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년차 시절이니 벌써 60년전 일 이다. 이 때 이미 나는 사진취미에 푹 빠져있어 공휴일이면 으레 것 혼자 카메라를 들러 매고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야외로 나갔다. 산야의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소박한 농어촌의 풍광이 그렇게도 좋았다.
어느 초여름 일요일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조 500년간 가장 비운의 왕비였던 단종비가 묻혀있다는 사릉(思陵) 촬영을 가게 되었다. 당시만하여도 사릉은 서울 인접지역이면서도 아주 외진 곳이었다. 춘천행 기차를 타고 사릉역에서 내려 역무원에게 사릉 위치를 물으니 나를 아래위로 훌터보더니 거긴 뭐 하러 가냐고 되묻고는 사진 찍을 것도 없다고 퉁명스럽게 답한다. 능 부근에는 인가도 없었고 노송들이 우거져 대낮에도 어둠침침할 정도로 분위기가 으스스 하였다. 바로 능으로 가려다가 날이 어두운 것이 소나기라도 한차례 퍼 부 을 것 같아 주변을 둘러보니 낡은 재실(齋室)이 보이기에 안으로 들어 가보니 인기척은 고사하고 사람그림자도 안 보였다.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천둥번개가 치더니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하여 비를 피하고자 처마 밑에 서 있는데 갑자기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머리를 산발을 하고 하얀 소복을 한 여인이 방문을 박차고 나와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아닌가 ! 아마 귀신이 내게로 달려들었다면 나는 까무러쳤을 것 이다. 어찌나 놀랐던지 한동안 얼어붙어서 꼼짝을 못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밖으로 나와서는 논밭을 가로 질러 정신없이 마을을 향해 엎어지고 고꾸라지며 죽을힘을 다하여 마구 달렸다.
사람의 그림자는커녕 개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어느 주막집으로 뛰어 들어갔는데 주인아줌마가 내 꼴을 보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귀신 만난 이야기를 하였더니 쯧 쯧 하며 얼마나 놀랐느냐고 위로하면서 냉수 한 사발을 떠 주며 우리 마을에 정신이 조금 나간 젊은 처녀가 살고 있는데 비만 올려 고 하면 소복을 하고는 재실로 간다는 것 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그 때 그 장소에 있었던 것 이다. 이러해서 그날은 사릉 사진을 한 장도 못 찍고 녹초가 되어서 귀가하였다.
그 후 마을 사람들한테서 사릉 재실에 어느 여인이 목을 매어 죽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고 들었다.
단종비 송씨는 나이 15세에 왕비가 되었는데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의 왕권 찬탈로 18세 때 단종이 살해되어 왕비가 아닌 대군의 미망인인 대부인으로 85세 까지 장수하였는데 소복을 하고 삭발을 하고서는 고기를 일체 입에 대지 아니하고 채식으로 연명하였으며 죽는 날 까지 뒷산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며 통곡을 하였기 능명도 사릉(思陵)이 되었지만 단종은 영월 장릉(莊陵)에 매장돼있어 합장이 아니 된 채로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나린 다는 옛 말이 있는데 그런 연유인지 세조(수양대군)는 재위 중 정신병과 문둥병에 걸려 엄청 고생하다가 보기흉한 모습으로 죽었다.
숙종대왕이 단종을 왕위로 복위하니 대부인 송씨도 다시 왕후가 되어 정순왕후로 시호가 내렸다.
======================================================= =================================홍릉은 경기도 문화재라서 엄청 보수를 하여 철책과 처마 높이의 현대식 담장으로 꾸며 놓아 옛날 정취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아직도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 이다.
모델을 귀신처럼 분장하여 재실 앞에서 촬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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