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 좋았던 씬, 페이지터너
정경과 현호가 얘기할 때마다 왜 끊어서 둘을 보여줬는지 궁금했다.
페이지터너는 단순히 페이지 넘겨주는 사람이 아니라 피아니스트의 호흡에 맞춰서 페이지를 넘겨주는 사람이다. 영혼의 단짝
정경이 준영에게 키스를 하고 간 이유, 그걸 왜 송아의 나레이션으로 말을 할까. 정경의 마음은 정경이 얘기하면 더 좋을텐데. 단순히 송아가 주인공이니까 하는 줄 알았다. 이 드라마는 여러모로 곱씹어야 보인다.
연주회에 안 갔대? 준영이가 그래?
분명 갔다왔지만 준영이가 그렇다고 한다면 나 혼자 갔다왔다고 말할 수 없는 정경. 그래서 정경은 준영이 그랬냐고 물어본다.
화면이 바뀌면서 송아를 보여준다. 연주회 얘기를 하고 있는데 왜 그 순간 송아를 보여주는 걸까. 준영은 회식 때 말을 못 낮추기도 하고, 슈퍼스타도 맞으시고란 말을 들었다. 회식 자리에서 많은 말들이 나왔다. 슈퍼스타는 뭐 친구 없냐고
준영은 친구가 되어 말을 놓고 싶었지만 송아는 거절한다.
악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송아씨 밖에 없다고 말하면서도 선뜻 송아한테 부탁하지 않는 차영인. 상사로써 명령을 한다면 들어주겠지만 차영인은 현재 준영에게 페이지터너가 필요한 줄 알면서도 송아에게 위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송아는 다 들었으면서도 모른 척 한다. 그녀에게도 페이지터너, 슈퍼스타의 옆자리는 불편한 자리다. 그러니 그녀는 들어놓고도 못 들은 척 그와 시선을 마주치자 시선을 돌릴 수 밖에.
차영인은 준영을 차에 태우면서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한다.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아냐고
차영인은 음악을 사랑하고 준영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한 준영의 상처에 예민한 사람이다. 그의 사정을 알고 어떤 강요도 하지 않는다
정경 얘기를 하던 중 멈춰선 빨간불. 비 온다는 얘긴 없었는데.
빨간 불에 잠깐 멈춰진 차 안에서 준영은 송아를 발견한다. 비를 그대로 맞고 있는 그녀. 그 순간만큼은 그의 눈에 오로지 송아만 가득찬다. 송아의 행동을 각인이라도 하려는 듯 송아의 행동을 전부 지켜본다. 비를 맞고 있는 그녀가 안쓰러워 우산을 씌워주고 싶어 영인에게 우산 없냐고 물어본다. 다음 순간 자켓으로 바이올린 케이스를 감싸고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가서 우산을 사는 송아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은 비를 맞든지 말든지 바이올린 케이스만 무사하면 되는 송아다.
준영은 순수하게 음악을 즐긴 적이 없다. 그에게 음악은 생계유지수단이었다. 피아노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그에게 내밀어진 그 손에 보답하기 위해 죽어라 노력했더니 지금의 위치에 올라와 있었다. 그의 마음은 어린 시절 정경을 향한 마음에서 한치도 벗어난 적이 없었지만 그의 마음은 드러내선 안 되는 마음이다. 음악은 귀신같이 그의 마음을 알아차려 연주에도 슬럼프가 오게 만든다. 안식년이라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연주를 끝내고 마중 나온 엄마. 연주료가 입금이 안 됐다며
잘 했든 못 했든 연주 잘 끝냈다고 축하해주러 오고 순수하게 축하받는 그런 마중이 준영에게 존재했을까
엄마를 보내고 준영이 민성과 사진을 찍고 민성이 송아를 환하게 마중하는 모습은 그에게 낯선 풍경이다.
현호, 정경, 어머니, 아버지, 이사장님 외에 그가 개인적으로 기쁘게 받을 연락이 있을까.
사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외국으로 도망가서 영영 안 오고 싶지 않았을까.
집이 없다고 했지만 집이 없는 건 송아도 마찬가지다. 집으로 가면 음대 졸업하면 뭐할거냐, 계속 음악할 거냐고 묻는 가족들의 잔소리. 솔직히 음악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언제까지고 꿈만 쫒을 수는 없다는 건 그녀 자신이 너무 잘 안다. 결정을 안 하는 것으로 도망치는 수 밖에.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미룰 수 있다면 미루고 싶다.
