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권명관 기자] 매년 초 전 세계 IT 업계는 미국 라스베가스에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Consumer Technology Show)’를 주목한다. TV, 오디오, 비디오 등 일상 생활과 밀접한 전자제품을 주로 소개하는 CES는 새로운 IT 기술로 무장한 전 세계 기업이 제품, 서비스 등을 미리 발표하기 때문이다. VCR(1970년), CD플레이어(1981년), DVD(디지털다기능디스크, 1996년), 포켓PC(2000년) 등 시대를 풍미한 가전 제품들이 CES를 통해 시장에 등장했다.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IoT(사물인터넷), HDTV, 드론(2015년), 디지털 헬스케어(2016년), 자율주행차, 증강현실, 5G LTE 등 4차 산업혁명 기술 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올해 초 열린 ‘CES 2023’에는 다소 의외의 인물이 기조연설 단상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은 디어앤컴퍼니의 존 메이 최고경영자(CEO)다. 디어앤컴퍼니는 뛰어 오르는 사슴으로 알려진 농기계 브랜드 ‘존 디어’로 유명한 농기계 제조업체다. 미국 내 1위, 전 세계 농기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CES 2023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디어앤컴퍼니, 출처: 존 디어 유튜브 채널
디어앤컴퍼니는 지난 2019년부터 CES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CES에 나타난 농기계 제조사로 인해 주목을 받았다. 이후 매년 단골처럼 등장했으며, 지난 2022년에는 완전 자율주행 트랙터를 전시하고 시승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관심을 끌었다. 자율주행 기술을 통해 알아서 움직이며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수확하는 대형 농기계를 선보이자, ‘농업계의 테슬라’를 뜻하는 별명으로 ‘농슬라’라고도 불린다.
디어앤컴퍼니는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대형 트랙터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완전 자율주행 대형 트랙터를 선보였다. 자동차나 사람이 많은 일반 도로에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대형 논밭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CES 2023에서 디어앤컴퍼니는 농부들이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조작하는 것만으로 트랙터가 스스로 밭갈기, 씨뿌리기, 비료 주기 등을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 카메라와 고성능 GPS 등을 장착해 작물을 해치지 않으며 농장을 다니고, 잡초만 골라내 제초제를 살포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을 입은 농기계의 화려한 변신이다.
자율주행 트랙터, 출처: 존 디어
전동화, 대형화 변화와 함께 주목받는 다목적 전기차
이처럼 농장 내 논밭을 누비는 트랙터와 같은 농기계는 전동화, 대형화 추세로 접어들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의하면, 국내 농가에 보급된 농기계 대수는 2000년 156만 대에서 2020년 109만 7,000대로 약 1/3 줄었다. 이중 트랙터와 콤바인 등 대형 농기계는 2007년 32만 9,000천 대에서 2020년 37만 대로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경운기는 77만 1,000대에서 53만 9,000대로 감소하는 등 농기계 대형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정부는 농업인력 부족과 고령화에 맞춰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농업 기계화율을 더욱 높여나간다는 계획이다.
농기계 전동화, 대형화와 함께 또 하나의 화두는 탄소절감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노력 중이다. 수소, 전기 등 친환경 에너지로 동력을 전환하는 일반 자동차 시장과 달리, 농기계는 여전히 화석연료를 주 원료로 사용한다. 이에 농가에서 주로 사용하는 농용 동력운반차를 수소, 전기 등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안이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동력 경운기를 목적기반모빌리티(Purpose Built Vehicle, 이하 PBV) 중 하나인 다목적 전기차로 대체하는 농가도 늘고 있다. 골프장이나 리조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카트와 같은 다목적 전기차는 경운기를 대체할 수 있는 농용 동력운반차로 활용할 수 있다. 비료, 농약, 농기계 등의 농자재 등을 운반하기 수월한 적재함을 갖출 수 있으며, 경운기와 달리 일반 자동차와 같은 주행방식은 다목적 전기차의 장점 중 하나다. 여러 요인으로 상승하고 있는 면세경유 대신 전기를 사용해 유지비도 저렴하다. 국내 농기계 대표 기업 중 하나인 대동도 농업용 전기차 ‘EVO100LA’를 출시한 바 있다.
대동의 다목적 운반차 ‘EVO100LA’, 출처: 대동
특수 목적 친환경 전기차(PBV) 플랫폼 기업 이노모티브도 있다. 다목적 전기차를 통해 경운기를 대체하고자 하는 이노모티브는, 최근 베트남의 ‘PHU DUONG ORIGINAL COMPANY LIMITED(이하 푸동)’와 협약을 맺고 유명 휴양지인 다낭을 중심으로 객실수 65만 개를 가진 3만여 리조트의 현지 관리용 다목적 전기차(농용 동력운반차)를 공급한다고 전했다.
이노모티브는 연내 베트남 현지에 적합하도록 다목적 전기차를 개선한 뒤, 다낭 등 현지 리조트 3개 소에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과 차량 등을 공급해 실증할 계획이다. PHU DUONG사는 리조트 선정 및 현장 설치를, 이노모티브는 배터리 교환식 다목적 전기차와 배터리 충전 스테이션 등을 공급하며 현지에서 운영 관련 기술을 이전한다.
이노모티브 서국현 본부장과 푸동 푸동쾅 대표(왼쪽부터), 출처: 이노모티브
실증을 통해 운영상 문제점과 아이디어를 반영하여 상품성을 높이고 24년부터는 본격적인 공급을 시작할 예정이다. 또한 24년 하반기에는 베트남 현지 생산을 위한 작업도 진행해, 유명 휴양지들이 많은 ASEAN 시장 진출이 최종 목표로 연간 2만대 규모의 생산 라인 구축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노모티브는 이번 협약을 통해 베트남에 다목적 전기차를 공급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 농용 동력운반차 시장에서 경운기를 대체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계획이다.
또한, 이노모티브는 일반 차량보다 주행속도가 느리고, 브레이크등이 없는 경우가 많아 뒤따르던 차량과 추돌하는 등의 농기계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GPS를 활용해 위치 정보를 수집하고 저속 전동 이동수단을 위한 ‘E-Call(Emergenct Call)’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해 농촌지역 도로에 설치된 사물인터넷(IoT) 안내표지판에 전방 또는 주변의 농기계 접근정보(농기계 종류, 접근 거리 등)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개념이다.
이노모티브의 저속 전동 이동수단 E-Call 서비스 플랫폼 개념도, 출처: 이노모티브
이노모티브 김종배 대표는 “다목적 전기차는 농업 현장에서 활용되는 경운기뿐만 아니라, 골프장 내 카트도 대체할 수 있다. 제주도 등 관광지역 내 운송수단으로도 적합하다”라며, “저탄소 교통 전환은 탄소중립으로 나아가기 위한 탄소 저감 대책으로도 유용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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