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권택경 기자] 건축을 공간 혹은 그 공간을 향유하는 경험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건물은 그러한 공간과 공간 경험을 담는 일종의 매체다. 건축에서 매체가 될 수 있는 건 건물뿐만이 아니다. 도면을 그리는 단계에서는 종이가, 나아가서는 건물 모형도 매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상 공간을 담을 수 있는 가상현실 또한 건축의 매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에서 3차원 가상 전시 공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갤러리플레이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작업도 결국은 건축이라고 설명한다. 이용자들은 3D로 구현한 가상 현실 속 전시 공간을 거닐며, 곳곳에 배치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같은 공간에 접속해있는 사람들과 채팅으로 실시간 소통도 할 수 있다. 단순히 2D 텍스트와 이미지로 된 작품 카탈로그를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경험이다. 실제 미술관이나 전시공간을 거닐 때 할 수 있는 공간 경험을 온라인 가상 공간에 그대로 옮겼다.
가상 공간을 활용하면 물리적 제약, 비용 부담이 적기에 비대면 행사를 손쉽게 열 수 있다. 전시 공간을 마련하거나 기회를 받기 어려운 청년 예술인들의 단독전도 가상 공간에서라면 가능하다. 이용법도 간단하다. 머리에 쓰는 VR 기기와 같은 복잡한 장비나 별도의 앱이 필요한 게 아니다. PC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웹 브라우저에서 곧바로 접속할 수 있다.
"공간도 매체입니다"
왼쪽부터 갤러리플레이 고수영 창업자와 이수남, 안창원 공동창업자
건축 전공자인 갤러리플레이 고수영 창업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명문 미술대학인 슈테델슐레에서 석사 생활을 할 때 가상현실을 연구했다. 이때 당시 만난 인연이 이수남 공동창업자다. 두 사람은 가상현실 또한 공간을 다루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건축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얘기를 나눴다.
인터넷과 연동된 가상 공간이 실시간으로 시각 정보와 데이터를 계속 업데이트할 수 있다면,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지금 갤러리플레이에서 하고자 하는 서비스의 비전을 머릿속에 그렸다. 졸업 후 건축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도 이 비전은 그의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 건축 업계 내에서는 이 비전을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그래서 퇴사 후 창업을 결심했다. 같은 고민을 하고, 비전을 그렸던 이수남 공동창업자도 마침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퇴사를 했고, 두 사람은 다시 의기투합했다.
갤러리플레이가 구현한 KT&G 상상유니브의 ‘PLAY IN 아리따움 화보전’ 전시 공간 (출처=갤러리플레이)
여기에 크고 작은 건축 회사를 오가던 안창원 공동창업자도 합류를 결정했다. 그는 여러 건축 프로젝트 수행 중 현실의 한계를 느끼며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차에 고수영 창업자의 비전을 접하고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3명의 건축 전문가들이 모여서 갤러리플레이가 만들어졌다.
이들에게 가상 공간이란 하나의 매체다. 이를 테면 웹 사이트와도 같다. 웹 사이트가 이미지와 텍스트, 동영상, 하이퍼링크 등이 구성된 2차원의 평면적인 매체라면, 갤러리플레이의 가상 공간은 이러한 요소를 3차원의 공간적 경험으로 제공하는 매체다. 그래서 고수영 창업자는 “저희 결과물은 서비스지만 결국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는 하나의 매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한다.
가상 공간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출처=갤러리플레이)
올해 6월 창업해 아직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갤러리플레이는 벌써 여러 프로젝트를 맡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한밭대학교의 올해 건축학과 졸업전시회, KT&G 상상유니브의 ‘PLAY IN 아리따움 화보전’가 갤러리플레이가 만든 가상공간 안에서 열렸다. 윤재선 사진전, 이어진 개인전, 지운 사진전 등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회도 갤러리플레이에 의해 탄생한 가상 전시 공간에서 열렸다. 이외에도 현재 정부기관이나 유명 예술가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추진한 '2021 문화기술 아이디어 개발지원(BM창업부문)' 사업에도 선발돼 문화기술 관련 지원을 받고 있다.
갤러리 플레이의 서비스는 언뜻 보기에 최근 주목받는 3D 가상 세계 기반 메타버스 플랫폼과도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다. 고수영 창업자는 “저희가 추구하는 건 플랫폼이라기보다는 SaaS(Software as a Service,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에 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갤러리플레이가 직접 가상 공간을 만들어서 제공하는 형태지만 이러한 가상공간을 사용자가 직접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게 갤러리플레이의 목표라는 게 고수영 창업자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먼저 내년 상반기에는 정해진 가상 공간 안에서 담을 수 있는 이미지나 영상 등 콘텐츠를 자유롭게 올릴 수 있게 하고, 내년 하반기는 여러 가상 공간 템플릿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공간을 이용자가 직접 디자인할 수 있는 형태로 서비스를 완성하는 건 내후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용자에게 제한 없는 자유를 주기보다는 어느 정도 정해진 틀을 제공함으로써 건축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완성도 높은 가상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갤러리플레이가 맡은 다양한 전시 프로젝트들 (출처=갤러리플레이)
활용 분야도 점차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전시 공간 외에도 다양한 행사 공간으로 활용될 수도 있고,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로도 활용될 수 있다. 최근 많이 주목받는 디지털 자산, NFT(Non Fungible Token, 대체불가 토큰)을 사고파는 장터가 아닌 실제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다. 고수영 창업자는 “백화점에 가지 않아도 멀리 떨어져 있는 지인과 동시 접속해서 간단히 물건을 보고 경험을 할 수 있는 그런 걸 구상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트렌드에 편승하기보단 비전, 목표에 집중
한 가지 궁금했다. 갤러리플레이의 가상 공간 서비스는 여러모로 ‘메타버스’ 서비스로 부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하지만 갤러리플레이는 자신들을 소개할 때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메타버스를 언급하면 몸값이 뛰고, 주목도가 달라지는 요즘 분위기를 생각하면, 다분히 의도적인 거리 두기였다.
왼쪽부터 갤러리플레이 고수영 창업자와 이수남, 안창원 공동창업자
갤러리플레이를 메타버스 기업으로 소개해도 되냐고 묻자 고수영 창업자는 “갤러리플레이가 추구하는 비전과 방향과는 아직은 결이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트렌드에 편승해서 조금이라도 더 주목받는 길도 있지만, 갤러리플레이는 아직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비전과 방향성을 지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갤러리플레이의 가상 공간 서비스에 NFT나 3D 아바타를 결합하자는 제안이나 요구를 받기도 했지만 이를 모두 고사했다.
이수남 공동창업자는 “그러한 시장의 상황 속에서 저희가 만들고자 하는 서비스가 우리의 비전과 관심과 맞아떨어지는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운 부분인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안창원 공동창업자는 “저희 비전이나 목표를 계속 공유하면서 우리는 이 길로 나가야 한다는 걸 주기적으로 상기합니다. 어떤 프로젝트가 들어오거나, 기능 개발을 할 때 이게 우리 목표나 디자인과 맞는지 그걸 검토하는 과정을 거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갤러리플레이의 비전과 목표는 무엇일까? 고수영 창업자는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가상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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