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은 개전초 전선을 자침 시키고 도망친적 없다.
이것은 당시 조선군의 방어 전술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조선군은 사단장급 이상의 지휘관은 절대 성 안에서 농성을 하지 않는 것이 전술의 원칙이였다. 과거 지방군을 지휘해야할 고위 지휘관이 성 안에서 농성하다 성이 포위 고립되어 그 일대 지방군들의 군사 지휘 기능이 마비되는 부작용을 격으면서 생긴 원칙이였다. 수성전의 주장은 성 안이 아니라 성 밖에 주둔하며 성 주변의 지원군을 지휘하는 것이 조선군의 수성 전술의 원칙이였다.
수성전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가 수성전이 모든 병사가 성 안으로 들어가서 농성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그렇게 대응 할 수도 있지만, 가장 정석적인 수성전술은 성 안에서 농성전을 수행하는 부대와, 성 밖에서 성을 공격하는 적군을 요격하는 부대가 각각 모루와 망치가 되어 협공하는 것이다. 조선은 수성전의 최고 지휘관은 반드시 성 외각의 부대에 위치하도록 방침을 정했던 것.
동래성 전투에서 경상병사 이각이 동래성이 머물지 않은 것은 비겁하게 도망친게 아니라 앞에 말한 원칙에 따른 방어전술을 택한 것이였다. 실제로 이각은 그대로 달아난게 아니라 소산역에 지휘부를 설치하고 밀양부사 박진. 경상좌수사 박홍의 병력고 합세하여 동래성을 지원하려 했었다. 그러나 동래가 하루만에 무너지면서 이각은 뭘 해보지도 못했고 이후 멘탈이 나갔는지 진짜 도주 행각을 벌이고 말았다.
진주대첩에서도 경상우병사 유숭인이 진주성 전투에 가세하고자 창원에서 병력을 이끌고 왔지만 진주성 안으로 가지 않고 성 외각에 주둔했다가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전몰했다. 호사가들은 성문을 열어주기에 적이 너무 가까이 와서, 혹은 김시민이 상급자인 유숭인을 들여놓으면 성내 지휘 체계가 교란될걸 우려해, 성으로 들어오려던 유숭인에게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운운 하지만, 애시당초 상급 지휘관인 우병사는 성 밖에서 병력을 이끌고 싸우는게 원칙이였고, 유숭인은 그 원칙대로 행동했던것 뿐이다.
웅치 전투 직후 전주성의 전투 대응 태세도 이와 유사하다. 웅치를 돌파한 일본군이 전주성으로 다가오자 조선군은 전주성 수비에 나섰는데, 최고위 지휘관인 전라도 감사 이광은 성밖의 용암대에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고 전주부윤 이정란이 수성장이 되어 전주성의 농성전을 지휘했었다.
원균의 대처도 이것과 동일했다.
가덕도 앞에 수백척의 일본군 함대가 출현하자, 경상우수영은 일단 해안 방어에 돌입했다. 가덕도의 병력이 곧 거제도로 몰려올 것으로 예상했던 것.
경상우수사 원균은 수성장을 임명해 본영에서의 농성을 지시하고, 자신은 일단의 병력과 전선을 이끌고 거제도 밖에 주둔하면서 우수영 각 포구에 분산되어 있는 전선들을 소집하여 함대를 구성하여 일본군이 거제도에 상륙을 시도하면 공격한다는 작전을 시도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전선 소집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재앙이 시작되고 말았다.
지금 처럼 군항을 만들어 전선들이 대기하던 것이 아니라 각 포구별로 한 두척씩 흩어져 있다가 유사시 격군을 모으고 전선에 무기와 물자를 실은 뒤 출동해야 하는데 이것은 아무리 서둘러도 수일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일이였다. 이순신도 첫 출항때 출동 명령을 전달하고 배를 소집하는데 5일이 걸렸고, 이억기의 전라우수영도 2차 출격때 이순신과 함께 하고자 했지만 전선 소집이 지연되어 약속한 날에 출동하지 못하기 까지 했었다. 경상우수영이라고 상황이 나을 이유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동래성이 하루만에 무너지고 일본군이 김해, 밀양, 사천, 창원 등 경상도 내지로 물밀듯 몰려오자 경상도 내 병력 동원 시스템은 완전히 마비되고 말았다. 노젓는 격군과 수병들을 모아서 출동 준비를 해야줘야할 지방 관리들이 왜적을 피해 속속 피난을 가버리면서 소집 체제는 마비되어버렸고, 원균의 전선 소집 명령에 제대로 응할 수 있던 수군 진영은 한 곳도 없었다.
원균이 거제 밖에서 전선을 모아보겠다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 작전이 꼬여 우수영 함대가 거제의 본영을 지켜줄 수가 없다는 사실과 부산포, 다대포, 동래성 등에서 들려오는 패전 소식에 전의가 꺾인 본영의 수군들은 일본군의 대병력이 몰려온다는 소문에 본영을 불태우고 달아나는 사태마저 발생했다. 그것이 트리거가 되어 경상 우수영 각 진영의 장수들은 해안 방어를 포기하고 전선과 진영을 불태운 뒤 내륙의 산지로 퇴각하는 선택을 해버렸다. 그들은 함대 조성도 실패한 상황에서 이대로 있다간 부산포와 다대포의 전철을 밟을 뿐이라고 보고 안전한 내륙의 산성 등지로 퇴각하는 선택을 한 것.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이때 해안의 요지를 지키던 경상도 장수들이 요지를 포기하고 내륙으로 후퇴한 거를 두고 극딜을 하며 분노와 아쉬움을 표현했었다.
원균은 본영이 불타버리자 고성에 진을 치고 전선을 모아보려 했지만 이미 경상 우수영의 진영 대다수는 각자 판단으로 전선을 불태워 자침시키고 내륙의 산지로 퇴각해버렸다. 뭘 해보지도 못하고 경상 우수영의 함대가 자멸했고 원균은 이런 상황을 타계할 대채은 내놓지 못한체 남은 전선이라도 모아보겠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염불만 반복했을 뿐이였다.
뒤늦게야 전선이 남은게 거의 없다는 현실을 알게 된 원균은 자포자기하고 내륙으로 몸을 피할 생각을 했지만 이영남 등의 건의로 전라좌수영의 지원을 받아 해전을 지속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냥 도망치게 냅두는게 더 나았다. 이영남이 잘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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