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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근 1년만에 경주를 3박4일로 다시 다녀왔음. 대체로 도보로 이동했기 때문에 이동반경이 그리 넓진 않았고 웬만하면 방문하지 않은 곳을 끼워넣으려다 보니 일반적인 기준에서의 '볼만한' 곳은 그리 많이 가진 않았음. 그럼에도 큰 숙제 몇가지를 해결했기 때문에 나름 만족스러운 방문이었음. 백률사. 마애삼층탑을 볼 것을 기대하고 갔는데 천막법당으로 인해 확인할 수가 없었음. 소금강산의 일몰. 경주에 3시경 도착했기 때문에 소금강산 일대만 간략히 둘러보았음. 동천동 마에삼존불. 이정표가 많이 없지만 감으로 찾아가다 보면 쉽게 갈 수 있음. 굴불사지로 마무리. 둘째날, 삼랑사지 당간지주. 형산강의 일출. 송화산에서. 뜬금없이 송화산을 온 이유는 개인적으로 정말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있기 때문임. 앞서 몇 개의 글을 통해 신라왕릉에 대한 내 여러 의견들을 개진한 바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의문은 바로 김유신묘에 대한 부분임. 현재의 김유신묘는 그 묘제상으로는 성덕왕릉 이후 신라 하다의 양식임. 현재의 김유신묘는 능 앞에 세워진 비석을 통해 최소 1710년부터는 김유신묘로 추정되어 왔음을 알 수 있으며, 여러 사료를 교차해볼 때 1200년대 보각국사 일연이 삼국유사를 작성할 시점에도 이미 현재의 능을 김유신묘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음. 그렇다면 현재의 김유신묘가 김유신묘가 아닐 경우 900년부터 1200년 사이의 시점 중 김유신묘가 실전 후 다시 지목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1100년대 편찬된 삼국사기에서는 많은 이들이 김유신을 기억하고 묘를 경배한다는 서술이 있음. 따라서 해당 기간 동안 김유신묘가 실전되었다고도 보기 어려움. 그러나 800년대에 김유신이 흥무왕으로 추존되었다고 할지라도 무열왕릉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으면서 김유신묘만 꾸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임. 그래서 이 부분으로 인해 많은 신라왕릉 연구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음. 나는 모지사 북쪽 동향주봉에 있다는 김유신묘를 찾아 송화산 북쪽 능선들을 헤집고 다녔지만, 위와 같이 도굴된 고분 몇 기만을 확인했을 뿐임. 그리고 전 김유신묘 앞에서. 충효리고분군 중 공개고분. 도보로 서악서원까지 이동했음. 올때마다 늘 잠겨있어 실제 들어와보는 것은 처음. 사당 쪽의 기단은 갑석을 갖추어 꽤나 정연하게 제작된 것이 서악서원 이전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음. 최소한 고려시대부터 존재한 사당이 아닐까 싶음. 법흥왕, 진흥왕, 진지왕. 신라의 중흥기를 이끈 왕들의 유택을 바라보고 선 삼층석탑. 삼층석탑 뒷편 선도산고분군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고분들이 산재해 있음. 참고로 4호분은 별도 조사는 더 하지 않고 덮는 모양임. 선도산에 올라. 30분 정도면 오를 줄 알았는데 낙엽으로 길이 미끄러워 50분 가까이 걸린듯. 선도산에서 조망한 서악동과 오릉, 교촌마을, 월성까지. 신라인들이 이 산을 신성시한 이유를 알 수 있음. 자주는 못 찾더라도 경주를 답사한다면 한번쯤은 반드시 와야 할 곳임. 충효동쪽으로 하산하여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 식사를 마치고 불국사 방향으로 이동함. 먼저 이거사지를 방문했음. 생각보다 석재들의 상태가 굉장히 멀쩡해서 당장 복원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함. 초층 탑신이 훼손된 것만이 안타까울 따름. 뒤이어 방문한 전 효소왕릉과 성덕왕릉. 