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가상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장본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33)가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송환될 것으로 보인다.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이 21일(현지시각) 권씨의 미국 송환을 결정했다고 현지 일간지 포베다 등 외신이 보도했다.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검거된 지 11개월 만이다. 도피 기간으로 따지면 22개월 만이다.
테라·루나 폭락하자 '도피'
권씨는 1991년생으로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컴퓨터과학·경제학과로 진학했다. 졸업 직후에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인턴으로 일하다가 지난 2015년 국내로 돌아왔다. 지난 2018년에는 테라폼랩스를 창업했다.
테라폼랩스는 특이한 알고리즘을 채택해 코인을 발행했다. 테라 블록체인 생태계의 기본 통화인 루나 공급량을 조절해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 1개의 가치를 1달러에 맞추도록 하는 형태였다. 테라를 예치하면 루나로 바꿔주고 최대 20% 이율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았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 전까지만 해도 권씨는 가상자산 업계 주요 인물로 국내외 언론의 주목받았다. 때문에 그에게는 '한국판 일론 머스크', '비트코인 고래'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실제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테라는 한때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 3위 규모에 달했다. 권씨는 지난 2019년 포브스 선정 30세 이하 아시아 리더 30인에 꼽히기도 했다.
권씨를 몰락하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 발행한 '테라'와 '루나' 때문이다. 지난해 5월께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발생했다. 일주일 만에 100% 폭락한 테라와 루나는 말 그대로 '휴지 조각'이 됐다. 시가총액은 52조원이 증발했으며 피해자만 28만명으로 추산된다.
막대한 피해자 발생에 검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여기서 권씨는 도피를 선택했다. 머물고 있던 싱가포르를 떠나 두바이를 거쳐 세르비아로 도피한 것이 확인됐다. 이에 검경은 지난해 9월 26일 권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령이 내려졌다. 또 여권을 무효화 하는 조치를 하면서 권씨는 불법 체류자가 됐다.
[포드고리차=AP/뉴시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해 3월24일(현지시각)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서 법정에 출석하는 모습. 몬테네그로 법원은 21일 권씨의 미국 송환을 결정했다. 2024.02.22. /사진=뉴시스
미국서 징역형 얼마나 받을까
사라졌던 권씨가 다시 등장한 것은 지난해 3월 23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다. 두바이행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 현지 당국에 체포됐다. 천재로 불렸던 사람인 도피자, 불법 체류자, 위조여권 소지자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검거 직후 미국 뉴욕 검찰은 권씨를 증권 사기 등 총 8개 혐의로 기소했다. 한국 법무부도 즉시 몬테네그로 당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한미가 권씨의 신병 확보 쟁탈전을 벌인 셈이라 이목이 쏠렸다.
이어 권씨는 몬테네그로에서 공문서위조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지난해 11월 범죄인 인도 공식 승인에 이어 이날 미국 송환이 결정됐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했기 때문에 권씨가 10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과거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로 악명을 날린 버니 메이도프는 지난 2009년에 징역 150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한편 권씨 신병 확보에 주력해 온 국내 수사당국으로서는 테러·루나 사태의 핵심 피의자를 국내 법정에 세워 단죄할 기회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 남부지검에 진행 중인 검찰 수사 또한 주범을 빠트린 '반쪽짜리 기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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