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메카=서형걸 기자] 제목 그대로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미래세계의 맹인’은 기적의 분식집, 썸썸 편의점 등으로 유명한 테일즈샵의 비주얼 노벨이다. 기적의 분식집, 썸썸 편의점보다 이른 시기에 모바일로 출시됐던 게임이지만, 최근에 스팀과 스토브를 통해 PC버전이 나왔다. 스팀에 나온 작품들로 테일즈샵 비주얼 노벨의 매력에 빠진 이들에게는 싱싱한 신작이라 할 수 있다.
분식집 또는 편의점을 경영하는 시뮬레이션 요소가 가미된 기적의 분식집, 썸썸 편의점과 달리, 미래세계의 맹인은 글, 그림, 그리고 소리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게임을 즐긴다기보다 소설을 읽는 듯 하며, 때로는 다소 심심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하지만 남녀 주인공의 달콤 쌉싸름하면서 절절한 로맨스로 인해 ‘역시 테일즈샵’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작품이다.
※ 일부 엔딩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남녀 주인공의 만남
미래세계의 맹인 이야기는 주인공 ‘시재’의 시선과 심리상태를 토대로 전개된다. 생기 없는 눈에 짙은 다크서클,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까지 유령이라 착각할만한 외모를 지닌데다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냉소적이다. ‘중2병’이라도 걸린 것 아닌가 오해를 살만한데, 실은 지독한 희귀 불치병을 앓고 있다. 바로 ‘맹인병’이라는 미래세계의 병이다.
맹인병은 태어나자마자 이식 받은 전자 각막에 이상이 생겨 홀로그램을 보지 못하는 질환이다. 도심 속 건물, 산에 자란 나무, 심지어 사람의 헤어스타일과 패션까지 모든 요소가 홀로그램으로 구현되어 있는 세상에서 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 있어 치명적이다. 게다가 단순히 보지 못하는 것을 넘어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뽐내는 건물은 줄지어 늘어선 성냥갑으로, 산에 자란 나무는 회색 기계로, 개성 넘치는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들은 똑같은 홀로그램 슈트와 머리모양을 한 복제인간처럼 보인다. 동일한 공간에 산다 하더라도, 일반인과 맹인은 아예 다른 세계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봐도 시재는 기적의 분식집 주인공 ‘빙삭공’ 차설화 혹은 썸썸 편의점 주인공과 비교를 불허하는 ‘매운 맛’ 배경스토리를 지닌 인물이다. 대인관계를 맺는데 극도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며, 불안한 심리 상태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화면만 보고 있는 플레이어조차 기가 질릴 정도. 그런데 무채색 그 자체인 시재의 삶에 형형색색의 물감을 가져다 주는 인물이 여자 주인공 ‘초현’이다.
시재와 초현의 첫만남은 등굣길 교문에서다. 시재에 눈에 절대 보일 리 없는 ‘평범한 옷’을 입은 소녀가 교문 앞에서 ‘고전미술부’라는 독특한 동아리를 모집하고 있었고, 그 소녀는 시재에게 자신이 만든 동아리에 들어올 생각이 없는지 묻는다. 이 장면에서 게임의 키비주얼이기도 한 CG가 나타나는데, ‘마치 세상에 괴리된 듯, 이질적인 한 명의 소녀가 있었다’라는 시재의 독백처럼 초현의 모습이 플레이어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달달하기만 하면 로맨스가 아닙니다
시재는 자신의 담당의사 유진의 권유에 따라 초현의 동아리에 가입하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눈에 보일 리 없는 홀로그램이 초현의 옷과 동아리 부실에만 정상적으로 보여지는지에 대한 호기심과 의사의 협박에 가까운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맹인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오히려 맹인의 시선이 더 진실되다고 말하는 초현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두 사람은 결국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풋풋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도시락 데이트를 비롯, 다 죽어가는 연애세포 자극하는 달달한 로맨스에 황홀함을 느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찝찝하다. 일자 별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여러 ‘떡밥’이 풀렸지만, 풋풋한 연애 이야기로 끝난 엔딩에서는 하나도 건져 올린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6일차에 마무리되는 1번 엔딩은 다른 것보다 이른 시점에 이야기가 종료되는 만큼 핵심 스토리는 모두 빠져있다. 보다 깊은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6일차 전까지 제시되는 선택지를 잘 골라야 하며,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해야 한다.
6일차 이후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나머지 엔딩 루트는 미리 알고 플레이하면 재미가 반감되기에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앞선 6일보다 충격적인 내용이 연이어 제시된다는 점이다. 주인공 시재가 맹인용 선글라스를 쓰지 못하는 이유, 초현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린 작가의 정체 등이 밝혀지며, 그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재의 위태롭기 그지없는 심리상태가 보여진다. 도입부에 나타난 시재의 냉소적 독백은 애교처럼 보일 정도로 씁쓸한 맛이 난다.
하지만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이처럼 큰 위기를 극복한 뒤 맞이한 해피엔딩은 한층 더 기쁘다. 1번 엔딩의 매력이 풋풋함이라면,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는 4번 엔딩은 성숙함이 돋보인다. 앞으로 그 어떤 거친 풍랑을 만나더라도 함께 이겨낼 시재와 초현 커플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미래세계의 로맨스는 달콤 쌉싸름하다
미래세계의 맹인은 등장인물의 복잡한 심리, 다소 난해하고 어두운 세계관 등 호불호가 갈릴 요소가 없진 않지만, 달콤 쌉싸름한 로맨스는 부족함 없이 만끽할 수 있다. 오히려 기적의 분식집, 썸썸 편의점에서는 특정 엔딩에 ‘광기’에 가까운 요소가 있었던 반면, 미래세계의 맹인에서는 애절함과 달콤 쌉싸름한 맛만 느껴진다. 최근 스토브 출시를 기념해 30% 할인된 가격에 판매 중이니, 미래세계의 로맨스 맛을 한번 느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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