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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SNS의 로스트미디어[태도가 거만한 개(態度がでかい犬)]
로미되는 과정을 내가 직접 봤던 녀석이라서 생각난 김에 적어봄로미갤에 글을 직접 쓰는 건 처음이라 취지에 안 맞는다면 탭을 일반이나 정보로 수정하거나 삭제하겠음솔직히 아는 사람만 아는 부류의 것이지만로스트미디어의 정의에는 부합하는 것 같아서 소개해봄.*태도가 거만한 개(態度がでかい犬)는 X(구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던 계정주의 닉네임이었다.사실 tiktok에서 활동하던 사람이였고, tiktok에서는 조심스럽게 화제가 되었던 것이,X로 넘어오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개의 품종은 아마도 비숑프리제, 혹은 그에 준하는 잡종으로 보인다(계정주가 따로 밝힌 적은 없음)대충 위의 영상처럼 개의 사진에 ai를 썼는지 어떠한 모션 기술을 썼는지,마치 실제 개가 춤을 추거나 포즈를 취하는 듯한 모습의 사진이나 짧은 영상을 올리고,그러한 사진들로 스티커, 증명사진 등등을 판매하며 일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이런 증명사진을 배포하기도 하고이런 포토카드도 나왔고사진엔 없지만 각종 아크릴 키링, 띠부띠부씰, 티셔츠 등등도 판매되었다.일본에선 카카오톡 급의 위상을 가진 라인(LINE)의 스티커(이모티콘)로도 여러 개가 출시됐다.태도가 거만한 개(態度がでかい犬)에서 따와서 스티커 이름도"너의 그릇보다 태도가 거만한(커다란) 개""역시나 태도가 너무 거만한 개""심플하게 태도거만한 개"등등 자체 패러디를 곁들여서 판매되었고이는 일부 일본인들의 큰 인기를 얻었다.이 강아지가 두발로 서서 춤을 추거나 뭔가 병맛스러운 분위기의 사진연출이 마이너하지만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아는 사람들은 아는 개"가 되었는데,여기서 그쳤다면 사실 큰 문제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그러다 계정주가 이 개를 소재로 어떠한 영상을 올리게 되는데...그것은 닌쟈리방방(にんじゃりばんばん)이라고 하는 노래의 PV를 패러디한 것이었다.※위의 영상은 실제 닌쟈리방방에 사용된 영상의 캡쳐가 아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함.마이너하지만 인기를 끌던 이 강아지가 닌쟈리방방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은 큰 인기를 끌었다.온갖곳에 공유되고 "몇 번을 봐도 재미있다"라며 많은 찬사를 받았다.필자는 이 영상을 "딱 한 번" 보았다.딱 한 번 봤던 필자도 영상이 너무 병맛이고 어이없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아무튼, 2024년 8월 19일에 업로드된 이 영상은 일본 X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하지만 바로 이 영상 때문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아무래도 유명해지면 이상한 똥파리가 꼬일 수밖에 없고,닌쟈리방방 영상을 본 어그로 종자들이 계정주에게 공격적인 답글을 달았던 것이다."짜증난다""기분 나쁘다""싫다"등등의 이유 없는 비난은 물론이고,"본인이 아니라 본인이 기르는 강아지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다니 비상식적이다. 개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는 거냐?"라고 정신나간 소리를 하는 인간도 있었다.계정주는 처음엔 이런 사람들을 예의바르게 상대했으나 끊이질 않는 비방중상, 공격에 지친 나머지 결국 포기선언을 했다."이렇게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많다니 너무 놀랐습니다""즐거운 기분으로 영상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공격당할 줄은 몰랐기에 너무 놀랐습니다""특정 사람들이 이 영상을 불쾌하게 생각하므로 영상을 삭제하겠습니다""재업로드는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영상을 보존하신 분도 절대로 재업로드 하지 마세요"등의 글을 남긴 뒤 그대로 닌쟈리방방 영상을 삭제하게 된다.