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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스코를랜드 뚜벅이 여행기 5. 벤로막
[시리즈] 겨울 스코틀랜드 뚜벅이 여행기 · 겨울 스코틀랜드 뚜벅이 여행기 0. 서론 및 숙소 이동 · 겨울 스코틀랜드 뚜벅이 여행기 1. 글렌피딕 · 겨울 스코틀랜드 뚜벅이 여행기 2. 발베니 · 겨울 스코틀랜드 뚜벅이 여행기 3. 스페이사이드 쿠퍼리지, 글렌알라키 · 겨울 스코틀랜드 뚜벅이 여행기 4. 벤리악, 고든앤맥페일 안녕하세요.아일라 섬은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부네요. 기온은 10도정도 되는데 체감온도는 0도라고 합니다.메일에 온 아드벡하우스 근처 숙소에서 머물고 있는데 매일 아침부터 열심히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외관상 특별해보이진 않네요.그럼 스페이사이드 마지막 증류소 벤로막 시작---------------------------------------------------------벤로막 증류소는 엘긴과 인버네스 중간에 있다.벤로막을 마지막으로 나는 스페이사이드를 떠나 글래스고로 향할 예정이다.Forres 기차역까지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기차역에서 증류소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 캐리어를 끌고 열심히 걸어서 도착했다.투어 시작까진 두시간정도 텀이 있어 캐리어만 맡겨두고 밥을 먹고 올 생각으로 비지터 센터로 향했다.역시나 오늘도 투어는 나혼자 진행된다고 했다.스페이사이드에서 글렌피딕을 제외한 모든 증류소가 나 혼자였다.짐을 맡기는 중 원한다면 투어를 일찍 시작해준다고 하셨다.투어를 마치고 인버네스로 넘어가면 저녁이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절약을 할 수 있었다.그렇게 투어 시작.증축 당시 찰스 왕세자가 방문하여 직접 통입했다는 캐스크.기념으로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인이 거의 다 지워져 알아보기 힘들었다.벤로막도 벤리악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매우 한정적이었다.그리고 다른 증류소와 다르게 한 공간에 모든 기계들이 모여있었다. 대형 증류소보다 생산량이 적어 한명의 직원이 모든 프로세스를 담당한다고 하였다.스피릿을 캐스크로 옮겨담는 공간이다. 가이드가 여기에 올해 첫 캐스크가 있을거라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숙성고 입장. 벤로막은 숙성고도 입구까지밖에 볼 수 없었다.특이했던 점은 각 연도별 첫번째 캐스크를 입구에 모아두고 있는 것이였는데 저 오른쪽에 혼자 떨어진 캐스크가 있었다.25년도 첫번째 캐스크다.아까 없었던 이유가 오전에 통입이 끝나서 여기로 옮겨졌나보다.첫번째 캐스크를 본 첫번째 사람이 되었다.운이 좋다.증류소가 생각보다 작아 금방 한바퀴를 돌 수 있었고 마지막 코스인 시음장소로 이동했다.사실 투어 가격이 95파운드 정도여서 이정도면 살짝 돈이 아깝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다녔는데 바틀을 보고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벤로막 15년벤로막 21년벤로막 12년 퍼필쉐리 증류소 한정바틀벤로막 35년(현재는 구할 수 없는 바틀이라고 한다)벤로막 40년시음바틀을 보고 들떠서 테이스팅노트고 뭐고 그냥 마시기 바빴다.그래서 자세한 기록이 없다. 진정하고 남겨뒀어야 하는데,,오피셜 라인인 15년과 21년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취향이 굉장히 갈리는 바틀이라고 설명해주셨는데 난 다행인지 15년이 더 취향이었다.증류소 한정바틀은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맛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빨리 35년과 40년을 마셔볼 생각뿐이었다.35년의 경우 43도로 낮은 도수에 맞게 굉장히 편하게 마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맛은 어디하나 튀는 것 없이 밸런스가 상당했다. 투어 가이드도 편하게 집 소파에 앉아서 즐길 수 있는 위스키 아니냐며 극찬을 했다.40년은 뭐,,, 얼마전 갤 리뷰에서도 나오긴 했지만 미친놈이었다.건과일 향과 약한 헤이즐넛 향으로 시작해 입에 넣으면 진득한 당절임과일의 맛이 올라온다. 그리고 은은하게 남는 과일과 피트 약간의 오크향.