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글로 쓸까 했는데, 귀찮아서 안하다가
개념글에 얘 자살 시도 이야기가 있길래,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우울증과 마음의 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써본다.
한국에선 얘가 단순히 헤비급 챔피언으로 유명하지만,
영국에서 퓨리는 헤비급 챔피언 뿐만 아니라, 롤모델이자 우울증 치료 캠패인에 앞장서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타이슨 퓨리와 그의 아내 패리스 퓨리가 낸 책들도 그것에 대한 책들이다.
우울증과 그를 대처하는 방법들.
타이슨 퓨리는 자살충동과 심각한 우울증을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주변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이가 있다면 어떻게 도와줘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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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슨 퓨리와 그의 아내가 낸 책들)
돈 벌려고 유명세 빨로 낸 책들이 아니라, 진짜 우울증 환자들과 주변 가족들에게 읽어보고 힘 내라고 낸 책들이다.
타이슨 퓨리의 인스타를 팔로우하면 얘가 정말 꾸준하게 우울증과 우울증 환자들에 대한 글들을 쓴다는 걸 알거다.
"당신이 정상에 있든, 바닥에 있든 우울증은 찾아올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당신의 우울증이 별거 아닌거라고 여길 지 모른다.
"나는 내 평생을 링 위에서 싸우며 살아왔다.
"하지만 내 인생 가장 힘든 싸움은 우울증과의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여러분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내가 200kg의 뚱땡이에서 다시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면, 당신도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이런 내용의 글들을 정말 꾸준히 쓴다.
왜냐하면 타이슨 퓨리 본인이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지금도 앓고 있기 때문이다.
퓨리의 우을증에 대한 이야기는 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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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타이슨 퓨리는 리니얼 챔피언이자, 통합 챔피언이었던 클리츠코를 상대로 싸워 이긴다.
10년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었다.
다들 퓨리가 이길거라고 예상 못했음에도, 독일에서, 적진 한복판에서 싸워 얻어낸 판정승이었다.
퓨리의 인생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리니얼 헤비급 챔피언이 되는 것.
역시 복서였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마이크 타이슨'과 같은 선수가 되라며 '타이슨'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10살 때부터 복싱 훈련을 했으며,
11살때 학교를 그만뒀고,
자기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의 도로 포장일을 도우며 근근히 살다가,
밑바닥 집시 생활을 하며 볼꼴 안볼꼴 할짓 안할짓 하며,
아버지는 다른 집시와 싸우다가 감옥에 가고,
훈련시켜주던 삼촌은 중간에 죽고,
다른 삼촌들도 집시 생활 하며 별별 범죄에 다 연루되어 깜방갔다 나오는게 일.
이런 생활 속에서 오직 복싱, 복싱만을 바라보며 퓨리는 훈련했다.
'아빠가 다른 사람 눈깔 파내도 괜찮아. 어차피 나는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될거니까. 그럼 내 삶은 완전해질거야.'
아마추어 시절 이미 세계 랭킹 3위에
36전 32승이라는 헤비급 치고는 풍부한 전적,
그럼에도 영국 올림픽 대표에는 뽑히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그의 아일랜드 집시 혈통이 "영국을 대표할만한"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어 뽑히지 않았다는 말들이 있다. 이미 아마추어 세계 랭킹 3위였던 그가 뽑히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
하지만, 그는 미련없이 프로로 전향한다.
'괜찮아, 상관없어. 어차피 나는 세계 챔피언이 될거니까. '
20살의 어린 나이에 프로 데뷔 후, 승승장구 하던 퓨리는 드디어 자신이 바라고 바라던 세계 챔피언 도전 기회를 얻게 된다.
그냥 세계 챔피언도 아니고, 당시 리니얼 챔피언이자, 통합 챔피언, 압도적 원탑의 정상에 있던 블라디미르 클리츠코와의 시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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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는 엄청난 자신감을 드러내며, 화려한 언론 플레이를 통해 블라디미르를 자극하고 시합에 뛰어든다.
블라디미르와 그의 팀은 퓨리를 광대 취급하며 그저 그런 놈으로 여겼다.
당시 영국에서도 이미 많은 영국 선수들이 클리츠코를 상대로 덤볐다가 진 상황에서 (헤이, 치소라) 퓨리의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었다.
