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메카=신재연 기자] 예술계에서는 성공한 첫 작품 이후 다음 작품에서 다소 부진한 성적을 보이는 경우를 곧잘 만나볼 수 있다. 첫 작품에서 전력을 쏟아 두 번째 작품에서 힘이 빠지든, 운으로 성공한 것을 자신들의 실력이라 생각해 방심하든 말이다. 오죽하면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말이 생길까. 이는 비단 드라마나 영화에 그치지 않고, 게임 개발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다.
이에 많은 개발자들이 첫 번째 성공에 방심하지 않고, 더 나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고려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두 개 이상의 대중적 장르 조합이다. 게임 시스템 단계에서 다양한 장르 조합을 시도하고 개발사가 가진 개성을 더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게임을 선보이는 것이다.
지난 3일 출시된 인디게임 ‘키친 크라이시스’ 또한 전작인 팀파이트 매니저와는 전혀 다른 장르를 조합하고 개발사만이 가진 매력을 더한 게임이다. 전작 출시 초와 마찬가지로, 부지런한 피드백 수용과 밸런스 조정으로 쾌적한 플레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만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타워 디펜스와 요리 시뮬레이터, 로그라이크를 섞은 이번 신작은 과연 어떻게 조합됐으며 어떤 방식으로 업데이트를 이어나갈까? 이에 팀 사모예드의 남현빈 개발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시끌벅적한 외계인 vs 인간의 요리 디펜스, 키친 크라이시스
키친 크라이시스는 지구인이 외계인에게 납치돼서 이들이 요구하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 시뮬레이터 타워 디펜스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다양한 요리사 캐릭터를 선택해 외계인이 원하는 대로 식사를 제공해야 하고,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면 죽는다.
플레이어가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는 재료나 도구 배치 등, 디펜스를 준비하는 단계다. 플레이어는 조리도구와 재료를 잘 배치해 동선을 효율적으로 설계해야하고, 이 효율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추구하느냐에 따라 제작 속도가 빨라지고 더 많은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만 들으면 다소 막연할 수 있지만, 기존 타워 디펜스 장르에 비유할 경우 요리사는 병사, 음식은 탄환, 조리도구와 재료는 탄환을 강화하는 버프, 외계인의 포만감이 체력이라고 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각 웨이브를 완료하면 음식을 판매한 만큼 재화를 획득할 수 있고, 획득한 재화로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강화하며 다음 웨이브를 준비해야 한다. 강화로 얻을 수 있는 버프는 외계인의 발을 묶거나 더 많은 포만감을 제공하는 음식 자체의 버프부터 더 넓은 범위에 음식을 보내거나 조리 속도를 높이는 간접적인 버프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키친 크라이시스의 초기 버전은 오버쿡 류의 단순한 요리 시뮬레이터였다. 하지만 여러 회의와 테스트를 거쳐 타워 디펜스로 장르가 바뀌게 되었고, 단순 시뮬레이터에서 전략적 요소가 더해진 만큼 밸런스를 잡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갔다. 그 중 하나가 별도의 시뮬레이션 툴을 개발하는 일이었는데, 시뮬레이션으로 취합한 데이터로 밸런싱을 더욱 세밀하게 잡아 데모판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에 도움을 받았다. 실제 플레이 환경과는 괴리감이 있지만, 대략적인 개요를 잡는 일에는 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남 개발자의 말이다.
데모판에서 기본 시스템을 선보이는데 집중했다면, 정식판에서는 더욱 쾌적한 게임 경험 제공을 위해 몇몇 기능을 추가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캐릭터의 동선을 제어할 수 있는 ‘돌’이다. 사실 돌은 플레이어의 개입 없이도 돌아가야 한다는 게 팀 사모예드의 목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콘텐츠였지만, 데모 당시랑 동선을 세밀하게 컨트롤하고 싶어하는 유저들의 수요를 느끼고 정식 출시판에 추가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형제가 함께하는 개발사, 팀 사모예드
팀 사모예드는 친형제 2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팀이다. 형인 남현빈 개발자는 아트를, 동생인 남현욱 개발자는 프로그래밍을 맡고 있으며, 기획은 두 사람이 함께 진행한다. 전작으로는 e스포츠 전략/관리게임 팀파이트 매니저를 출시했고, 다음으로 출시한 작품이 바로 키친 크라이시스다.
신생 개발사가 첫 작품의 성공 이후 부담감을 느끼는 일은 흔하다. 팀 사모예드 또한 이런 부담감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남 개발자는 “전작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아예 부담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크게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가 인정을 못 받는다면 그 다음 게임에서 잘 만들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의외의 덤덤한 평을 남겼다.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던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게 뿌듯하다”며 말을 이은 남 개발자는 “팀파이트 매니저 이후 차기작을 기획하며 여러 시도가 있었는데, 오랜 시간 개발하며 플레이 자체가 재밌는 게임을 고민하다 핵심 플레이가 재밌는 게임을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키친 크라이시스의 알파 버전에 해당하는 게임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설명한 초기 버전에서 게임을 전환하게 된 큰 계기 중 하나는 FGT를 통한 테스터들의 평가였다. 원래는 요리 시뮬레이터에 자동화 매커니즘을 더한 식당 경영 게임을 목표로 삼았지만,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동선 설계는 재밌었는데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들어 목적을 강화하는 단계를 거쳤고, 그 결과 나오게 된 작품이 키친 크라이시스였다고.
팀 사모예드의 다음, 키친 크라이시스 안정화 후 이어가겠다
이렇게 출시된 키친 크라이시스는 출시 이후로도 많은 수정이 이루어졌다. 시뮬레이션은 유저들의 플레이 스타일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해, 밸런스 상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자체 제작 에셋을 많이 사용한 탓에 예상치 못한 크래시 오류 등도 다수 발생해 이를 수정하는 일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런 이유로, 팀 사모예드는 당장 신규 콘텐츠 업데이트를 준비하는 것보다 밸런스와 크래시 오류 수정에 우선 힘쓸 예정이라 전했다.
팀 사모예드가 출시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특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요리사들의 조리 동선 AI다. 기존 목표는 배치를 디테일하게 손대지 않아도 조리가 가능하되,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곳에 업무가 배치되지 않으면서 최소화된 동선을 구성하는 AI를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렵다며, 효율적인 흐름을 갖출 수 있는 AI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형인 남현빈 개발자는 인터뷰를 통해 “항상 저희 게임과 팀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린다. 저희뿐만 아니라 국내외 인디게임에 많은 관심을 주시면 좋겠다. 이런 응원으로 매번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게임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성원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동생인 남현욱 개발자는 서면을 통해 “게임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시고 재밌게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하다. 게임 크래시 이슈나 시뮬레이션 버그 등의 이슈로 플레이어분들에 게임 하는데 있어 많은 불편함을 겪은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다. 보내주시는 의견들은 모두 귀담아 듣고 있으며, 문제가 되는 부분들은 모두 최대한 빠르게 수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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