차가 빨간 불에 멈춰선 순간 비가 오고 영인은 오로지 비에 집중할 때 준영은 차 밖의 시선 너머 보이는 송아의 모습에 집중한다. 사랑이 오는 순간은 아주 짧다. 그에게 정경, 현호, 나문숙 이사장은 소중하지만 편하지만은 않은 존재이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우정을 지키기 위해. 바짝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지만 일등을 할 수 있는 그에게 연민이란 빨간 불과 같다. 직진만 해오던 그에게 잠깐 뒤돌아 누군가를 연민할 여유는 없었으니까. 억지로라도 멈춰선 그 빨간 신호 앞에 예보에 없었던 비와 함께 자신이 비를 맞던 말던 바이올린 케이스만 보호하는 송아의 모습이 들어온 것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송아에게 빠져들 것이란 걸 예고한 것과 같다.
준영과 송아가 만나는 곳은 언제나 리허설 현장이다. 본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리허설을 한다. 준영이 송아를 만난 것도 리허설 때였고, 두번째도 리허설룸이었다. 준영은 송아를 연민하고 있기에 그녀의 아픔에 예민하다. 아니, 준영이 자체가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하다. 정경을 보호하기 위해 햇빛 들어오니까 옆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본심은 그렇게 말로 하기보다 송아한테 한 것처럼 그녀를 옆으로 앉히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경의 옆자리는 제 자리가 아니다.
그는 언제부터 말보다 음악으로 위로해주는 사람이 되었을까.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현호 앞에서 준영은 나도 정경을 사랑하고 있노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의 행동도 소극적으로 변해갈 수 밖에. 송아가 우정을 위해 윤사장이라는 호칭을 쓰고 거리를 두었던 것처럼. 그녀의 옆자리에 내가 있으면 안된다. 내 마음을 말해선 안된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으로 정경을 위로한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라는 듯이. 사실은 음악으로 위로하는 것보다 직접 말로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그건 제 몫이 아니니까.
준영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심장이 빨리 뛴다는 이유로
송아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건강을 이유로
준영은 송아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가끔은 커피 마신다며 커피를 손에서 놓지 않고 후룩후룩 마신다.
카페에서 정경이 마신 건 커피다. 정경이 커피를 먹던 말던 정경의 커피가 남아있던 말던 신경도 안 쓰던 준영은 송아의 커피는 내내 신경쓰고 마시기까지 한다. 단순히 커피였지만 정경의 사랑은 놓쳤어도 송아의 사랑은 놓치지 않겠다는 준영의 마음 같아 보이기도 한다
준영과 정경은 어릴 때부터 음악을 했다. 시작은 정경이 먼저 했고 발치까지 발을 담궜었지만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그녀의 실력은 나아지질 않았다. 애초부터 거기까지였는지도 모르지만 정경은 현호준영과 함께 실내악을 한다. 준영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했지만 슈퍼스타가 되어 저만치 가버린 준영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준영의 옆자리에 언제나 내가 있었는데. 살짝 질투가 난다. 가질 수 없다면 다가갈 수 없다면 준영을 망쳐놓고 싶다. 너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받고 싶다. 흔들리는 준영을 보면 상처받은 자존심이 조금이나마 회복될 거 같다
사실은 다 필요없고 준영의 옆자리에 있고 싶다.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곁에서 웃고 싶다. 나 말고 준영이가 다가와줬으면 싶어. 네가 다가와준다면 나는 그냥 따라갈 텐데. 삐뚫어지고 상처받은 자존심은 진심을 말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한다
연주회에 안 갔대? 준영이가 그래? 라고 묻는 정경을 뒤로 한 채 화면은 바뀌어 페이지터너가 필요하다고 대화를 하는 준영과 영인이 있다.
송아와 정경에게 준영은 슈퍼스타이다.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연주회엔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뒤에서 준영의 음악을 들으며 눈물만 흘렸던 송아.
그런 송아에게 준영이 먼저 제안한다. 내 악보를 넘겨줄 수 없겠느냐고
악보를 넘겨줄 수 있느냐는 질문이지만 나랑 친구할래요? 우리 사귈래요? 등등 말을 바꿔서 들어도 무방하다.
준영이 저벅저벅 걸어오는 폼새가 흡사 청혼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찌나 박력있게 저벅저벅 걸어가던지. 새신랑이세요?
안식년을 가진 후 그가 처음으로 리허설룸에서 연주를 한다. 공식적으로 치지 않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드러낼 수 없는 마음을 그렇게나마 풀어낸다. 옷장 안에 집어넣고 집어넣어도 자꾸만 비집고 나오는 트렁크처럼, 마음을 아무리 닫아도 자꾸만 열려서 고장나 버린 바이올린처럼. 마음은 그렇게 리허설룸에서 소리를 낸다. 말하고 싶다고.
그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일까?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곳에서 송아가 그 곡을 듣고 있었다.
억지로 안식년을 가지고 회피하려 해도 자꾸만 들려오는 그의 평가들. 그라고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칠 수 없다.
