ‘최후의 보루’로서 우리의 독자적인 핵무장 잠재력 확보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최근 ‘북한 핵무력강화정책 기조의 헌법화와 한국의 핵잠재력 확보 필요성’ 분석자료를 통해 “이번에 김정은은 사회주의국가로 남아 있는 한 영원히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 명확히 확인한 것”이라며 “이는 협상과 압박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시키겠다는 미 행정부와 한국 정부의 입장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이 2016년 공개한 구형(球形) 핵탄두(왼쪽 사진)와 2023년 공개한 ‘화산-31형’전술핵탄두. 화산-31형은 직경 50cm 이하로 작아져 다양한 미사일에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정 실장은 또 “국제정세가 악화돼 일본이 핵무장 결단을 내릴 때 우리가 따라가지 못해 결국 동북아에서 한국만 비핵국가로 남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도 한국 정부가 지금이라도 적극적인 대미 설득을 통해 반드시 조기에 일본과 같은 수준의 핵 잠재력부터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핵무장 잠재력 확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 필요
물론 북 핵미사일 위협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닌 만큼 특정 사안에 일희일비하며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도 무덤덤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겠지요. 저도 여러 해 전부터 즉각적인 핵무장은 어려운 만큼 일본 수준의 핵무장 잠재력(일명 무궁화 계획)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고, 그 첫단계로 핵추진 잠수함 확보와 이를 위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해왔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기형적이지만 수직발사기 10기(基)를 장착한 전술핵공격 잠수함을 처음으로 공개했고, 김정은이 공언한 핵추진 잠수함도 북 체제 속성상 언젠가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상황 등에 대비하는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과 핵추진 잠수함 확보는 국민적 공감을 얻는 윤석열 정부의 안보 어젠다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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