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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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 쿵
~하고 소리가 났겠는가
, 안
났겠는가
?” 지난
23일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 매회 시작되는 내레이션이다
.
사실 저 질문은 철학자들 사이의 케케묵은 선문답과도 같다. 상식적인
답변은 당연히 “예”다.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당연히 땅바닥에 부딪히는 굉음 소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 답변은 “아니오”라고 한다. 나무가
쓰러지면 공기의 진동이 일어나고 진동이 소리가 되려면 귀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뇌로 전달되는데 이 장치가 없다면 소리가 없고 공기
움직임이 있을 뿐이라는 게 어느 철학자의 답이다.
철학적인 얘기는 접어두고, 시청자들은 알 듯 모를 듯한 저 물음의
의미가 뭐지 하면서 드라마에 더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매회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나오는 저
내레이션에 귀를 더 기울였으니 말이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는
소름 끼치는 스릴러 드라마다. 회차는 총 8화다. 작품의 배경은 서울에서 좀 떨어진 시골마을로, 산길로 들어가야 나오는
한적한 펜션이다. 숲이 우거지고 호수도 있다. 이 곳에 윤계상의
모텔이 있고 김윤석의 펜션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20년의
갭이 존재한다. 시대가 교차하고 시간이 바쁘게 움직이고 배우들이 왔다 갔다 하지만 1회가 끝날 때쯤 시간의 축을 잡을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보여주기에 좀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1회에서부터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주요 배우 4명의 이야기가 엇갈리듯, 때로는 만나는 듯 휙휙 지나간다.
우리 모두는 김윤석과 같은 인물일지도 모른다.
영하(김윤석)는 시한부
삶의 아내를 위해 서울의 삶을 정리하고 시골에서 펜션을 열었는데 어느 날 성아(고민시)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이곳에 묵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환상이었는지, 악몽이었는지 성아가 데리고 온 아이를 죽이고 시체를
어떻게 처리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상준(윤계상)의 이야기도 엇갈린다. 어렵게
자란 상준은 아내 은경(류현경)을 만나 쓰러져가는 모텔을
경매로 얻어 레이크뷰 모텔을 꾸려가지만 연쇄살인법이 묵게 되면서 가정이 산산조각이 난다. 또 하나의
캐릭터 살인현장의 관찰자 경찰 윤보민(이정은)이다. 젊은 윤보민은 레이크뷰에서 사건이 터질 때는 초짜 순경으로 경황이 없게 그려지지만 20년 동안 현장을 뛰며, 마치 '술래'처럼 숨겨진 사건의 내막과 '개구리'가
된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쓴다.
자, 인물 관계를 보자. 윤계상은
고민시의 반대편의 정점에 있는 인물 중 하나인데 실제로 고민시와 한 번도 만나지 않는다. 윤계상의 적대자는
지향철보다는 고민시일 수 있다. 과하게 보면 모든 선인들은 윤계상의 대리자이며 모든 악인은 고민시의
대리자이다.
김윤석은 가장 실재감이 없고 공허해 보이는 캐릭터인데 표면적으로는 주인공이다.
그러나 김윤석은 윤계상과 고민시 사이를 끊임없이 대리하는 미진한 행위를 하는데 그친다.
4명의 주연 배우 가운데 고민시에 눈이 꽂힌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등장한다. 대배우들의 열띤 연기에도 불구하고
대적하는 수준을 넘어서 압도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의
시작과 끝은 고민시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우리나라 영화와 드라마 모두 합쳐서 가히 역대급 빌런이
아닐까 싶다. 왜소하고 가느다란 몸에 곱상한 얼굴인데도 연기력과 아우라로 지능적, 물리적 우위로 보였던 극중 다른 캐릭터들을 모두 압도한다. 한마디로
사이코패스를 넘어선 '미친 년'이다.
고민시의 연기는 역대급이다.
또 하나 김윤석의 역할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마치 무책임하게 빨간 당에 투표하고 나서 어떻게든 잘 될 거라고 막연한 희망을 가져보지만, 나라가 폭삭 망해가는 꼴을 보면서도 그게 자신이 잘못한 투표의 결과라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김윤석은 자기의 우유부단하고 어리석은 판단으로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마치 이 드라마의 영어 제목인 'The Frog'에서 보듯 누군가
던진 돌을 맞은 개구리는 돌 던진 사람을 원망해야 할지, 아니면 돌에 맞은 자신을 원망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아무도 없는 살인 현장에서 피해자는 당연히 있을테고, 누군가는 2차 피해자가 되고 목격자가 되고 혹은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쿵~하고 쓰러지는 나무처럼 누군가에겐 소리가 날 수도, 안 날수도 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지만 개구리 스스로 연쇄적인 악재의 사슬을 끊으려는 노력이 인상적이다. 물음을
던져 본다. 내가 개구리라면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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