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권택경 기자] 코로나19 대유행이 사실상 종식 국면에 접어듦에 따라 기업들 명운도 엇갈리고 있다. 대표적인 코로나 수혜 산업으로 꼽혔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계에서는 썰물이 지고 있다. 성장세를 타고 우후죽순 등장해 몸집을 키워왔지만 이제는 내실을 다지고 새로운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을 맞았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건 OTT 대표주자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지난달 20일(이하 현지시각) 뉴욕증시에서 전 거래일보다 35% 이상 폭락 226.19달러(약 28만 9000원)로 장을 마쳤다. 하루 만에 증발한 시가총액만 540억 달러(약 69조 120억 원)에 달한다. 넷플릭스 주가는 이후에도 추락을 거듭해 18일 종가 기준 177.19달러(약 22만 6000원)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록한 역대 최고가 700달러(약 89만 5000원)와 비교하면 반의 반토막이 났다.
출처=셔터스톡
넷플릭스의 주가 폭락을 촉발한 건 지난 1분기 실적 발표다. 발표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1분기 유료 가입자는 20만 명이나 감소했다. 넷플릭스 가입자가 감소한 건 1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넷플릭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러시아 서비스를 중단하며 한 번에 70만 명이 감소한 탓이 크다고 설명한다. 이를 빼고 계산하면 오히려 50만 명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50만 명이란 숫자 또한 초라한 성적인 건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는 지난 1월에 올해 1분기 유료 가입자 증가 전망치로 250만 명을 제시했다. 이조차도 기대에 못 미치는 전망치란 평가를 받으며 20% 이상 주가 하락을 유발했는데, 실제 수치는 그보다도 한참이나 낮았다. 2분기 전망은 더 심각하다. 넷플릭스는 가입자 200만 명이 더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넷플릭스의 추락은 예견된 사실에 가깝다. 이미 지난해 상반기부터 OTT 경쟁 심화로 인한 넷플릭스의 성장 둔화를 우려하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었다. 오징어게임을 비롯한 콘텐츠의 세계적 흥행이 우려를 씻어내며 주식 사상 최고가 경신을 이끌기도 했지만, 콘텐츠 효과가 떨어지는 시점에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우크라이나 전쟁, 금리 인상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반동도 크게 받았다.
출처=셔터스톡
분위기 반전을 위한 넷플릭스의 노력도 필사적이다. 최근에는 비용 감축을 위해 직원 150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신규 가입자 유인을 위해 광고 요금제의 연내 도입도 검토 중이다. 광고를 보는 대신 좀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HBO 맥스나 파라마운트 플러스 등이 이미 광고 요금제를 서비스 중이다. 단일 요금제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도 가격이 저렴한 대신 콘텐츠 앞뒤로 다른 콘텐츠 광고를 노출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그간 이러한 광고 요금제 도입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으나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게 됐다.
새로운 기능 도입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영화 매체 데드라인은 넷플릭스가 생방송 기능 출시를 검토 중이며 현재 개발 초기 단계라고 지난 13일 보도했다. 데드라인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대본 없는 쇼나 스탠드업 코미디를 생방송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매체는 실시간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경연 방송에도 생방송 기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넷플릭스와 달리 HBO 맥스와 디즈니 플러스는 올해 1분기 각각 약 300만 명, 790만 명씩 가입자를 늘렸다. 하지만 이들도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리오프닝 시대를 맞으며 OTT 시장 성장 가능성에 의문 부호가 붙었기 때문이다. 장밋빛 전망이 끝난 상황에서 이들 앞에 놓인 건 출혈 경쟁이 불가피한 냉혹한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업계는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잔가지를 쳐내며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다. AT&T로부터 분사한 워너미디어가 디스커버리와 지난달 합병하며 탄생한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는 HBO 맥스와 디스커버리+ 등 산하 OTT 브랜드를 통폐합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하루 시청자 1만 명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던 CNN 플러스는 출시 불과 한 달 만에 서비스가 종료됐다. CNN 플러스는 합병 전 워너미디어 산하 CNN이 야심 차게 출범시킨 뉴스 전문 스트리밍 서비스다.
HBO는 자체 OTT인
연내 국내 진출이 유력했던 HBO 맥스의 국내 진출이 보류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뿐만 아니라 신규 시장 진출 자체가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콘텐츠 공급 계약 연장이 불투명했던 웨이브, 왓챠 등 국내 OTT들도 HBO로부터 신규 콘텐츠 공급과 기존 계약 연장을 협의하는 중이다. 웨이브 관계자는 “작년부터 HBO 콘텐츠를 공급 중이며, 현재 계약 연장과 신규 콘텐츠 계약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왓챠도 지난달 HBO의 첫 외국어 드라마인 ‘나의 눈부신 친구’ 시즌3을 왓챠 독점으로 새롭게 공개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HBO 맥스가 국내 출시 자체를 포기하거나, 티빙과 제휴한 파라마운트 플러스처럼 우회 진출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한 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황상 올해 내 직접 진출은 하지 않을 거 같다"면서도 "우회 진출보다는 직접 진출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HBO의 국내 직접 진출이 일단 보류되면서 당분간 기존처럼 국내 OTT 업체들이 HBO 콘텐츠를 선보일 전망이다. 사진은 왓챠가 지난달 공개한
국내 OTT 모바일 앱 이용자도 리오프닝을 기점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주요 OTT 앱 이용자 수는 올해 1월과 비교해 최소 7%에서 최대 23% 모두 감소했다. 넷플릭스는 7.1%, 웨이브는 11.9%, 티빙은 7.7%. 왓챠는 12.6%, 쿠팡플레이는 17.8%, 디즈니 플러스는 23% 줄었다.
OTT 업체들은 이러한 감소세를 리오프닝 영향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들 입을 모은다. 야외 활동이 증가하는 계절적 특성, 화제작 부족 등 여러 요인이 겹쳤다는 것이다. 한 OTT 업체 관계자는 “내부 지표를 봤을 때는 감소 추세를 보이는 건 맞다. 거리두기 종료 영향도 있겠지만 콘텐츠 이슈의 영향도 있다. 연초에 비하면 현재는 드라마 히트작, 신작이 많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리지널이나 독점작이 몰려 있는 하반기가 되면 이용자 수는 반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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