이걸 더 오래 즐기지 못해 아쉬울 뿐이었다.다음 기차시간까지 30분정도밖에 없어 최대한 천천히 음미하며 마셨다.증류소에서 판매중인 40년의 가격. 여기서도 450만원 가까이 하는 엄청난 가격이었다.매장에 전시된 벤로막 50년투어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40년이 더 맛있다고 한다.기념품샵을 한바퀴 돌아보며 투어를 마무리 했다.증류소 한정바틀은 100파운드였는데 현재 판매가 되지않는 듯 했다. 전시되어 있지도 않고 가격도 직원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었다.40년의 여운을 간직하며 증류소를 떠나 인버네스로 향했다.인버네스에서 글래스고로 가기 전 1박을 했는데, 이유는 단 하나였다.클라이넬리쉬 핸드필 바틀을 사고싶었다.이것때문에 벤리악 증류소 한정바틀도 포기했다.인버네스에서 증류소가 있는 브로라 역까지는 편도 2시간 40분이 걸린다. 투어는 한시간 반정도 진행되는데 한시간 반을 위해 왕복 악 6시간을 쓰기로 했다.아침7시에 기차를 타고 브로라역으로 가던 중 문제가 생겼다.도착 두 정거장 전에 기차가 멈추더니 40분이 넘도록 움직이지 않는다. 선로에 무슨 문제가 생겨 건너갈 수 없다며 해결중이라고 한다.그렇게 약 한시간 가까이 기다리니 방송이 나왔다. 못간다고. 인버네스로 돌아가야 한단다. 돌아가다가 다른 역에 내려서 브로라로 가는 기차를 타게 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투어는 늦었고, 가봤자 증류소를 찍고 돌아올 시간도 없다.직원에게 상황설명을 하니 겨울철엔 종종 있는 일인가보다. Scotrail 홈페이지에서 지연/정지 환불을 신청하라고 한다.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길에 증류소에 전화하니 투어비용은 규정상 48시간 이전이만 환불이 가능하다며 여행자 보험을 알아보라고 한다. 여행자보험에서는 보장이 안되는 범위라고 했다. Scotrail 회사와 얘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기차표라도 100퍼센트 환불해주면 다행이지 라는 생각이다. 이건 아직 진행중인 내용으로 결과가 나오면 업데이트 하겠다.증류소 투어를 가려고 일부러 글래스고로 가는 버스도 늦게 잡아뒀다. 그치만 투어에 갈 수 없었으니 버스시간을 당기고 싶었다.안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인버네스에서 하루 쉬었다. 사실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호텔 체크아웃 후에 로비에 있는 바에서 4시간정도 대기하다 버스를 타고 글래스고로 이동했다.벤로막을 마지막으로 스페이사이드 끝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은 간단하게 스페이사이드 요약 및 글렌고인으로 찾아오겠습니다.- dc official App
작성자 : Tulbae고정닉
정성글) 레닌-스탈린 시기 현실사회주의 (2/3)
1917년 2월 차르 체제가 무너졌다. 10월에는 레닌에 의해 임시정부가 무너졌다. 12월에는 레닌에 의해 민주적 헌법을 만들려던 제헌의회가 해산되었다. 그 결과, 레닌과 소련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했다. 곧이어 적백내전이 벌어졌다. 적군과 백군, 지역의 전제 군주들, 일본군, 미국 원정대, 전쟁 포로 출신의 체코 군대 등 온갖 세력이 참전했고, 전쟁은 3년간 지속되었다. 적군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옛 차르 군대의 장교들을 활용해야 했지만,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트로츠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장교에게 정치장교를 배치하였다. 모든 명령은 정치장교의 서명이 필요했고, 정치장교는 군인들에게 사회주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이중 행정' 체제는 군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영역에 도입되었으며, 이는 소련 행정 체제의 기원이 되었다.레닌 정권이 생각했던 최우선의 과제는 소유주를 경영에서 배제하고 사유 재산을 국유화하여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업에 소유주가 사라진 상태로 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자신의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회사의 성패와 직결되기에 회사의 이윤을 증대시키려 들 만한 동기와 권력을 가진 이가 있어야 회사가 굴러가는 게 아닌가? 