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 명의로 계좌를 개설했다면, 은행 업무를 방해한 혐의가 적용될까.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업무방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2022년 5월 실체가 없는 회사를 설립한 뒤 법인 통장을 개설해 은행의 업무를 방해하고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계좌를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고, 세무서를 방문해 사업자등록을 한 뒤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7월 해당 계좌에 입금된 400만원을 임의로 사용해 횡령 혐의도 적용됐다.
1심은 모든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실제 운영되지 않는 법인을 마치 정상적인 법인인 것처럼 속여 계좌를 개설하도록 함으로써 금융기관의 계좌개설 업무를 방해했다"며 "정상적인 금융거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범행에 따라 개설된 계좌가 범죄에 이용돼 피해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엄한 처벌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2심은 원심을 수긍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2심과 달리 대법원은 유령 법인을 활용해 계좌를 개설한 행위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계좌개설 신청인의 허위 답변을 그대로 믿고 추가 확인조치 없이 계좌를 개설해준 경우, 금융기관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이므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계좌 개설을 신청하면서 제출한 서류들은 사업자등록증, 법인인감증명서, 법인등기사항 전부증명서 등 뿐이었다"며 "업무담당자가 금융거래 목적 등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추가적인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거나, 이를 확인했다는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제출한 서류들은 법인 명의 계좌 개설 시 기본적으로 구비해야 할 서류"라며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거나 정상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등 진실한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피고인이 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한 것은 피해 금융기관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며 "피고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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