특히 퓨리가 프로 할때 바보같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었기 때문.
5 (이짤의 주인공이 퓨리다...)
당시 무명 선수들 상대로 다운 당하기도 하고 하다보니, 압도적 강자로서의 아우라는 없는 편이었고
데릭 치소라가 말한 것처럼 "너는 니 키와 니 덩치만 아니었으면 평범한 선수도 못될 놈이야." 소리 듣던게 퓨리였다.
(웃긴 건 그럼에도 퓨리는 높은 KO율과 준수한 실력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 퓨리 본인이 나중에 우식에 대한 분석을 할때 말한 것이 있다. "어떤 선수들은 일부러 못하기도 해요. 그러다가 빅시합이 잡히면 본실력 보여주면서 털털 탈아먹는거죠.")
그럼에도 퓨리는 블라디미르와의 시합을 준비했는데,
퓨리는 이 시합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자신이 이길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느끼면서 든 감정은 기쁨보다는 공포와 공허함이었다.
'이기면.....뭐하지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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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누구도 넘지 못한 클리츠코를 상대로 퓨리는 압도적 격차를 보여주며 이겼고,
그렇게 그는 새로운 리니얼 챔피언이자, WBA, IBF, WBO, IBO 통합 챔피언, 세계 랭킹 1위 챔피언, 링 매거진 챔피언에 올랐다.
정상이었다.
그렇게 그가 바라던 곳이었다.
퓨리는 들기도 벅찰만큼 많은 챔피언 벨트들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퓨리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이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모두들 정상에 선 나를 우러러 보고 있었지만, 내 안에선 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있었다."
그의 인생의 유일한 목표이자, 모든 것의 이유였던 것이 그에게 주어지자, 그의 인생은 이제 목적을 잃고 만 것이었다.
처참했던 어린 시절도, 가정 환경도, 아일랜드 집시 혈통으로 받던 차별도, 그 모든 힘든 훈련도,
이 순간이 오면 모두 보상받을 수 있을거라 믿고 참아왔건만, 그에게 찾아온 건 공허함이었다.
그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그는 술에 빠져 지내기 시작했다.
7 미친듯이 술을 마셨다.
보통 일주일에 56L가 넘는 술을 마셨다.
집에도, 훈련장에도 가지 않고 펍과 펍을 돌며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자연스레 마약에도 손을 댔다.
이런 생활을 1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보냈다.
그 사이 클리츠코와의 리매치는 퓨리의 체중 증가 등의 문제로 파기되었고,
그의 챔피언 벨트들은 모두 빼았겨 회수되었고,
그를 영국의 자랑이라 부르며 치켜세우던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누가 아일랜드 집시 출신 아니랄까봐 술만 퍼마시는 루저 병신새끼네." 하며 까대는게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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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는 진짜 망가졌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매순간 들어도 자기 아내와 네 자식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다가도,
집에도 못 들어가고 술집에서 술만 퍼마시다가, 자기 기다리며 눈물 펑펑 흘리는 아내 생각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
이때 있었던 어떤 일보다도, 자신이 가족에게 가했던 상처들이 스스로에게 제일 큰 고통이자, 제일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술을 질펀하게 마시고 코카인까지 흡입한 다음 자기의 페라리 슈퍼카에 타서 길로 나섰다.
죽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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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는 자신이 봐둔 다리쪽으로 페라리를 몰고 갔다.
300km가 넘는 속도로 다리의 가드레일을 뜷고 지나가 다리 밑으로 떨어지면, 종잇장처럼 구겨진 차속에서 죽게 되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막 다리가 보이는 시점에서 300km를 넘기는데, 갑자기 그에게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안돼"
"그러지마"
"니 가족들과 아빠 없이 자라게 될 니 아이들을 생각해."
"모두들 니 자식들에게 그럴거야. 니 아빠는 약해빠진 사람이었다고."
"우리 아빠는 우릴 떠났어."
"쉬운 길을 선택하고 떠난거야. 그걸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다리에 이르기 직전에 퓨리는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세운 다음 차에서 내려 부들부들 떨며 아기처럼 울었다고 한다.
