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mobility). 최근 몇 년간 많이 들려오는 단어입니다. 한국어로 해석해보자면, ‘이동성’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도 모빌리티, 킥보드도 모빌리티, 심지어 드론도 모빌리티라고 말합니다. 대체 기준이 뭘까요? 무슨 뜻인지조차 헷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벤처 중 상당수는 모빌리티 기업이었습니다.
‘마치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빌리티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호출 서비스부터 아직은 낯선 ‘마이크로 모빌리티’, ‘MaaS’,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라는 ‘자율 주행’ 등 모빌리티 인사이트가 국내외 사례 취합 분석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씩 알려 드립니다.
화물차 뒤, 왕눈이 스티커의 비밀
왕눈이 스티커를 차량 후미에 붙이고 주행하는 트럭을 보신 적이 있나요? 최근 고속도로 주행 중 왕눈이 스티커를 붙인 트럭을 보고 ‘차주 분이 귀여운 것을 좋아하시나’ 했었는데요. 하지만, 왕눈이 스티커의 목적은 트럭을 귀엽게 꾸미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스티커의 정체는 바로 도로교통공사에서 개발한 ‘잠 깨우는 왕눈이 스티커’입니다. 이 스티커는 졸음 운전과 시야 확보 부족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개발한 것인데요. 앞에서 날 지켜보는 느낌을 주는 ‘감시의 눈’ 효과와 함께 야간에 전조등 빛을 약 200m 후방까지 반사시켜 전방 주시 태만 및 졸음 운전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도로교통공사에서 스티커를 개발할 정도라니… 그만큼 졸음 운전과 전방 주시 태만 사례가 많은가 봐요?
물론입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과 한국도로교통공사가 공동으로 발표한 ‘최근 3년간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현황’을 살펴보면,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총 617명에 달합니다. 그중 428명(69.4%)이 졸음과 전방 주시 태만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어요. 또한, 2019년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176명 중 무려 91명(51.7%)이 화물차로 인한 사망자라고 합니다. 즉, 화물차 사고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죠.
스티커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주목받는 기술은 바로 ‘군집 주행 기술’인데요. 군집 주행이란, 단체 자율 주행화를 뜻합니다. 제일 선두에서 운행하는 화물차를 인식하고 뒤를 이어서 달리는 화물차가 스스로 안전거리와 속도를 유지하면서 운행하는 것이죠. 이전 기고에서 ‘자율 주행을 가장 먼저 적용할 분야는 화물차’라고 전했었는데요. 여기에 ‘화물차들이 단체로 움직이는’ 개념을 더한 겁니다. 이 기술을 도입하면 사고율을 낮추면서 같은 인력으로 운송 효율성을 높일 수 있죠. 많은 물류 기업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입니다.
경제적인 측면과 환경적인 측면에서 화물차 군집 주행 기술은 필수적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Allied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전 세계 군집 주행 시장 규모는 2017년 약 5억 달러(한화 약 5,880억 원) 규모에서 2025년까지 약 45억 9,000만 달러(한화 약 5조 3,978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합니다(연평균 성장률 32.4%). 또한, 미국의 ATRI(American Transportation Research Institute)에 따르면, 연료소비량을 최대 15%까지 줄일 수 있고, 탄소 배출을 저감시킬 수 있다고 하네요.
동시에 화물차 여러 대가 자율 주행한다고요? 어떤 기술이 필요한가요?
군집 주행의 핵심은 화물차의 정확한 위치와 관련 정보입니다. 적응형 순항제어(ACC), 사각지대 경고, GPS, 전방추돌경보, 차선유지지원, 차량용으로 설계한 와이파이, 카메라, 센서 등이 필요하죠. 무엇보다 세부 운행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물차가 군집 주행할 때, 차량사물통신 기술 ‘V2V(Vehicle to Vehicle)’와 ‘V2X(Vehicle to Everything)’를 활용하는데요. 이 기술이 발전할수록 선행 차량의 돌발 상황에 대응하는 반응 속도를 인간이 대응하는 브레이크 반응 속도보다 줄일 수 있습니다. 때문에 빠르게 감속하고 정차할 수 있죠. 이를 통해 화물차 여러 대가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마치 한 몸처럼 돌발 상황에 대응해 움직일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화물차 여러 대가 줄지어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운전을 자율 주행하는 거네요. 군집 주행 사례는 많은 편인가요?
미국의 경우, 이미 1991년 AHS(Automated Highway System)를 계획했고, 1997년 대규모 자동 운전 시범을 진행했습니다. 캘리포니아 PATH(California Partners for Advanced Transit and Highway Program)는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해 레이더, 라이다와 V2V 통신을 이용한 종 방향 제어를 시도, 실제 도로 환경에서 군집 주행을 시연했고요. 이후 PATH는 2010년 화물차 3대를 3~4m 간격을 유지한 채 군집 주행을 시연하였습니다.