영상이 전부 삭제된 후, 계정주는 본인의 X계정에 쓰여있던 모든 글을 삭제하고,심지어는 tiktok계정까지 완전히 삭제하기에 이른다.원본 영상은 삭제되었지만,태도가 거만한 개의 닌쟈리방방 영상을 출처로 남기고 그것을 패러디한 사람에 의해 삭제된 영상의 URL은 남아있다.물론 해당 URL에 접속해보면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라고 뜬다.웨이백머신에 해당 URL을 검색해봐도 아무것도 아카이브되어있지 않다고 출력된다.하지만 X는 "계정 ID를 바꾸면 포스트의 URL도 계정ID와 같이 변한다"라는 특성이 있어서,필자는 다른 방법도 시도해봤다.지금은 계정의 ID가 inu_oa이지만,닌쟈리방방 영상이 공개됐을 적엔 다른 ID였다.taido_dekainu가 바로 그것. (위의 증명사진에서 확인 가능)inu_oa대신 이 ID를 넣어서 검색해보니...정확히 영상이 업로드되었던 2024년 8월 19일에 저장이 된 흔적이 보인다.그러나 아쉽게도 웨이백 머신 할아버지로도 이것은 복구할 수 없었다.그렇게 8월 19일에 업로드되어 일본의 X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영상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로스트미디어가 되고 만다.X에 검색해보면 해당 영상이 삭제된 것에 유감을 표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계정주는 영상을 삭제한 뒤로도 굿즈는 계속 판매하였으며,아직까지도 미미하게 활동은 이어나가는 중이다.그러나 큰 인기를 끌었던 닌쟈리방방 영상은 영원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물론 삭제될 것은 예상 못했지만 마음에 들어서 미리 다운로드받아둔 사람들은 존재한다.닌쟈리방방 영상이 사라진 것에 유감을 표시하는 사람에게,"저 기적적으로 보존해뒀었어요!"라면서 DM으로 해당 영상을 보냈다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이미 보존해뒀던 사람들은 자신의 기기에 저장된 닌쟈리방방 영상을 계속 감상할 수 있지만,보존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앞으로는 절대 볼 수 없으며,저렇게 미리 보존해뒀던 사람에게 직접 "죄송한데 저한테도 주실 수 있나요?"라고 컨택해서 영상을 암암리에 공유받는 방법밖에는 남지 않게 된 것이다.원제작자는 "절대로 재업로드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른 곳에 업로드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못을 박아놨고,이러한 저작권에 민감한 일본인들 특성상 어딘가에 무단으로 업로드될 일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원제작자가 마음을 바꿔서 재업로드한다면 모르겠지만,수 만번 공유되는 사이에 말도 안되는 비난, 공격을 겪었던 계정주의 심정을 생각하면 재업로드는 거의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사실 누군가가 보존해서 소장은 하고 있으니 엄밀히 따지면 완전한 로스트미디어는 아니라고 볼 수 있겠지만,접근성이 최악이라는 점, 원제작자가 다른 곳에 업로드를 금지한 점을 생각하면 준로스트미디어에 부합하지 않을까 싶다.필자도 이 영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수 만 RT를 받으며 사랑받았던 닌쟈리방방 영상을 삭제하고,다른 영상들도 게시해뒀던 틱톡 계정을 삭제한 뒤 X의 게시글도 전부 삭제했던 계정주는자신의 계정 ID를 inu_oa로 변경한 뒤 아주 미미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유튜브에 영상이 단 3개 있으며,가장 처음에 있는 영상에서 "닌쟈리방방"등에 사용되었던 개의 일부 안무들을 확인할 수 있다.https://youtu.be/StjW_iuFln4?si=4xTxMkimClKaXRZh ⠀ ⠀ ⠀ ⠀ ⠀ ⠀youtu.be궁금하다면 위의 링크의 영상을 확인해볼 것.실사모습의 개가 두 발로 서서 사람처럼 춤을 추고,영상의 편집도 재미있게 구성되어있어 큰 인기를 끌었던 태도가 거만한 개(態度がでかい犬)지금은 그냥 ْ犬( ْ개)라는 닉네임으로 변경한 후,이전만큼의 활발한 행동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었던 일개 패러디 영상이어그로 종자들의 무지성 공격에 의해 로스트미디어가 된 안타까운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그리고 심지어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런 일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고 있을지도...끝
