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메카=류종화 기자] 1980~90년대만 해도 TV를 '바보상자'라 부르곤 했다. 그 전에는 만화책 화형식이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 전근대 시대쯤 가면 삼국지 등 소설책에 대해 이러한 색안경이 씌워졌다. 시대별로 꼭 하나 이상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마녀사냥 대상이 된 셈인데, 지금은 게임 질병코드로 바통이 이어지고 있다.
사이버펑크 2077 세계로 무대를 옮기면, 그 자리를 브레인댄스가 차지한다. 줄여서 BD라고도 부르는데, 블루레이 디스크와 헷갈리니까 기사에서는 정식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이 브레인댄스라는 건, 가상현실(VR)의 미래 버전이다. 콘텐츠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넘어서, 아예 신경계를 통해 직통으로 뇌에다 쏴 준다. 시각이나 청각은 물론, 촉감이나 후각, 미각, 심지어 감정과 생각, 기억까지 느끼게 해 준다. 심지어는 녹화 현장을 3인칭 시점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유령 같은 체험도 가능하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원하는 콘텐츠를 생생한 꿈처럼 경험할 수 있다.
자연히, 2077년 나이트 시티에서는 TV나 영화, 컴퓨터 게임보다도 브레인댄스가 각광받고 있다. 현실성이나 실감 측면에서 기존 미디어를 압살할 정도다 보니 당연한 결과다. 조금 산다 하는 가정에는 거실에 브레인댄스를 즐길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각종 콘텐츠와 감상 환경을 제공하는 브레인댄스 아케이드(PC방 개념)나 바 등도 널려 있다.
그렇다면 브레인댄스에서는 어떤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브레인댄스 콘텐츠는 개인의 경험을 녹화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초기엔 거창한 녹화기기를 껴야 했지만, 지금은 조그마한 안경이나 안구 대용 사이버아이로도 손쉽게 녹화가 가능하다. 이를 이용해 자신의 실생활이나 철저한 기획을 통해 흥미로운 체험을 기록하면 그게 바로 브레인댄스다. 완벽한 가상 체험은 불가능할테니, 아마 게임은 브레인댄스에 밀리지 않고 살아남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앞서 말한 일상물이나 기획물은 보통 연예인이나 브레인댄서(유튜버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브레인댄스 전문 셀럽)들이 제작한다. 예수의 고난을 체험하고, 열반의 상태를 재현하는 종교적 브레인댄스도 있다. 물론 성인용 콘텐츠도 커다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교화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범죄자가 행한 죄목을 끔찍하게 재구성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반복해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끔찍하거나 혼란스러운 체험도 있는데, 좋지 않은 취향을 가진 마니아들에게는 이쪽이 더 선호된다고 한다. 일명 '블랙 브레인댄스'라고 불리는 이러한 콘텐츠는 범죄 행각이나 변태성욕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의 브레인댄스 콘텐츠는 편집을 거쳐 불필요한 감정과 찌꺼기 기억, 짜투리 생각, 너무 자극적인 오감을 잘라낸 형태로 출시되지만, 블랙 브레인댄스는 그런 과정을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정신적 피해를 입을 위험이 크지만, 색다른 것을 찾는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브레인댄스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범죄조직이 있을 정도다.
아무튼, 브레인댄스는 양지건 음지건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한 번 재생하면 수 시간을 넘어 수십 시간에서 며칠동안 계속되는 콘텐츠도 많은데, 컴퓨터 본체에 해당하는 '피더'는 그 동안 사용자가 말라죽거나 굶어죽지 않게 신진대사를 유지해주며 계속해서 브레인댄스에 탐닉하게 돕는다. 그렇지만 역시 운동부족, 영양결핍 등은 피하기 어려우며, 정신적 문제도 겪는다. 대표적인 것이 BDDID라 불리는 정체성 장애 정신질환이다. 특정 브레인댄서와 자신을 동일시해, 실제로 자신이 호화 저택에 사는 셀러브리티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자신이 진짜 셀러브리티고, 현실에 존재하는 실제 인물은 자신을 사칭한 사기꾼이라며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블랙 브레인댄스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일반 브레인댄스도 타인의 감정과 경험을 매우 자극적으로 체험하는 과정에서 불감증에 빠지거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를 낳는데, 편집되지 않은 날감정이 담긴 콘텐츠는 그 정도가 더하다. 이러한 콘텐츠의 위험성은 게임 내에서도 꽤나 초반에 접할 수 있는데, 잠깐의 플레이만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V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대체 이 위험한 장비를 왜 보급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아무튼, 2077년 나이트 시티에서는 많은 이들이 브레인댄스에 말 그대로 '중독' 되어 현실에서 눈을 돌린 채 살아가고 있다. 얼핏 영화 '인셉션'이나 '매트릭스'에 나오는, 꿈이나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보는 듯 하다. 본문 맨 처음 언급한 다른 엔터테인먼트 플랫폼과는 달리, 실제 신경/정신적 중독 현상을 보인다. 이런 미디어 플랫폼이야말로 철저한 규제와 질병 관리 하에서 안전하게 사용돼야 마땅하지만,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거실에 앉아 브레인댄스를 보며 여가를 보내는 사회에서 그런 걸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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