신라왕릉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덕왕릉. 여러 차례에 걸친 증축이 있어 왕릉의 발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됨. 성덕왕릉 귀부. 경덕왕대에 제작되었음. 성덕왕릉의 귀부에 대해서는 큰 의문점이 있는데, 비좌가 지나치게 넓으며 얕다는 점임. 사진에서 보이듯 비좌의 폭은 60cm가 넘으며, 그 깊이는 몹시 얕음. 비석이 상당히 특이한 형태였을 가능성을 암시함. 동해선이 사라진 철길 터. 예전에는 선로를 넘어다녀야만 접근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사라지니 뭔가 허전함. 구정동방형분. 8년만에 들어가려니 아이고 소리가 널로 나온다. 경주박물관에서는 '소소하고 소중한'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시를 열고 있음. 이번 경주 방문의 큰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던 소현리석실분의 매납십이지가 이번에 특별전시에 나왔기에 상당히 기대를 하고 왔음. 황용사지에서 출토된 청동사자상. 불중박 전시 때도 봤지만 전시 환경은 경박이 훨씬 낫다. 헌덕왕릉 배례석. 향로석으로 추정된다고 함. 미술관은 한시적인 정전 소동이 있었음. 백률사 금동불은 어둠 속에... 성덕대왕신종으로 박물관 구경은 마무리. 셋째날은 남산을 찾았음. 포석곡으로 올라 국사곡으로 하산. 먼저 부엉골 마애여래좌상을 찾음. 사실 윤을곡 마애불을 먼저 방문하려 하였으나 이정표를 지나친 듯. 저 멀리 보이는 늠비봉. 늠비봉 오층석탑. 생각보다 경주분지 방향 뷰는 별로였고, 신부재도 많아 예스러움은 없었지만, 오히려 금오봉 방향 전망이 시원시원하고 좋았음. 국사곡 4사지 삼층석탑. 이쪽도 생각만큼의 뷰는 아님.. 하산 후 서출지에서. 정강왕릉. 헌강왕릉은 아직도 공사중. 웬 소나무 전정만 잔뜩 해서 난장판이다. 장사 벌지지비. 언제적? 효공왕릉. 그러나 신라 중기 고분의 가장 큰 특징인 호석의 노출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문무왕비 자의왕후설 등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음. 보문사지. 석물들의 훼손이 정말 심한 편. 근데 왜 여기까지 와서 볼일을 보고 가는 건지 노이해... 설총묘. 진평왕릉 구황동 폐고분지. 예전에 긴 글로 다룬 적이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 전황복사지 보고서에는 34대 효성왕릉일 가능성을 제시했으나 무복 십이지가 38대 원성왕릉과 41대 흥덕왕릉에서 확인되기에 아닐 가능성이 높음. 최신의 연구에서는 41대 흥덕왕의 가릉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37대 선덕왕릉일 가능성이 높지 않나 생각하고 있음. 황복사지. 발굴은 완료되었으나 여전히 많은 의문만을 남겼음. 만정사지 목탑지. 특이하게도 방형의 사리공과 팔각형 심초석이 어긋나게 만들어졌음. 이는 법주사 쌍사자석등에서도 확인되는 형태인데, 꽤나 세련된 방식이라고 생각함. 미탄사지. 이날 분황사와 황룡사지까지 방문했고, 마지막 날은 무장사지만 다녀왔음. 무장사지와 선도산마애삼존불. 시간 잡아먹는 양대장을 이번 답사로 확인한 점이 이번 답사의 큰 성과이지만 개인적인 의문 몇 가지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로 돌아가게 된 답사였음. 지난번에 하루에 3만보 걸었다고 피곤해서 뻗었는데, 이번에는 하루에 4만보를 걸음. 다음에는 자전거를 가져가던가 해야할듯. - dc official App
작성자 : BABO고정닉
싱글벙글 역사상 개또라이 같은 로스트 테크놀로지 복원