저 목소리가 술과 코카인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막기 위해 몸에서 조작해낸 환청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퓨리는 저걸 신의 목소리로 여기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가 한 가장 첫번째는 자기 자존심을 버리고, 나이 30이 되어가지만, 아빠 손 잡고 같이 정신과로 간거였다.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정신과에, 자기 아버지를 보호자로 대동하고 간 것이다.
정신과 의사는 여러 검사 후 타이슨이 가장 높은 단계의 자살 위험도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그가 절대 혼자 있으면 안되며, 무조건 가족과 함께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들은 1년 반의 시간동안 퓨리에게 닳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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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의 이런 상황 속에서 어린 아이들은 뭣도 모르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고,
아내인 패리스 퓨리 혼자서 오롯이 이 상황을 견뎌내야했다.
패리스는 어떻게든 퓨리를 도와주려 했고, 아는 방법과 아는 지식을 모두 동원했지만, 결국 자신이 퓨리를 도울 방도가 없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자신이 도울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자, 더 무력감이 들며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패리스 퓨리는 매일같이 퓨리를 떠날 것을 생각했고,
짐을 꾸려 차에 싣고 아이들을 차에 태워 떠날 준비를 하기도 했었지만, 떠날 수는 없었다.
자신이 떠나면 퓨리가 어떻게 될지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퓨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퓨리를 위해 옆에 있어주는 것은 해줄 수 있다라고 그녀는 믿으며 집에 남았다. 1년 반이 넘는 시간동안.
지금 적어놓은 내용들은 우울증 환자의 사고관과 주변인들의 감정, 그리고 대처 방법에 대한 가장 표준적인 모델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들이기도 하다. 타이슨 퓨리와 패리스 퓨리가 책을 쓰는 것도 이런 이유들에서다.
서로의 입장을 남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알아야지만이,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리에서의 자살 시도 이후, 그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바꿀 방법들은 세가지였다.
1. 가족.
첫번째는 당연히 가족이다.
1년 반 동안 망나니처럼 굴었음에도 떠나가지 않은 가족들에게 퓨리는 고마움을 표시한다음, 앞으로 "나의 슬픔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나의 행동으로 인한 가족들의 고통" 에 더 신경쓰기로 했다. 나 중심이 아니라, 가족 중심으로 인생관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2. 종교.
다리에서의 목소리를 들은 후, 퓨리는 종교에 신실해졌다. 그가 오늘 경기가 끝나고 "예수께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한 것이나 "와일더의 상처입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기를 기도합니다" 라고 말하거나, 늘 시합이 시작하기 전 팀원들과 모여 같이 종교 경구를 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종교란 기독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종교를 통한 가르침과 선함에 있기 때문에, 그의 이슬람 신자 팀원이 이슬람 기도를 드릴때도 같이 예의를 표하며 이야기를 듣고 같이 문구를 속삭이곤 한다.
3. 복싱.
지금까지 그의 인생의 목표가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 인생의 목표는 "복싱" 그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복싱 그 자체를 즐기고, 그 인생의 의의를 복싱에서 찾는다. 복싱을 하며 사람들에게 영감과 희망을 주고, 더 많은 선한 영향력을 펼친다. 그가 오늘 경기 끝나고 와일더에게 "오늘 잘했어" 라고 이야기했음에도, 와일더가 "나는 너에게 스포츠맨쉽과 리스펙트를 주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하자, 크게 상심한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때문일것이다. 와일더에게 복싱이란 그의 개인적 명예와 성공의 대상이라면, 타이슨에게 복싱은 그 자체로 축복이며 스포츠맨쉽의 단어가 의미하는 바들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1년반 넘는 시간이 흐른 후 처음 복싱장에 가서 훈련했을때, 그는 지금까지 느꼈던 힘든 느낌, 고통, 그냥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순수한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에게 복싱이란 더이상 수단이 아닌, 그의 인생의 동반자가 된 것이었다. 그는 평생 복싱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선수로든, 트레이너로든, 무엇으로든 복싱의 즐거움과 함께 자신의 존재 의의를 느끼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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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kg에 달하는 몸에서, 살을 빼고
2017년부터 다시 복싱장에 돌아와 훈련을 했다.