레닌이 내놓은 답은, 경제를 군대처럼 조직하는 것이었다. 즉, 경제 통제 기관이 소유주 대신 관리자를 임명하고, 이들이 기관에서 하달한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에 따라 승진, 해고, 굴라그행이나 처형이 결정되는, 하향식의 위계적인 조직이었다.내전이 한창이던 절박한 상황에서 레닌은 '전시 공산주의'를 도입하여 경제를 군사적으로 동원하는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레닌은 1차 대전 동안 독일이 보여준 경제 통제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독일이 단일 중앙기관을 통해 6,600만 명의 경제생활을 지휘한 것처럼, 계급의식을 갖춘 노동자들도 경제를 지휘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 그렇다면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시 경제는 어떻게 작동했을까? 발터 라테나우의 원자재부가 운영했던 독일 전시 경제는 국채를 팔고 화폐를 찍어내어 이를 통해 전쟁 물자를 사들이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물가가 오르자, 정부는 지불하는 돈의 상한선을 정해 가격 통제를 시행했다. 이에 정부가 원하던 물자들이 민간 부문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정부는 배급제를 강제했다. 정부는 상품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우선순위가 낮은 상품의 생산에 중요 물자가 투입되는 것을 제한했으며, 생산 설비의 용도를 결정하고, 공장 확장과 건설을 지시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이 과정에서 화폐의 흐름은 단순한 회계 도구가 되었다.이러한 독일의 전시 경제는 소련 전시 공산주의의 영감이 되었다. 전시 공산주의는 산업을 국유화하고, 원자재를 고정된 가격으로 공급하고, 배급제를 도입하고, 우선순위가 낮은 상품의 생산에 중요 물자가 투입되는 것을 제한하였다. 이렇게 중앙계획경제가 출범했다. 공장 관리자들에겐 중앙으로부터의 요구가 날아들었고, 공장 관리자들은 암시장에서 거래하든, 구걸하든, 훔치든, 어떻게든 부족한 자원을 충당하여 요구된 생산량을 최대한 맞추어야 했다.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지극히 부패했다.전시 공산주의는 여러 참사를 낳았는데, 그중 가장 큰 참사는 농업이었다. 볼셰비키는, 초기에는 농민들이 알아서 토지를 재분배하도록 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도시에 보낼 식량이 필요해졌다. 농민들은 사치품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식량을 거래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식량을 징발하였고, 농민들은 곡식을 숨기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이 굶주렸다. 도시 노동자들은 식량 부족으로 인해 시골의 농장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도시의 공장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처럼 전시 공산주의는 비효율적이고 부패했으며 여러 참사를 낳기도 했으나, 전쟁에 필요한 자원 생산과 통제에 성공하였고, 볼셰비키는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적백내전의 결과, 약 1,000만 명이 사망했다. 그중 약 100만 명은 적군, 200만 명은 백군이었으며, 나머지 700만 명은 민간인이었다.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3분의 1로 축소되었고, 산업 생산량은 5분의 1로 감소했으며, 기대수명은 20세로 하락했다. 수많은 제정 러시아의 장군과 관료, 자유민주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러시아의 대부분은 소련으로 재편되었고, 권력은 레닌의 손아귀에 들어왔다.20세기 초 러시아는 그 누구도 사회주의가 처음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지역이었다. 하루 4달러가 일반적인 생활 수준이었고, 기대수명은 30세에 불과했다. 부유하고 교육받은 계층의 대부분은 귀족이었으며, 인구의 대다수는 영주제와 봉신제의 봉건적 지배 아래 있었다. 