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지만, 국영 석유회사의 부실과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해 휘발유와 경유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농민들은 차량에 넣을 기름이 없어 농산물을 운송하지 못하고 폐기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시민단체인 '에스파시오 푸블리코'는 20일(현지시간) 논평을 통해 "휘발유 부족에 항의하는 농부 2명이 최근 잇따라 체포됐다가 풀려났다"며 "정부가 연료난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19일 서부 메리다주 푸에블로야노에서 한 농부가 당근을 버렸다가 공정가격법 위반 혐의로 붙잡혔다. 그는 화물차에 넣을 기름이 없어 당근을 유통업자에게 보내지 못했고, 썩어가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폐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일에는 트루히요주 카라체에서도 한 농민이 운송하지 못한 토마토를 강물에 대량으로 버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이 농민이 토마토를 강에 쏟아내는 모습은 소셜미디어 영상으로 공유되면서 전국적인 관심과 논란을 일으켰다.
타레크 윌리엄 사브 법무부 장관은 사회적 논란을 의식한 듯 자신의 트위터에 두 사람의 얼굴 사진과 신원을 공개하며 "공정가격법을 위반한 자들은 재판에 넘겨질 것"이라고 엄벌 의지를 밝혔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법에 따른 처벌'과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두 의견이 맞서며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기름이 부족한 이유
사진=나남뉴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지만, 국영 석유회사인 PDVSA(Petroleos de Venezuela)의 부실 경영과 정부의 에너지 정책 실패로 인해 휘발유와 경유가 부족한 상황이다.
PDVSA는 1976년 설립된 후 매출액 기준 세계 27대 업체(2009년)에 들 정도로 성장했지만, 대규모 비위 의혹으로 최근 사정의 표적이 됐다. 경찰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용인한 것으로 알려진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임직원과 관계 공무원을 수조원대의 석유 판매금 횡령 등 혐의로 줄줄이 체포했다.
정부의 정책적 실기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정제 설비 투자 등을 제때 하지 않으면서 한때 최대 일 300만 배럴에 달했던 석유 생산량은 급전직하했다. 이에 대해 마두로 정권은 줄곧 미국 정부의 제재 탓에 자국 석유산업이 쇠퇴했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처럼 에너지 공급 기반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최근 잇따라 불거진 연료 생산 시설들의 가동 중단은 연료난을 한층 가중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최대 규모의 파라과나 정유 단지에 있는 휘발유 제조 공장들이 기술적 문제로 인해 최근 가동을 중단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네수엘라 제2의 도시인 마라카이보에서는 이번 주에 석유가 호수로 대량 유출돼 환경 오염 우려까지 야기하는 등 주민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시민단체는 3년 전인 2020년 격렬한 시위를 벌일 정도로 극심했던 연료난 사태를 상기시키며 "체포와 검열 패턴을 반복했던 당시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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