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강형석 기자] 엔비디아가 2024년 2분기에도 매출 예상치를 뛰어넘는 호실적을 기록했음에도 주가는 하락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주가도 일제히 하락했다. 미국 반도체주 하락은 우리나라 주식 시장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전일 종가 대비 1만 1700원 하락한 16만 7600원에 장을 시작했고, 삼성전자도 전일 종가 대비 2800원 하락한 7만 3600원에 장을 시작했다.
2024년 8월 28일(미국 현지 시각), 엔비디아는 회계연도 2025년 2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매출은 300.4억 달러(원화 약 40조 823억 7200만 원)로 예상치 288.56억 달러(원화 약 38조 5025억 6080만 원)를 크게 상회했다. 이전 분기 매출인 260.44억 달러(원화 약 34조 7505억 920만 원) 대비 15% 상승한 수치다. 매출 총이익(Gross Margin)은 75.7%를 기록했다. 높은 수치였지만, 이전 분기에 기록한 78.9% 대비 3.2% 하락했다.
엔비디아는 좋은 성적표를 보여줬지만, 시장은 상승세가 둔화된 모습에 경계감을 드러냈다. 2024년 8월 28일 엔비디아 주가는 128.12 달러(원화 약 17만 950원)에서 시작해 122.64 달러(원화 약 16만 3640원)까지 밀렸지만, 매수세가 붙으며 125.61 달러(원화 약 16만 7600원)에 마감했다. 일봉 기준, 엔비디아 주가는 이전 고점을 돌파하지 못했다. 주봉은 외부 요인에 따라 하락 가능한 자리에 있다.
엔비디아 일봉상 주가 흐름. 실적발표 후 2일 연속 하락했다. / 출처=트레이딩뷰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호퍼(H100)의 수요는 여전히 강하고, 블랙웰(B200)에 대한 기대는 매우 크다”며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가속 컴퓨팅 및 생성형 인공지능을 위해 컴퓨팅 장비를 현대화하면서 엔비디아는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주가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내용도 언급됐다. 엔비디아 이사회는 만료 없이 500억 달러(원화 약 66조 715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안을 승인한 게 대표적이다.
투자 시장의 경계감을 의식했는지 젠슨 황 CEO는 “블랙웰 플랫폼은 4분기에 출하될 것이다. 블랙웰 출하로 4분기 이후에는 수십억 달러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젠슨 황 CEO가 언급한 4분기는 2024년 10월부터 12월까지가 아니라, 엔비디아 회계연도 기준 2025년 4분기에 해당하는 2024년 11월부터 2025년 1월 사이다. 시장의 예상대로 2025년 1월에 출하된다면 호퍼가 공백을 더 메워야 하는 상황이 온다.
시장이 우려하는 부분은 블랙웰 플랫폼 출시에 의한 기업의 투자 비용 증대다. 이에 대해 젠슨 황 CEO는 “블랙웰 수요는 공급을 초과한 상태로 이 추세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헬스케어와 소버린 인공지능(국가를 위한 인공지능) 분야가 계속 확장 중”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 실적은 좋았는데 왜 시장은 공포에 빠졌나?
엔비디아의 실적은 기대 이상이었지만, 상승세에 날개를 달아줄 관련 기업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보여줬다. 먼저 휴렛패커드(HP)의 실적이 하락했다. 2024년 2분기 총매출은 135억 2000만 달러(원화 약 18조 397억 3600만 원)로 예상치인 133억 7000만 달러(원화 약 17조 8395억 9100만 원)를 소폭 상회했다. 그러나 주당순이익(EPS)가 83센트(원화 약 1100원)로 예상치 86센트(원화 약 1150원)보다 낮았고, 다음 분기에 대한 매출 전망도 좋지 않았다. 2024년 2분기 PC 판매는 견조했지만, 다음 분기에는 추세가 계속 이어질지 불분명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엔비디아 데이터센터 제품을 생산하는 슈퍼마이크로에 문제가 생겼다. 슈퍼마이크로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하는 2024년 회계연도 10-K 보고서(재무보고서)가 연기됐기 때문이다.
힌덴버그 리서치는 2024년 8월 27일, 슈퍼마이크로가 회계상 경고 신호와 관계 당사자간 미공개 거래 증거, 수출 금지 물품을 중국에 부적잘한 경로로 수출한 점 등 여러 문제점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슈퍼마이크로 측은 소문과 추측일 뿐이라며 일축했지만, 이번 재무보고서 제출 지연 문제가 터지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키웠다. 힌덴버그 리서치가 언급한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슈퍼마이크로에 타격이 예상되며, 향후 엔비디아 매출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 데이터를 다루는 환경의 변화도 고려해야 된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앞세워 대형 언어 기반 인공지능 학습ㆍ추론 과정이 온디바이스와 소형 데이터센터 등으로 확대 적용되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규모가 작아지면 인공지능 반도체에 큰 투자를 안 해도 된다. 꼭 엔비디아 반도체를 쓸 필요도 없다. AMD와 인텔, 기타 인공지능 가속기 개발 스타트업 제품 등 선택지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엔비디아의 장기 수익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2024년 3분기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가 호실적을 냈지만 주가가 하락한 것은 시장의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번 주가 하락이 단기 조정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먼저 제품군 구성이 엔비디아에 유리하다. 블랙웰 플랫폼 출시와 함께 호퍼가 잠시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 있지만, 일부 기업들이 구매하기 어려웠던 호퍼를 도입하기에 좋은 환경이 된다. 추가로 기존 대형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고객까지 호퍼를 계속 구입한다면 엔비디아의 수익성은 유지될 것이다. 블랙웰 플랫폼의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부분도 호퍼의 수명 연장에 힘을 실어준다.
삼성전자 일봉상 주가 흐름. 캔들이 240일 이동 평균선 아래에 있다. / 출처=트레이딩뷰
경쟁사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도 엔비디아에게는 호재다. 실적 부진에 빠진 인텔은 가우디의 뒤를 이을 인공지능 가속기에 대한 언급이 아직 없다. 인스팅트 MI300의 차기 제품인 MI325를 선보일 AMD도 엔비디아와 직접 경쟁은 어려운 상황이다. 여러 인공지능 가속기 스타트업이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으나 주류로 부상하려면 시장의 검증이 필요하다.
SK하이닉스의 일봉상 주가 흐름. 240일 이동평균선 자리를 지켰다. / 출처=트레이딩뷰
인공지능 반도체에 쓰이는 메모리는 어떻게 될까? 고대역메모리(HBM)는 엔비디아와 AMD 등이 차기 제품을 계속 선보이고 있어 수요가 꺾이지 않는 이상 수요에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투자기관이 HBM 수요 축소를 우려하고 있지만, 경쟁자가 적은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래픽용 디램(GDDR) 메모리는 HBM과 달리 인공지능 반도체와 그래픽 처리장치 등 쓰임새가 많아 흐름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업계는 인공지능 열풍을 타고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2025년까지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상황 속에 기업은 진짜 실적으로 답해야 되는 시점이 왔다. 시장이 2024년 3분기 실적에 눈을 돌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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