그의 아내 패리스 퓨리마저 그의 처참할만큼 쩌버린 몸과 1년 반이 넘는동안 술-마약에 찌들어 살았던 시간 때문에, 그가 다시 복싱으로 복귀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대다수의 언론들은 이미 퇴물 취급을 받던 그의 복귀 선언에 "돈 떨어졌냐?" "복싱이 아니라 스모 대회에 나가야할 것 같은데?" 라는 반응들을 보였다.
12 (복귀 선언 후 살을 빼기 위해 통나무를 짊어지고 뛰는 퓨리)
하지만 퓨리는 이를 악물고 훈련했다. 뛰고 또 뛰었다.
그는 자신이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의 노력을 응원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가 이 우울증을 이겨내고 돌아와 다시 성공한다면, 그 어떤 다른 사람들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의 복귀를 보며 일어서게 되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13 2018년 6월, 클리츠코 시합 이후 거의 2년 반만에 그는 복귀전을 치렀다.
아직도 원래의 기량과 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살을 뺐고, 다시 파이터의 눈빛을 되찾았다.
그저 그런 퇴물 취급 받으며, 워밍업 정도의 시합을 치렀고, 두달 뒤 다른 시합에서도 그저 그런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가 역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역시 돌아올 수가 없다.
그 사이 사이에도 퓨리는 맹렬히 훈련을 이어나갔다.
그는 사람들의 반응을 개의치 않아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복귀 6개월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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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챔피언이자, 앤서니 조슈아와 함께 헤비급 2강으로 평가받던 디온테이 와일더와 붙게 된다.
와일더는 퓨리를 쉬운 먹잇감으로 보았다. 그래서, 퓨리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이름값과 리니얼 챔피언 타이틀만 남아있고, 원래의 실력은 날라간, 허울만 남은 퇴물. 하지만, 커리어와 흥행에 적당히 써먹기 좋을 간편한 상대. 퓨리의 복귀전 이후 두경기는 이런 와일더의 생각이 맞다고 말해주는 듯 했다. 살도 다 못빼고 상대도 제대로 못 때려눕히는 이 키만 큰 선수는 이전 '세계 리니얼 헤비급, 통합 챔피언'의 유령에 불과한 듯 보였다.
하지만 와일더의 생각은 틀렸다. 그는 퓨리가 파놓은 함정에 그대로 들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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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날 퓨리의 모습은 이름만 남은 퇴물이 아닌 '타이슨 퓨리'였다.
아직도 살을 다 빼지못했고, 체력도 기량도 아직 이전만큼 끌어올리지 못했음에도, 그는 숨겨놓았던 실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복귀를 비웃었던 언론들을 깡그리 구겨놓았다. 와일더에 대한 미국 현지의 편파판정으로 퓨리는 승리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그날 밤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 알 것이다.
다시 1년 후, 그는 WBC 챔피언이 되었고, 다시 링 매거진 챔피언으로 인정받고 세계 랭킹 1위의 챔피언으로 인정받으며, 다시 정상에 섰다.
퓨리는 아직도 자살충동을 느끼곤 한다고 한다. 일요일에.
그는 일요일이 되면 월요일이 오기만을 목빠지게 기다리곤 한다고 한다.
훈련을 할 수 없는 일요일이면 드는 나쁜 생각들을, 월요일이 되어 다시 바쁘게 훈련하며 떨쳐내고 싶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훈련한다.
퓨리는 그래서 복싱이 자신의 목숨을 살렸다고 말한다.
복싱 그 자체가 즐겁고, 복싱을 할때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느끼는 그 생명력을 퓨리는 자살시도를 거치며 오랜 시간을 아파한 끝에 깨달은 것이다.
퓨리의 인스타그램은 늘 복싱 훈련-가족과의 시간-가족 여행-트레이너들과의 시간-그리고 우울증 관련 조언들만 올라온다.
저번에는 자기 어린 아들 데리고 무슨 댄서 파티 데려가서 신나게 놀더라 ㅋㅋ 깨어있는 아버지인건가
예쁜 누나들이 옆에서 춤추니까 아들은 아주 행복해하더라 ㅋㅋ
아무튼...
이게 타이슨 퓨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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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t.ly/4fWiM5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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