모두의 마음엔 들 수 없어도 한두명의 마음에 드는 연주를 한다면 그거야말로 좋은 거 아니냐던 선생님의 말이 그에게 깊이 남는다.
현호에게도 정경에게도 물어볼 수 없는 말
내 연주 좋았어요?
그러나 송아는 의외의 말을 내뱉는다. 연주 좋았지만 지난번 연주가 더 좋았다고
준영씨는 만족했냐고
한두명의 마음에 드는 연주에서 그는 누구를 생각했을까
한두명에 준영은 후보에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좋은 연주는 연주자가 가장 먼저 알아본다. 치면서 기분 좋으니까.
연주자가 만족하지 않은 연주가 좋은 평을 들을 리 없다.
박준영의 연주는 마음을 건드리는 게 있다고 송아는 쑥쓰럽게 얘기했지만 준영에게는 그 날 들은 최고의 칭찬이 아니었을까
연주 좋았다고만 하지, 직접적으로 저렇게 말해준 사람이 있었을까
그가 송아만 보면 웃을 수 있는 건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건드려서일 것이다. 그는 연주하면서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그가 연주를 하는 것은 생계유지를 위해서였고, 나문숙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니 본래의 목적은 잊어버렸다. 아니, 있었는지조차도 모르겠다
오케스트라는 성적순으로 앉지만 준영의 연주에 자신의 행복은 순위에도 없었다. 일등으로 그 자리에 앉았지만 행복은 없었던 준영에게 연주에 만족했냐고 하는 송아의 물음은 준영의 마음을 건드리지 않았을까
준영이 송아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연주를 했던 박준영이 위로받는 순간이다
송아가 좋아한다던 월광소나타는 베토벤이 당시 사랑하는 여자에게 준 곡이다. 여자는 19세 소녀로 베토벤과 나이 차이가 상당했다. 결국 그녀 집안의 반대로 헤어지긴 했지만. 피아노곡을 사랑하는 여자에게 주다니 완전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베토벤이 피아노곡을 작곡할 때 상황을 보면 절망적이다
베토벤은 당시 귀머거리로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들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작곡을 한 곡이기에 연주가 좋은지 어떤지 그것까지도 알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가 귀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은 사망선고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이다.
마치, 안식년을 가진 준영처럼
월광소나타를 좋아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준영은 송아를 위로하기 위해 곡을 직접 칠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그가 브람스를 치지 않는 것처럼 월광은 그에게 또다른 모험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온 월광소나타.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준영은 불안하다. 1등없는 2등, 사실상의 1등이라고 하지만 더 이상 좋은 연주를 할 수 없으면 어떡하나 싶어 그는 불안하다. 강제적으로 안식년을 가졌지만 준영은 그 불안을 말할 사람조차도 없다. 홀로 그 외로움과 불안을 싸안고 있는 준영은 송아의 위로를 받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로하고 싶다.
준영은 송아를 위로하고 싶어했다. 송아의 데뷔무대때는 수고했다고 말로써 위로해주었고 송아가 비를 맞으면 우산을 씌워주고 싶어했다. 송아가 다리를 저려하면 다리저림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주려 했고, 다 쏟아진 커피를 먹는 그녀에겐 자신의 커피를 바꿔서 주었다. 정경의 표현대로 말보다 음악으로 위로했던 준영은 송아 앞에서만은 언제나 행동이 먼저였다. 다른 이가 아니라 직접.
음악으로 위로할 수 있다고 했지만 송아에게는 음악만 갖고는 위로가 안된다. 그가 정경에게 건네는 위로는 간접적이다. 직접적인 위로는 제 몫이 아니다.
제 몫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준영의 행동은 제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제한적인 위로는 한계가 있다.
준영은 자신이 위로받은 것처럼 송아를 위로해주고 싶다. 그러나 다른 이가 그녀를 위로해주는 것은 싫다.
준영과 송아는 일로 만난 어정쩡한 관계다. 서로 준영씨, 송아씨로 부르는 것처럼
그 어정쩡한 관계에서 위로를 뭘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준영은 스스로가 그 제약을 푼다
우리 친구할래요?
직접적으로 위로할 수 있는 사이
연주는 언제든지 리허설이 가능하지만 사랑은 리허설이 불가능하다
리허설로 시작했지만 준영과 송아의 사랑은 진행 중이다.
리허설룸에서 준영이 친구하자고 하자마자 둘은 사무실 밖에서도 만난다.
차 안에서 우산을 씌워주고 싶었던 준영은 송아의 곁에서 같이 우산을 쓴다
음악에 상처받은 날 우산을 씌워주고 싶었지만 우산은 씌워주지 못했던 준영이 사랑에 상처받은 송아에게 우산을 씌워준다
송아가 비를 맞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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