로스트 테크놀로지과거에 이용했지만 현재에는 잊혀진 기술로보통 실용성이 없어서 잊혀졌거나혹은 사회적 혼란으로 없어진 것으로현재에도 수많은 로스트 테크놀로지를복원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대표적으로 고대의 화염방사기 + 네이팜이었던그리스의 불이나16mm 구경 이상의 전함 주포 제작 기술다마스쿠스 강 등이 있다물론 어떻게든 복원하려고 달려들면 가능은 하겠지만아래의 사례는 여태까지의 복원된 로스트 테크놀로지 중가장 또라이스러운 과장을 거쳤으니...1909년전설적인 탐험가인 어니스트 섀클턴이 이끄는 남극 탐험대는존나게 추운 남극으로 향할 때화이트 앤 맥케이 사의 위스키를 들고 간다남극에서 개고생 중인 섀클턴 탐험대하지만 유빙에 갖혀 몇년 간 남극에서 개고생하는데섀클턴은 나중에 먹으려고 베이스 캠프 밑에 이 위스키를 묻어 둔다어쨋든 섀클턴과 소수 분견대는 존나 기적스러운 과정으로구조대를 끌고 베이스 캠프로 돌아왔고이들은 구출되서 존나 기쁜 나머지오두막에 묻어놓은 그 위스키를 까먹고 귀국한다아무튼 모두가 다 귀국하고1차 대전과 2차 대전, 냉전, 소련 붕괴까지영욕의 100년이 흐르는 동안몹시 슬프게도 화이트 앤 맥케이의 오리지널 위스키 제작법이 유실된다많은 알콜 중독자 새끼들이 통탄을 금치 못하며이를 재현하기 위해 온갖 똥꼬쇼를 했지만 번번히 실패하던 와중우연하게 섀클턴의 남극 일지를 연구하던알콜 중독자 연구원이 그의 일지에서 한 문장을 발견하니"우리가 머물던 남극의 땅 아래화이트 앤 맥케이 위스키 5병을 묻어뒀는데 까먹고 그냥 왔다"이 구절 하나로, 세계는 바야흐로 대알콜 시대를 맞는다심지어 섀클턴이 들고 간 위스키는그냥 허접한 시판용도 아니고화이트 앤 맥케이 사에서 직접 공들여 만든 수제 오리지널 위스키!게다가 100년간 남극에서 냉동 숙성된 상태?!심지어 지금은 제작법조차 없어진 로스트 테크놀로지?이 구절 하나로 전세계의 위스키 애호가들은 대남극 시대를 맞는다할부지가 먹던거 나도 먹어보자!!100년 전 할부지들이 먹던 맛을 지들도 느끼기 위해전세계의 알콜 중독자들은 일치 단결하여절대 반지.. 아니 절대 위스키를 찾기 위한남극원정대가 결성되어 2010년, 본격적인 절대 위스키 탐색에 나선다뉴질랜드에서 모인 원정대는섀클턴이 남긴 허접한 당시 지도를 토대로100년 전에 버려진 베이스 캠프를 향해 길을 떠나는데이 때 이상 기온으로 영하 60도의 강추위와 중간에 난파 위험까지 있었지만얼음 속에 갇혀있는 절대 위스키를 찾기 위한이들의 욕망은 골룸 뺨치는 광기게다가 베이스 캠프 코앞에는 유빙까지 가득찬 상황!그러나 100년간 잊혀진 술 하나 까보겠다는 이 미친놈들의 광기 앞에선남극 따위는 어떤 장애물도 될 수 없었고그들은 이 모든 걸 다 헤치고 100년 전에 버려진 섀클턴의 캠프에 도착한다다만 관건은 아무리 절-대 위스키라고 해도남극의 가혹한 환경을 약 100년 이상 버텼을까?였기에원정대는 모르도르로 향하는 프로도와 샘마냥결연하게 땅을 파기 시작했고실제 발견된 위스키 통그리고 땅 밑에서 드디어전설의 모험가 섀클턴이 꿍쳐놓은 위스키 통을 발견한다!!이들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상자를 열었고드디어 100년 간 잊혀진 대-비보화이트 앤 맥케이 오리지널 위스키를 발견한다!!!뚜껑을 따자, 영하 60도의 냉기를 뚫고 올라오는 알콜향이 났고알콜 중독자 대원들은 모두 골룸마냥 처절하게 오열한다비록 얼음 무게 때문에 상자 몇개가 터진 상태였지만절대 위스키 11병 만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사우론의 품으로 돌아가는 절대반지 마냥이 절대 위스키는 탐험대의 손에 들려 100년 만에 스코틀랜드 양조장으로 돌아간다당연히 100년 전 조상님 때 소실된 오리지날 위스키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양조장 주인은 맨발로 뛰어나가 이 영롱한 자태를 영접한다그리하여 전 유럽의 양조 기술자들이 어쌤블하여이 소실되었다고 여겨진 위스키를 인수분해하며 성분표를 알아냈고100년 전에 사라진 위스키는 기적적으로 복원에 성공했으며위스키 이름은 위스키를 꿍쳐놓아서 복원을 할 수 있게 한 섀클턴의 이름이 붙었다현재 대충 5만원 정도의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니100년의 정수와 이 눈물겨운 똥꼬쇼를 느껴보고 싶다면 한번 마셔보는 것도 추천한다-끝-
작성자 : 흰콩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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