유럽은 1995년 ‘Chauffeur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볼보가 주도했던 ‘SARTRE 프로젝트’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했고, 그 뒤를 이어 ‘유럽 트럭 Platooning 챌린지 2016’를 진행하는 등 활발하게 기술을 개발하고 있죠. 이 행사는 네덜란드의 DAF, 독일의 다임러(Daimler)와 만(MAN), 이탈리아의 이베코(Iveco), 스웨덴의 스카니아(Scania)와 볼보(Volvo) 등 6개 업체가 참가했는데요. 각 기업이 개발한 트럭에 군집 주행 기술을 적용해 유럽 대륙을 달렸습니다. 기업의 활발한 네트워크 연계 강화를 통해 상호 간 기술 교류를 유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우리나라와 바로 이웃한 나라, 일본도 있습니다. 일본 JARI(Japan Automobile Research Institute)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트럭 4대를 4m 간격으로 유지시키면서 주행했습니다. 또한, 경제무역산업성은 2018년 고속도로에서 군집 주행을 실증했고, 2022년 후발 차량에 운전자가 없는 상태로 군집 주행을 상용화한다고 밝힌 바 있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업체가 기술을 개발하나요?
대표적인 업체는 독일의 다임러(Daimler AG)입니다. 다임러는 상용차 제조사 중 최초로 2017년 미국 고속도로 ‘Oregon, Nevada’에서 화물차 자율 군집 주행 기술을 시연했어요. 다임러가 개발한 자율 주행 화물차가 애리조나주에서 텍사스주까지 장거리 주행을 14시간 만에 완수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운전했다면 24시간 걸리는 거리라고 하니, 운송 효율성 또한 크게 높아졌습니다.
다임러 자율 주행 화물차의 기술을 살펴보죠. 이 화물차의 군집 주행은 장거리 레이더, 단거리 레이더, 입체 카메라, 적응형 순항 제어 기술 등을 통해 구현됩니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액티브 브레이크 어시스트가 장거리 레이더와 단거리 레이더를 이용해 주행과 감속을 조정, 자동차 간 거리를 자동으로 조절해 자율 주행하는 방식입니다.
국내 자율 군집 주행 기술은 얼마나 발전했나요?
우리나라도 관심 많습니다. 지난 9월 9일, 2018년부터 4년간 한국도로공사, 국민대학교, 현대차, 카카오모빌리티 등이 함께 개발한 화물차 자율 군집 주행 기술 최종 성과 발표회를 개최했죠. 영동선, 중부내륙선 등 약 80km 구간에서 화물차 4대가 달리는 모습을 공개했는데요. 자율 군집 주행 기술 선도 국가들과 비교하면, 연구 시점은 조금 늦었지만 꾸준한 실증을 통해 빠르게 상용화한다는 방침입니다.
현대차는 센서 10개를 적용해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군집 주행 기술 개발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방과 후방에 각각 카메라와 레이더를 장착하고, 전방과 양쪽 측면에 라이다 센서, 트레일러 연결 부위에 굴절각 센서, GPS 등을 장착했는데요. 방금 언급한 공동 개발 발표 이외에도 지난 2020년 의왕-인천 간 약 40km 구간 고속도로 자율 주행을 성공한 바 있죠.
자율 군집 주행을 편리하게 지원하는 플랫폼 개발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자율 군집 주행을 위한 V2X 기반 군집 주행 서비스 플랫폼을 공개했는데요. 기사용 태블릿 앱을 통해 신규 군집 형성, 군집 내 역할 설정, 군집 합류 지점까지 경로 안내, 긴급 상황 경고, 선두 차량 시점의 주행 영상과 같은 정보를 제공하고, 플랫폼 서버는 차량 정보, 공통 경로, 합류 예상 시간 등을 고려해 최대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군집을 매칭한다고 합니다.
자율 군집 주행 기술 발전을 위해 현재 기술을 보완하거나 개선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자율 군집 주행 기술은 운전자 피로 예방이나 전방 주시 태만, 졸음 운전 등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차량 간 정보 공유 기술인 V2V 외에도, V2I, V2X 등 통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원활한 정보 공유를 위한 준비부터 마쳐야 하죠.
최근 차량 간 통신을 위해서 국제적인 표준화 작업도 활발합니다. 국내외 선진 기술을 활용한 자율 주행 군집 주행을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통신 규격 표준을 정하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최근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국토교통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가지 방식의 병행을 추진하다가, 2024년에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인데요. 전 세계 기술 흐름과 동떨어지지 않으면서 국내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민간 기업의 적극적인 연구 개발 외에도 관련 정부 부처의 명확한 방향 제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글 / 한국인사이트연구소 김아람 책임연구원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시장 환경과 기술, 정책, 소비자 측면에서 체계적인 방법론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민간기업과 공공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컨설팅 전문 기업이다. 모빌리티 사업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모빌리티 DB 구축 및 고도화, 자동차 서비스 신사업 발굴, 자율주행 자동차 동향 연구 등 모빌리티 산업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모빌리티 인사이트 데이’라는 전문 컨퍼런스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모빌리티 전문 리서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모빌리티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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