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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오프 옥경혜랑 드라마 후의 이야기_31_31.김, 지영, 옥경

정갤러(221.145) 2025.02.10 10:10:03
조회 448 추천 11 댓글 21





31. 김, 지영 , 옥경


-왔냐? 안 올 줄 알았더니.

-아직 안 잤어요?

-망했다. 나 너 안 오는데 돈 걸었는데.


김이다.

김이 지영의 정원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추운데, 감독님. 밖에서 청승이야.


-비 그쳤잖아. 풀냄새 죽이지 않냐? 술 마시니까 괜찮네. 오늘 기념행사에서 열도 많이 받아서 말이지.

-왜요? 

-양키놈들 짜증나서. 

-웬 자격지심이야.

-어쩔 수 없어. 태생이 자격지심 덩어리라. 나 집안에서도 운명적으로 자격지심을 타고 났잖아. 우리 형들이 하도 공부를 잘해가지고. 난 어릴 때부터 꼴통이었어.

-조선의 영화판을 들었다 놨다 하시는 천재 김감독님이 뭔 소리야.


그는 농담 따먹기를 하다 문득 말이 없다.


-너 그거 아냐? 내가 장르물 좋아한다고 우기지만 원래 전공은 멜로야. 나 멜로 영화 하면 니네 다 죽어.

-왜, 본인이 원단 멜로라서?

-나 진짜 조선의 순정이거든.


나는 조금 부드럽게 말한다. 

-정말…왜 지영이한테 아무 말도 안해요? 감독님 맘을 알긴 해요? 


그는 말없이 맥주를 마시더니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거야. 


-우리 약혼한 사이였어.


나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래, 뭐가 있어도 있었겠지.


지영과 김은 영국에서 처음 만났다. 일본에서 영화 공부를 하다가 그것이 성에 안 차 영국으로 간 김과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기 위해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던 지영.

대학에는 동양인이 거의 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가끔 중국이나 일본인들이 있었지만,

특히 조선인은 유일해서 김은 고독하게 학교를 다녔고 본토 사람들은 물론 특히 소수의 일본인들에게서 오는 은근한 무시가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미츠키만 나한테 잘 해주는거지. 그러니까 내가 그 여자한테 마음을 안 줄 수가 없었어. 그리고 젊었잖냐…그때만 해도. 그냥 다 줘버렸지 뭐. 지금 쓸 것도 없다. 그 때 다 줘서. 우리 둘이 그냥 싸구려 반지 사가지고 약혼해버렸지. 


-그런데 왜 결혼 안 했어요? 


-되겠냐? 우리 집안이 친일파면 또 가능성이 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이완용이 아들이었으면 장가 가는건데.

-농담이 나와, 지금?

-농담 아냐. 지영이 잡을 수 있으면 나라라도 팔아, 내가 지금도.


그는 남은 맥주를 마저 마시고는 말했다. 

-나 지영이 아버지 땜에 죽을 뻔 했거든.


나는 놀라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그랬지. 너네 다 죽는다고. 나 멜로에 신파까지 두루 섭렵했어. 


지영의 아버지는 지영이 만나는 사람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고 무척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어느날 김은 아침 일찍 등교 길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었고

길에서 쓰러진 채 다른 학생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그가 폭행을 당했을 때 김은 그들이 일어를 하는 것을 들었고

지영은 그게 자기 아버지가 한 일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지금도 뭐…쟤네 아버지 아직 눈에 흙 안들어갔잖냐. 그러고…그게 다 때가 있는거야. 나 한 2년 의식이 없었거든.

깨니까 내가 미국에 드러누워 있더라고. 그때부터 형이고 누나고 나를 무슨 애 취급하고 되게 짜증나.

그러고 한참 못 봤지. 다시 겨우겨우 영국에서 공부 마치고, 영화판에 넘어왔더니 그렇게 감독들한테 돈을 쓰고 다니는 일본여자가 있다길래, 

나도 좀 얻어서 영화찍어볼까 하고 만나러 갔더니. 글쎄 저 여자더라. 그러고 나서 남자를 안 만났더라고.

나 덕분에 자기가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걸 알았데나 뭐래나.

아무것도 모를 때 내가 확 가졌어야 했는데.

어휴…내가 그 생각만 하면 분해서 죽어.


-그리고 지금이야…


그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오늘 지영이가 많이 울었어.


-...


-그런데 있잖아, 나 맘 속으로 되게 고소하더라.


-...


-너도 한번 당해봐라. 다른 사람 마음에 두고 평생 너한테 안 갈 사람 뒤통수나 쳐다보면서 너도 한번 살아봐라. 내가 그 생각이 다 들더라. 


나는 할 말이 없어 그의 옆에 앉아 그가 가져다 놓은 맥주를 마셨다. 


-그래서 나 때려칠라고. 너무 구질구질하잖아. 좋아하는 여자한테 당해봐라가 뭐냐, 가오없게.

그리고 뭐…사실 다 끝난 일인데 내가 들러붙어 있는거지.


미츠키도 나한테 빚이 있다고 생각해서 짜증나는데 그냥 냅두는거야.

사실 지영인 옛날 만날에 다 끝났다는거 나도 알아. 


마당만 보며 이야기하던 그가 얼굴을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저번엔 내가 주제 넘었다. 뭘 누구한테 잘 하라느니 못 하라느니…내 주제에.

-아니예요. 제가 주제 넘었어요.


-그래도 나 누이 사랑하는 거 알지? 너 늙어서 힘 다 빠지고 못생겨지면 또 모를 일이야. 그 때 아무도 없으면 나랑 결혼하자.


-감독님은 히치콕이랑이나 결혼해.


-야, 난 남자 싫어. 그래도 난 여자 좋아. 

그러고 얼마간 우리는 더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다가 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방으로 갈까 하다가 지영의 방을 두드렸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뒤돌아서 가려는데



안에서

-들어 와.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고 있다.

그녀의 방에서 정원이 보이니

아마 아까부터 서 있었다면 내가 들어오는 것도, 내가 김과 앉아 맥주를 마시던 것도 다 보였을테지.


-지영아.


-나 너 안 기다렸어.

그녀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도 너 안 기다릴거야. 그러니까 떠난다 만다 그런말 하지 마. 너 나한테 온 적도 없잖아.


비온 뒤 창문 밖으로 넘어오는 풀냄새가 담배냄새와 섞여 묘한 향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내 얼굴을 바라본다. 


-너한테 처음부터 공주님밖에 없었던 거 알아.

그녀가 말했다.

-그래도...공주님이 널 힘들게 하면, 너도 울 데가 있어야 하잖아 옥경아.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물었다.

-그러면 너는.


-나? 난 다 가지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넌 그냥 문옥경으로 살아. 지금까지 그랬잖아.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그럴 수는 없어.

-아냐. 그럴 수 있어. 넌 날 버릴 수 없어. 넌 나를 가지고 싶어 한 적도 없잖아. 


그녀는 나의 품을 빠져나오며 말했다.

-그만 가서 자. 나 피곤해.


-너 자는 거 보고 갈게.

그녀는 별 말없이 창문을 바라본 채 누웠다.

나는 창문을 등지고 침대에 앉아 있다가.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아마…잠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밤, 나는 간단히 짐을 챙겨 택시를 불러,

뉴욕의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어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시, 이진섭 곡, 나애심 노래,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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