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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9>앱에서 작성

5픽서폿빼고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3.13 01: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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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죽어.


긴장했어요? 어. 나 쓰러지면 바로 심폐소생술 해줘. 헐 저 할 줄 모르는데요? 명치 누르면 되는 거예요? 아니면 물이라도 뿌릴까요? 그러든지. 그 아이는 긴장은커녕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선 내 주위를 빙빙 돌며 놀렸다. 쌤 무대 서본 적 한 번도 없어요? 있어. 한번. 언제요? 고등학생 때. 팝송 부르기 대회 참가상으로 문화상품권 준다길래 친구 6명이랑 올라가기로 했는데, 당일 공연 전에 싹 다 도망가고 둘이서 올라갔어. 뭐 불렀어요? 어셔 노래. 어떻게 됐는데요?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삑사리 내고 난장판 됐지. 가벼운 대화를 하며 기다리는 와중에도 손에 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잘 마무리 하고 싶었다. 

우리는 영화 Once의 삽입곡 Falling Slowly를 불렀다. 명색이 축제인데 분위기가 너무 처지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듀엣으로 부를만한 좋은 곡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음이 높지 않은 곡들 중에서 추리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태권도 팀 다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숨이 안 들어오고 목이 조였다. 정신을 차리니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고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연신 사겨라를 외치고 있었다. 긴장해서 대체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았다. 이후엔 간단한 시상과 상품 증정식이 있었다. 우습게도 문화상품권은 우리에게로 왔다. 당연히 잘해서는 아니었다. 도움닫기를 하다 넘어져 송판을 부수지 못해 집어던진 태권도 팀이나 트릭을 모두에게 들킨 마술팀, 제각기 다른 박자와 안무를 선보인 댄스팀의 부진이 우릴 비교적 평범하게 만들어줬다. 그 아이는 내 손을 꽉 부여잡고 방방 뛰었다. 그 정도로 밝은 모습을 처음 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모습을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린 남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치부를 자랑이라도 하듯 드러내기 시작했다. 닮은 부분은 겹쳤고 벌어진 틈은 공감이 메웠다. 그때의 계절은 기후가 아니라 기분이었다. 그 아이가 웃으면서 나를 반기는 날엔 어떠한 법칙도 거슬러 무엇이든지 피워낼 수 있었다. 내일을 기다린다는 게, 내가 색을 지니고 있다는 게 아무래도 좋았다. 그 아이의 영역에 내가 침범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우리가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자만. 그게 내가 저지른 스물한 번째 실수였다. 그 아인 여름에도 소매가 긴 옷을 입었고 손목엔 진물이 자주 맺혔다.

왜 그런 것까지 참견하는데요? 그게 맞다고 생각해? 제 몸이고 제 마음인데 그것도 허락 맡고서 해야 하나요? 그래. 나도 그런 생각한 적 있어. 아무리 혼자 발버둥 쳐도 좆같은 집안 환경은 변하지 않고, 그렇다고 남을 해치지는 못하겠고, 마음껏 파괴할 수 있는 게 나 자신뿐이라는 거. 그래봤자 너를 좀먹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러면 나아지기라도 하니 정말로? 너를 아프게 하면 뭐가 나아져? 네. 저한텐 이게 약이고 치료니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세요. 우리 잘못이 아니잖아. 왜 네가 벌을 받고 있냐고.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냥 죽어버리고 싶어요. 

계절이 말라갔다. 이상기후 속에서 내가 그 아이의 봄을 끌어다 쓴 건 아닌지 자책하는 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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