작성자 : 모사사우루스고정닉
실버애로우의 역사를 배워보자(중)
https://youtu.be/v5JSjCkHnMc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formula1&no=3200211편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다. 히틀러가 자랑하던 독일의 기술력은 승전국들의 타겟이 되었고 이는 실버애로우도 피해갈 수 없었다. B.I.O.S.(영국 정보부 개별 분과 위원회) 소속 엔지니어 카메론 얼에 의해 1934-39년간 활동했던 독일의 그랑프리 레이스카는 낱낱이 분석되었다.그리고 이 보고서가 책으로 출판되면서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영국의 소규모 레이싱 팀들은 추축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었다. 하지만 실버애로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 그 설계도는 너무나 화려했다 (왼쪽부터 파리나-파지올리-판지오. 3F라 불리며 알파로메오에서 활동한 이들은 50년대 최고의 트리오였다) 그래서 전후 초기 그랑프리 레이싱은 이탈리아의 독무대였다. 독일만큼은 아니지만 이탈리아가 보유하고 있던 인프라는 영국과 프랑스의 아마추어들이 따라갈 레벨이 아니었다.스쿠데리아 페라리는 신생팀이지만 인맥빨로 알파로메오의 핵심 기술진과 드라이버들을 영입해 바로 우승 경쟁에 합류했고, 그나마 영국의 BRM이 멀린의 기술을 빌려 원심식 트윈 슈퍼차저 V16을 선보였으나8000rpm 이하에선 출력이 반의 반토막이 나는 심한 터보랙과 극악의 정비성 때문에 직접적인 상대는 되지 못했다. (딱 봐도 쥰내 복잡해보인다) 거기에 알파로메오 워크스팀 마저 F1에서 철수하자 스포츠 관리 기관인 CSI는 월드 챔피언쉽을 유지하기 위해 1952년부터 F1을 750cc 슈퍼차저 or 2000cc 자연흡기로 운영되던 F2과 통합시켰다.그 말인즉슨 겨우 자리를 잡은 V16 BRM이 나갈 수 있는 레이스는 이제 굿우드 힐클라임 뿐이라는거다.그래도 치시탈리아와는 달리 달려라도 봤으니 이 부분은 인정해야겠다. 한편 경쟁자가 사라진 페라리는 명기 람프레디 L4 엔진을 내세워 1952-53년 F1을 지배했다. 아스카리는 9연승이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세우며 2년 연속 월드챔피언에 등극했고, 한동안 페라리의 독주는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1954년,CSI는 레이스가의 배기량을 2000cc에서 2500cc로 늘리는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그리고 패라리는 쥰내 쳐맞았다실버애로우의 영광을 찾아서 (중)-Post war 1940년 전쟁이 터지면서 레이싱은 중지되었다.엘리트 엔지니어였던 실버애로우 개발진들은 메서슈미트 전투기의 엔진을 제작하기 위해 개발부서로 넘어가게 되는데다만 울렌하우트는 영국 이중국적자이다 보니 게슈타포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잡지 들고 있는 사람이 루디 울렌하우트 박사) 그래도 다임러 벤츠의 핵심인재라 큰 제재 없이 DB603 같은 항공기 엔진 개발에 참여했고전쟁이 끝난 후 울렌하우트는 소규모 레이싱 팀에서 잠시 일하다 1948년에 다시 벤츠로 복귀하여 양산차 개발 책임자가 되었다 지구 주딱의 버거나눔 덕분에 유럽 경제가 안정되면서 다임러-벤츠는 여유를 되찾았다먹고살기 괜찮아지자 시민들은 빵 만이 아니라 놀이도 원하고 있었고이는 빤쓰도 마찬가진지라 서서히 부활하는 유럽 모터스포츠에 다시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르세데스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는 알프레드 노이바우어의 꾸준한 설득 끝에 1951년 6월, 다임러-벤츠는 그랑프리 레이싱 복귀를 선언했다. 선언과 동시에 R&D 헤드 프리츠 날링거, 핵심 엔지니어인 울렌하우트, 팀 매니저 노이바우어로 이루어진 드림팀 역시 다시 결성되었다. 