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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 읽지 않은 메시지

문갤러(184.152) 2025.03.30 08:15:38
조회 80 추천 0 댓글 0

읽지 않은 메시지 - 00건



그럴 리 없었다. 이미 반년도 더 된 일인데…. 내가 방금 들은 알림음이 정말로 그 핸드폰에서 울린 것인지 혹은 내 머릿속에서 들린 환청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생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은 멀끔하다. 마치 이사 가기 전 집을 내놓고 희망 입주자를 기다리는 듯이 여러 물건이 제자리에서 오와 열을 맞춰 대기하고 있었다.


졸업앨범, 작가가 누구인지 모를 소설책, 지갑, 그리고 동생의 사진은 어제라도 방의 주인이 정리를 해놓고 훌쩍 여행을 떠난 것처럼 놓여있다.


목적지를 알지 못한 채 목적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 아니, 여행이 아니라 여정이라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들렸다.


슬그머니 내 시야는 책상 한쪽으로 옮겨갔고, 거기엔 동생의 핸드폰이 놓여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오지 않을 전화와 메신저를 기다리며 충전기 옆에 고스란히 있었다.


분명 그럴 터였다.


누구지.



어렸을 적부터 반년은 참 애매한 시간처럼 느껴지곤 했다.


동네 헬스장의 이름 모를 아저씨는 반년 동안 30 kg을 감량하고, 누군가는 바라던 시험에 합격하고, 누군가는 키가 10cm씩 크지만, 나에겐 그저 길고 긴 터널을 걸어가는 지루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무엇을 이룰 수도, 이루지 못할 수도, 혹은 그저 살아있기에도 벅찬 그 짧고도 영겁 같은 시간은 오로지 달력에 있는 숫자로만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반년이 지난 지금 동생의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들렸다.


내가 이걸 확인해도 되는 걸까?


혼자 고민해 봤자 주인의 허락 따윈 구할 수 없는 퀴즈쇼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주인공 외엔 모두가 관객이었던 그 영화.


모두가 명작이라고 했지만, 나에겐 와닿지 않았던 그 영화처럼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마치 친구의 비밀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만 같은 죄책감에 휩싸이기 직전,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고 일단 누군지는 확인해 봐야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자리 잡았다.


동생이었어도 분명 확인했으리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내놓은 후에야 머릿속에 누군가가 스쳐 지나갔다. 하은이였다.


동생의 여자 친구였던 하은이는 알뜰살뜰한 여자애였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하고 바쁠 텐데도 집에 찾아와 동생에게 요리를 해주던 하은이는 피곤함에 전체로 침대에 누워있는 동생을 위해 방을 치우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동생과 같이 살던 나와도 친해졌고 우리 셋은 곧잘 바닷가로 여행을 가기도 했었다.


분명 노총각이었던 나와 노는 것이 달갑지 않게 느껴졌을 텐데, 언제나 바닷가만큼은 가족끼리 함께해야 한다며 내가 빠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즐거운 나날로 기억한다.




다만 동생의 장례식 이후 하은이도, 나도 분명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겠다고 생각한다.


교통사고로 홀연히 우리의 곁을 떠난 동생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처음 몇 주는 납골당에 같이 찾아가곤 했지만, 나날이 더해지는 그리움은 우리 모두 견뎌내지 못했다.


분명 나보다 더 괴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을 하은에게 같이 가자는 말을 선뜻 꺼내기는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몇 번 안부를 문자로 주고받기는 했지만, 어느새 우리 중 그 누구도 먼저 문자를 보내지 못했다.


멀리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그저 이대로 잊어줬으면, 본인의 삶을 또 꿋꿋이 살아냈으면 하고 바란 것이 그 이유였다.


여느 유족과 같이, 하은이에게 죽은 남자 친구의 형이라는 부담스러운 사람으로서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렇게만 여기고 있던 찰나, 처분하기 전 충전을 해놓은 핸드폰은 읽지 않은 메신저 알림으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메신저를 확인해 보니, 하은이는 여전히 동생과 대화하고 있었다.




“오늘은 비가 오네…. 춥지는 않지? 감기 조심해.”


“나 오늘 알바 합격했어! 돈 벌어서 맛있는 거 사갈게~”


“나 술 마시고 조금 늦게 들어갈 거 같아…. 미안해.”


“메리 크리스마스! 잘 지내고 있지!”


등의 수많은 일방적인 대화 끝에 2분 전이라고 적힌 문자의 내용은,


“영민ㄴㅣㅏ 나너ㅓ무 힘들ㄹ어 보고시ㅃ어”



…. 내 불찰이었다.


혼자 잊고 이겨내기만을 바란 건 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 때문에 더 힘들 수도 있을 거라는 추측 때문에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나라도 도움이 돼주고 싶다고 느꼈다. 아니, 반드시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하은이를 위해, 나를 위해, 그리고 동생을 위해, 슬픔을 함께 극복해야만 한다.


그 아이가 언젠가 우리를 잊고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치 않지만,


지금이라도 동생과의 추억을 함께하며 슬퍼할 수 있는 건 서로밖에 없는 건 확실했다.


그 확신과 함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신호음이 미처 가기도 전에 받은 하은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 왜 이제 전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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