사유 재산, 프롤레타리아나 부르주아의 통치 같은 개념은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서유럽의 산업혁명을 거의 공유하지 못했다. 사회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산업 발전 단계까지 러시아는 아직 너무 멀리 있었다.이러한 상황에서, 레닌과 그의 추종자들은 원조에 대한 기대를 품었는데, 그 기대의 근거는 신앙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에 따르면, 곧 서유럽의 산업 국가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이 국가들이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가난한 농업국인 러시아에 원조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가 작동하는 산업 발전의 단계로 러시아를 이끌겠다는 계획이었다. 레닌은 특히 독일에 기대를 품었다.실제로는 어땠을까? 공산주의 정권은 헝가리에서 잠시 정권을 잡았고, 독일 남부 바이에른에서도 잠깐 등장하긴 했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난 시점에서 현실사회주의 국가는 레닌이 이끄는 러시아 하나뿐이었다.원조는 없었다. 결국 전시 공산주의에서 신경제정책(NEP)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가격이 변동하고, 물건을 사고팔며 부자가 될 수 있으며, 공장 경영자들은 이윤을 창출하고, 상인과 중개인 계급이 성장할 수 있는 경제. 자본주의이지만 국가 통제 아래에 있고, 이윤 기반으로 운영되지만 사회화된 국가 기업들. 그것은 편의적 조치이자 편법이었다. 이러한 편법이 가능했던 이유는 소련 정부의 장악력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중반 기준으로도 소련의 계획 당국이 자재 잔고를 추적할 수 있었던 품목은 100개 정도에 불과했다.물론 이러한 상품들의 유통은 계획 당국에 따라 이루어졌다. 계획 당국은 공장 관리자들에게 목표를 할당하고, 달성치 못하면 처벌을 내렸다. 계획을 초과해 만들어진 상품들은 블라트(blat), 즉 권력을 가진 거물과의 연줄에 따라 거래되었다. 그렇기에 인맥이 중요했다. 기업들이 중앙정부, 블라트로도 필요한 원자재를 구하지 못할 때에는 톨카치(tolkachi)라는 비공식 물물교환 중개업자들에게 의존했다. 톨카치는 원재자를 누가 보유하고 있는지, 그 가치는 얼마인지,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 등의 정보를 갖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자본주의 기업 내부 조직은 소련 계획 당국의 자재 잔고 관리 방식과 매우 비슷하게 작동한다. 기업은 직원들에게 목표를 할당하고, 달성 여부에 따라 승진부터 해고까지가 결정된다. 직원들은 호의를 주고받으며, 업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인맥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자본주의 기업은 훨씬 더 큰 시장경제에 있으므로 '만들 것인가, 살 것인가'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어떤 자원을 기업 내에서 인맥을 통해 확보할 것인가, 아니면 예산 부서에 요청하여 외부에서 구입할 것인가를 효율성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 기업 주위를 수많은 중개상들이 감싸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결정권의 존재는 기업들을 효율적으로 유지하는 강력한 요인이다. 하지만 소련의 개별 공장들 주위에는 폭넓은 자본주의 시장도, 수많은 중개상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비공식적이고 제한적인 톨카치만이 존재했다. 그 결과 소련의 경제는 매우 비효율적이었다.자재 잔고 통제는 비효율적이지만, 전시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사회가 이를 채택한다. 전시와 같은 총동원의 시간에는 아마도 그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언제나 총동원의 시간 속에서 살길 바랄까?-「20세기 경제사: 우리는 유토피아로 가고 있는가」(브래드퍼드 들롱)를 읽고 작성함.
작성자 : 땅콩쓰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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