다만 바로 F1 참가를 준비한 건 아니고 그 전에 테스트 해볼 겸 한창 재규어가 C-타입으로 재미보던 스포츠카 챔피언쉽에 먼저 도전장을 내밀었다. 300SL 타도 C-타입을 선언한 모터스포츠 팀. 그러나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9개월. 울렌하우트의 주도하에 레이싱 부서는 부랴부랴 최신 세단이었던 300을 베이스로 새 스포츠카를 제작했다. (응애)W194라는 개발명이 붙은 이 프로토타입은 세단과 비교해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먼저 엔진부터 살펴보자면 시간상 새로운 엔진을 제작하는건 무리기에 그들은 엔진을 좌측으로 50도 기울여 배치했고, 윤활 시스템으론 드라이 섬프 방식을 적용하여 후드 높이를 최대한 낮췄다. 또한 베이스가 된 300이 무거운 대형세단이다 보니 섀시도 바꿔야했다. 다임러 벤츠로 돌아오기 전 울렌하우트 박사는 친분이 있었던 영국 대령의 요청으로 소규모 팀에서 레이스카를 제작한 적이 있었는데레이스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그는 스틸 파이프를 삼각형 패턴으로 이어 입체적으로 조립한 멀티 튜블러 스페이스 프레임을 시도하게 된다. (치시탈리아 D46 스페이스 프레임) 기존에도 치시탈리아 같은 레이스카에서 스페이스 프레임은 시도되어 왔지만 울렌하우트 버전은 비틀림 강성과 무게에서 훨씬 우수했다. 그의 초기 아이디어는 그대로 프로토타입에 적용 되었으며 섀시 무게를 68kg 까지 줄이면서도 X-오벌 튜블러 프레임 방식의 W154보다 비틀림에 강했다. (W154의 섀시) 그러나 문제는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있었는데, 문짝을 달 곳이 없었다. 콕핏 전체를 감싸고 있는 튜블러 프레임 때문에 일반적인 형태의 문짝을 다는건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1인승 모노포스토로 개조할 수도 없는 것이 WSC 규정상 일정 크기 이상의 문짝을 반드시 달아야 했다.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걸윙 도어 문이 열릴때 마치 갈매기가 날갯짓하는 모습과 닮아 붙은 별명으로 이 특이한 디자인은 곧바로 이 차의 상징이 되었다. Sport Light의 약자 SL이 붙은 새로운 300의 데뷔전은 1952년 밀레밀리아에서 치뤄졌다. 1000마일 길이의 도시간의 경주는 처녀에게 너무나 가혹한 행위였다.그래도 칼 클링과 30년대의 전설 카라치올라는 이탈리안을 위한 잔치에서 각각 2위, 4위로 통과하며 선전했다. 하지만 베른에서 치뤄진 두번째 레이스에선 고질적인 뒷브레이크 락업 때문에 카라치올라가 사고로 은퇴하기도 했다. 전설을 잃었지만 이후 신속한 업데이트로 메인 이벤트인 르망 24시에서 새 버전을 준비할 수 있었고그들은 원-투 피니쉬를 기록하며 재규어를 확실하게 누르는데 성공했다.https://youtu.be/isw9fKWFYMM300SL은 신대륙에서도 대단히 빨랐다.그 악명높은 까레라 파나메리카에서도 1-2 피니쉬를 놓치지 않았다.그러자 이 은색 갈매기는 미국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 중의 한 명이 미국에서 폭스바겐을 수입해오던 딜러 맥스 호프만단숨에 300SL의 가치를 알아본 그는 스포츠카를 상용차로 만들어오면 1,000대를 수입하겠다고 다임러-벤츠에게 제안했다. 그전까지 다임러-벤츠에게 SL은 그저 그랑프리를 준비하기 위한 몸풀기에 불과 했지만달러냄새를 제조사가 어찌 거절하랴부랴부랴 다임러-벤츠는 300 SL을 쌍용차로 개조해, 1954년 뉴욕 국제 모터스포츠 쇼에서 공개했다. 호프만의 예상은 맞았다. 공개 되자마자 300 SL은 단연 이 모터쇼의 헤드라이너 였으며, 걸윙도어는 셀럽들 사이에서 새로운 유행이 되었다.약 1400대의 SL 중 1100대 이상이 미국으로 팔렸으니 이는 북미 시장에서 메르세데스의 첫 성공이었다.300SL의 성공적인 데뷔로 모터스포츠 효과를 생생하게 경험한 다임러는 레이싱 부서에 막대한 지원을 약속했고이제 울렌하우트의 레이싱 부서에는 메르세데스가 자랑하는 핵심 인재들이 모두 모였다.과거의 위상을 재현하기 위한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하) 편에서 마무리예전에 썻던거 다듬어서 재업
작성자 : TheProdigy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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